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과 한신은 모두 중국 역사상에서 유명한 인물들 입니다. 패현에서 입만 살아서 허풍만 떨고 다니는 건달패 두목이었던 유방과, 고향인 회음 땅에서 흡사 미국 청소년 드라마에서 잘나가는 일진들에게 털리는 너드 주인공 마냥 괴로운 찐따 생활을 하고 다니던 한신의 여러 사소한 일화에 대해서는 여기서 굳이 또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 합니다.
청년 시절 한신의 난감한 일화 중에 제일 유명한 게, 평소 한신을 깔보던 저잣거리 건달에게 "이 폼만 잡고 다니던 찐따야. 네가 쥐뿔도 그럴 패기 없는거 알고 있으니 만약 그게 아니면 날 칼로 찌르고 안그럴거면 내 밑에 가랑이 사이로 걸어가라." 고 하자 별 수 없이 가랑이 사이로 걸어가서 모두가 그걸 보고 비웃었다는 일화 입니다. 사기 회음후 열전에서는,
「시정의 모든 사람들이 한신을 비웃으며 겁쟁이라 했다 一市人皆笑信, 以為怯.」
라고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빵터졌다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무튼 이 사건은 나중에 한신이 출세하고 난 이후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져서 한신을 계속 따라다니던 일이었던 듯 합니다. 오죽하면 유수 전투 직전 한신을 상대하려고 온 초나라의 대장 용저가,
"내가 평소부터 한신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데, 그는 상대하기가 쉬운 작자다." (吾平生知韓信為人, 易與耳)
“한신이라는 인간이 겁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固知信怯也)
라고 대놓고 한신을 깔보는 발언을 하는데, 이건 사기 회음후열전의 언급이고 한서 한신전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
"나는 한신이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평생 잘 알고 있는데, 상대로는 쉬운 놈일 뿐이다. 그 놈은 빨래하는 아낙네에게 밥이나 얻어 먹고 살았으니 스스로 계책을 취하는 법은 없고, 가랑이 사이나 걸어가는 치욕을 스스로 받았으니 사람의 용기라고는 가진게 없는 놈이다. 이 자는 두려울것이라곤 전혀 없다." (吾平生知韓信為人,易與耳。寄食於漂母,無資身之策;受辱於跨下,無兼人之勇,不足畏也)
라는 식으로, 그냥 아예 사람 자체를 이 이상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병X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고 있습니다.
고향에서는 완전히 웃음거리로 전락한 한신은 천하대란이 펼쳐지고 항량(項梁)이 군사를 일으키자 칼 한자루만 들고 서둘러 달려가 부대에 합류했지만 항량 생전엔 이름이 없었고, 항우가 이를 이어 받은 후에는 새로운 지휘관이 승계하는 과정에서 인적쇄신이 좀 있었던 탓인지 작게나마 낭중(郎中)의 벼슬이 생기고 집극(執戟)이라는 지위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딱히 대단한것도 아니고 나중에 한신 스스로가 "항우의 밑에 있었을때 나는 낭중이자 집극일 뿐이었다." 라고 자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할 정도로 보잘것 없지만, 집극이라는 지위가 창 들고 근처에서 서 있는 자리니 만큼 항우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살펴볼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됬습니다.
한신은 나름 기회라고 여겼는지 항우에게 이런저런 발언을 틈나는 대로 해보긴 했지만 초나라의 귀족 공자 출신 항우 입장에서는 창이나 들고 서 있는 숨 쉬는 인간 병풍 주제에 무슨 말을 지껄이냐 싶었는지 그냥 무시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집극 주제에 건방지게 나대는 녀석' 이라는 것으로 악명만 얻으면서 "얘는 뭔데 저러냐?" 하는 와중에 한신의 과거 이력도 알려진것 같은데, 앞서 용저가 거의 한신을 인간적으로 사람 취급도 안하는 모습을 보면 초나라 군 내에서도 한신은 농담거리 같은 존재, 찐따 그 자체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及項梁渡淮, 信杖剣従之, 居戯下, 無所知名. 項梁敗, 又屬項羽, 羽以為郎中. 數以策幹項羽, 羽不用.
항량(項梁)이 회수(淮水)를 건너자 한신은 칼을 차고 그를 따랐다. 그의 휘하에 있을 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항량이 패하자 이번에는 항우(項羽)에 귀속하게 되었다. 항우는 그를 낭중(郎中)에 임명했다. 여러 차례 항우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문의 연회 이후 촉 땅으로 떠나는 유방을 따라 떠난 한신의 일화는 유명하고, 바로 여기서 유방과 한신의 첫 만남이 이어지지만... 다만 '초한춘추'(楚漢春秋) 라는 사료를 참조하면 한신과 유방간의 '접촉' 은 이때보다 좀 더 이전입니다.
沛公脫身鴻門,從閒道至軍。張良、韓信乃謁項王軍門曰:“沛公使臣奉白璧一只獻大王足下,玉斗一只獻大將軍足下。”亞父受玉斗,置地,戟撞破之。。
패왕이 홍문에서 몸을 뺴내 샛길을 따라 군중에 도달했다. 이에 한신과 장량이 항왕의 군문에 이렇게 아뢰었다. "패공께서 신에게 백벽 한 짝을 받들어 대왕 족하께 바치고, 옥두 한 짝을 대장군 족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보는 옥두를 받아 땅에 놓고는 극(戟)을 쳐들어 이를 깨버렸다.
