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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6/03 16:14:33
Name Syncnavy
Subject [일반] 회사원 글쟁이의 일주일 (수정됨)
1.

월요일이다.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피할수 없는 재앙 같은 것이지만 오늘만큼은 마음이 가볍다.
매일같이 최소 4회이상의 비축분을 유지해야 하는데 일요일날 불굴의 의지로 비축분을 5회까지 올려놓았기 때문.
덕분에 새벽 한시 반까지 글을 쓰고 자느라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연재걱정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것은 일일 연재를 하는 글쟁이에게 축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2.

나는 회사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연재를 하고 있다.
유료회차는 기본이 5,000자이기 때문에 내가 일주일동안 쓰는 양도 평균 35,000자 이상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회사, 글, 회사, 글의 무미건조한 생활 패턴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플레티넘 달성을 위해 저번주말 골드5에서 골드3까지 승급을 마쳐놓았고,
주말에는 친구네 집들이를 다녀와 도둑 변장을 하고 아이들과 정의구현놀이를 한 뒤(녀석들은 안방 화장실을 '감옥'이라 명명한 뒤 나를 그곳에 삼십분동안 가둬두었다.) 영화관에서 어벤저스를 시청했다.
토요일 아침에 뛰고온 사회인 야구 리그는 덤.

3.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쪼개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내면 물이 나온다'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원고를 작성하고, 도저히 한되면 그냥 잠을 두세시간 포기한다.
물론 이로 인해 회사생활의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로만.
지금까지 첫작 136화와 두번째작 193화를 연재하면서 단 하루의 펑크를 내지 않은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4.


시간을 쥐어짜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점심시간에 식사를 포기하고 피시방으로 달려간다.
다이어트를 위해 일일 1식을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이시간에 분량을 조금이나마 마련해두어야 퇴근후가 편하다.
이전까지는 조용한 만화카페에 가서 핸드폰 메모장을 이용해 원고를 썼지만,
아무래도 키보드를 통한 양손 타이프가 속도면에서는 우월하다.
게다가 평일 점심시간의 대형 피시방은 손님이 없기 때문에 의외로 정숙하다.
내가 연재하는 플렛폼에는 자동저장 기능이 있어 열심히 쓰다가 점심시간이 다 될 무렵 돌아가면 그대로 원고가 남아있다.
이때 50분가량 열심히 쓰면 대략 2,000~2,500자 정도의 원고가 나온다. 일일 연재분의 반 정도가 쓰여지는 것이다.

5.


회사에 복귀했더니 충격적인 소식의 연속이다.
거래처에서 수요일날 저녁 식사를 제안했고, 팀장님이 금요일날 점심먹을 사람이 없다며 함께 하자는 것.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약속이 원고 글자로 고스란히 치환되는 기적의 알고리즘.
그것이 자연스레 머리속에서 발동되며 나는 이번주 스케줄을 다시한번 떠올려보았다.

'어디보자. 친한 동료들이랑 목요일날 술한잔 하기로 했고. 토요일은 회사 운동회가 있었지. 일요일에는 사촌 동생 대회나가는걸 응원해주기로 했었고.'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본 나는 이번 주에 정말 정신차리지 않으면 원고 분량이 개노답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6.


나아~는~ 행복합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드럽게 못하던 나의 행복팀이 요즘 아주 물을 만난 듯 연전 연승을 거듭하고있다.
야구를 보는 나의 패턴은 크게 두가지.
이기고 있거나 이길랑 말랑하면 야구를 본다. vs 이건 이미 끝난 게임이다 싶으면 티비를 끄고 글을 쓰러 간다.
하지만 행복팀은 2018 크보 역전승 1위의 팀 답게 어느경기 하나 시청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경기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자연스레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의 세시간은 야구 시청으로 고정되게 되고,
평일 원고는 점심시간에 미리 쌓아둔 2,000자 남짓과 밤 10시 이후의 작성으로 이루어진다.

7.

까방권.
'까임 방지권'의 줄임말로 운동선수가 한가지 나이스플레이를 하고나면 다음에 에러를 해도 봐주는 팬들의 자체발급 증서(?)를 의미한다.
간단한 예로 솔로홈런을 친 타자가 그 다음 이닝에서 실책을 한 경우 '까방권' 한장을 모두 사용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까방권'이 곧 '비축분'이나 다름없다.
매일 연재를 하는 글쟁이의 입장에서 비축분(예약연재분)이 없다는 것은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의미다.
퇴근후 회사에 회식이나 사적 모임이 있어도,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밤에 들어와 노트북을 키고 끄적거리는 처절한 삶.
이것은 '까방권'이 없는 글쟁이의 흔한 일상이기도 하다.


8.

그렇다면 비축분(예약분)은 왜 꼭 4회 이상이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네xx와 리xxx등 다른 플렛폼에 작품이 이벤트가 들어갈 경우,
대부분 원래 연재하던 플렛폼과 동시 연재를 조건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기껏 이벤트를 달아줬는데 최신화는 다른 플렛폼에서만 볼수있다면 이벤트 효과로 재미를 보기가 어렵다.
(물론 플렛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독자들에게는 예외가 되기도 한다.)
모든 플렛폼에 내가 직접 연재를 올리는것이 아니고, 그 일은 계약을 맺은 출판사 직원이 도와주기 때문에,
출판사 직원이 원고를 검열/검수하고 다른 플렛폼에 올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적 여유라는것은 주말도 예외가 아닌데,
출판사 직원도 주말은 쉬어야 하므로 목요일 기준 네 개(금 토 일 월)의 비축분이 필요한 것이다.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는 납작 엎드려 절을 해야 할 정도로 감사한 것이지만,
그렇게 나는 +4의 연재가 제로베이스가 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9.



