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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2/29 05:48:12
Name
눈시BBver.2
Subject
[복습해 봅시다] 忠武公 이순신
https://pgrer.net/recommend/1684
삭게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앞에는 대군이 들이닥친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음 발걸음은 조선을 향했고, 17만의 대군의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를 알고 새로 장수를 뽑고 성을 쌓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이 대군 앞에서는 부족하기 그지 없었다. 거기다 원균, 박홍, 이각 등 일선 지휘관들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외로이 항전하던 부산포, 다대포에 이어 송상현이 지키던 동래성이 함락당한다.
교두보를 마련한 일본군은 세 갈래로 나누어 무서운 진격을 계속한다. 조정에서는 명장이라 이름 높던 이일과 신립을 보내 막으려 했지만, 실패, 결국 선조는 조선 개국 이후 첫 피난을 결정한다. 수도 한양은 개전 단 20일만에 점령된다.
한강 방어선은 자멸하고 임진강도 무너졌으며, 마침내 평양이 함락당하기까지...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야 했다. 선조는 의주까지 가서 요동으로 가니 마니 하며 무서워했고, 일본군은 조선 8도를 온전히 점령하기 위한 2차 진공을 시작한다. 8도 중 7도가 일본군의 발 아래 떨어졌다. 누구도 이 때 조선이 회생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국제전의 방식을 몰랐다. 선조만 잡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았고, 물러났던 관군은 다시 세력을 규합해 반격에 나선다. 여기에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반격을 가한다.
김성일은 경상우도의 관군과 의병을 지원했고, 곽재우로 대표되는 의병과 김시민으로 대표되는 관군은 낙동강 서쪽을 탈환했다.
대군을 거느리고 급히 북진했던 전라도군은 용인에서 말도 안 되는 대패를 겪었지만, 이후 권율 등의 활약으로 적의 침공을 무사히 막아낸다. 이치와 웅치 전투의 승전을 통해 권율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관군과 의병을 규합, 서울 탈환에 나선다.
그 외에도 충청도의 조헌, 황해도의 이정암, 경상좌도의 권응수, 함경도의 정문부 등 많은 이들이 일어났고, 일본군은 진격은커녕 곳곳에 고립된 상태에서 조선의 매서운 겨울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따로 있었으니........
조선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녹둔도에서 비록 패하긴 했지만 무서운 용맹과 용기를 보여주었던 그, 왜란에 대비한 불차채용을 통해 전라좌수사로 승진했던 그는 일본은 물론 조선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무서운 반격을 개시했다.
"이제 한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곧 범의 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적을 소탕하여 나라의 수치를 만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하는 바, 성공하고 안하고, 잘되고 못되고는 내 미리 생각할 바가 아니리라"
난중일기 - 4월 29일
5월 7일~8일 1차 출동
전과 : 옥포 26척, 합포 5척, 적진포 13척
아군 피해 : 부상자 2명
6월 1일~5일 2차 출동
전과 : 사천 13척, 당포 21척, 당항포 26척, 율포 7척 기타 6척
아군 피해 : 전사 11명
두 차례의 출동을 통해 일본군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 했던 바다에서의 반격, 결국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수군에 투입해 결전을 치르게 된다.
7월 7일~10일 3차 출동
전과 : 한산도 59척, 안골포 40척
아군 피해 : 19명 전사
"거의 타다 남은 뼈다귀와 손발들이 흩어져 있고 그 포구 안팎에는 흘린피가 땅에 가득하여 곳곳이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도적들의 사상자는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 임진장초
결국 히데요시는 해전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적은 성을 쌓고 틀어박혔으며, 이에 이순신은 마침내 적의 소굴을 친다.
100척이 넘는 적을 깨뜨렸지만 이 해전으로 정운이 전사했고, 더욱이 일본군이 포로가 된 조선인을 이용해 화포를 쓰면서 수군도 쉽게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해안요새 전략으로 이후의 해전에서 수군은 큰 활약을 못 하게 되었다.