초한춘추는 바로 이 초한전쟁 당대의 인물인 육가(陸賈)라는 사람이 쓴 그 시대의 1차 사료로, 사실상 당시에 존재했던 유일한 1차 사료 입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초한전과 개국 당시의 일에 대해서 이 육가의 초한춘추를 참조하는 동시에 번쾌의 손자 번타광(樊他廣) 같은 사람을 만나 "우리 할아버지 때는 말입니다..." 같은 썰을 종합해서 기록했습니다.
이 초한춘추는 현재는 소실 되었지만 여러 사료에 파편적으로나마 약간의 원본이 남아 있긴 합니다. 아무튼 위의 기록은 그런 기록 중에 하나인데, 바로 홍문의 연 당시에 유방이 겨우 몸을 빼서 탈출 하고 장량이 선물과 함께 대신 둘러대러 왔던 순간입니다.
그런데 초한춘추의 기록을 보면 뜬금없이 장량과 함께 한신이 언급됩니다. 이때부터 한신이 유방에게 귀순할 마음이 이미 있어서 전언을 가져온 장량의 안내를 해주며 접촉하려고 했을지? 아니면 전언을 가져온 장량을 항우에게까지 안내한 것이 우연찮게도 낭중 한신이었을지? 아니면 사마천이 여기서 한신의 이름을 지운것처럼 그냥 육가의 실수 였을 수도 있지만, 그 유명한 '홍문의 연' 자리에서 유방과 항우 뿐만 아니라 한신 역시 한 구석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흥미롭습니다.
여하간에 한신은 유방에게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별로 높은 지위는 아니었고, 무엇떄문인지 죽을 죄에 걸려서 처형 순서만 기다리다 하후영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고, 그 뒤에도 별로 높은 지위는 아니고, 그래서 떠나려고 하다가 끝까지 쫒아온 소하의 설득으로 돌아가는 등의 일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속 되는 코너 구간에서 한신을 따라잡으려 하는 파촉라이더 소하
아랫 부분은 예전에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어서 혹시라도 그 글을 보신 분들에게는 복불일수 있지만 '한신과 유방의 은원' 을 이야기 하자면 뺴놓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다시 올려보자면,
諸將亡者以十數 公無所追 追信 詐也
"제장들 가운데 도망친 사람이 수십 명인데, 당신은 이를 쫒아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신을 쫒았단 말인가, 이는 거짓말이다."
자신의 고향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해당하는 촉 지방에 처박힐 지경이 되자 수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고, 소하 마저도 도망친다고 여겼던 유방은 낙담하다가 소하가 돌아오자 기뻐했지만 '한신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라는 말에는 '이전에도 다른 사람을 잡으러 간 적이 없는데, 한신이 뭐라고 그랬다는건가. 거짓말 아니냐' 는 반응을 보이며 믿지 않았습다. 즉, 당시의 유방에게 한신이라는 존재는 딱히 특별한 인식이 없는, 그냥 이름만 알고 있는 말단일 뿐이었습니다.
王計必欲東 能用信 信卽留 不能用 信終亡耳
"왕이 동쪽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반드시 한신을 등용 하십시오. 한신을 쓰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떠나갈 것 입니다."
소하는 이런 말로 유방을 설득 합니다. 소하가 이렇게 까지 말하자 유방도 한신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吾爲公以爲將
"내 그대를 보아서 한신을 쓰겠다."
결국 이 말이 의미하는것은 유방이 한신의 진면목을 알아서 그를 쓰겠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소하 때문에 쓴다라는 말입니다. 즉 유방은 한신을 잘 모르지만, 소하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쓰겠다는 소리 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당신이 추천을 하니 쓰겠다. 이 정도만 해도 소하에게 상당한 신임을 보이는 행동이지만, 소하는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雖爲將 信必不留
"비록 장수로 쓴다 해도 한신은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즉 한신을 쓰려면 그냥 장수로는 안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장수로는 안된다? 허면 장군을 통솔하는 장군, 즉 대장군의 자리 밖에는 없습니다. 대장군이란 군사의 일에 책임이 막중함으로 절대로 그냥 쓸 수는 없을 자리입니다.
그런데 유방의 반응은,
以爲大將
"그럼 대장으로 삼겠다."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전까지 명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군에서 오래 짬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방은 여기서 보급 쪽의 일을 하던 치속도위를 소하의 말만 듣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앉혀 버립니다.
