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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10/10 00:47:46
Name 정일훈
Subject 당신들이 잘 모르는 한국프로게임의 비밀들(1)
1부        한국 프로게임 선언
   하나.        <하부구조>를 꿈꾸는 것이 잘못인가요?
   둘.        무엇이 그들을 ‘프로’로 만드는가?
   셋.        시청률의 비밀
   넷.        방송사 유죄?
   다섯.        게임리그, 실험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선 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격려 감사합니다. 옷을 홀딱 벗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해보자고 용기를 냈지만 쓸 데 없는 넋두리가 되지 않을까 사실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글을 읽으면서 ‘아! 게임리그를 하길 잘 했구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게임리그를 가능케 했던 주인공이 여러분이듯, 여러분 스스로가 희망입니다.

더불어 지난 글에 고견을 리플로 달아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개중에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하신 글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즉자적인 해결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글쓰기의 목적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한국 프로게임이 건강히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를 해 나가는 사이, 그 과정에서 한국 프로게임을 아름답게 지켜줄 많은 이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노래 제목처럼 ‘대화가 중요해~’ 입니다. 앞으로 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진정으로 한국 프로게임이 나아가야 할 길에 등대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더 해 나가도록 하죠.

그리고 줄 바꿈이 서툴러서 읽기 불편하게 해 드린 점을 시정하고자 오늘부터는 자주 줄 바꿈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PGR에 글 올리기는 아직 서투르기 때문이라는… ^ ^!

오늘부터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입니다. 이야기가 삼천포(삼천포 사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 ^!)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목차를 잡아봤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부 목차만 공개합니다. 참고로 제가 잡은 주제는 3부에 모두 열 다섯개, 그리고 잡다한 에필로그가 있습니다. 자, 오늘 이야기 시작입니다.


하나. '하부구조'를 꿈꾸는 것이 잘못인가요?

한국 최초로 게임 캐스터라는 것을 하면서, 그리고 선수들과 팬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상호작용’에 애정이 생겨버리면서, 여태까지 저를 가장 괴롭힌 악몽은 ‘왔다가 사라지는 트랜드로서의 게임리그’ 입니다. 깊이 들어가면 트랜드의 정의가 어떻고 개념이 어떻고 하는 얘기가 꼬리를 무니까, 쉽게 ‘유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다만, 그저 유행보다는 조금 더 그 내용과 크기가 많고 크다는 점에서 굳이 ‘트랜드’라는 말을 씁니다.
여러분은 ‘트랜드’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트랜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다마고치’입니다. 수 년 전 전국을 강타했던 일본 태생의 그 캐릭터 키우기 게임!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중 고등학생, 심지어 직장인에게까지 전파됐던 그 다마고치를 지금도 소중히 키우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 열풍은 다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사례를 들자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어떤 트랜드가 바람처럼 왔다가 사람들의 열병을 부추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은. 게임캐스터, 아나운서를 하기 전에 제 전력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십니다. 방송작가를 했습니다. 작가로, 아나운서로, 게임 캐스터로 방송가에서 1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보아온 것은 ‘트랜드의 부질없음’ 이었습니다. 5년 전에, 6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의 제목을 아는 사람 있습니까? 그 당시 가요 톱텐에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가수가 누군지 기억나십니까? 그때 한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흥미성 때문에 쉽사리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지만, 그것의 가벼움 때문에 곧 사라지고, 잊혀지고, 새로운 즐길 거리로 대체되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연예 엔터테인먼트 분야의…-은 그렇게 떠들썩 해졌다가 또 쉽게 잊혀지고 또 나오고 하는 것이 그 본연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하지 않습니까?

게임리그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뚝 잘라내어 깊은 애정을 할애하는 ‘한국 프로게임리그’가 그렇게 적당한 가격으로 가벼운 재미를 주고, 시간이 지나면 뇌세포를 귀찮게 하지 않는 일회용 즐길 거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준비한 이야기들은 다 부질없는 일 되겠습니다.


네? 아니라구요? 고맙습니다 얘기 계속됩니다.