더욱이 평양성을 탈환한 명군은 벽제관 전투로 수세로 일관, 지루한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의 활동에는 온갖 제약이 가해졌고, 더욱이 그의 공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며 더한 것을 요구하기만 했다. 수군은 계속 육군으로 차출됐고, 전염병까지 더하면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수군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을 뜻을 결심하고 나날을 보내지마는, 적이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도 없다. 하물며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라일은 어지럽건만 안으로 건질 길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
- 난중일기, 92년 9월 3일
대신 그는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어 한산도로 통제영을 옮긴 후 견내량을 틀어막는다. 97년, 전쟁이 다시 시작하기까지 이 곳은 절대 뚫리지 않는 요새가 되었다. 하지만 휴전은 파탄 났고, 일본군은 재침략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순신을 꺾기 위한 간계를 벌인다. 여기에 이순신을 시기하고 모함한 원균과 역시 이순신을 싫어한 선조의 합작품으로,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조정에서는 바야흐로 이순신이 헛되게 큰소리 쳐서 임금을 속였다고 허물하여 금부도사를 보내어 잡아다 문초하고, 전라 병사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하고, 나주 목사 이복남으로 전라 병사를 삼았다. 남도 백성들이 한산도를 보장으로 삼고, 이순신을 간성으로 믿었다가, 그가 파면되었음을 듣고는 사람들이 기댈 데가 없어서 짐을 꾸렸다. 요적이 전후에 행한 바가 모두 우리를 속이는 일인데도 우리 나라는 알지 못하였으니 통탄할만한 일이다." - 난중잡록
한국사에 다시 없을 이 졸장이 이순신의 뒤를 이으며 조선의 운명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그나마 정탁의 신구차를 통해 이순신의 목숨이나마 구한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풀려나온 것을 축하하며) 동네 안 사람들이 각각 술병을 들고 와서 먼 길 떠나는 것을 위로하는 정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몹시 취하여 파했다. (중략) 나는 노래를 듣는데도 즐겁지 않았다" - 난중일기 97년 4월 9일
오히려 고문은 그에게 아무 아픔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유학에 충실했던 그, 그 누구보다 나라에서 충실했던 그는 모든 무공과 충성을 부정당한 채 백의종군해야 했다. 몸은 급속히 약해졌다. 하지만 그에게 더 컸던 아픔은,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 했던 것이었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날뒤었으나 하늘이 캄캄했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다 적을 수가 없다" - 13일
"영구를 상여에 올려 본가로 돌아오며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중략) 부르짖어 통곡하며 다만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 16일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간에 나와 같은 사정이 어디에 있으리오.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 하다" - 19일
그럼에도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는 바로 남쪽으로 떠나야 했다. 권율 휘하에서의 백의종군이었다. 이 때의 그를 사람이라고 할 순 있을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에게 남은 건 슬픔 뿐이었다. 거기다 그가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조선 수군은 원균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었다.
"이날은 바로 어머님 생신이니 비통한 마음을 어찌 감당하랴. 닭이 울자 일어나 앉아 눈물만 줄줄 흘렸을 뿐이다" - 5월 4일
"우는 것도 뜻대로 할 수 없으니 이 무슨 죄로 이런 갚음을 당하는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 짝이 없을 것이니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 하다.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 5일
"아침 저녁으로 그립고 비통한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를 이루건만 하늘은 어찌 막막하여 내 사정을 살펴 주지 못 하는 것인가? 어째서 속히 죽지도 않는 것일까?" - 6일
그 후, 그에게 들려온 것은 수군의 패전 소식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 수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놀랍고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 했다. 적을 하나도 잡지 못 하고 먼저 두 장수를 잃어 버렸으니 통탄스러움을 어찌 말하랴" - 6월 25일
"이 말을 들으니 분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통분할 노릇이다. 통제하고 방어할 방책이 없으니 매우 한스럽다" - 7월 14일
"오게 된 것을 듣고 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가 믿는 것은 오직 수군 뿐인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다시 바랄 것이 없다. 반복해서 생각할수록 분하여 가슴이 온통 찢어질 것만 같다" - 16일
"다수가 해를 입어 수군이 대패했다고 하니 들려 오는 것마다 통곡이 나오는 것을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리오" - 18일
마침내 그가 한 모든 것은 끝났다. 나라에 대한 충성은커녕 그 나라 자체가 망할 위기에 처했고, 모든 힘을 다 한 수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죽을 수 없었다. 아니, 무서운 기세로 그는 다시 일어섰다. 차마 못 할 부탁을 하러 왔기에 아무 말도 못 했던 권율에게 그는 이렇게 말 하였다.