헌데 또다시 나오는 소하의 반응은,
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 王必欲拜之 擇良日 齋戒 設壇場 具禮 乃可耳
“왕께선 본디 오만하고 무례하여 예를 차리지 않습니다. 지금 대장을 배함이 마치 어린아이를 불러 들이는 것 같으니, 이렇다면 한신은 떠날 것입니다. 왕께선 꼭 그를 배하고자 하신다면, 날을 택해 재계(齋戒)하시고, 단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십시오. 그러면 가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하다시피, 유방은 한신을 이전까진 잘 알지도 못했는데 오직 소하의 추천만 듣고 장군,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 군대를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소하에 대해 엄청난 신뢰를 보인 부분이지만, 소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무례하다. 왕은 이 일을 어린이 장난처럼 처리하고 있다" 라고 강도 높은 직언을 퍼붓고, 한신을 제대로 쓰려면 날짜 제대로 잡아서 단을 설치하여 임명하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참기 힘든 일일 수 있지만, 여기서 대해서 유방은,
王許之
왕은 이를 허락했다.
그냥 더 말 안하고 그렇게 해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을 쌓고 날을 잡아 대장군을 뽑는 일이라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자 한군 내부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어지간한 인물들이라면 모두 자기를 대장군으로 임명해줄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諸將皆喜 人人各自以爲得大將
제장들은 모두 기뻐하며 사람마다 자기들이 대장군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이 당시 주요 인물 중에 유방을 극초기부터 따라다닌 인물들만 해도, 조참, 주발, 번쾌, 해연, 하후영, 관영 등이 있었습니다. 유방이 거병 이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따라온 인물만 해도 부관, 근흡, 역상 등 쟁장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전까지 유방의 휘하에서 세운 공도 홍문연 이후에나 합류한 한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날 단에 오른 사람은 한신이었던 겁니다.
이때 반응은,

至拜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마침내 대장이 정해졌다. 한신이었다. 일군이 모두 놀랐다.
문자 그대로 일군개경(一軍皆驚), 장수고 군졸이고 할 것 없이 전 군대가 o_o! 이런 상태라는 겁니다. 각자 나름대로 유방 옆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했는데 얼마 전에나 온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갑자기 자기들보다 높아진 대장군이 되니 모두들 경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信拜禮畢 上坐 王曰 丞相數言將軍 將軍何以敎寡人計策 信謝 因問王曰
한신이 임명식을 마치고, 자리에 오르자 왕은 물었다.
"승상이 대장군에 대해서 자주 말했다. 그대는 어떤 계책으로 과인을 가르칠 것인가?" 한신이 감사함을 표하고, 왕에게 물었다.
이후 상황을 보면, 임명식 이후 유방은 한신를 만나 "소하에게 말은 많이 들었다. 어떤 계책이 있느냐." 라고 묻고, 한신은 계책을 말하기 전에 유방에게 자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해준 일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이 말인즉슨, 유방은 한신을 등용하면서 따로 한신을 만나 이후 계획이 어찌되느냐를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미리 만나 한신을 알아보면서 어떤 사람인가 간을 잰 적도 없고, 미리 한신을 불러 "너 대장군으로 삼겠다," 고 한 적이 없으니 한신 역시 정식으로 대장군에 임명된 후에야 유방에게 감사 표시를 한 것입니다. 미리 한신을 불러 대화를 해보고 대장군으로 삼겠다고 말하고, 그 사실을 숨기고 이미 다 짜고 친 상태에서 임명식을 실시했다면 한신이 이제와서 감사를 표시할 일도 없는 일입니다.
즉 유방은 진짜 소하의 말만 듣고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아무런 여타 작업도 거치지 않고 말입니다. 이후 한신은 유방에게 묻습니다.
「今東郷爭権天下, 豈非項王邪?」
한신 : "지금 동쪽으로 나가 천하의 대권을 함께 다툴 자라고 한다면, 항우가 아니겠습니까?"
「然」
유방 : "그렇소."
「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
한신 : "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대왕의 용감함, 사나움, 어질고 굳세기가 항우가 견주어 누가 더 낫다고 보십니까?"
漢王黙然良久, 曰
유방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한참 지나서 입을 열었다.
「不如也」
유방 : "전부 내가 그에 미치지 못하오."
信再拝賀曰 : 「 "惟信亦為大王不如也"」
한신 : (두번 절하고 축하한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말로 한신은 항우의 단점, 한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을 말했고, 말이 끝나자
於是漢王大喜 自以爲得信晩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한신을 너무 늦게 얻었다고 생각했다.
즉 오디션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인 참가자에 대한 감탄을 보이는거나 다름없는데, 차이가 있다면 일단 뽑아놓고 오디션을 본 셈입니다. 그 이전까지 참가자가 어떤 기량을 가졌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소속사와 최고 수준으로 계약을 맺어놓은 겁니다. 오직 소하의 말만 듣고 말입니다. 소하 말만 듣고 행보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수준.
초나라의 군영에서 얼간이 취급이나 받던 한신은 이렇게 삽시간에 한나라의 최고사령관이 되어 승승장구 합니다. 유방과 한신은 삼진을 꺠고 기세좋게 진군해서 제후연합군을 결성해 초나라 수도 팽성도 함락했습니다. 물론 이후 팽성전투에서 크게 패해 물러나게 되었지만,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어느정도 수습을 한 유방은 한신에게 3만 명의 병사를 주어 북방을 치게 합니다.
서에서 동으로 가는 굵은 화살표가 유방이라면, 위로 가는 끊어지는 화살표가 한신.
