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논란의 글을 읽을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어 있어서 이토록 갈등을 야기하는 건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정규직화" 에 대해 전적으로 다른 의견을 -근로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고, 이것이 내 혼자만의 짧은 생각인지,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아래의 예상 시나리오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한 근거인지라, 잠시 제 지난 회사생활을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우연과 행운과 기적같은 일로 인해서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밤 10시 11시까지, 또는 밤을 새기도 하면서 미친듯이 일에 매달려서 살아왔고, 정규직으로서의 사명감과 자긍심으로 가족보다, 친구보다, 내 자신보다 언제나 회사가 우선인 삶을 10년간 보냈었습니다.
그 동안 비정규직 직원들도 만났었고, 선배(정규직)들로 부터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칭찬과 비난을 함께 들으면서 비정규직 직원들은 주인인식이 없고, 조건만 맞으면 훌쩍 떠나버릴 사람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는 의견을 주입받아 왔었고, 그렇게 경험해왔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을 다 하던 회사에서, -싱가폴에서 근무하던 중- 정의감에 휘말려 똘끼를 부리다가 2년반전에 짤렸습니다. (제 의지로 나온건 아니고 회사측에서 먼저 나가라고 했으니, 짤린게 맞네요)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싱가폴에 더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현지에서 직장을 얻었습니다. 싱가폴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구분이 없으므로, 어떻게 보면 온전히 비정규직/계약직 근로자인거죠.
부모님과 아내의 걱정도 걱정이거니와, 이렇게 앞날에 대한 보장없이 근무하는 것이 깜깜하기만 하던 중, 그냥 심심풀이(?)로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을 무심코 클릭한 연유로 또 다른 회사에서 오퍼가 왔고, 또 회사를 옮기게 되었네요. 여기서 제게 '탁' 하고 깨닫게 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이 오릅니다. 구인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을 데리고 오고 싶어하고, 구직하는 입장에서는 전 회사보다 더 안주면 안가고 말지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싱가폴에서 이직하는 경우는 대부분 연봉이 오릅니다.
두번째는 근무환경이 좋지 않다면 - 상사가 정말 x 같은 사람이거나, 회사 시스템이 정말 엉망이어서 일할 맛이 않난다면 -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겠다라는 [선택지]가 생깁니다.
셋째는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과거 10년동안은 "정규직"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회사에 헌신하고 충성을 다했다면, 지금은 내 몸값으로는 이 정도는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늦게 까지 일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정도면 됐다 라고 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서, 발걸음이 편하고 [온전히 제 생각]만 하게 됩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여기서 정년퇴직까지 일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마인드로 - 계속 제가 열심히 일해야하고 성과를 보여줘야 하고 자기계발을 계속해야한다는 마음이, 정규직일 때 보다 더 들고 있습니다.


위의 저의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계약직 근로자가 되었을 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버렸을때,
회사에서도 쉽게 내보내고 나도 쉽게 나가는 상황이 왔을 때,
다음 시나리오들이 예상됩니다.

[근로자 입장]
        1. 본인의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 자기계발에 충실.
        2. 회사에서 처우가 부당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면 이직을 "쉽게" 선택가능
        3. 회사는 일하던 사람이 나가게 되면 공백이 있으므로 잡으려고 하고, 처우 개선 도모.
           (물론 원하는 처우가 어느 선 이상이면 - 서로 byebye)

[이직할 일자리가 없을 수도 있는데!!]
        1. 회사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직이 흔하고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다른 어딘가에서는 같은 이유로 또 다른 자리가 발생
        2. 물론 일자리가 당장 없을 수도 있으나, 쉬는 동안 자기계발 또는 개인 여행 등 다음 구직까지 온전히 본인을 위한 설계 가능

[회사에서 쉽게 내보낸다면 쉽게 일자리를 잃을 텐데]
        1.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같은 이유로 다른 어딘가에서는 또 빈자리가 나게 마련.
        2. 또한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근로자 본인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내려하고, 자기계발도 꾸준히 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회사에서 내 몸값을 인정토록 만들어감.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던 고참 부장님이 떠오르는군요)

[야근 ?]
        1. 죽어라고 야근 시키는 회사가 있다면, 남아있으려는 근로자도 없을 것.
        2. 야근을 고집하던 회사는 처우 개선하면서 좋은 인력을 붙잡도록 변화
        (물론 저 또한 야근도 하고 휴일에도 일합니다. 하지만 이 것들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 제 스스로의 만족,성취감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경험해온, 말씀드리고자 하는 논리입니다.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의 남녀직장인 1,091명 대상 조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직 결심 이유는 - 기업성장/비전 없어보여서 50% / 복지제도에 대한 불만 39.9% / 연봉을 더 높이기 위해 35.4%
정규직 이직 결심이유는 - 기업성장,비전 없어소여서 53.2% / 복지제도에 대한 불만 25.4%
비정규직 이직 결심이유는 - 고용형태가 마음에 들지않아서 41.0% / 연봉을 더 높이기 위해 40.4%

단편적인 분석일 수도 있으나, 정규직이 이직을 하는데 있어서 연봉을 높이기 위한 이직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데 대해 - 공감하면서도 이상합니다.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따른 연봉협상을 하는 것은 근로자의 정당한 의무와 권리이면서도 정규직의 생각 밖이죠. 다만 성과를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는 연공서열 하에서 우직하게, "승진"에 미뤄지지 않도록, 약간의 연봉상승도 기대하겠지만 그 보다는, 최종적으로 윗자리에 앉아 "권력"을 잡으려는 목표를 향해 살고 있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은 그랬었네요)


"비정규직 직원들은 주인인식이 없고, 조건만 맞으면 훌쩍 떠나버릴 사람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 라고 위에 언급했었습니다.
하지만 - 이것이 과연 "잘못된" 생각인지 의문입니다.
회사에 대한 주인인식 - 비정규직인 저는 없습니다. 회사 주인은 주주고, 사장이죠.
저는 저에 대한 주인인식만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아를 위한 노력이고 성취감입니다.
조건 맞으면 훌쩍 떠날겁니다. 그 전에 현재 회사에서 나를 붙잡도록 내 능력을 키워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 주인인식 많고 계속 정진할 것으로 여겨지는 "정규직" 은 연봉테이블에 따라 책정해주는 계약서에 연봉협상 없는 동의 서명을 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상비 노예 같은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보유하고 있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 종종 불법적인 일을 감추고 덮으려는 이상한 형태의 책임감으로도 나타나고 있지않나요.


직장내 갈등이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구분에서 비롯되는 것도 다소 있겠지만,
대부분의 갈등은 한국 사회의 서열/갑을 관계 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모두 정규직이 되면 - 모두 행복할까요?
모두 비정규직이 되면 - 모두 불행할까요?


"정규직"이라는 벼슬같은 족쇄를 버린다면,
내 몸값을 내가 올리도록 노력하고, 그에 걸맞는 처우를 제공하는 직장을 찾으려고 한다면,
직장을 잃게 되어도 흔한 이직 시장에서 쉽사리 빈자리가 발생하는 사회분위기라면,
그래서 당장에 일을 쉬더라도 재기를 노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오히려 회사측보다도 먼저 모든 근로자들에게 그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잘 듣는 상비노예를 잃은 회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근로자들을 다른 시각/다른 처우로 대하게 될 거구요.

다만 제 생각이 제가 거쳐온 -약간 사회주의적인 나라들에 있었기에-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하다보니 편향된 점이 있을 수도 있어서, 다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