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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01 20:24:14
Name 신불해
Subject 운명을 지배하는 인간, 운명 앞에 쓰러지다 - 워털루 18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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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앤드로 로버츠, 나폴레옹의 마지막 도박 中



 "6월 18일 전투를 소개하는 책은 그동안 수없이 출간되어 왔다. 따라서 내가 무슨 근거로 그토록 오랫동안 대중에게 소개된 주제에 관해 새로운 관심을 일깨울 거라 생각하는지 물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찍이 1849년 7경기병연대의 에드워드 코튼 준위가 『워털루가 전하는 목소리』라는 전장 안내서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당대에도 이 말은 타당했다. 150년 동안 100권이 넘는 책이 나온 후 그 주제에 관해 또 다른 책에 적용한다면, 이는 더더욱 맞는 애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 코튼이 내놓았던 답변을 지금의 나도 하고 싶다. 전투에 관하여 의혹, 불가사의, 논쟁, 혼동이 남아 있다면 설명의 여지는 늘 존재한다.


 스위스의 역사가이자 네 원수의 참모장이었던 앙리 조마니 장군은 "워털루 전투만큼 모호하게 기술된 전투도 없다." 고 말한다. 한 가지 이유는 워털루 전투가 그만큼 중요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웰링턴 공은 전투에 대한 묘사를 무도회의 묘사에 비유했다. 필시 워털루 전투가 벌어지기 사흘 전 리치먼드 공작부인이 개최한 무도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무도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넒은 공간에서 동시에 움직이며 갖가지 결과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단일한 관점에서 전체를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워털루 전투에 관하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전투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후 가장 위대한 인간의 세계사적 영웅 서사시를 영원히 끝내버린 사건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전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유럽 대륙의 지배자였지만 태어나고 추방당하고 죽었던 섬 세 곳으로 인생의 구두점을 찍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치적 생애는 1815년 6월 18일 일요일 저녁에 완전히 멈춘다. 이는 전율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의 사막과 프로이센의 초원, 이베리아 반도의 평원, 오스트리아의 마을들, 러시아의 눈밭으로 이끌고 다녔던 대군은 마침내 브뤼셀 남쪽으로 15마일 떨어진 몽생장의 비탈에서 참패했다.


 물론 워털루 전투로 보나파르트 가문의 서사시가 완전히 종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그 이야기는 나폴레옹의 조카손자인 황태자가 1879년 줄루 족의 창끝에 찔려 죽을 때 끝난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대서양의 작은 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는 치욕을 당하고, 때이르게 사망하게 된다. 또한 워털루 전투는 2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거의 중단 없이 진행되었던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으며, 짧고 격렬했던 몇 차례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유럽에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평화의 시대를 불러왔다.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던 저지대 국가들의 들판이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비슷한 야심의 결과로 다시 한 번 진창과 피로 뒤범벅될 때까지 말이다.


 바이런 경이 비난하듯 "최고의 살육전, 워털루" 라 부르고, 테니슨 경 앨프리드가 웰링턴을 찬사하는 시에서 크나큰 존경심을 드러내며 "세계를 뒤흔든 지진, 워털루" 라 불렀던 것은 18세기를 완전히 멈춰 세웠다. 아니 차라리 18세기에 최후의 느낌표를 찍었다고 할 것이다. 워털루 전투는 19세기 달력 안으로 7분의 1이나 들어온 시점에서 발생했지만 본질적으로 18세기의 현상이었다. 역사가들은 때때로 1688년 영국 혁명에서 시작하여 1815년에  종결되는 '장기' 18세기를 말하는데, 워털루 전투를 지정학적이고 군사적인 관점 모두에서 한 시대의 마감으로 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워털루의 살육전이 소름 끼치는 것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때 이후로 전쟁은 갈수록 더 잔혹해졌다. 참호(크림 전쟁), 가시철조망과 철도와 기관총(남북 전쟁), 의도적인 기아(보불 전쟁), 포로수용소(보어 전쟁), 겨자 가스와 공중 폭격(제 1차 세계대전) 등으로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이면, 기병은 이제 전쟁 수행 요소로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적국의 수장을 정당한 군사적 표적으로 삼는 오늘날과는 달리,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겨냥하여 포를 발사하도록 허가해 달라는 휘하 포병 장교의 요청을 거부했다. 나폴레옹 전쟁 때 입었던 화려한 군복은, 보어 전쟁이 벌어질 때면 부대가 적군을 현혹시키보다는 주변 지형에 어우러지도록 황갈색 군복으로, 뒤이어 위장복으로 대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털루 전투는 모든 전투가 그렇듯이 본질적으로 적군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열정과 기백, 영예로움의 정신도 있어 적어도 처음에는 전투 장면에 미학적 아름다움이 있었다.