이 작전은 한신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던 작전입니다. 당초에는 지도에 보이는 안읍(安邑) 지역에서 서위왕 위표의 군대를 물리치는 정도에서 끝나는 임무를 맡았던 한신은 위표를 물리친 후 사람을 보내 유방에게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합니다.
"원컨대 3만 병사를 더해주시면, 신이 북으로 연(燕)‧조를 잡고, 동으로 제를 치고, 남으로는 초의 보급로를 끊은 후, 서쪽에서 대왕과 형양에서 만나기를 청합니다."(願益兵三萬人,臣請以北舉燕、趙,東擊齊,南絕楚之糧道,西與大王會於滎陽.)
이후 한신이 보여준 눈부신 공적, 그리고 유방이 그 덕택을 봤다(특히 두차례에 걸쳐 한신의 군대를 빼왔다는) 인상 때문에 그다지 주의깊게 보지 않게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때 한신의 제안은 유방으로서는 쉽사리 승낙하기 어려운 작전 안이었습니다.
불과 몇개월 전에 56만의 연합군이 괴멸 당했고, 아직 항우가 (반기를 든 경포 때문에) 전면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초나라의 전위부대가 계속 추격해오며 한나라군의 군량 보급을 괴롭히고 있었고, 관중에는 대기근이 들어 백성을 이주시켜야만 했습니다. 전방으로 보낼 병사가 없어,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전장에 보내며 죄를 지은 죄수을 사면해 병력을 충원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장한이나 위표 등 제2 전선을 형성하는 적과 싸우다, 이제야 겨우 이들을 모두 소탕하고 항우와의 일대일 구도를 만든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른 전선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전방의 상대인 항우만으로도, 유방이 가진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맞상대를 해도 이기기는 커녕 버티기조차 어려운 상대임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유방은 이 작전을 승낙했고, 3만 군사와 상산왕 장이를 부장으로 파견해 한신의 손에 맡겨 북방으로 이동케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한신의 북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한신은 한신대로 잘 나가고, 유방은 항우를 상대하며 독자적으로 움직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뭔가 삐끗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항우의 압박 때문이었습니다.
항우의 맹공격으로 초나라군의 서진을 막던 형양성과 성고가 모조리 함락 되자, 유방은 남은 군사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 직면 합니다. 물론 관중에 돌아가면 남은 전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사이에 빼앗긴 전방기지나, 흩어져서 수습하지 못한 잔여병력 같은건 모조리 날아가버리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자 유방은 아예 멀리 도망치는 대신, 북쪽에 있는 한신의 군영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六月, 漢王出成皐, 東渡河, 獨與滕公倶, 従張耳軍脩武. 至, 宿傳舎. 晨自稱漢使, 馳入趙壁. 張耳、韓信未起, 即其臥內上奪其印符, 以麾召諸將, 易置之. 信、耳起, 乃知漢王來, 大驚. 漢王奪両人軍, 即令張耳備守趙地. 拝韓信為相國, 収趙兵未発者撃斉.
6월에 한왕이 성고를 나와 동쪽으로 황하를 건너 등공(滕公)만 데리고 수무(修武)에 있는 장이의 군대를 찾아갔다. 수무에 이르자 객관(客館)에서 잠을 자고는, 새벽에 자신을 한 사자라고 칭하면서 말을 달려 조의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침실로 들어가 그들의 인수와 부절을 빼앗고 휘하의 여러 장군들을 소집해 배치를 바꾸어놓았다. 한신과 장이가 일어나 한왕이 와 있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한왕이 두 사람의 군대를 빼앗아 장이를 시켜 조를 지키게 하고, 한신을 상국(相國)에 제수했다. 그러고는 조 병사 가운데 아직도 징발되지 않은 자를 거두어 제를 공격했다.
생각해보면, 현 시점에서 중원 지역에서 유방의 영향력은 일소 되었습니다. 물론 자리를 잡고 다시 수습하기 시작하면 어느정도 수준은 금방 복구가 되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라는 것 자체가 최소한의 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 당시에 유방에게는 본인의 불알 두쪽과 바로 옆에서 자신을 경호하는 하후영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유방의 남은 기반이 있는 관중까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반면 북방에 남은 한나라의 부대는 한신 개인의 지휘하에 있습니다. 만약 한신이 갑자기 자립을 선언하다면? 혹은 다른 마음이라도 품고, 유방 개인에게 위해를 가하던가 해서 유방을 죽이던가 항우에게 넘기려고 한다면?
항우에게 당해 기반이 날아간 그 최악의 위기상황, 당장 도와줄 수 있는 지푸라기를 찾아야 하는 그 상황에서도 유방은 그런 인간세상에 덮어놓고 믿을것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는지, 바로 한신의 군영에 올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코 앞에서 저녁을 보내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새벽을 틈타 한나라의 사자라고 속여(보고하려면 한시가 급하니) 여타 절차를 다 생략하고 한신이 자고 있는 침상으로 뛰어들어가 한신이 자고 있는 사이에 인수와 부절도 챙기고, 장수들도 따로 소집해서 배치해두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난 한신은 자고 일어나니 난데없이 나타난 유방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황당한 광경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 유방이 처해있던 상황을 고려해볼때 한신은 이미 벌써부터 다루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신을 통제할 유방의 세력은 현재 항우 때문에 없어졌고, 유사 이래 수 많은 군주들이 "지금 믿을 수 있는건 얘가 가지고 있는 군대뿐이야. 얘를 불러서 와주면 일이 해결되겠다." 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다가 오히려 뒤통수 맞고 당하기 십상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떄 한신은 이미 불패의 지휘관으로서 조나라 정형에서 진여의 호왈 20만 대군을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고 천하에 이름을 알린 상황에서도, 유방에게는 맥을 못 추고 당해버립니다. 한신의 평생 동안 이런 광경이 몇차례 반복 되는데...
