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2/07 12:25:14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08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56. 경계할 계(戒)에서 파생된 한자들

아아! 우리나라에서 다시 계엄(戒嚴)이라는 일이 일어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경계(警戒)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프도다! 그러하니 오늘은 계엄과 경계에 들어가는 경계할 계(戒)의 자원과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루고자 한다.

戒는 창 과(戈)와 두 손을 나타내는 받들 공(廾)으로 이루어진 회의자다.

675394d9cf83d.png?imgSeq=39538

왼쪽부터 戒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갑골문부터 지금까지 형태가 거의 변화가 없이 이어졌다. 약간의 변화라면 갑골문에서는 두 손 사이에 무기가 있는데 그 뒤로는 손이 무기를 받드는 형태가 된 정도? 갑골문에서는 받들 공 대신 오른손을 뜻하는 또 우(又)를 써서 오른손으로 무기를 잡는 형태로 쓰기도 한다.

戒는 《설문해자》에서는 "경계함{警}이다. 두 손으로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을 따른다. 경계함{戒}으로써 근심이 없다.”라고 풀이했고, 현대에도 이 풀이에는 변함이 없다. 즉 손으로 무기를 잡고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또는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움직임에서 더 나아가 무기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나중에 재질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을 더한 기계 계(械)로 파생되었는데, 전국시대 문헌에서는 戒를 械로 읽고 '무기'로 해석해야 할 때도 있다.

갑골문에서는 戒를 쓴 문장의 훼손이 너무 심해 제사 이름으로 쓰였다는 것 외에는 용례를 더 파악할 수 없으나, 금문에서는 경계함이라는 원래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경계할 계(戒, 계엄(戒嚴), 경계(警戒)/경계(鏡戒) 등. 어문회 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戒+木(나무 목)=械(기계 계): 계투(械鬪), 기계(機械)/기계(器械) 등. 어문회 준3급

戒+言(말씀 언)=誡(경계할 계): 계명(誡命), 권계(勸誡) 등. 어문회 준특급

6753bb719ca41.png?imgSeq=39542

戒에서 파생된 한자들.


앞서도 말했지만, 械는 지금은 기계장치의 뜻으로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 무기의 뜻으로 쓰였다. 중국에서 무기를 잡고 마을끼리 유혈 분쟁을 벌이는 단어인 계투(械鬪)에 그 뜻이 남아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械를 수갑의 뜻으로 풀이하는데, 죄인을 경계하기 위해 수갑을 채워 놓는다는 뜻으로 본 것 같다. 수갑이든 무기든 이에서 지금의 기계라는 뜻이 인신된 것이다.


械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지만 그 쓰임의 대부분은 기계라는 말이 차지한다. 이 기계는 두 가지 한자 표기가 있는데, 그릇 기(器)를 쓰는 기계(器械)와 베틀 기(機)를 쓰는 기계(機械)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른 두 기계의 풀이는 이렇다.

기계5(器械)

「1」 연장, 연모, 그릇, 기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구조가 간단하며 제조나 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용하는 도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의료 기계나 물리ㆍ화학의 실험용 기계 따위가 있다.

기계6(機械)

「1」 동력을 써서 움직이거나 일을 하는 장치. 단위로 대, 조, 틀 따위가 있다.

기계 제조.

기계가 돌아가다.

기계를 돌리다.

기계를 조립하다.

그는 기계를 잘 다루는 숙련공이다.

공장에 새로 기계 한 대를 들여놓았다.

나는 기사가 손본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공구를 챙겼다. ≪조세희,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2」 생각, 행동, 생활 방식 따위가 정확하거나 판에 박은 듯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 사람은 사과 깎는 데는 기계야.

「3」 자기 뜻이 아닌 남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즘 남자들은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했다.

「4」 소매치기들의 은어로, 직접 손을 대어 훔치는 사람이나 그 손을 이르는 말.

두 단어의 뜻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넓게 쓰이는 것이 기계(機械)다. 기계적이라는 낱말이 기계(器械)가 아닌 기계(機械)에서만 파생되는 것도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원래 조선에서 근대화를 겪으면서 영어의 머신(machine)이나 머시너리(machinary)를 번역할 때 쓴 말은 器械였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데, 처음에는 器械나 機械를 모두 사용하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機械 쪽으로 기울어졌다. 조선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머신 등을 번역할 때 機械를 선호했고, 이것이 굳어져 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는 원래 일상적으로 도구나 연장을 가리킬 때 쓰이는 한자어가 器械인 것과도 연관이 있으며, 이미 고전 한문부터 오래 이렇게 器械란 낱말을 써 왔다. 機械란 말도 쓰이기는 했지만 器械보다는 훨씬 덜 쓰였으며, 정교한 장치라는 데에서 비롯해 계획이나 속임수라는 뜻도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다가 근대에 서양 문물을 도입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전통적으로 널리 쓰인 器械를 누르기에 이르렀다. 機械가 器械를 누르고 머신의 번역어가 된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器械가 서양에서 들어 온 신기한 머신이라는 것을 부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誡는 戒와 훈음이 '경계할 계'로 같은데, 말로써 남을 경계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誡를 “경계함{敕}이다.”라고 풀이하며, 敕은 “경계함{誡}이다.”라고 풀이한다. 그러니까 誡란 敕인데, 敕이란 誡라고 하는 순환논리에 빠진 것이다. 사전에서 모든 단어의 뜻을 순환논리에 빠지지 않고 풀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국어사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관계를 서로 풀이한다 해 호훈이라 하며, 《설문해자》에서는 호훈 관계에 있는 한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늙을 로(老)와 생각할 고(考)로, 당시에는 考의 뜻은 老와 같은 '늙다'였다. 지금의 '생각하다'는 '늙은이처럼 깊이 생각하다'라는 데에서 인신된 것이다. 이 두 한자가 한자 만드는 원리를 설명하는 육서의 다섯번째인 전주의 예시인데, 그래서 전주가 대체 뭐냐는 것에는 학설이 분분하며 그 중 하나가 바로 호훈 관계에 의한 파생이다.

