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라오스의 두번째 도시 루앙 프라방에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모든게 싫증이 나고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캐나다를 떠난지도 7개월차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있던 토론토를 떠나 포르투갈에서 시작해서 유럽을 좀 돌아다닌 후, 터키 이스탄불에서 직항으로 한국으로 간 다음 이제 동남아에 온지 2개월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이 또한 무료해지더군요. 항상 며칠 후 어딘가로 떠나야한다는 불안감, 혹은 반복대는 호스텔에서의 대화(너 어디서 왔니? 어 이제 거기로 가니? 응, 거기 XX 추천해. 히히)의 형식에 질릴도록 질려버리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돈을 아끼느라 보통은 호스텔에 머무는데 제가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인지라 좀 더 성숙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든 경우도 있더군요(만 35세. 호스텔 가기 아슬아슬하죠?). 그리고 다들 특정한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저는 이제 일절 '여행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사원에 가야한다, 어느 절벽에서 지는 해를 보려 가야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들리지만 아마 제 성격상 어디 돌아다니는건 정말 좋아하지만 막상 가면 편안한 '집'안에 있는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타입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태국 가기 전에 여기 라오스에 한 3주 정도 머물게 되었는데 마침 어느 작은 소도시에 위치한 호스텔에서 일을 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워낙에 여행에 질릴대로 질린 터라 한곳에 장기간 머무르게 되는 기회다 싶어서 호스텔 주인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결국 저는 타켁(Thakhek)이라는 작은 소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
타켁은 4만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이며, 관광이라 하면 타켁에서 시작되는 타켁 루프를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고 알고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오토바이를 빌려서 3-4일간 멋진 광경들을 보며 절벽, 호수, 동굴 기타 등등을 탐험하는 제대로된 여행자들을 위한 곳이라 보면 되죠. 저는 이 도시에 위치한 호스텔에서 리셉션을 해주며 공짜로 자는 조건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일단 첫날 그 호스텔로 들어가자 마자 좀 고난이였습니다. 제가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호스텔의 주인은 태국 사람으로서 현재 라오스에 있지 않은 상황이였고 호스텔을 관리하는 여자애가 한명 있었는데 그 여자애가 아프다며 제가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쉬려 간것입니다. 뭐 대충 열쇠는 어디 있고 이야기는 했지만 체크인이나 체크아웃 과정, 등의 아주 기초적인 호스텔 운영에 대한 지식전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여자애는 집으로 가버립니다.
그런 후 저는 혼자 그 작은 호스텔에 남겨지는데 일단 그 호스텔에 대해 설명하자면 3개의 방이 있고 각자 6명, 4명, 4명 총 14명이 묵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뭐 시설이라고는 화장실 몇개랑 샤워실이랑 거실공간이 다여서 무척이나 심플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들어올 게스트들이 몇명 있어서 저는 잔뜩 긴장한 채로 호스텔 리셉션을 봤었죠.
첫날 밤 한 2-3명 체크인하는거 도와준걸로 기억하는데 인당 80킵(한화 6000원 이하)를 받고 도미토리의 침대로 안내합니다. 와이파이? 벽에 적혀있음. 수건은? 음, 여기 있네. 빨래 서비스는? 아 모르겠는데... 일단 저를 조금 난감하게 하는 부탁들이 슬며시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태국에 있는 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냈고 시원찮은 대답이 안나올때는 그냥 제가 알아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죠. 일단 세탁기를 찾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낸 후 손님들로 하여금 스스로 빨래하게 만들고 최대한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마인드로 호스텔을 돌보았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고 내일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 여자애가 아직 아프답니다. 그 사실을 태국에 있는 주인에게 이야기 하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을 오늘 보내서 도와주겠다. 이렇게 무작정 홀로 남겨둬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요. 그래서 두번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11시가 되자 몇이들 슬슬 체크아웃을 하고, 몇명은 하루밤 더 있고 싶다고 하네요. 계속 시간은 지나가고 그날 체크인 하는 손님들의 리스트도 주어지는데 아직 방들을 청소할 사람들이 오지 않네요. 아,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계속 주인에게 재촉해보았지만 결국에는 역시 제대로된 대답이 오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 혼자서 손님들 체크아웃한 침구들을 빨래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타켁 루프를 하기전에 짐들을 맡기려하는 손님들도 있고요. 짐 어디다 두지? 음, 여기 짐 보관방 열쇠가 있군. 그렇다면 한번 그 방을 찾아보자... 뭐 이런식으로 완전히 대충 날리는 호스텔 운영을 하면서 어설프게 침구들을 정리하고 방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저녁 무렵에 그 여자애가 오더니 와우, 방들 참 잘 준비했네? 이러면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가버립니다. 저는 좀 어처구니가 없죠. 애초에 처음부터 해야할 일을 제대로 말해주면 쉽게 해버릴 것을, 이렇게나 아무렇게 내팽겨쳐놓고 일이 될대로 되라라는 마인드가... 부럽습니다. 이건 제가 워낙에 제대로 일을 하고 책임감 넘치는 환경에서만 살다온 제 탓이겠죠?
