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분노는 불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찾아온다. 알러젠들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주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예시를 삼십 분 동안 써 내려가다가 다 지워버렸다. 이러다 매번 글을 안 쓰고 말았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몇 년째이다. 사실 피지알도 보기만 하다가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쓰지 않았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그런 것- 하고 싶은 말은 무궁무진하지만 결국 한마디도 안 하게 되는 주제.

하나 다행인 점은 해가 갈수록, 여성주의 관련 책을 많이 읽을수록, 포기하고 말을 아낄수록 점점 그 '알 수 없는' 분노의 주기가 길어진다는 점이다. 요즘은 그냥 책만 읽고 아무하고도, 심지어 여성들과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실 요즘이 아니다. 그런지 몇 년 됐다. 묵언수행을 하면서, "너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칭찬'과 함께 날아오는 입장표명이나 설명의 '의무'도 가볍게 쳐낼 수 있게 되었고, 허허실실하며 주제를 잽싸게 바꿀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인 투사들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n명의 페미니스트는 n가지 이유와 n가지 방법으로 자기만의 페미니즘을 실천할뿐더러, 그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평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별로 입을 대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다 구조적, 사회적 이유가 있다.

내가 유일하게 대답하는 페미니즘 관련 질문은 "너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해?"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세계를 해석하는 무수한 사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해석의 방법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것들의 깊이와 기발함으로 한계가 없는 정신적 풍요를 얻을 수 있다. 정말로 페미니즘은 흥미로운 다양한 주제들로 이어지는데(채식주의같은 '흔해빠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엔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에 심취해있다. 입양을 '진지하게' 고려해왔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입양같은 소리하네 뭘 알고나 떠들어"라며 혼나면서도, 오랜만에 당하는 '계몽'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여러분 다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합시다.

사실 마지막 문장은 "(여성) 여러분" 이었는데 교조적으로 보일것같아 지웠더니..
남성이 공부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