‘트랜드’의 상대 개념은 뭘까요? ‘장르’ 입니다. 웬 멀쩡한 것들이 나와서 정색을 하고 뜻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특이해서 인기를 얻는 ‘말초적인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더 많이 보급되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서의 게임리그가 되어주기를 진정으로 바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약발이 떨어졌어’ 한마디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하는 꿈의 운동장, 그것이 ‘장르로서의 게임리그’ 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게임리그를 어떻게 ‘장르’로 자리잡게 만들까요? 게임리그가 여러분께 첫 선을 보이기 시작한 그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리그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기존의 장르 중에 익숙하게 끼워 넣어 주기’ 였습니다.

그래서 ‘문화’라는 말을 무수히 가져다 썼습니다. 또 그래서 ‘누가 스타를 스포츠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그랬습니다. 때마다 ‘게임을 만드는 건 개발사지만 게임 문화를 만드는 것은 게이머다’라고도 줄기차게 떠들었습니다.

저 혼자 그 장한 일을 다 한 거?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게임리그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저로서는 즐기는 이가 늘어나고, 더 이상 게임 중계 보는 것이 손가락질 받지 않고, 미팅 나가서 ‘게임이 취민데요’ 하는 말을 쪽 팔리지 않게 하고^ ^! … 하는 모습이 조금은 스스로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현재 게임리그가 자생적인 생장능력을 갖춘 ‘장르’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믿어도 좋을까요? 그러기에는 매일 식은 땀 흘리면 잠에서 깰 만큼 무수한 가위눌림이 힘겹습니다.

지난 회에 큰 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요지는 한국 프로게임의 당사자들이 힘을 합쳐서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당사자들-은 모여서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요? 그것은 게임리그를 ‘장르’로 만드는 일, 한마디로 프로게임의 든든한 하.부.구.조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프로게임이라는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획사는 열심히 기획하고 방송사는 열심히 방송하고, 팬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협회는 원칙을 만들고… 이렇게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그 토양 위에서 뛰어난 선수가 나오든, 대중들의 정신 건강을 높이든 하는 겁니다. 연봉 1억을 받고, 스타가 되고, 영화출연을 하고 광고 모델이 되고… 대중의 선망을 받는 스타 한 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스타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는 구조(構造 Structure)가 프로게임을 ‘장르’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

지금 부산에서는 아시안 게임이 한창입니다. 아시안/ 올림픽 게임의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의 하나인 역도를 예로 들어 봅시다.
‘덩치 좋고 힘이 장사인 학생이 운동부 선생님 눈에 띕니다. 역도 선수가 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중,고등학교 선수생활을 거쳐 실업 팀에 입단을 합니다. 그때까지 비인기 종목 선수라는 자괴감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성취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을 안고 은퇴합니다. 그리고 모교의 체육선생으로 후진을 양성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의 예입니다. 그리고 역도는 어쩌면 요만큼이라도 대중의 관심이 모이는 프로게임이 부러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역도’의 예는 한국 프로게임이 발을 붙이고 있는 하부구조의 모양새와 비교해 볼 때 정 반대의 케이스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 프로게임은 어떻습니까? 선수 중의 일부는 스타가 되고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엄청난 팬들과 안티 팬들의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혼자 되었을 때, 뒤를 돌아보기가 겁이날 정도로 그 선수들이 발을 붙이고 있는 영역은 너무 작고 미약합니다.

저만해도 역도 경기장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역도 선순데요…’하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디로 갈 것인지를 대충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 프로게이머인데요…’하는 순간 사람들은 도무지 이 자(者)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프로게임은 지금까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만들까에만 집착하다 스타와 극성팬만 남고 그것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기초를 전혀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얼마 전 온게임넷 게시판은 임요환 선수의 얼라이 마인 논란으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규칙을 정하네 원칙을 고지하네 법석을 떨지만 철저히 하겠다는 주최 방송사와 협회와 프로선수와 프로팀에게 묻건대 ‘그래서 지금은 원칙이 튼튼히 잡혀있느냐?’는 것입니다.