그렇게 해서 제 3일날도 저혼자였습니다. 3일날에는 그 여자애가 아픈건 아니였지만 주변 지인 결혼식때문에 못온다네요. 이제는 애초에 남이 도와줄거라는 기대도 안하고 계속 리셉션 보면서 사람들 체크아웃 하자마자 침구 빨래 들어갑니다. 한때 시급 3만원 넘게 받다가 하루저녁 6천원이 안되는 호스텔에 하루저녁 재워준다고 하루종일 일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살짝 미소가 나오더군요. 사실, 이러한 겸허함이 제게 필요했던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는게 사실 꽤나 즐거웠네요. 물론, 평생 그렇게 하고 살으라고 하면 당연히 스트레스 받아 죽을 일이지만 당분간 이렇게 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니 제겐 생소하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항상 호텔이든 호스텔이든 손님으로서만 있어봤기에 청소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얼마나 인간들이 지저분하고 뒷정리가 안되는지 잘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였습니다. '인간이 지나간 곳에는 항상 쓰레기가 있다'라고 명심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3일날 저녁이 되서야 호스텔 관리자 여자애(얘 이름은 코이)가 돌아옵니다. 저는 녹초가 되어서 일찍 잠을 청하고 그다음 날부터는 걔도 이제 자기 볼일 다 끝났는지 같이 서로를 도우며 호스텔을 운영해 나갑니다. 원래 일하던 사람이 한명 들어오니 제 부담도 줄고 그 이후로부터는 편안하게 타켁을 좀 즐기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보통 이런식으로 일과를 보냈죠:
아침 8시: 일어남. 코이가 사다놓은 바나나랑 아보카도 먹으면서 인스턴트 커피를 흡입.
아침 10시: 이때 즈음 사람들이 체크아웃하기 시작함. 오후에 너무 밀리면 안되니까 재빨리 침구들 꺼내서 빨래 돌리기 시작함.
점심 12시: 코이가 시장에서 점심(매콤한 쌀국수, 혹은 돼지고기랑 밥) 사옴. 역시 퐁풍 흡입.
오후 2시: 이때부터 대충 빨래가 정리되고 다들 체크아웃 하면 제일 한가로울 타이밍. 이때 해먹에서 낮잠을 취함.
오후 6시: 저녁을 먹으려 밖으로 나감. 코이한테 맡기고 이때서야 타켁 시내도 조금 돌아다님.
오후 8시 - 11시: 이때 많이들 체크인.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타켁으로 오는 버스가 하도 오래 걸려서 다들 늦게 도착함.
12시 자정: 취침. 그러나 간혹 새벽에 도착해서 깨우는 손님들 한번씩 있음.
이렇게 일상을 보내며, 간혹 시간이 있을때 헬스를 하려 가거나 메콩강을 바라보며 조깅도 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마음에 맞는 여행자가 있으면 라오스 맥주도 사와서 한잔하는것도 잊지 않았죠.
그렇게 한 2주일 안되게 타켁에서 즐겁게 보냈습니다.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니 한곳에서 살면서 루틴대로 생활하는게 너무나도 즐거웠네요. 물론 미치도록 답답하게 일을 하는 라오스의 정서에 적응하느라 조금 애를 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즐겁게 보내고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의 여행하면서도 또 이런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네요.
호스텔 풍경
호스텔 풍경
리셉션
타켁 루프를 준비하는 여행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