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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3/06/04 11:37:12
Name 공룡
Subject [연재] 최면을 걸어요 (7)
7. 최후의 작전

  테란의 부대가 점차 지구로 다가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동수는 도경과 정민이 벌였던 첫 전투에 관한 자료를 보고 있었다. 영상자료는 빠르게 그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고, 점차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서 동수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비록 믿는 종교는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누구에게든지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엄청나게 처절한 전투였다.

  “멈춰!”

  음성인식 반응이 탁월한 상황실 컴퓨터는 영상전송을 멈췄다.

  “아니야, 그 화면에서 멈추고 화면을 끄지는 마! 그리고 1분 정도 뒤로 돌리도록! 이 화면을 지금 상황실 메인 스크린에 띄울 수 있나?”
  “있습니다.”
  “좋아, 3분 뒤에 화면을 전송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동수는 명령을 내리고 재빨리 상황실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수뇌부와 자문인들, 기타 이번 전쟁에 관련된 중요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뭔가 희망이 생겼소?”
  “그렇습니다!”

  아이우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한 동수는 막 상황실 스크린을 통해 재생되는 전투장면을 가리켰다. 아이우를 비롯한 몇 명은 참혹한 패배의 모습을 왜 보여주나 하고 의아해 하면서도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금 같은 중요한 상황에 동수가 쓸데없는 것을 보여주려고 자신들을 부른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 장면이 끝나도록 동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그렇게 영상의 전송은 끝이 났다.

  “자, 이제 말씀을 해보시오. 어떤 희망이오?”
  “아이우님은 방금 전 화면에서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뭘 말이오?”

  동수는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려 다시 그 화면을 전송하도록 했다. 그리고 방금 전 전투의 기록도 정리해서 마지막 부분만 보여주도록 했다. 두 개의 화면에서 각각 전투의 모습이 벌어졌고, 동수는 이번에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여전히 동수가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셨나요? 그들의 공격방식과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다음 장면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동수는 다시 화면을 전송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다른 이들도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했다.

  “저건! gg잖아!”

  장진남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그 말에 다른 게이머 출신 자문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우는 모르겠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동수는 앞쪽으로 나와 모두를 볼 수 있는 곳에 섰다.

  “대부분 이해한 듯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에 대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 있는 몇몇도 그 게임의 프로게이머로서 살아왔었고, 직접 게임을 만든 분도 있으니까요. 이 스타라는 게임의 승패는 어느 한 쪽이 패배할 때까지 진행됩니다. 한 쪽이 패배를 시인하고 게임을 끝내면 아직 끝내지 못한 다른 한쪽이 승리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아이우는 당연히 아는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동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로 답하며 동수는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컴퓨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게임에서 우리는 엘리가 되기 전에 gg를 칩니다. 이미 희망이 없는 경우에 그렇지요.”
  “그래서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테란측의 지휘관이 한 때 프로게이머였기 때문에 엘리를 시키지 않으려고 해서 방금 전 전투에서 우리가 전멸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오?”
  “맞습니다.”
  “하지만 첫 전투에서 강도경 중장이 이끄는 부대는 전멸했소. 즉, 게임으로 치면 엘리를 당했단 말이오. 게다가 이번 전투가 아닌 다른 전투에서도 전멸한 경우가 두 번이나 있었소.”

  동수는 씨익 웃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이를 설명하려 한겁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지휘관이 후퇴를 명령한 경우 전멸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우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그런 적이 없었다. 완전히 전멸했을 때는 지휘관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계속 항전했을 때뿐이었다. 후퇴 명령을 내린 뒤에는 별 피해 없이 후퇴를 하곤 했던 것이다. 동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도경의 전투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쉴 틈 없이 쏟아지던 테란의 포화가 갑자기 멈추는 때가 있습니다. 무려 15초 정도를 전혀 공격하지 않지요. 만약 이 때 도경이 후퇴하고자 했다면 전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

  아이우의 탄성과 함께 다른 이들의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동수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정민이는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닌,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상현실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직접적인 최면에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동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테란족이 가상현실에 대해 그리 연구가 높지 않다는 아이우의 증언에 따라 정민이 단지 뇌의 일부분을 봉쇄당한 채 가수면 상태에서 마치 최면에 걸린 현상처럼 모든 상황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까? 그가 있는 곳은 테란의 병력이 운집한 정 중앙에 있는, 배틀크루저 대여섯 대 크기의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거기에서 그가 있는 정 중앙까지 침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이우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테란의 병력이 닥친 상황에서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아봐야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수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부터 직접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지요. 이제부터 우리는 원거리에서라도 그를 최면에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아니면 최면을 걸든지요!”
  “어떻게요?”
  “그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동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최고사령관의 권한을 줄 것을 요구했다. 아이우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힐주스 역시 동의했기에, 최고사령관의 권한은 동수에게 넘어갔다.
  
