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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12/01/07 18:33:59 |
Name |
Eternity |
Subject |
[연애학개론] 이별 대처법 |
[연애학개론] 이별 대처법
안녕하세요, 영원 혹은 Eternity 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음,, 뭐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어서 다시 [연애학개론]을 쓰게 된 것은 아니구요.
단지 그냥, 다시 연애칼럼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pgr 글쓰기 화면을 열게 됐습니다.
(굳이 이유 가운데 한 가지를 들자면, 눈시BBver.2님, nickyo님, PoeticWolf님 등 pgr 자유게시판에 항상 꾸준하게 양질의 글을 써주시는 많은 분들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쨌든 오늘, 오랜만에 쓰는 [연애학개론]의 주제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당신의 이별은 안전합니까?
예나 지금이나 pgr 자유 게시판 혹은 질문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연애 관련 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별의 아픔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자유 게시판의 경우는 이별의 경험과 아픔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자 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고, 질문 게시판의 경우는 이별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는지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타인 해줄 수 있는 얘기는 많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댓글의 대부분이 '시간이 약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자신에게 투자해라', '게임이나 운동 등 취미 생활에 푹 빠져 지내라' 등등의, 현실적인 위로와 격려의 이야기들로 채워집니다. 어찌보면 상투적이지만 또 어찌보면 그보다 더 정확한 정답이 없는 말들이죠. 사실 맞는 말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라고 해서 이별에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그보다 더 나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드릴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별의 아픔 속에 글을 쓰는 사람이나, 안타까움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나 사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답들을 몰라서 이별에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사실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이별의 고통에 아파하는 누군가가 이별 대처법을 알려달라며 글을 올리는 것은 실상,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태양을 피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갑작스런 이별에는 방법이 없죠. 잊으려 하면 할수록,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힘들고 답답해질 뿐입니다. 이렇듯 처방전이 없는 이별이란 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사실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태양을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뜨겁고 고통스러워질 뿐이라면 방법은 하나뿐이겠죠. 태양이 내리쬐면 뜨거운 햇볕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고, 비가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는 것. 결국 이별에 처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것뿐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러한 대처가 사실은 건강한 이별을 위해 꼭 필요한 디딤돌이자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태양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래로 쬔다는 것은 이른바, '이별에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이별을 맞닥뜨린 우리가 흔히 하는 잘못 가운데 하나가, 이별한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지도 못한채로 극복부터 하려고 한다는 점인데요. 적어도 이별에 맞닥뜨린 우리는, 상대방과 내가 이별했다는 사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그와 나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이 되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결국 방법이 없다는 사실, 즉 지금 당장은 내가 무엇을 해도 그를 잊을 수 없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이것이 건강한 이별을 위한,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첫 번째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경찰 223과 633의 이별 이야기
(이 부분부터는 영화 [중경삼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을 보면 두 남자의 이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애인과 헤어진 경찰 223(금성무 분)은 그 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나씩 사서 모으기 시작합니다.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이었고, 5월 1일은 그의 생일이었죠. 30개의 통조림을 다 모으게 되는 5월 1일까지는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사랑도 끝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중경삼림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223은 생일 전 날 밤, 옛 애인이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홀로 먹게 됩니다.
결국 경찰 223이 택한 이별 대처법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습니다. 즉, 그녀와 나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는, 혹은 그녀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일종의 희망 고문인거죠. 하지만 이러한 자기 최면 혹은 희망 고문은 건강한 이별법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당장 지금의 고통은 희석시키고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최면이 풀리거나, 희망 고문이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과 아픔은 그전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죠. 상처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만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고 아물도록 연고를 발라주는 과정이, 이별에 맞닥뜨린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이별에의 인정’에서 시작되는 것이구요.
