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조조의 용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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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구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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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친족 중심의 군부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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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아버지를 계승한 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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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구품관인법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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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기울어진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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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사마의, 버팀목인가 위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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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의 죽음을 전후한 상황은 꽤나 혼란스럽습니다. 여러 사서들을 종합해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은 그려볼 수 있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습니다. 배송지주에 인용된 사서마다 제각기 입장이 다르고, 이런저런 상황도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이건 본질적으로 조예의 후계구도가 뒤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조비가 조예의 태자 책봉을 지나치게 늦춘 탓에 조예는 정통성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그런데 조예의 후계구도는 그보다 훨씬 더, 실로 끔찍하리만큼 엉망진창입니다.
원래 조예는 자식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요절했어요. 딸 하나를 제외하면 다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요. 게다가 조예는 원래 아내가 있었는데 황제가 될 때 버리고 다른 이를 황후로 삼았고, 이후 그녀마저 죽이고 또다시 황후를 갈아치웁니다. 이 사건이 꽤나 엽기적인데 후궁 및 궁녀들과 함께 놀면서 ‘이걸 황후에게 말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황후가 ‘어제 재미있게 놀았나 보죠?’ 하고 갈구자, 조예는 측근이 비밀을 누설했다고 여겨 측근 십여 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황후에게는 자살을 명령했어요.
......조예가 아버지에 비해 인간성이 좋다고 하신 분 어디 계심?
아무튼 이런 막장 가족의 가장이었는데 자식들마저 죄다 요절했지요. 하지만 조예는 고작 삼십대에 지나지 않았으니 충분히 자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아이를, 어린이도 아니고 젖먹이 둘을 어디선가 데리고 와서는 선언합니다. “얘들은 이제부터 내 양아들이오.”
뭐라고요 황제 폐하???????
물론 자식이 없어서 양자를 들이는 건 정말로 흔하디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조비의 나이는 아직 한창이었어요. 양자를 들이기에는 지나치게 일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얘들이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아이들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말로 조씨가 맞기는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죠. 심지어 조예는 이 둘의 출생을 비밀에 붙입니다.
그 두 아이의 이름은 조방과 조순. 이후로도 조예는 결국 아이를 갖지 못했기에 조예의 후계자는 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고작 일고여덟 살 된 꼬마 둘뿐이었지요. 심지어 그 둘 중에서도 조예는 나이가 더 어린 조방을 후계자로 점찍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인지.......
자. 이런 상황에서 238년 12월 8일. 조예는 갑작스러운 중병으로 앓아눕습니다. 그리고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이 시작됩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조예는 아끼던 후궁 곽씨를 황후로 세웁니다. 이전의 황후 모씨가 위에서 언급한 엽기적인 사건으로 사망한 후 1년이 넘도록 비어 있었던 황후 자리를 다시 채워 넣은 겁니다. 그런데 곽씨는 본래 위세 있는 집안의 여식이었지만 고향에서 반란이 일어난 탓에 노비가 되어 궁으로 들어온 처지였습니다. 즉 오직 조예의 총애에 의해서만 집안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곽씨 가문은 조예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설령 조예가 죽더라도 그 후계자에게 잘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야말로 황실의 보위세력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조예가 갑작스레 곽씨를 황후로 세운 것은 그러한 의도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동시에 조예는 연왕 조우를 대장군에 임명합니다. 또 앞서 언급한 하후헌, 조상, 조조(조휴 아들), 진랑 등 젊은 친족들에게 그를 돕도록 하죠. 지금까지 조예가 안배해 온 황실 보호 체제가 마침내 빛을 발할 때였습니다. 비록 후계자의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렇게 친족들을 전진배치하고 특히 조우를 대장군이자 탁고대신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만 이런 체제 하에서 가장 큰 위협은 지금 요동에서 돌아오고 있는 사마의였습니다. 군사 사만 명을 거느린, 위나라에서 제일가는 군사 지휘관인 바로 그 사마의 말입니다. 그렇기에 조우는 사마의에게 황제의 명령을 보내, ‘수도로 돌아오지 말고’ 바로 관중(장안 일대)으로 가라고 지시합니다. 사마의가 수도로 돌아와 한바탕 뒤엎어버릴까 두려웠겠지요. 이를 보면 사마의는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당대에 이미 조씨 황실의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끝났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요. 그러나 사흘 후에 뜻밖의 일이 발생합니다.