  “이제부터 모든 사람들은 제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우선 레이스와 레이스 엔진을 탑재한 커세어와 스카웃을 최대한 모아주세요. 그리고 다른 병력은 모두 수비위치를 합니다. 테란으로부터 탈취한 베슬이 두 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비록 시간은 짧겠지만 제가 신호하는 순간 EMP를 적진에 쏘아 보내세요. 어차피 한 번이면 됩니다. 베슬이 터져도 상관없습니다. 1분 정도의 시간만 벌 수 있으면 족합니다.
  “알겠소!”
  “또 있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자료에서 전투 영상들도 모아주세요. 적나라할수록 좋습니다.”
  “알겠소.”

  동수는 운재를 돌아보았다.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운재 너 레이스 조종할 수 있어?”
  
  운재는 느닷없는 질문에 놀랐지만 곧 대답을 했다.

  “난 해적이었어. 웬만한 탈것은 다 다룰 줄 알지. 이번에 사령관에 있으면서 몇 번 레이스를 타고 시험비행을 한 적도 있었어.”
  “좋아,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겠지만 모든 작전이 완료되면 정민이가 있는 전함 속에 투입될 병력을 네가 지휘했으면 한다.”

  운재는 눈을 더 크게 떴다.

  “고마워, 형!”

  운재는 그 말만을 남기고 곧바로 격납고로 향했다.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레이스를 손보려는 것이다. 그런 운재의 뒤를 진광이 따라간다. 개조된 레이스는 2인승이었다.
  
  “침투하다니요?”
  
  오랜만에 소란이 질문을 했다. 너무 무모한 작전은 아닌가 해서였다. 하지만 동수는 이미 모든 계획이 서 있다는 듯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말 그대로 침투입니다. 어차피 병력이나 화력의 차이에서 테란을 압도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결국 지휘부를 습격해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소란은 남편의 무모한 발상을 말리고 싶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곳은 난공불락이었다. 근처에 가기도 전에 모두 전멸할 것이다. 하지만 동수는 여전히 확신에 차 있었다.

  “방금 여러분은 모든 전권을 제게 위임한 상태입니다.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따르도록 하지요.”

  동수의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그랬다.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하루 안에 지구는 테란의 손에 들어갈 것이 뻔했고, 그것을 막을 방법은 전무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수는 거기에서 무언가 확실한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결국 믿고 따를 수밖에는 없다. 소란은 남편을 믿기로 했다.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늘 그래왔듯이......

-------------------

  “시작 할까요 박사님?”
  “하지만 동수군, 이건 무모한 짓이네.”

  동수는 작전상황실 앞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는 못해도 70은 되어보였고, 머리는 온통 벗겨져 있었다. 하혁주 박사, 그는 심령학은 물론이요, 전생에 관련된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초자연 현상에 관련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또한 유명한 최면술사이기도 했다. 그의 강의를 감동 깊게 들었던 동수는 몇 년째 하혁주 박사와 친분을 맺어오고 있었고, 오늘 그를 불러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수의 계획은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

  “자넨 내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군. 사람이 최면에 걸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최면을 걸 매개체도 있어야 하고, 최면에 잘 걸릴 수 있는 사람 역시 따로 있다네. 체질상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는 부류도 있다는 사실을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동수는 씨익 웃었다.

  “맞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부류중 하나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확률 100퍼센트의 성공입니다.”
  “어떻게 자신하나?”
  “지금 적 지휘관은 가수면 상태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최면에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아!”

  박사가 이마를 치며 탄성을 지르자 동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박사님은 최면 상태에서 새로운 최면을 걸어 다른 상황으로 유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자가 간단히 상황을 만들어 인도해주면 되니까요.”
  “맞는 말일세. 하지만 지금 그는 분명 상황을 보고 있네. 그것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상태에서 다시 최면에 들게 하려면 눈을 감게 해야 하네.”
  “쉽게 말해서 정민......이의 눈을 감길 시계추나 빙빙 도는 원형 막대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잘 아는군.”

  동수는 송수신기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연습한 대로 출격한다. 각 편대는 정렬하도록!”

  잠시 후 앞쪽 스크린에서 펼쳐진 장면에 하혁주 박사는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자.....자네!”

  정말 놀라운 남자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박사는 믿기지 않는 앞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레이스와 커세어, 그리고 스카웃으로 이루어진 비행편대가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원은 규칙적으로 편대를 이루어 빙빙 돌아가며 눈의 착시현상을 일으켰고, 그것은 박사가 최면을 걸 때 자주 사용하는 원추형 그네와 매우 닮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최면을 걸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이제 박사님이 제 설명대로 그를 유도해만 주신다면 이 작전은 꼭 성공할 것입니다.”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좋네. 내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네. 허허, 정말 자네란 사람은 놀랍구먼.”
  “지켜야 하니까요. 제 가족과...... 친구들을요.”
  “그래......”