 워털루 전투에서는 양 진영에 많은 기병도 포진했다. 프랑스 기병대가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때 많은 영국 보병이 보인 반응을 보자. 1근위보병연대 소속 하월 리즈 그로나우 소위는 이렇게 적었다.


 ……쓰러진 중에 죽어 너부러진 자신의 말 아래 깔린 용감한 경기병 대령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브라운슈바이크 부대 소속의 소총수 두 명이 자기 대대를 빠져나와 무력한 희생자로부터 지갑과 시계 등의 귀중품을 빼앗은 뒤, 대령의 권총으로 그 가엾은 인간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창피하지도 않은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라는 말이 우리 부대에서 들렸고, 분노의 감정이 온 전선에 퍼졌다.


 16경용기병연대의 대위 윌리엄 톰킨슨도 유사한 사례를 기록으로 남겼다. "어느 중기병 장교가 분견대를 이끌고 우리 방진 가까이 다가왔다. 그 장교는 성공할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서 전속력으로 우리 방진으로 말을 달렸고 총에 맞아 죽었다. 우리 사병들과 장교들은 그 사람의 운명을 아쉬워했다." 


 워털루 전투 이후 세대는 저명한 역사가 폴 존슨이 쓴 걸작의 제목처럼 '근대의 탄생' 을 지켜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워털루 전투는 세계사적 조산술(助産術)이라 할 이 거대한 사건을 탄생시킨 산파였다. 나폴레옹의 야심이 더는 유럽을 전쟁에 시달리게 하지 못함으로써, 인류는 마침내 평화와 진보의 시대를 내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자신도 적어도 통치 초기에는 사회적 근대화와 정치적 근대화를 추동한 큰 힘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의 절대 권력은 체제의 절대 부패를 낳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나폴레옹은 유럽의 여러 구체제가 지닌 반계몽주의와 후진성을 대부분 쓸어버렸다. 나폴레옹이 나중에 폭군처럼 군림했음을 부정할 수 없고 수십만 명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분명하며 확실히 오래도록 평화를 막는 장애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완전히 나쁘지는 않았으며 후대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괴물들과는 전혀 달랐다.


 나폴레옹 전쟁의 파괴력을 멈추고 산산히 부수어버린 전투는 철저하게 세세히 분석되었고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다. 통찰력이 뛰어난 초기 연대기 작가의 한 사람인 장군 제임스 쇼 케네디 경은 고전으로 남아 있는 『워털루 전투 기록』의 결론에서 이렇게 썻다.


 "역사가 읽히는 한, 워털루 전투가 수많은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리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전쟁의 기술이 연구되는 한, 군인들이 그 위대한 특징들과 매우 중요한 전투의 세세한 부분을 주제로 삼아 열심히 조사하고 숙고하리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단지 군인만이 연구할 것도 아니다. 워털루 전투의 사라지지 않는 매력은 그 규모나 역사적 결과들,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그 전에는 전장에서 마주친 적이 없으며 그 이후에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 전투에 쓰인 전략이나 전술, 무용담, 유명하고 다채로운 개인과 부대가 관여되어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전투가 '박빙의 승부' 였기 때문도 아니다. 워털루 전투는 이 모든 요소들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이 결합된 독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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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 1제정(Le Premier Empire), 나폴레옹 제국


 『절대자의 몰락』




 "이런, 라신 가에 카자흐 기병이라니!"