어쩄거나 유방은 유방대로 한신의 군단을 기반으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신 역시 유방에게 부대를 받고 제나라에서 초나라의 대장 용저와 싸워 이기면서 각자의 행보를 계속 합니다. 이 시점에서 한신은 위, 대, 조, 제, 연 5개의 나라를 물리쳤고 위왕 위표, 조왕 조헐, 대왕 진여, 제왕 전광이라는 4명의 왕을 쓰러뜨려 온 천하에 그 명성이 가득찬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한신은 유방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제나라는 거짓과 속임수로 변절을 많이 하고 번복하는 나라이며, 남쪽으로는 초와 변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가왕(假王)을 세워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지 않겠습니다. 신을 가왕으로 삼아주시면 편하겠습니다.”
이 당시 유방은 여전히 항우의 대치하고 있었고, 자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왕이나 시켜달라고 하는 한신의 행동에 격분해 "나는 어려움에 처해 아침저녁으로 도움만 바라는 상황인데, 자기는 스스로 왕을 해먹겠다는거냐?" 하면서 한신의 사자에게 화를 내다가, 장량과 진평이 몰래 발을 밞으며 한 조언을 따라 감정을 죽이고 "제기랄, 사내 자식이 되서 가왕(假王)은 무슨 가왕이라는거냐? 까짓거 하려면 그냥 진짜 왕을 해라고 전해라!" 라며 한신을 제나라 왕에 봉해주게 됩니다.
陳平躡漢王足, 因附耳語曰:「漢方不利, 寧能禁信之王乎? 不如因而立, 善遇之, 使自為守. 不然, 変生.」漢王亦悟, 因複罵曰:「大丈夫定諸侯, 即為真王耳, 何以仮為!」乃遣張良往立信為斉王, 徴其兵撃楚.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한왕의 발을 밟고 사과를 하면서 귓가에 입을 대고 “한은 지금 불리하오니 어찌 한신이 왕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왕으로 세우고 잘 대우해 스스로 제를 지키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왕 역시 이를 깨닫고, 이어 다시 꾸짖으며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하면 곧 진왕(眞王)이 될 뿐이지 어찌 가왕이 된다는 말이냐?”라고 하고는 장량을 보내 한신을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고 그의 군대를 징발해 초를 쳤다.
저 가왕, 진왕 운운 하는 일화야 하도 유명하니 다시 이야기 하기도 새삼 스럽지만, 마지막에 있는 徴其兵撃楚라는 구절은 좀더 인상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았고 그러면서 한신의 군사를 징발해서 초나라를 치는데 동원했다는 내용인데, 즉 이미 한신은 자기 세력으로 유방을 도와줄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그러지 않았고, 대신 유방이 그를 제나라 왕으로 임명해준 이후에야 유방이 한신의 군사를 징발 할 수 있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즉 제나라 왕직을 놓고 병사를 대가로 임금과 신하가 거래를 한 셈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한신은 유방에게 확실히 찍혔을 겁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한신은 최대한 자기 값어치를 불려 주판알을 튕기는 노회한 정객의 느낌이 드는데, 이후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어리숙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나라에서 용저를 무찌르기도 했던 한신의 병사가 앞서 말한 '대가' 로 초나라와의 전쟁에 점점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신의 세력을 피부로 느끼게 되자 아무러한 항우도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무섭(武涉)이라는 인물을 보내 한신에게 보내 교섭을 시도 합니다. 이때 한신은 다른 모든 것, 그러니까 정치, 정세적인 판단이라던가 혹은 여기에 더해 좀 더 후대의 유교적 충효관념과도 좀 더 다른, 이른바 전국시대적인 기풍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정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이유로 들어 이를 거부합니다.
「臣事項王, 官不過郎中, 位不過執戟, 言不聴, 畫不用, 故倍楚而帰漢. 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聴計用, 故吾得以至於此. 夫人深親信我, 我倍之不祥, 雖死不易. 幸為信謝項王!」
“나는 일전에 항왕을 섬겼지만, 벼슬은 낭중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도 집극에 불과했소. 내가 말해도 그는 들어주지 않고, 기껏 계책도 내어도 전혀 써주지 않았지. 그렇기 때문에 초를 배반하고 한으로 간 것이오. 한왕은 나에게 상장군의 인수를 주었으며, 나에게 수만의 무리를 주었소.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혀주고, 밥을 주어 나에게 먹였으며, 내 말을 들어주고 나의 계책을 써주었소. 그러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 대체로 남이 깊이 나를 믿고 가까이 하는데 내가 배반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 없으니, 나를 위해 항왕에게 거절의사를 전해 주시오."