"나는 내가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보고 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고했더니 원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 18일
남은 수군을 수습하러 간 이순신은 남은 배가 겨우 12척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해 나온 군사들과 백성들이 호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경상 수사는 도망가서 보이지 않고 우후 이의득이 찾아왔거늘, 패하게 된 상황을 물었더니 사람들이 모두 울면서 말하기를,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는 먼저 달아나 뭍으로 올라가고 여러 장수들도 그를 따라 뭍으로 달아나 이런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대장의 과오를 말하는 것은 입에 담아 형언할 수 없고, 그 살점을 뜯어먹고 싶다고 했다"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일본군은 8월, 다시 진격을 재개한다. 일본군이 진주를 점령한 8월 3일, 그는 노량에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재임명되는 교서를 받는다. 단 하루라도 늦었으면 이순신 자신의 목숨을 잃거나 통제사로 재임명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근자에 경을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고 죄를 진 채 종군하도록 처벌한 것은 역시 사람의 꾀가 두텁지 못한 데서 비롯됐노라.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패배의 욕됨에 이르렀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말도 안 되는 명령, 절대 수행할 수 없는 임무였지만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때부터 그의 운명은 곧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이었다.
"숙배한 후 받자온 서장을 써서 봉해 올리고 발 그날로 길을 떠나 곧장 두치 가는 길로 들어섰다" - 8월 3일
그가 길을 떠나는 동안 전라도와 충청도는 일본군에 의해 초토화되고, 잔혹한 코 베기가 시행된다. 그는 남은 수군을 수습하며 때로는 일본군의 점령지를 통과하기도 하는 등 극히 위험한 이동을 한다. 한시가 바쁜 그를 선전관이 붙잡기도 했다.
"나 선전관입니다."
그가 들고 온 명령은 수군을 폐하고 육지로 올라오라는 것, 하지만 그는 어이 없는 말로 그 명령을 거부한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로 힘을 다 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 볼 만 합니다. 만일 수군을 폐한다면 이것은 적이 가장 기뻐하는 바로써, 호남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지만,"
"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일본 수군은 다시 대규모의 병력과 수송선단을 이끌고 서해로 진입하려 하였다. 몇 차례의 야습 동안 장수와 병사들은 두려워 떨었으며, 이순신은 직접 나서서 이들을 물리쳐야 했다. 거기에 조선에서 전라우수사로 보낸 김억추는 원균과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때를 만나지 못 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그리운 회포로 눈물을 흘렸다. 천지간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아들 회가 내 심정을 알고 몹시 언짢아했다"
그럼에도 눈 앞에 적이 있었다. 그는 이겨야 했다. 죽어서도 안 됐다. 죽지 않고 이겨서 마침내 나라를 구해야 했다. 마침내 그는 명량에서 적을 맞이한다.
그와 같이 싸웠던 장수들도 물러났지만, 그는 혼자서 싸웠다. 그 혼자서 수많은 적을 물리쳤고, 마침내 아군이 오자 적을 완전히 몰아내기에 이른다. 그 어떤 군사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해전을 그는 아주 짧게, 하지만 감격적인 한 줄로 마무리했다.
"此實天幸 이것은 실로 천행이었다"
이 전투로 인해 전세는 완전히 역전됐고, 일본군은 해안가로 후퇴했다. 조명연합군은 세를 불리며 이들에 반격을 가하지만, 울산성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1년간의 긴 대치가 시작되었다.
그 동안 이순신은 여러 섬을 떠돌아다니며 조선 수군을 부활시킨다. 그것도 편하진 않았다. 아들 면의 전사가 알려진 것이 이 때였다.
"하늘이 어질지 못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떳떳함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백일조차 빛이 변했다. 아아,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범속하지 않기로 하늘이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는가. 내가 지은 죄로 화가 너의 몸에 미쳤는가. 이제 내가 세상이 있은들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란 말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만 너의 형, 너의 누이, 너의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어가기는 하지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서 소리쳐 울따름이다. 하룻밤을 지내기가 1년 같다"
그럼에도 마음껏 울 수 없었던 그는 한밤중에 몰래 숨어 울어야 했다.