일찍이 프로게임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게임리그사들이 백 수십억원씩 투자를 받아서는 개최한 게임 대회에서는 더한 일도 있었습니다. 세계 게임리그가 어쩌니 저쩌니 떠들던 그 회사들, 5억원입네 10억원입네 예산을 들여서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놓은 그 행사장에 정작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을 위한 경기석 하나 없었습니다. 관중석 조차 없었습니다.(전략 시뮬레이션 경기를 위해서는 밀폐된 경기석이 필요하다고 수도 없이 주장하고 건의 했더랬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을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치르면서 결국 제 손으로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경기석이 만들어지고 일부 규칙이 정해지고, 별 하자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 한국 프로게임의 기초가 다 충족되었다고 믿어도 됩니까?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골대 없는 운동장에서 볼을 차면서도 월드컵을 개최하겠노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지 모릅니다.

말이 나온김에 월드컵에 비유해 보죠. 축구가 뭔지도 모르는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제가 말씀 드리는 ‘하부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남태평양에 ‘피지’라는 작은 섬나라가 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피지 바로 아래 더 작은 섬나라가 있습니다. 그 모양이 꼭 피지섬이 낳은 알 같다고 해서 ‘피지알’이라는 섬입니다. 국력은 약하지만 대단히 수준 높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맨날 말싸움을 일 삼는 일부 소수 민족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30년 전 쯤 유럽의 선교사들이 이 섬에 ‘축구’라는 경기를 들여옵니다.

피지알 사람들은 축구가 건강에도 좋고 사람 사귀기에도 좋다는 인식을 하면서 삼삼오오 골목마다 공터마다 공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이내 편을 먹고 시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즐기는 이 축구 경기에서도 피지알 사람들은 매 경기마다 반칙이네 아니네, 골이 들어갔네 안 들어갔네 쌈박질을 해댔습니다. 규칙을 제정했는데도 동네마다 다른 규칙은 여전히 쌈박질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통일된 규칙도 정하고 동네 대표를 뽑아서 좀 제대로 뽈을 차보자 하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의 대표를 선정합니다. 이른바 ‘축구협회’가 결성된 것입니다.

그 동안에도 동네 단위로, 학교 단위로 축구팀이 속속 만들어집니다. 연령에 맞춘, 지역에 맞춘 대회들이 만들어지고 우리 편, 우리 아들, 우리 친구…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에 대해 감탄하고, 선망하면서 사람들은 축구장을 뽈을 차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경을 하러 모여듭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신문도, 방송도 축구장을 집중 조명하고, 인구에 회자되니까 마케팅을 위해서 기업들이 스폰서를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던 피지알의 대통령 ‘운 영자’는 모년 모월 모일에 드디어 빰빠라밤~축구만 해서 먹고 사는 프로축구리그의 발족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열기를 바탕으로 더 큰 축구 붐을 일으켜 가던 피지알은 담 담번 월드컵에 개최신청을 한 예정이라네요.

자, 이 안에서 구조를 정리해 봅시다.
피지알의 프로축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팬들의 성원-기업 및 정부의 지원-공정하고 박진감 넘치는 규칙-스타 선수가 발굴될 수 있는 아마튜어 시스템-미디어의 관심… 등등입니다. 이 안에 무수한 ‘관계’가 발생합니다. 축구팀과 팬들의 관계, 미디어와 팬들의 관계, 스폰서와 미디어의 관계, 기업과 축구팀과의 관계, 협회와 팬들의 관계, 협회와 선수의 관계, 프로팀과 아마튜어 선수와의 관계… 등등등등등등요.

그런데 이 무수한 역학관계가 다 나름의 질서를 갖고 움직이고 있죠? 이를테면 기업은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 효과가 크니까 스폰서를 하고, 미디어는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니까 방송을 하고, 사람들은 멋진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에 관심을 갖고, 축구팀은 좋은 성적을 올려야 팬들이 늘어나니까 스타선수를 발굴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아마튜어 선수는 팀에 발탁되고자 열심히 뛰고…

이 무수한 공식을 한국 프로게임리그에 도입해 봅시다. 우선,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하는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게임리그에도 있습니까? 대충 몇몇은 있는 듯하구요 (만족할 만큼 있다는 뜻이 아니라 씨앗이 될 만큼 실체가 있다는 말입니다.) 몇몇은 (주로 재원을 확보해 주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빠져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각각의 역할을 맡는 당사자들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빠져있는 고리가 눈에 띕니다. 빠져있는 고리가 많을수록 한국 프로게임의 하부구조는 부실하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고리들이 모여 자생적으로 ‘생장’하고 ‘재생산’ 하는 구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장하고 새로운 선수와 팬과 관계자와 수익모델과 관심을 재생산 해내는 ‘유기체’ 같은 모양이 됐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장르’라고 부릅니다. 만일 장르화 할 수 있는 하부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기초가 약한 건물이 어느 순간 무너지듯 다른 대체재에 밀려서 사라지고 그 콘텐츠는 ‘트랜드’에 머물게 되는 겁니다.