개인적인 은혜를 이유로 무섭의 제안을 일축한 한신에게 이번에는 괴철이 찾아옵니다. 괴철과 한신의 문답 역시 아주 유명한데, 핵심적인 말만 잘라보면,
"지금 한왕과 항왕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께서 한을 위하면 한이 이길 것이요, 초와 함께하면 초가 이길 것입니다."
"지금 당신께서는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지니셨고, 상을 받을 수 없는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릇 형세는 남의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이 있으시고, 이름은 천하에 드높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한신은 여기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은혜' 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한왕은 나를 후하게 대해줍니다. 자기의 수레로 나를 태워주며, 자기의 옷으로 나를 입혀주며, 자기의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주었습니다. 내 어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계속된 괴철의 설득에 한신은 살짝 마음이 동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이러한 은혜와 더불어 "내가 이렇게 공이 많은데.." 하는 마음으로 결국 최종적으로 이를 일축합니다.
그런데 이 무렵, 형세 불리해진 항우를 상대로 유방은 협상을 맺어 휴전을 맺었지만, 수하들의 제안을 듣고 최종적으로 뒤치기를 감행, 다시 한번 항우와 전투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 고릉(固陵) 전투에서 원래 오기로 되어있던 한신, 팽월, 경포 등은 모두 오지 않았고, 결국 홀로 남은 유방은 또다시 항우에게 패하는 굴욕을 맛 보았습니다.
결국 장량의 제안을 듣고 유방은 자신의 신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또다시 '거래' 를 해야만 했고, 한신 역시 그제야 부대를 이끌고 직접 유방을 도우려 달려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신의 행동원리에 있어 가장 모순되고 기묘한 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만일 한신의 순전히 인간간의 정리만 놓고 움직였따거나, 혹은 철두철미하게 이득만을 위해 움직였다면, 다 행동에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신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는 유방과 거래를 시도했고, 반면에 유방과 완전히 척을 지는 상황에서는 정리에 사로잡혀 머뭇거렸습니다. 자치통감을 지은 사마광의 평가가 가장 통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릇 때를 틈타서 이익을 취하려는것은 시정잡배의 생각이고, 공로를 돌리고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 선비나 군자들의 마음입니다. 한신은 스스로가 시정잡배의 뜻을 가지고 그 몸을 이롭게 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에게는 선비나 군자의 마음을 기대했으니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역사상의 이른바 여러 '영웅호걸' 과 비교했을때 한신이라는 인물의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의 캐릭터야 일관성이 있지만, 원래 사람이라는것 자체가 별로 일관성이 없는 편이고, 철저한 정략가이건 열렬한 심성의 소유자이건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독해질수 있다니/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다니 대단하다' 고 할 수는 있어도 인간적인 느낌은 못 느끼지만, 한신이라는 인물의 행동에서는 무언가 짙은 인간성이 느껴집니다.
한신이라는 인물의 능력이나 행보는 분명 우리같은 평범한 '필부' 는 감히 범접하기 힘들지만, 그 인물의 근간이 되는 '그릇' 에서는 엄청 가까우면서도 뭔가 이해가 안되면서도 이해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여하간, 또 다시 감히 임금을 상대로 '거래' 를 시도한 한신은 분명 또다시 유방에게 찍혔을테고, 유방은 한신을 완전히 위험인물로 주시했을 겁니다. 여기서 또 기묘한 상황이 나옵니다.
'숙청' 은 기본적으로 이쪽이 상대보다 힘이 있을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방이 당초에 한신의 세력을 압도한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초한전쟁의 사실상 최종결전인 해하전투에서 한신은 유방의 후군과는 별개로 단독으로 30만 대군을 동원했습니다. 설사 이를 3분의 1만 믿는다고 해도 그 군대는 10만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인데, 전중국을 뒤흔들고 수 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왕들을 참살한 군사 10만을 이끄는 장군의 위세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그런데 유방은 이런 한신을 어떻게 숙청했단 말입니까?
漢王之困固陵, 用張良計, 召斉王信, 遂將兵會垓下. 項羽已破, 高祖襲奪斉王軍. 漢五年正月, 徙斉王信為楚王, 都下邳.
한왕(漢王)이 고릉(固陵)에서 궁지에 몰리자, 장량의 계책을 채용해 제왕(齊王) 한신을 불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해하(垓下)에서 한왕과 만났다. 항우가 패하고 나자 고조가 습격해 제왕의 군대를 빼앗았다. 한 5년 정월에 제왕 한신을 옮겨서 초왕(楚王)으로 삼고서 하비(下邳)에 도읍하게 했다. ─ 회음후 열전
이 중대한 사건은, 기록상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하 전투 이후, 유방은 한신을 '엄습하여'(襲) 군대를 '탈취했다' 는 것입니다. '高祖襲奪斉王軍.' 이 기록 하나로, 초한전쟁에 있어 최대의 변수이자 개국 초기 전한 왕조의 가장 두렵고도 거대한 위협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이후의 한신이란 존재는 괴철과 무섭의 말을 듣고, 중국 전체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서 좌지우지하던 그 사나이가 아니라, 단순히 유방에게 놀아나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대체 유방은 어떤 방식으로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아래 두고, 10만이 넘는 병력을 거느리던 한신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요? 유방이 한신의 주변에 심어놓은, 한신의 수하가 그를 배신했을까요? 유방과 한신간의 '딜' 이 있었을까요? 말 그대로 유방이 한신의 군영을 습격하여 그를 협박했을까요? 유방과 한신의 대치에서 한신의 수하 장병들을 유방이 설득했을까요?