戒와 誡는 용례에서 조금 차이가 있는데, 자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戒는 물리력으로 경계하는 것이고 誡는 말로 경계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십계명 등에서는 戒가 아닌 誡를 쓰고, 가르쳐서 경계하게 하는 훈계에서는 誡가 아닌 戒를 쓰는 등 서로 혼용하지 않고 구분해서 쓰이고 있으나, 그 구분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뜻을 지닌다.

(기계 계)는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戒가 소리를 나타내며, 戒의 뜻을 따라 경계할 때 쓰는 무기나 죄인을 경계하는 데 쓰이는 수갑 등을 나타낸다. 기계란 뜻은 이런 경계용 도구에서 확장된 것이다.

(경계할 계)는 言(말씀 언)이 뜻을 나타내고 戒가 소리를 나타내며, 戒의 뜻을 따라 말로써 사람을 경계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6753bd9f6349a.png?imgSeq=39544

戒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戒(경계할 계)는 사람이 손으로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모습을 본뜬 회의자이다.

戒에서 械(기계 계)·誡(경계할 계)가 파생되었다.

戒는 파생된 한자에 무기를 잡고 경계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오타니
24/12/07 12:57
수정 아이콘
아니, 여기서 이 각을 보시는 분!흐흐
닥터페인
24/12/07 13:00
수정 아이콘
덕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독할 수 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如是我聞
24/12/07 20:34
수정 아이콘
잘 읽고 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89540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49341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70715 31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49505 3
103680 [일반] 아내 이야기 11 [17] 소이밀크러버1256 25/02/05 1256 24
103679 [일반] [번역] 신앙을 찾고 계신가요? 종교 선택을 위한 안내서 (NYT기사 번역) [18] Taima2212 25/02/05 2212 0
103677 [일반] 트럼프 "미국이 가자지구 점령해 소유할 것" [175] 전기쥐7830 25/02/05 7830 5
103676 [일반] 출근길에 황당한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14] 김삼관4036 25/02/05 4036 2
103673 [일반] 이제 와서 '초' 뒷북치는 2023년 애니 이야기 [34] 이르4132 25/02/04 4132 7
103671 [일반] 자유게시판 금지어 업데이트 좀 해주세요 [374] 통합규정11833 25/02/04 11833 55
103670 [일반] 대규모 언어 모델 활용과 경험적 연구의 미래 [28] 여왕의심복3122 25/02/04 3122 30
103668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73. 갑옷 갑(甲)에서 파생된 한자들 [3] 계층방정576 25/02/04 576 2
103665 [일반] 개인 서명 갖고 계신가요. [41] 김삼관6327 25/02/03 6327 2
103662 [일반] [설문] 영화 산업의 위기, 누가 우선 희생해야 할까 [87] 슈테판6711 25/02/03 6711 2
103660 [일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거 겁나 야한 소설이었네요 [20] 마술의 결백증명6168 25/02/03 6168 8
103656 [일반] 美, 4일부터 캐나다·멕시코에 25% 전면 관세…中에 10% [142] 유머12487 25/02/02 12487 4
103655 [일반] AI가 수능 수학 킬러문제도 맞추네요2 - 오류 수정 및 기타 AI모델 테스트 결과 [1] Quantumwk3789 25/02/02 3789 0
103654 [일반] <러브레터> -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림자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약스포) [17] aDayInTheLife4535 25/02/02 4535 4
103651 [일반] AI가 수능 수학 킬러문제도 맞추네요 - 오류 발견, 수정 글 추가 작성 [59] Quantumwk9707 25/02/01 9707 2
103650 [일반] 미국 필라델피아 도심지에서 경비행기 추락사고가 발생했습니다 [8] EnergyFlow8323 25/02/01 8323 0
103649 [일반] 눈 내리는 서울, 겨울 출사(사진 多) [4] 판을흔들어라5353 25/01/31 5353 20
103648 [일반] 그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17] 글곰9785 25/01/31 9785 15
103644 [일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SK하이닉스의 놀라운 과거 [23] 독서상품권10694 25/01/31 10694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