섣불리 이 자리에서 즉자적인 해결 방법을 논하지는 말기로 하죠. 왜냐하면 앞으로도 두고 두고 찬찬히 이야기 할 내용이니까요.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진실하게 머리를 맞대면 좋은 해결방안은 꼭 만들어지리라 믿으니까요.
다만!!!
이 하부구조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신다면 우리 모두가 한 가지는 꼭 극복해야만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하부구조가 필요함은 인정하면서도 지금 당장 이익이 되지 않으므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로게임의 인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에 동감하면서도 ‘그 일을 함으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무얼까’를 생각하는 것. 선수와 팬들을 위해 규칙을 정하고 원칙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 일임에는 동감하면서도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되지’ 하는 것. 선수와 팬이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거에 누가 돈을 대?’ 하는 것. 더 많은 프로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가 왜 남의 일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하는 것. 프로선수들이 계기를 갖고 더 열심히 뛰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프로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격려뿐이지 뭐’ 하는 것. 방송사가 새롭게, 더 새롭게 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게 시청률에 무슨 도움이 되지?’하는 것…

그 속에서 한국 프로게임의 하부구조를 논하는 사람은 쓸모 없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제껏 한국 프로게임은, 누군가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꿈쩍도 않고 있다가 누군가 ‘어찌 어찌 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시끄러운 모습’이 되어야만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왜 그 당사자들이 미리 모여서 한국 프로게임의 백년대계를 세우지는 못하는 겁니까? ‘진정으로 한번 해보자’는 말에 스폰서가 어떻고 저변이 어떻고 시청률이 어떻다는 단편적인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으로 고충을 먼저 들이대는 겁니까? 저를 포함해서 한국의 프로게임 당사자들은 모두 반성 한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되는 지 안되는 지 ‘하부구조’를 주제로 말싸움만이라도 우선 해 볼 일입니다.