이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이 놀라운 사건의 전개과정을 전혀 짐작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다른 경우에서 한신이 '잠을 자고 있다가 털리기' 같은 방식으로 유방에게 당한 것을 보면, 정말 어이없는 방식으로 당해버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이때는 제나라 군사는 뺴앗기긴 했어도, 최소한 일방적인 숙청은 아니었습니다. 한신은 자신의 기반이 있던 제나라에서 초나라로 왕직을 옮겼는데, 초나라 역시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작은 나라는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몇년 뒤 한신의 반란 음모에 관한 소식이 들여왔습니다. 이후 한신의 태도를 보면 진지하게 반란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닌것 같고, 무언가 유언비어가 나돌았다던지, 혹은 유방 쪽에서 그런 소문을 조작해서 흘렸다던지, 아니면 별게 아닌 일이 오해로 커졌다던지 했던것 같습니다. 종리말을 숨겨준게 원인이었을 수도 있구요.
어쨌거나 음모가 도는 상황에서, 유방 본인이 마음먹고 한신을 숙청하고 말고는 둘째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찌했을까 싶은데 기록상으로는,
한 6년에 누군가가 초왕(楚王) 한신이 모반했다고 글을 올렸다. 고제가 장수들에게 묻자 장수들은 “서둘러 군대를 내서 그 놈을 파묻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고제는 말이 없었다. 다른 자리에서 고제가 진평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진평은 거듭 사양하더니 여쭈었다. "장수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 사기 진승상세가 中
장수들은 유방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벌써 "군사를 동원해 한신을 묻어버려야 한다" 고 강경하게 주장하는등, 일단은 '혐의' 수준인 한신을 비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한신 토벌을 주장했습니다. 한신이 평소에 인망이 없었거나, 혹은 이미 유방과 운명공동체였던 제장들 입장에서는 한신이 여러 행적과 태도로 볼때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존재였을 수 있습니다. 어쩄든, 확실한건 한신은 한나라 조정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제장들의 태도와는 별개로 유방은 오히려 침묵을 유지하며 신중을 기했습니다. 유방이라고 한신이 별로 이뻐서는 아니었던것 같고, 다만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는 쪽에 가까웠던것 같습니다. 유방은 진평에게 대응책을 물었는데, 진평은 당초는 이런 민감한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 계속 몸을 빼다가 유방이 여러번 캐묻자 못 이기는 척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답이 꽤 재밌습니다.
陳平曰:「人之上書言信反, 有知之者乎?」
“누군가 글을 올려 한신이 모반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曰:「未有.」
"모르지."
陳平曰:「信知之乎?」
"한신은 알고 있습니까?”
曰:「不知.」
“모르지.”
陳平曰:「陛下精兵孰與楚?」
“폐하의 정예병은 초나라와 누가 더 낫습니까?”
上曰:「不能過.」
“못 이기지.”
平曰:「陛下将用兵有能過韓信者乎?」
“폐하의 장수들이 용병에서 한신을 능가하는 자가 있습니까?”
上曰:「莫及也.」
“못 미치지.”
平曰:「今兵不如楚精, 而将不能及, 而挙兵攻之, 是趣之戦也, 窃為陛下危之.」
“지금 병력은 초나라에 비해 날카롭지 못하고, 장수도 미치지 못하는데 군대를 일으켜 그를 공격하는 것은 싸움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폐하가 위험합니다.”
上曰:「為之柰何?」
“그럼 어찌 해야 할까?”
결국 이런 문답 끝에 유방은 진평의 제안에 따라 그냥 놀러온 척 하고 찾아가서 그냥 한신을 간단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잠을 자다 털린것, 전쟁이 끝난 후 어처구니 없이 병권을 내려놓은것 처럼 한신은 이번에도 유방에게 어린애 장난처럼 맥을 못추고 당해버렸습니다. 사실 한신도 아예 꺼림칙한 게 없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안절부절 못 했지만, "종리말의 목을 가져다 바치면 되겠지." 같은 어린애 장난 같은 생각이나 하다가 당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너 같은 자를 작자를 어찌 장자(長者)라고 하겠는가?" 하는 욕이나 얻어먹은 것은 덤이었습니다.