 스위스의 안전한 피난처 코페트에서 스탈 부인은 그렇게 한탄했다. 나폴레옹 황제를 비판하는 가장 유명한 망명객인 그녀로서도 지금의 상황은 자못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1814년 3월 30일, 파리는 처음으로 대포공격을 당한다. 공화국의 운명이 풍전등화로 보였던 발미 전투 이전에도 들리지 않았던 소리였다. "대포소리와 가족과 재산, 가축을 챙겨서 시골로 피신하는 농부들의 모습만 보였는데 전반적인 불신감을 압도할 정도였다." 브롤리 공작의 기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 20여년간 프랑스는 가장 위대한 나라였다. 그리고 그 위대함의 중심지는 '빛의 도시' 파리였다. 2700만(주 : 앨리스테어 혼의 '나폴레옹의 시대' 에서는 당대 프랑스의 인구가 270만이라고 나와 있으나 상식적으로 2700만의 오기로 보인다. 두산백과에서는 1801년의 프랑스 인구를 2734만이라고 표시했다) 인구의 프랑스 제국에서 파리와 리옹을 제외하고는 어느 도시도 인구 10만을 넘지 못했으며, 파리 인구는 50만 명 이상이었다. 이 도시는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임이 분명했고, 나폴레옹 제국의 힘과 권위를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무너지고 있는 권위였다. 나폴레옹과 위대한 대육군 - 라 그랑드 아르메가 유럽의 가장 강력한 국가의 수도들에게 안겨준 운명, 즉 빈과  베를린, 마드리드와 리스본,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스크바에 안겨주었던 그 선물의 '대가' 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권위가 가장 확고하였을 때 얻은 황제의 전리품, 황후 마리 루이즈는 1814년  3월 29일 결국 파리를 떠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파리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전(前) 신성 로마 제국의 군주,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가문의 주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였을까? 그러나 결국 모든 상황이 파리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그 때까지 시종에게 안겨 있던 로마왕 - 나폴레옹 황제의 세살 짜리 아들은 갑자기 몸부림을 치며 소리쳤다.


 "우리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 가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아빠가 없으니 내가 이 집 주인 노릇을 해야 해!"


 어린아이의 비통한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불쌍한 소년은 이후 메테르니히의 꼭두각시가 되어, 새장 속에 갇혀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일생을 마무리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파리를 떠나는 일행은 황후 일행이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시민들이 앞을 다투어 피난길에 나서, 루앙과 샤르트르, 드뢰로 가는 길은 여자와 아이들이 가득 찬 베를린 마차와 포장 마차, 소파가 달린 마차, 가구를 실은 짐수레 등 모든 종류의 수레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파리의 서쪽으로 피난민들이 줄을 잇고 있을때, 도시의 동쪽에서는 연합군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11만에 이르렀고 파리 전역을 불태워버리기에도 충분한 숫자였다. 파리를 방어하는 병력은 마르몽, 모르티에 두 원수가 지휘하는 부대와 몽세이 원수가 지휘하는 국민군을 합해 42,0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어떻게든 숫자를 맞추기에 급급했던 그 군대는 과거 전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였던 '아우스터리츠의 용사들' 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풋내기 용사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수차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휘관의 장난감이 되어 농락이 되었던 블뤼허 원수는 이를 갈며 북쪽의 클리시와 몽마르트르 방면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에 결정타를 날린 오스트리아는 슈바르첸베르크 장군의 지휘 아래 파리 동쪽에 있는 봉디에서 뱅센 방면으로 다가왔다. 


 일반 시민들로부터 제국의 황제에게 신임을 받았던 고관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는 달아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지만, 모두가 도망치는 일에만 정신을 팔린 것은 아니었다. 가장 열심히 저항하는 사람들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폴리네크니크(이공과 학교)의 학생들은 용감하게 버티고 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프로이센군에게 탈취 당하면 파리는 이 언덕으로 맹렬하고도 무자비한 포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시도가 저지되자, 말 위에서 뜨거운 숨결을 내쉬는 카자흐 기병들은 세 번째 돌격을 감행했다. 



마르몽



 동쪽에서는 나폴레옹 제국의 원수 마르몽이 슈바르첸베르크의 10분의 1 병력으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과가 뻔한 싸움이었다. 결국 수비군은 점차 북쪽의 베르빌 지구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편을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을때, 남아 있던 여러 시민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특히 노동자들의 분전은 눈부실 정도였다. 


 "포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특히 교외 지구에 사는 용감한 민중은 적을 쳐부수어야하겠다는 투지가 용솟음쳐 올랐다." 뒤카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무기를 줘! 제발 나에게 무기를 주란 말이야!" 라며 말이다. 그러나 열세에 있던것은 병력 뿐만 아니라 온갖 군수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용감한 시민들이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더라도, 한계에 달한 물자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적에 맞설 총 역시 도저히 더 보이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우다가 쓰러지는 많은 전사자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아!"


 뻔히 한계가 보이는 상황을 사령관 마르몽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러시아에서의 재앙 같은 기억 이후, 마르몽은 황제의 휘하에서 멀어져만 가는 운명을 되돌리기 위해 13곳이나 전장을 옮겨가며 싸웠지만, 현재 그는 파리 근교에서 후퇴하고 있는 중이다. 휘하의 포병대장은 그에게 곧 포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그는 나폴레옹의 형 - 즉 에스파냐에서 끔찍한 실패를 경험했던 조제프 보나파르트에게 이후의 명령을 부탁했다.