  이제 20여분 남은 결전의 시간 동안 동수는 박사에게 가상의 공간에 들어가게 될 내용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박사가 최면을 걸어 만들어 낼 가상의 공간에 정민이 빠져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성공만 하게 된다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동수의 눈빛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
  정민은 앞의 상대가 재훈에서 갑자기 동수로 바뀌었지만 놀라지 않았다. 계속 이상한 일들만 일어났기에 조금은 체념 비슷한 상태였다. 어서 이 하루가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고, 게임 역시 빨리 끝났으면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이번에도 모두의 시선은 정민에게 향했다.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손은 아주 재빠르게 건물과 유닛을 클릭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감각 역시 최상이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음?’

  정민은 화면에서 펼쳐지는 적진의 상황에 당황했다. 저게 뭔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이상한 원을 그리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것이다. 정민은 황당해서 공격을 내리려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스커지들이 저렇게 재주를 부리는 리플을 본 적이 있다. 이미 게임은 포기하고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동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정민은 오랜만에 미소를 머금고 적 유닛들의 춤을 구경했다. 그런데 왠지 머리가 아파왔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게임 중에 졸음이 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왠지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졸음이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위의 사물이 심하게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도 들려온다. 꿈일까? 목소리는 애타게 정민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타나는 영상......

  “아악!”

  정민은 헤드셋을 벗어버리고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좀 전의 목소리보다 훨씬 강력하고 격앙된 목소리가 명령을 내리고 있다. 빨리 게임을 하라고...... 하지만 이미 게임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관중들은 마치 그림처럼 얼어붙어 있었고,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계속적으로 잔인한 장면들이 정민의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보는 비행체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전쟁의 모습을 처음 본 정민으로서는 절로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전쟁의 영상들은 계속해서 여과 없이 망막을 관통했다.

  “지금 자네가 저지르고 있는 현실이야.”

  목소리는 말하고 있었다. 차분한 음성이다. 하지만 이해를 할 수는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방해 하지 마라!”

  더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민의 머리 속에서 마치 다른 두 존재가 싸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무섭고 큰 목소리가 더 힘이 센 모양이었다. 점차 영상도 사라져갔고,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민씨!”

  갑자기 들려오는 소연의 목소리였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적의 유닛들이 새카맣게 몰려왔다. 관중들도 모두 그를 응원하고 있다. 정민은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게임을 질 수는 없었다. 작은 친선게임이라도 절대 지지 않는 성격을 가진 그였기에 무조건 집중하려 했다. 몰려오던 병력을 격퇴하자 술렁임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빨리 경기에서 승리하라고 누군가 외치는 것 같았다. 정민의 손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

  하혁주 박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 몸이 땀에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미 비행 편대는 대부분 격추가 된 상태였다.

  “미안하네. 거의 성공을 했지만, 상대는 직접 기계로 제어를 하고 있네. 나로서는 상대방으로부터 그를 불러낼 수 없네. 새로운 가상의 공간으로 이끌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네. 그들은 기계를 통해 자극까지 주고 있어.”

  동수는 심각해졌다. 이미 모든 군대는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최면이 실패하고 정민이 계속 전투를 지휘한다면 이길 방법은 전무했다. 방법이 없는 것인가? 고민하던 동수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박사님?”
  “왜 그러나?”
  “상대방 의식에 침투가 어렵다면 걸려있는 저 최면을 깰 수는 있겠습니까?”
  “글쎄,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일정한 암호를 가지고 깨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타인이 그걸 깰 수는 없을 거네. 하지만 기계로 최면을 건 상태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분명 저들은 영원히 저런 상태를 유지시키려고 할 테니까. 최면에서 깨어나기 위한 신호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겠지. 내가 다시 침투해서 신호를 만든 뒤 깨버린다면......”
  “부탁드립니다. 박사님의 손에 전 인류의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알겠네. 해보겠네.”

  박사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한 번 접속이 되었던 정민의 머리 속이었다. 기계의 도움으로 증폭된 박사의 뇌파가 다시 정민과의 접속을 시도했고, 금세 연결이 되었다.

------------------

  한참 게임에 집중하던 정민은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영상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 역시 조용했다. 목소리는 뭔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셋을 세면 자네는 눈을 크게 뜨는 거야. 자 그럼 수를 세겠네. 하나 둘 셋!”

  정민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소연도, 그리고 관중들도, 앞에서 게임을 하던 동수도 모두 사라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 어둠만이 남았다. 정민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달아나려고 해도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망막 밖으로 거대한 검은 공간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기계에서 누군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다시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았다. 아니, 아픔을 그리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정민은 한없는 무력감 속에서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우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크흑!’