그 직후에 유명한 '토사구팽' 이야기가 나왔고, 여기에 대해 유방은 회음후 열전에서는 다소 소극적으로 "너에게 모반이라는 고발이 있었다." 로 설명하는 투로 대답했고, 진승상세가에서는 "닥쳐라 이 반란군 놈 새X야!" 라고 일갈하는 투로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형틀로 묶여 수도까지 끌려온 한신이었지만, 유방은 한신의 권한만을 빼앗고 풀어줍니다. 사실 좀 의아한 부분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제장들은 한신을 그냥 죽여버리자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유방이 이떄 한신을 일단 죽여버린다고 한들 크게 사람들의 대세를 거스르는 무리한 행동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유방은 한신이 위험하다, 제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죽이는 게 이로일 수 있다,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로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이때 유방이 한신을 '안' 죽였다면 몰라도 '못' 죽일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이거든요.
여하간 이때 한신은 '회음후' 가 되었고, 천하를 떨게 하는 제나라 왕에서 초나라 왕으로, 그리고 회음후로 속절 없이 계속 추락해버렸습니다. 당연히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 두려움도 생겨 두문불출 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번쾌와의 일화가 생겨납니다. 번쾌의 집에 한신이 찾아가자 번쾌가 몸을 숙여 "대왕께서 오셨습니까" 하고 이미 왕작을 박탈 당하고 회음후로 떨어져버린 한신을 왕으로 대접해주었는데, 정작 한신은 번쾌의 집을 나서며 "내가 번쾌 따위와 동급이 되었다니" 하고 헛웃음을 쳤다는 일화 입니다.
그리고 이후 한신은 진희의 반란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처형 됩니다. 여러가지 말은 있지만, 앞뒤 정황을 봤을때는 '한신이 반란했다' 라는 것보다는 그냥 '말려 들었다' 고 보는게 나을것 같고, 이미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몸인데 그냥 이때 껀수 잡혀서 죽었다고 보입니다. 이때 한신이 죽는 과정에서의 기록을 보면,
여후가 한신을 불러들이려고 했지만 그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봐 염려되었다. 이에 소하와 모의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고조에게서 온 것처럼 “진희가 이미 사형을 당했습니다. 여러 제후들과 뭇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고 있습니다.”고 말하게 했다. 소하 역시 한신을 속여 “병중이기는 하지만, 억지로라도 들어와서 축하하시오.”라고 했다. 한신이 들어가자 여후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포박해 장락궁(長樂宮) 종실(鍾室)에서 목을 베었다. - 사기 회음후열전
유후가 주상을 따라 대(代)를 공격하고, 마읍(馬邑)에서 기이한 계책을 내고, 소하를 상국(相國)으로 세우게 하는 등 주상과 함께 조용히 천하 대사를 논한 것이 아주 많았지만 천하의 존망과 관계된 것이 아니기에 드러내지 않겠다. ─ 사기 유후세가
회음후가 관중에서 모반하여 여후가 소하의 계책을 사용하여 회음후를 죽였다. 이 일은 「회음후열전」에 있다. 주상이 회음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사신을 보내 소하를 상국(相國)으로 삼고 5천 호를 더 봉하면서 병졸 500명과 도위 한 사람에게 상국을 지키게 했다. ─ 사기 소상국세가
여후는 유방의 부재 동안 한신을 죽이면서 정국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소하와 모의했고, 소하는 계책을 내서 한신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한신이 죽었다는 말을 멀리서 전해 듣자 유방은 소하를 상국의 지위에 올리는데, 기록에 따르면 유방에게 소하를 상국으로 삼으라고 권한 사람은 바로 장량 입니다. 소하가 여후의 연합하여 한신을 죽이는 역할을 전담하고, 장량이 이에 동조해서 정당성을 부여한 겁니다.
한신이 죽고 나서 한참 뒤,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부재 중이었던 유방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방에 대한 묘사가, 정말로 기막히는 수준입니다.
'(고조는) 한편으로는 기뻐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했다. 且喜且憐'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묘사를, 사마천의 사기 전체 중에서도 가장 좋아합니다. 지금하고는 사람들의 사고관도, 감정선도 많이 다른 2,200년 전의 일인데,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들 아는 이야기를 별 내용도 없으면서도 길고 장황하게 굳이 이 글을 쓴 것도 이 구절 떄문인것 같습니다. 뭔가 유방과 한신 사이의 관계라는게, 且喜且憐라는 4글자 안에 다 들어 있는것 같더군요.
유방은 한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듯, 뭔가 묵은곳이 내려가듯 기뻐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무언가 측은함, 안타까움, 아쉬움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냥 일방적인 임금과 신하 사이의 권력 다툼, 권세 싸움 느낌에서 이 언급으로 인해 그걸 떠난 인간적인 애증 관계 같은 느낌도 듭니다.
뭔가 둘의 관계를 살펴보면 재밌는것 같습니다. 공이 대단해서 임금을 위협하는 신하와 그런 신하를 견제하는 임금이라는 구도는 수천년 동안 특이할 게 없을 정도로 한없이 쌓인 패턴이지만, 후대에 굳어지는 충효 관념 같은걸 떠나서(진짜 충절 때문이었으면 애초에 항우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섬겨야할테니)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에 대한 은원' 거기에 매달리면서도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나오는, 사마광의 표현을 빌리면 '시정잡배의 마음', 그리고 정치적인 관계로 숙청하면서 거기에서 느끼는 모호한 감정, 여기에 뭔가 유방과 한신의 인간상성 같은 모습도 그렇고...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8-06 12:58)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