한국 프로게임의 미래는 프로게임의 장르화에서 출발합니다. 한국 프로게임의 장르화를 일궈내는 일이 한국 프로게임의 하부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 하부구조를 꿈꾸는 일이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한국 프로게임의 당사자들 관심사에서 너무 너무 먼 일이 아니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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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경
02/10/10 01:04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이 생각하시는대로 스포츠=게임이 동등해 지면야 게임팬들입장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좋겠죠^^;(정일훈님의 글을 잘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그런데 피지알이란 섬이 정말로 있는겁니까?? ㅡㅡ;;
02/10/10 01:15
수정 아이콘
와.. 대단하세여.. 피지알.. ㅋㅋㅋ
02/10/10 01:34
수정 아이콘
피지알은 모든 걸 포함하고 있는 거겠죠...
그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으니...
WizardMo
02/10/10 01:53
수정 아이콘
3가지에서 놀랐습니다.
첫째로 엄청난 상식과 지식에 놀랐으며
둘째로 저번댓글에서 몇가지 제기한것이 바로 수정하신것에 놀랐고
셋째로 깊은생각에 놀랐습니다.
제가 알고 생각하고 걱정하던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게 생각을 하구계시는군요 앞으로도 게임계를 이끄는 분이되시길 빕니다.
꺼러지
02/10/10 01:46
수정 아이콘
트랜드......사실 지금의 게임계는 일훈님의 말씀대로 언제라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일종의 신드롬일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르죠...
탄탄한 하부구조를 위해서는 지금의 기형적인 구조를 타파해야 된다고 봅니다. 일종의 프로스포츠라는 것은 스포츠협회가 대회를 개최하여 스폰서를 따내고 방송국은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방송을 중계해야 하는데, 지금의 겜리그는 방송국이 주최하고 스폰서까지 따내서 중계까지 하고 있는데 이것을 고쳐야 된다고 봅니다. 물론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현재로써는 겜방송국의 부담이 너무나 가중되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정훈님이 중계만 하시는것도 힘든일이 분명한데, 겜리그의 장르화를 위해 고민하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슬픈일이 아닐수 없네요..
결국에는 수익모델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단계적인 유료화를 실시해야 됩니다. 먼저 결승전만이라도 유료화를 시행해 보는 거죠..
안 된다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부산에서 서울 장충체육관에 임요환선수의 경기를 보기위해 30만원을 들고 서울에 가서 그 추운날 돈이 다 떨어져 파고다공원에서 벤치에서 잤지만 30만원이 아깝지 않은 저와 겜을 사랑하는 분들은 하부구조를 탄탄히 만들기 위한 유료화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을듯 합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 내용이 일관성없을 거지만....
일훈님 파이팅!!!!결승전 또 올라갈까?
서울에 아는 사람없어 또 노숙자 되야하나??^^:
02/10/10 05:00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02/10/10 05:09
수정 아이콘
모든 게이머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합니다.
02/10/10 07:24
수정 아이콘
피지 아래 있는 섬.. 피지알...!!!
너무 황당하고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는 부분이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StimPack
02/10/10 09:57
수정 아이콘
듄2를 즐길 당시... 게임을 좋아하던 제게 많은 이들이 비웃음의 눈빛을 보냈죠. 98년 베틀넷을 하던 저를 주위사람들이 이해 못하더군요. 어느날... 그네들이 제게와서 콜라 사주며 게임을 가르쳐 달라더군요. 고만고만한 실력의 우리들이지만... 격세지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저입니다.
오늘의 게임계를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게해주신 정일훈님 외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일훈님 같은 순수한 열정의 분이 계시고 제 친구같은 보이지 않는 서포터가 있는 동안 게임계가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무나 열심히 연습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정말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위니워니
02/10/10 10:20
수정 아이콘
일훈님의 해박한 식견, 그리고 게임에 대한 열정,,,,존경스럽군요.
무슨 일이든지 단초가 되는 일은 힘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
이겠지요.
아마도 일훈님의 글이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네요.
항상 모든 일은 아주 작은 일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으니까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라는 몇 글자가 수십년간 지속되던 반란을 잠재우는 시초가 되었고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원자폭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듯이 일훈님께서 여기에 올리시는 글들이 게임산업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는 단초가 되길 바랍니다.
순수한 열정이라.... 참, 오랜만에 느껴보네요.
icarus-guy
02/10/10 11:15
수정 아이콘
흠 솔직히 잘 이해는 안가지만 ;; 게임계를 잘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구요 하여간 결론적인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기위해선
협회 프로게이머 팬 이 하나되었으면 하는군요
[GhOsT]No.1
02/10/10 12:12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의 깊은 식견과 또한 나름의 대안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한마디 하자면
역쉬 돈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대중성이 그다음 문제져
게임이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이 많은 사람들이 본다면
당연히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겠져...
역쉬 가장 큰 하부구조의 틀은 많은 사람들의 '팬'이 되야한다는것이겠져.
기대해보져!!
208번지 아카데
02/10/10 15:2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제 짧은 생각을 보태 보자면... 게임에 대한 관심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서 '오락거리'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게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죠. 스포츠도 스포츠의 룰을 모르면 재미가 없듯이, 게임도 룰을 모르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낯설어하는 것 같구요.