12월 27일. 조예는 대장군 조우의 관직을 빼앗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예의 측근인 유방과 손자가 이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들은 본래 조우를 필두로 한 황족 세력과 워낙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조우가 탁고대신이 되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리라 우려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조상과는 또 사이가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유방과 손자는 조예의 귀에 대고 연왕 조우의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조우가 황위를 탐낸다는 말을 들은 조예는 분노하죠.
그런데 조우의 본심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조우는 바로 조조의 아들입니다. 정통성이 충분하지요. 반면 조예의 후계자인 조상과 조순 형제는 출신성분도 알 수 없는 꼬꼬마들이었거든요. 차라리 조예가 조우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다면 위나라는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조예는 이미 조방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로 결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조방이 조예가 근친상간을 통해 몰래 낳은 자식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지경입니다. 그런 게 아닌 다음에야 조예의 조방에 대한 집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요.
어쨌거나 조예는 조우의 관직을 박탈하라 합니다. 유방과 손자는 조상과 사마의에게 탁고하라고 조언하죠. 조예는 그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휴의 아들 조조(조휴 아들)가 눈물로 호소합니다. 조예는 조우의 관직 박탈을 취소합니다. 또다시 유방과 손자가 호소합니다. 조예는 또다시 조우의 관직 박탈 취소를 취소합니다. 개판이네요 아주. 심지어 조예가 스스로 칙서를 쓸 힘조차 없다고 하자 유방은 조예의 손에 붓을 쥐어준 후 그 손을 잡고 스스로 글씨를 써서는 자기가 옥새를 찍고 황명을 내립니다. 결국 조우, 조조(조휴 아들), 진랑, 하후헌은 모두 벼슬을 박탈당한 후 울면서 집으로 가죠.
자. 이때 조예의 정신이 말 그대로 오락가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명료한 정신으로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해 그렇게 했을 수도 있죠.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전자라면 편하겠죠. 이 모든 모순을 그저 조예의 정신이 혼미했던 탓으로 돌리면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조예의 목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방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조예가 이십 년쯤 더 살고 제 수명에 죽었더라면, 그래서 조방이 그 기간 동안 후계자로서 공인받으며 성인이 되었다면 정통성 부족도 어느 정도는 극복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동안 조우를 위시한 여러 황족과 친족들을 통해 실질적인 보위 세력도 구축해 줄 수 있었을 테고요.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죠. 조예 자신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고 조방의 나이 고작 여덟 살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본래는 황실의 보위세력으로 삼으려 했던 조우가 오히려 조방의 황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됩니다. 조상이나 조조(조휴 아들) 등과는 달리 지나치게 가까운 황족으로 엄연히 황위계승권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조우를 배제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방을 위해 조우를 대체할 누군가를 붙여주어야 했습니다. 조예의 결정은 조상과 사마의였죠. 그런데 왜 조상이었을까요? 반대로 말하자면 원래 조우, 조조, 하후헌, 진랑과 한패였던 조상이 왜 갑작스레 조우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걸까요?
저는 조상이 조우를 재끼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잡으려 했다고 봅니다. 흑심을 품고 있었다는 거죠. 유방이나 손자 역시 그의 패거리였을 테고요. 하지만 조상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지나치게 젊었고, 딱히 실적을 쌓은 것도 없었고, 지위도 부족했고, 군사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상은 사마의를 끌어들입니다. 그에게 없는 것들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 인물을요.
동시에 조예의 입장에서도 그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사마의는 정확하게 238년 1월 1일에 하내군으로 진입합니다. 낙양이 위치한 하남윤 바로 인근에 위치한 군(郡)이었죠. 즈음하여 조예는 친필 조서를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사흘 동안 다섯 통이나 보냈다고 하니 엄청나게 다급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목숨이 말 그대로 경각에 달려 있었거든요.
사마의는 미친 듯이 서둘러서 낙양에 당도합니다. 조예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사마의가 도착하자 조예는 그의 손을 잡고 조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합니다. “그대는 조상과 함께 이 어린 아이를 보좌해 주시오. 짐은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그대를 기다리느라 차마 아직 죽지 못했소. 이제 만났으니 여한이 없구려.” 사마의는 눈물을 흘리며 그 유언을 받듭니다. 이 모습을 보면 사마의가 후세에 망탁조의로 일컬어지는 그 역신(逆臣)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바로 그날, 조예는 세상을 떠납니다. 3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위나라의 황제는 여덟 살 난 꼬마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