 조제프는 마침 파리를 탈출할 준비에 여념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는 불리해지는 전황을 보고 마르몽과 모르티에, 두 원수에게 정전 교섭권을 주었다. 경시총감에게 파리의 치안을 맡기고 시민들에게는 총을 들고 시내를 지키라고 법령을 반포하면서, 자신은 각료들을 데리고 교외에 있는 성으로 멀리 달아날 셈이었던 것이다. 조제프가 달아난 후에도 마르몽은 저항을 계속했지만, 머지않아 도처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주위 사람들의 간청과 그에게 중재를 청원하러 온 시의회 대표들의 부탁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때 마르몽을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날, 형 조제프에게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만 버텨달라는 황제의 편지를 전한 드장(Jean Francois Aime Dejean)이었다. 드장이 조제프가 있는 튈르리 궁전에 뛰어들어갔을 때, 교섭권은 이미 마르몽에게 내려져 있었다. 드장은 마르몽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는 전력을 다해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이제 조금 후면 도착하실 겁니다. 제발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아니, 페하께선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항복하지 말라고. 원수 마르몽 각하, 황제의 명령을 따라주십시오."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드장에게, 마르몽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하네."


 파리의 항복을 결정한 사람은 마르몽이지만, 파리의 함락이라는 기억에 덧붙여질 이름들은 마르몽 외에도 조제프 보나파르트 등이 포함되어야 공정할 것이다. 정전 협정은 사실상 항복이었고, 파리 시내 전역에 곧바로 알려지게 되었다. 항복만 아니라면 어떠한 일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던 로비고 공작등은 울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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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카자흐 기병들은 샹젤리제로 내려와 군막을 쳤다. 물론 말도 못할 가관이 펼쳐졌다. 백년전쟁 이후 처음으로 파리에 외국 군대가 진입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성 크리스핀 데이' 만큼이나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러시아 제국의 차르에게 "이제 불을 지를까요?" 라고 질문 했지만, 세계라도 제압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차르는 그것만은 거절했다. 곧 군악대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5만의 병력이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고, 인고의 세월을 겪었던 대불 연합국의 군주들과 장군들은 마침내 고대했던 순간을 맞이해 주위를 압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리, 그 중에서도 생시르 사관 학교와 이공과 학교 학생들이 분전했던 몽마르트르 언덕을 보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기쁨과 긍지가 섞여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그 근대 바빌론의 성벽을 걸어다녔다. 그 마지막 전투와 점령……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신과 우리 우리 군대에 영광 있으라."


 러시아 군의 청년 장교 보리스 윅스컬은 그 떨리는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물론 많은 대다수 장교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연합군을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들을 보며 불안함에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들 중에서도 왕당파 패거리는 행진의 선두에 서서 "연합군 만세!" "해방자 만세!" 따위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행렬이 방돔 광장에 이르자, 왕당파 일행은 연합군 군주들에게 아첨을 하려는 양 높은 기둥 위에 서 있는 나폴레옹 동상에 로프를 걸고 구경꾼들에게 소리쳤다.


 "자! 5프랑 주겠다. 저 동상을 쓰러뜨리는 데 모두 와서 로프를 좀 당겨 줘!"


 불과 며칠전까지 적군과 싸우다 고통스러운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병원에서 죽어갈때, 귀부인들은 나서서 연합군 병사들에게 키스하거나 월계수 꽃다발을 던지고 있었다. 게중에서도 나폴레옹을 배신한 탈레랑의 질녀, 에드몽 드 베리고르 백작 부인은 말 위에서 카자흐 기병에게 매달려 신나게 시내를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연합군의 행진은 오후 5시에 끝났고, 승리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넘치도록 충분한 알렉산드르 러시아 황제는 프로이센의 황제,ㅡ 슈바르첸베르크 원수, 그리고 탈레랑 등과 함께 한 데 모였다. 물론 이후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연합국의 수뇌들에게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보나파르트와 협상한다. 물론 이제 와서는 웃기는 농담같은 이야기였다. 둘째, 마리 루이즈를 섭정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를 떠났고, 알렉산드르는 그 방안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셋째. 남은 유일한 방안은 부르봉 왕조의 부활하였다. 이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바로 탈레랑이었다.


 "부르봉 가의 복귀는 모든 프랑스 인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자리에 함께 하고 있던 리히텐슈타인 원수는 이렇게 빈정거렸다. 