그렇게 하루살이 인생을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136화 완결의 전작을 쓸 때 비축분이 15개 이상일 때도 있었다.
이주를 그냥 놀아도 '까방권'이 소멸되지 않던 행복한 나날들.
그때는 지금과 두 가지가 달랐다.
첫번째는 프로야구가 비시즌이었고, 자연스레 사회인 야구도 비시즌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정말 퇴근했다하면 집에서 글만 쓰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첫 유료연재를 시작했다는 기쁨.
그것이 내게는 비축분(까방권)을 쌓는 자양분이 되었다.


10.


그렇게 폭풍같은 평일 약속과 회사 운동회, 운동회에 이은 뒤풀이. 그로인한 새벽 두시 귀가를 하고 나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일요일 오후 현재 비축분이 꼴랑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0-
숙제나 시험공부를 하기 전에는 아홉시 뉴스가 그렇게 재밌어보이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역시 평일에 야구가 끝나고 '이제 써야지. 이제써야지' 하다가 12시까지 소파에서 빈둥거리기 일쑤였고,
약속이 있는 날은 있는 날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도 자랑스러운 내 사촌동생의 바텐더 대회 응원차 한남동에 가야 하는데,
출발하기 전에 한 편을 쓰고 나가려고 했던 차,

와이파이 오류로 플렛폼의 자동저장 기능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방금 한시간 반동안 썼던 오천자의 분량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는 의미다.

지자스(찡긋)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해가며 '아닐꺼야, 어딘가 원고가 남아있을꺼야' 하고 새로고침과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나는 강력한 두통과 함께 원고가 날아갔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제멋대로 날아가버리는 의식의 흐름과 분노조절장애로 나는 피지알에 접속했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물나는 경험담을 끄적거리게 되었다.
삼십분동안 이 짓(?)을 하지 않고 원고를 다시 썼다면 조금은 만회할 수 있엇겠지만,
도저히,아무래도,도대체가, 그 짓을 당장은 못하겠다.

게시판에 글을 썼다가 날아가서 좌절한 피지알러가 있다면 내 기분을 십분 이해해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빠, 거기 가면 바텐더가 만드는 칵테일 죄다 공짜로 먹을 수 있어 오호호 ^0^' 라며 톡을 보내는 순진무구한 또다른 사촌을 만나러 이동해야 한다.
다녀오면 일요일 오후 열시.
새벽 한두시까지 글을 쓰면 비축분을 3개정도까지 만들어낼 수 있겠지.
그래도 -1이구나 젠장.
뜻하지 않게 사촌 여동생이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지 않길 바라며 버스에 오른다.
나란 놈은 좋다고 따라 나설 30대 미혼이니까.

6월 말이면 두번째 작의 모든 여정이 끝난다.
그때는 정말 아무런 마음의 짐 없이 딱 일주일만 있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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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바람
18/06/03 16:27
수정 아이콘
아 문피아 연재중이시군요. 투잡 진짜 대단하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Syncnavy
18/06/03 16:4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제 어느정도 요령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것 같습니다.(...)
사악군
18/06/03 16:31
수정 아이콘
애도염..ㅜㅜ
Syncnavy
18/06/03 16:48
수정 아이콘
내다리.. 아니 내가 쓴거 내놔!!! ㅠㅠ
바람이라
18/06/03 16:31
수정 아이콘
그리고 그는 술자리에 따라가게 되는데... 과연 글쓴이는 마감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Syncnavy
18/06/03 16:49
수정 아이콘
그만둬!! 이미 글쓴이의 hp는 -3이라고!!
바람이라
18/06/03 17:12
수정 아이콘
다음부터는 그런 좋은 칵테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자리는 공유 좀 해주세요
아마 무수한 피지알 회원들이 달려가지 않을까...

그런데 -3이 꽤나 구체적인 수치네요
Syncnavy
18/06/03 17:17
수정 아이콘
아 원래는 입장료가 필요한 대회인데 참가자 가족 찬스를 쓴 것이거든요. hp는 비축분 네 개 기준으로 하나씩 부족할때마다 마이너스가..ㅠㅠ
18/06/03 16:45
수정 아이콘
작품 이름이 무엇인가요~
Syncnavy
18/06/03 16:50
수정 아이콘
광고성 글이 될까봐 기재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 회원정보를 보시면 알수있으실거에요.
네오바람
18/06/03 16:52
수정 아이콘
신의 마구랑 에이스 카드에요
Syncnavy
18/06/03 17:17
수정 아이콘
앗.. 감사합니다.
Biemann Integral
18/06/03 17:57
수정 아이콘
여동생 지인들과 술자리 후기 기대합니다.
Syncnavy
18/06/04 12:45
수정 아이콘
여동생 지인들이 직접 불러준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귀가하였습니다 ^^ 잠시 눈물좀 닦고..
푸른늑대
18/06/03 18:44
수정 아이콘
잠줄이는거 건강에 좋지않습니다. 건강챙기시고 롱런하세요.
Syncnavy
18/06/04 12:46
수정 아이콘
힘이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언젠가 피지알회원님들에게도 나눔을 할수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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