  갑자기 머리에 번개라도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이 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프지만 몸부림을 칠 수도 없었다. 대신 들려오던 목소리가 조금은 선명해졌다.

  “정신을 차려 이 멍청아! 게임을 해야 해! 죽여 버리기 전에 빨리!”

  하지만 정민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또한 그럴 힘도 없었다. 또 한번 머리에 충격이 일었고, 강렬한 고통은 계속 정민의 머리를 후벼팠다.

  ‘그만 해요. 아파요. 제발 그만 해요.’

  정민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충격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정민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
거의 끝이 나가는군요.^^
날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글의 무단 퍼감을 금합니다. 도장 쾅!

* 항즐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6-0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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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현
03/06/04 11:39
수정 아이콘
윽..디씨인사이드식 으로 하면 제가 1등 -_-V
이번에 끝인줄 알았는데 안끝나네요 ^^
재밌는건 끝이 안나길 비는마음~
후니...
03/06/04 11:44
수정 아이콘
과연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요.. ^^
끝날때가 다가온다니 아쉽기도 하고요.. ^^;
물빛노을
03/06/04 11:51
수정 아이콘
아아~ 재밌어요 정말^^
Cool-Summer
03/06/04 12:27
수정 아이콘
흠.....공룡님의 글이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한가봅니다....
어제 퇴근하는길에 운전하는데 갑자기 내일은 공룡님의 글이 어떤내용일까 궁금해하면서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너무 상상에 몰두한 나머지 운전을 등한시하여 ^^;; 오늘 공룡님 글을 못볼뻔 했답니다...
그니까 나머지도 어여 올려주세요^^
03/06/04 14:23
수정 아이콘
암튼 공룡님의 글 솜씨는 감탄스럽네요...울 이쁜 정민이가 어케 될지...끝이 무지무지 궁금합니다...^^;;;;; 아..그리고 멋쟁이 동수도...^^;;;
03/06/04 14:43
수정 아이콘
매일같이 공룡님의 연재를 찾아 클릭하면서도,
여태 감히 댓글 달지 못했던 것은...
정민선수... 처해있는 환경이 비록 소설속이라고 해도 너무 가슴 떨려서...
공룡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정민선수 결말에... 제발 살려 주세요 ... ㅠㅠ;;;
03/06/04 15:23
수정 아이콘
지금쯤...하고 들어와보니, 올라와있는 후속편 ^__^
역시나 신나게 읽고 돌아갑니다....
마지막 편은 내일 올라오나요????
해피엔딩 이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쿨럭...--;
몽땅패하는랜
03/06/04 15:50
수정 아이콘
피지알 가입한지 한달도 안 되었지만 어느새 공룡님의 팬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발상의 신선함이나 표현의 재치가 너무 놀랍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군요. (전 언제쯤 이런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까 ㅠ.ㅠ)
언제나 좋은 글로 감동을 주시는 공룡님 건필하십시오!!!!
03/06/04 16:16
수정 아이콘
음..김정민 선수가 멋지게 죽게된다면 pgr이 여성팬들의 눈물로 가득찰것 같다는..^^;;..여러 프로게이머중에서 김정민선수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면 가장 눈물샘을 자극할것 같군요..뭐 그렇다고 비극으로 끝내라고 공룡님에게 제안하는건 아닙니다만..^^;;
FreeComet
03/06/04 17:01
수정 아이콘
"동수는 작전상황실 앞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는 못해도 70은 되어보였고, 머리는 온통 벗겨져 있었다"
이 대목에서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다음내용 예상
'엄재경해설위원'-_-;;
03/06/04 17:27
수정 아이콘
사흘 동안 피지알 접속을 못해서...오늘은 어떤 전개가 되었을까 생각하느라 얼마나 불안했는지; 정민님 정말 죽는 건 아니겠지요?; Epitaph님 말씀대로 정민님이 죽게 된다면 여성 팬분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게 되실지도...^^;; 결말이 어떻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네요.
토스리아
03/06/04 19:46
수정 아이콘
소설속이라도....정민선수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ㅠㅠ...그 오랜시간을 어둠속에서....ㅠㅠ......ㅠㅠ.....
...설마...죽이시는 건...아니죠?...하지만.결말은 공룡님의 것일테니..그저 기다리겠습니다.....하지만...ㅠㅠ
Hewddink
03/06/05 14:57
수정 아이콘
정말 중독성 강한 소설인가 봅니다. ^^;;;
공룡님 후속편이 나오길만 기다리며 하루종일 pgr에 들어와 있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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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연재] 최면을 걸어요 (1) [19] 공룡7712 03/05/29 7712
158 [연재] 최면을 걸어요 (프롤로그) [29] 공룡9798 03/05/28 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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