 "연합군 부대는 곳곳의 마을과 도시를 통과해 왔지만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와 반대로 가는 곳마다 부르봉 가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고 군에서도 고참병과 신병을 막론하고 병사들은 모두 나폴레옹과 제국에 충성을 표시 하더군요."


 물론 탈레랑은 그런 말은 한전으로 흘리고 나폴레옹과 부르봉 가의 후손, 루이 18세 중에 양자택일을 원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는 그 모습을 보고 한 남자를 머릿 속에 떠올렸다. 베르나도트. 나폴레옹 제국의 전 제국 원수이자, 이제 스웨덴 왕가의 후계자이며, 나폴레옹의 몰락에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한 인물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 이름이 찬성을 얻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부르봉 왕가를 받아들이는 결정은 프랑스에 들어설 '새로운 정부' 하기로 결정을 했다. 말은 새로운 정부가 결정하는 일이지만, 사실상 부르봉 왕가의 복위는 결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곧 수립될 새로운 정부의 핵심으로 탈레랑이 떠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탈레랑에게 다가와 아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폴레옹의 비서로서 그를 오랫동안 섬긴 부리엔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국왕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황제와 관계가 있을 무렵부터 나는 그 훌륭한 군주와 거룩한 왕가가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런 말을 내뱉은 사람은 부리엔 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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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연합군과 소년 학생들이 격전을 치루고 조제프가 달아나고 있을때, 파리에서 20킬로미터 쯤 떨어진 프로망트에는 일단의 군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황제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아침부터 150킬로미터 이상을 달려오고 있었고, 아직 적보다 빨리 파리에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있는 황제의 눈 앞에, 마르몽 휘하의 벨리아르 장군이 이끄는 기병대가 보였다. 순간 이 기민한 황제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벨리아르에게 질문했다.


 "이봐, 벨리아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기병 부대를 이끌고 왜 이런 곳에 와 있나? 적은 어디 있지? 황후와 로마 왕은 어떻게 됐나? 모르티에는? 마르몽은 어디에 있지?"


 "폐하."


 벨리아르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파리는 항복했습니다. 황제 대리 조제프 각하는 정부와 함께 이미 탈출하시고, 각 부대에는 파리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는 동맹군이 입성한다고 합니다."


 벨리아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폴레옹은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좋아! 내가 되돌리겠다. 군을 재집결시키고, 동맹군들을 격퇴시키자!"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에라도 파리로 진격하려는 황제를 벨리아르는 필사적으로 제지했다. 수도 파리를 잃는 것은 전 국토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려면 병력이 필요했다. 파리 주위의 언덕에는  12만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병력을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형, 조제프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비겁하게 항복이라니! 조제프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 내가 4시간만 일찍 도착했어도 모두를 구할 수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콜랭쿠르에게 화평 제안을 가져가라고 명령했고, 자신은 퐁텐블르로 떠나 오전 6시, 궁전 2층에 있는 군용 시설로 들어갔다. 파리를  탈환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뒤를 따르는 근위 부대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다. 이윽고 도착한 콜랭구르는 대불연합군의 답변을 전했다. 협상 이전에 퇴위를 하라는 조건이었다. 지칠대로 지친 이 프랑스 제국의 황제는 맥없이 대답했다.


 "왕좌에 대한 집착은 없다. 군인으로 태어난 나는 다시 시민으로 돌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 부끄러운 평화협정을 하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좋다. 부르봉 왕가 사람들만이, 그런 코사크 무리가 작성한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된 나폴레옹은 다시 기력을 되찾았다. "제군들이여! 우리들의 수도 파리에서 침략군들을 몰아내야 한다. 제군들의 힘을 빌려다오. 지금 독수리 깃발 아래 단결하라!" 그의 집결 명령에 임시정부는 황제 나폴레옹의 폐위를 결의하고 모든 병사들의 나폴레옹에 대한 복종 의무를 해제하는 법령을 내놓았지만, 이미 나폴레옹의 군단은 숫자가 4만을 넘어섰다. "황제 만세, 파리로 진격하자!" 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무렵, 마르몽은 휘하의 자신의 6군단에 병력 9천명을 이끌고 파리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남동쪽으로 철수, 퐁텐블로로 가는 길 쪽의 에손에 주둔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같이 파리에서 철수해 온 모르티에 원수가 병사 3천명을 데리고 머물고 있었다. 마르몽이 연합군과 체결한 조약은 파리를 방위하고 있는 군대를 해산, 철수시키고 수도를 넘겨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아직 파리를 떠난 지역에서의 군대의 지휘권은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 자신에게 있어 포기라는 말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수식어였으리라. 그는 에손에 있는 이 부대를 전초부대로 삼아 아직도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나폴레옹 휘하의 근위대는 황제와 마찬가지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제국 원수들을 생각이 달랐다. 마르몽은 그날 밤, 원수들에게 연판장을 돌렸다.