기억의 Delete와 끌어안기
더불어 [중경삼림] 에피소드2의 경찰 633(양조위 분)은 스튜어디스인 옛 애인과 헤어진 남자입니다. 그는 이별의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이별의 슬픔에 아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아프고 그리운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리고 특히나 이 에피소드2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자신의 집 옷장 구석에 있던 헤어진 옛 애인의 옷에 곰팡이가 슬었다며 그 옷을 햇빛에 걸어놓는 633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헤어진 사람과 관련된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처분하거나 없애버리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는 억지로 지워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녀란 존재는 억지로 비워내고 지워내려 해도 결국 지워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는 알았던 거죠. 결국 그가 택한 이별의 방식은 억지로 지워내고 기억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담담하게 삶의 일부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알았을 겁니다. 진정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은, 기억의 Delete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오래된 메일함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그녀가 보낸 옛날 메일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고 찬찬히 읽어보게 되는 것, 혹은 그 사람과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는 장소를 가더라도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뚜벅뚜벅 길을 걷게 되는 것,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을 만지더라도 거부감 없이 담담하게 그 사람을 추억하게 되는 것.
진정 잊는다는 것은, 이렇게 그 사람의 흔적을 봐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러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사실을 영화 [중경삼림]은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잊을 수 없다면, 열심히 기억할 것
결국 잊을 수 없다면, 담담하게 그리고 열심히 기억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열심히 기억하고 싶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잊혀지고 희미해지는 게 우리네 기억이잖아요.
사실이 그렇죠. 잊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또 더 많은 노력을 요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잊는 것이야, 어떤 기억이든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희미해지고 바래지기 마련이지만 어떠한 왜곡이나 가감없이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물론 어떤 일이든 완전히 잊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떠올리는 빈도가 줄어들고 또 그에 비례하여 아픔의 크기 또한 줄어들게 마련이죠.
그러니 우리가 진정으로 서글퍼해야 할 대상은, 지금 이렇게 이별을 경험하며, 초라하고 쓸쓸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나를 죽도록 힘들게 만드는 그 존재와 모든 기억들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흐려지고, 희미하고 밋밋하게 변해간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사랑만이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별도 유통기한이 있으니까요.
뜨거운 이별을 위한 전제 조건
결국 이별은 아픈 것이 맞고, 뜨거워야 합니다. 뜨거운 이별일수록 이별의 아픔 후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여지가 크지만, 미지근한 이별일수록 오래도록 상대방과 나를 괴롭히곤 하니까요. 영화 [김종욱 찾기]를 보면 일명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준(공유 분)의 얘기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끝까지 가봐야죠, 그래야 새로운 시작을 하죠.”
만약 당신의 이별이, 이별로부터 수반되는 순수한 아픔보다도,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 혹은 더 사랑하지 못한 미련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것은 뜨거운 이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뜨거운 이별을 위해, 즉 우리가 더 ‘잘’ 이별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은 바로 후회 없는 사랑이니까요. 결국 뜨거운 이별을 위해선 뜨거운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이나 이기심으로 인해 마음의 전부를 주지 못하고 마음의 일부를 남겨둔 채 미적미적하고 미지근하게 연애를 했거나,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해 어느 한쪽만이 아닌 서로가 원치 않은 이별을 했다면 그만큼 이별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아픔을 넘어서는 후회와 미련으로 인해 이별의 유통기한은 더 길어지게 됩니다.
당신의 이별을 응원합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이별 후에 남는 극심한 고통과 아픔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을 넘어서는 ‘후회와 미련’이 아닐까요.
진정 뜨겁게 사랑했고 내 모든 걸 함께했다면, 아파도 괜찮습니다. 그런 이별이야말로 건강하고 멋진 이별이니까요. 오히려 이별의 아픔보다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 모든 것을 다주지 못한 이기심으로 인한 미련이 우리의 이별을 병들게 만드는 주범인걸요.
고백이 사랑이라면 이별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뜨거웠다면, 이별도 뜨거워야 맞는 것이겠죠.
그러니 지금 현재 이별에 힘들어하는 당신, 마음껏 아파하시고 당신의 이별을 뜨겁게 끌어안으신 후에, 훌훌 털어내시길 바랍니다.
아파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이별을 응원합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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