게임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감동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만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게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와 관련된 산업의 발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lecviva
02/10/10 16:07
수정 아이콘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끼게 합니다.
바라기74
02/10/10 17:53
수정 아이콘
제일 시급한것이 국산게임에 열광하는 하부구조를 가지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세계관으로 구성된 게임을 즐기고 미국의 영향하에서 특별한 이벤트도 취소되는 현 상태로는 블리자드사의 게임들은 '트랜드'로밖에 남을 수밖에 없는듯 합니다.
02/10/11 00:22
수정 아이콘
저는 프로게임리그의 하부구조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 시장 자체의 왜곡된 구조가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하부구조 이야기는 그 전제 내에서 이루어져야 실효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는 게임들은 솔직히 PC방에서 PC 대수만큼 사 줬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 못합니다. 실제 구입자 수가 실제 해당 게임 게임 유저의 10%나 될까요? 못될겁니다.
게임은 그냥 공짜로 받아서 즐기면 된다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게임을 즐기는 진정한 게임 유저들이 늘어날 때 프로게임리그를 사랑하는 진정한 팬들도 같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프로게임리그의 발전에 무엇보다도 큰 원동력이 될 겁니다.
게임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면 그에서 파생되는 프로게임리그의 파이가 커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되네요.
02/10/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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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다는 도중에 글이 옮겨갔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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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임리그와 프로스포츠리그 사이에서 차이점 한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게임과 스포츠의 차이겠지요. 게임은 스포츠에 비해서 숙달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경우 한계라는 것이 코드-계속되는 패치 포함-와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한계로 스포츠의 한계는 물리학과 인간 육체의 한계죠. 물론 게임의 인터페이스가 인간 육체의 한계를 요구한다면, 대중적인 게임이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테지만요.
그리고, 위와 같은 한계 내에서 각 플레이어들의 수명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경기력 외적인 면에서 야구나 축구라는 스포츠 종목의 수명과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KUF, 피파, 임진록, 아트록스, 포트리스, 쥬라기원시전, 멕워리어, C&C 시리즈, 카운터 스트라이크, NBA, 온라인 웜즈, 킹오파, 대전 테트리스, 스케이트 보드 게임(-_-)-게임중계 됐던 거 이름 다 들고 싶은데 기억력이 시원찮아져서...-_- -와 같은 게임의 수명과 플레이어의 경기력의 수명 중에 어떤 것이 더 기냐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로스포츠 리그의 하부구조는 위에서 얘기된 것 뿐이지만, 프로게임리그의 하부구조는 안정적으로 '대전형식' 혹은 '서로 기예를 겨룰 수 있으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게임의 수급까지도 포함한다고 봐야 겠습니다.
과거에 인기가 있었던 '겔러그'나 '제비우스', '엑스리온' 등의 게임리그를 한다면, 한번 볼 거리는 되겠지만,(왜냐하면 그 게임을 알고 해봤던 사람이 좀 되니까-아닌가 다 늙었나? -_- ) 연속적으로 선수가 배출되고 리그가 활성화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스포츠의 경우와 게임의 경우는 수익적인 면에서도 다릅니다.
프로야구 예를 들어보죠. 프로야구가 일어남으로 인해 돈이 들어오는 곳은 일단, 해당 구단 및 스폰서 광고료, 경기장내 매출(음식물, 유니폼, 기념품), 입장수입이지만, 프로게임리그를 통해서 이익은 일단, 게임판매사(제작사개념과 약간 틀리죠.)의 광고료와 스폰서사의 광고료 뿐이라는 겁니다. 부대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죠.
위와 같은 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갈지 아니면,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수익 모델을 가져나가야할지까지도 논의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02/10/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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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보완적인 시청자와 게이머들간의 협력이 있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얼마전 프로게이머 소양교육을 한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 거기서 프로게이머 봉준구 선수가 하나의 대안을 내놓았더군요.개개인의 프로게이머가 각 게임방과 계약을 맺고 운영해나가는 방식으로 게이머들의 수익을 더올려주는 방안 말입니다. 그러면 그 게임방에는 누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있다더라(예를들면 봉준구선수는 봉사장님^^;;)하면 시청자들이 순수하게 TV만 보다가 이제는 나도 저기에 뛰어들고 싶다하는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게임방 감소문제도 어느정도 해결될수 있다고도 봅니다.(개인적으로 겜방이 없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IT기반이 붕괴되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순수함...처음엔 이게 경제논리와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여중생들.여고생들이 연예인들을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마음도 순수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시청자들의 순수함. 그리고 프로게이머들과 방송사간의 이해타산적이지 않은 대화들이 합쳐져서 게임리그가 소위 트랜드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적립되길 바랍니다...
02/10/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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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10억원 예산을 들여서 휘황찬란하게 게임리그를 하다가 엉뚱한 업종으로 변경해 장사를 하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
항상 일훈님글 잘 보고 있습니다. sc 칼럼두요.
힘드신 자리이심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모습 감사합니다.
그만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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