"이제는 영령이라 불효가 여기에 이를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비통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함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죽을 순 없었다. 죽고 싶었겠지만 죽을 수 없었다. 그의 운명은, 그가 죽는 날까지 곧 조선의 운명이었다. 선조는 이런 상황에도 그를 견제했다. 하지만 그걸 미워할 수도, 복수하려 할 수도 없었다. 적이 아직 조선에 더러운 발을 딛고 있었다.
"무릇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다른 길은 없다" - 97년 10월 8일, 독송사
부활한 조선 수군은 전라도의 적에 맹공을 가했고, 상당 부분을 탈환했다. 그는 진린의 견제와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을 몰아붙였고, 진린도 그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히데요시의 죽음과 조명연합군의 4로 병진이 시작된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교성을 치던 그는 동쪽에서 거대한 함대가 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지원군이었다.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늘에 빈 후 진격한다. 이렇게 그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 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물이 흐르지 못하였고 바닷물이 온통 붉었습니다" - 이덕형의 보고
500여척의 적선 중 돌아간 것은 겨우 50여척, 하지만 조선 수군은 여기서 큰 별을 잃게 된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렇게 그는 조선을 구했다.
-------------------------------------
뒤에 몇 마디 더 덧붙이려 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어서 그냥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말로 할 수 없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건 다 마찬가지겠죠.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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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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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29 07:15
수정 아이콘
요약본(?)도 잘 읽었습니다. 음악도 잘 어울리고 좋네요.
콜로
해시 아이콘
11/
12/29 08:16
수정 아이콘
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이부분은 볼때마다 가슴이 찡하네요..
세미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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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29 08:58
수정 아이콘
명량해전은 과거로가서 진짜 어떻게 이겼는지 보고싶은 욕구가 팍팍드네요.
rakorn
해시 아이콘
11/
12/29 09:15
수정 아이콘
인간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추접함이 들어나길 마련이거늘 이순신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숭고함이 드러나니 이래서 한국 역사 위인중에서도 으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nickyo
해시 아이콘
11/
12/29 09:39
수정 아이콘
유학시대 무장의 본으로서 이보다 더 한 인물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변하지 않는 군주에 대한 충정과, 오로지 승리를 위한 끈기. 감정의 폭발과 절망을 꾹꾹 눌러담아내는 마음가짐.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며 대의를 받드는 자세.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장수로서의 기량. 그저 올곧기에 처세에 능하지 못했던, 비범한 장수.
티티
해시 아이콘
11/
12/29 09:56
수정 아이콘
그저 흑흑..
브금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시카
해시 아이콘
11/
12/29 10:06
수정 아이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치토스
해시 아이콘
11/
12/29 10:1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정말 세계에서도 역대급 해전사령관이 우리나라 사람 이라니 자랑스럽다..
에시앙
해시 아이콘
11/
12/29 10:49
수정 아이콘
비비님 제가 항상 말하지만..저 과외좀 시켜주십시요..언제까지 시리즈 올리실거에요? 2012년 끝날때까지도 연재 부탁드립니다...굿이에요 굿
사티레브
해시 아이콘
11/
12/29 10:53
수정 아이콘
7년간의 인생이 너무나 찬란하네요
감히 악비에 비견하라
스타나라
해시 아이콘
11/
12/29 10:58
수정 아이콘
나 선전관입니다~ ^^;
백마탄 초인
해시 아이콘
11/
12/29 11:06
수정 아이콘
그저 눈물만...
"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이부분은 볼때마다 가슴이 찡하네요..(2)
Locked_In
해시 아이콘
11/
12/29 12:06
수정 아이콘
마침 버스타고 광화문을 지나가며 이글을 읽었습니다. 장군님 동상을 보니 가슴이 벅차네요.
근데 북쪽의 장군들은 왜 그모냥...후우
[m]
자이언츠불펜
해시 아이콘
11/
12/30 23:12
수정 아이콘
한반도 올타임 넘버 1
가을독백
해시 아이콘
12/
01/10 07:11
수정 아이콘
정말 최고이셧군요.
안밖으로 견제와 미움을 동시에 사면서 가진 능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미와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삭히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저렇게 버릴수 있다니요..
적을 막기도 버겁고, 막는다 해도 멍청한 왕과 쓸모없는 조정세력에 의해서 또 귀향길에 오를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존경합니다.
이 글 보고 이순신을 검색했더니 모친이 저랑 성이 같네요(쓰는 한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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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시인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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