 '수도 파리를 전쟁터로 만들고, 시민의 피를 흘려도 좋을 것인가? 연합군과의 힘의 차이는 이제 확연하다. 할 수 있는 한 나라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 싸움을 막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것은 지금, 우리들뿐이다."


 마르몽과 연판장이 돌려지는것과 마찬가지로, 나폴레옹 역시 원수들에게 집결 명령을 돌렸다. 그들을 통솔하여 에손으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파리 탈환을 지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차례대로 퐁텐블로의 문전에 원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몽은 에손의 주둔지에서 나폴레옹과 원수들의 도착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연판장의 답변들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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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 원수들은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집결하였다. 원수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전투로 지칠 대로 지친것은 일반 시민들 뿐만 아니라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과거 그들은 일개 병졸에서 시작하여 전쟁이라는 기회를 잡아 출세를 했지만, 이제 출세의 끝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의 전쟁 역시 바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원수들은 파리를 다시 노리려는 나폴레옹을 미친 사람처럼 생각하며 투덜거리고 있었고, 비아냥 속에 누군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그만하면 된거야. 적당히 결말을 내야 한다구. 더 이상 시키는 대로 하다가는 복종도 노예 근성이 되고 말겠어! 황제는 자신이 몰락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곳에 끌고 들어갈 권리는 없어. 황제가 자리에서 쫓겨났으니,  연합군은 황태자와 교섭을 하겠지. 황제의 운명은 전적으로 자신이 뿌린 씨 때문이니 자신이 혼자 감당 할 수 밖에 없는거야!"


 그 말을 듣고, 격정적인 성격의 원수 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File:Bataille - Michel Ney, duc d'Elchingen, prince de La Moskowa, Maréchal de France (1769-1815).jpg



 미셸 네이, "용사 중의 용사" 로 불린 그는 틀림없이 나폴레옹의 휘하 원수들 중 가장 용맹스러운 사나이 중에 한명이자, 수 많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역전의 장수였다. 하지만 피가 끓어오르는 그는 자제심을 잃고 나폴레옹의 서재로 쳐들어가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폐하, 이젠 결말을 내야 할 때가 됬습니다. 폐하의 처지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환자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로마 왕을 위해 퇴위하셔야 합니다."


 나폴레옹은 네이의 기세에 놀라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성을 잃은 네이는 더 뭐라고 지껄여댔다.


 "군은 이제 폐하를 따르지 않습니다! 폐하는 군의 신뢰를 잃었단 말입니다!"


 "군은 내게 복종한다."


 "군은 이제 장군들의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이 황제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제 군대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군대의 신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폴레옹도 끝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는 잠시 그들을 다시 돌려보낸 다음, 무언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다시 원수들을 불러들였다. 그러고도 여전히 흥분한 표정으로 마룻바닥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퇴위하겠다."


 자신이 퇴위하는 대신에 아들인 로마왕을 후계자로 만들려는 조건부 퇴위였다. 원수들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력을 잃은 나폴레옹은 자신의 주장 요지를 담은 퇴위서를 네이와 콜랭쿠르 등에게 주어 협상을 하러 떠나 보냈다. 그때, 여전히 6군단과 함께 하고 있는 마르몽에게 간악한 탈레랑의 편지가 도착했다. 나폴레옹이 믿고 있는 것은 마르몽의 부대이니, 더 이상의 분쟁을 막기 위해 아직 전선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마르몽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에 동의했다. 


 마르몽이 어려운 결정을 내린 직후, 퐁텐블로에서 네이와 마크도날, 콜랭쿠르가 마르몽을 찾아왔다. 그들은 마르몽에게 원수들이 나폴레옹을 찾아간 것은 그와 함께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위를 종용하기 위해서이며 황제는 이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제 전선 이탈이라는 초강경 수단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마르몽은 안심을 했고, 일행과 함께 협상을 위하여 파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기묘한 운명의 장난이 벌어졌다. 마르몽이 떠난 후, 6군단에 나폴레옹의 소환 명령서가 내려진 것이다. 이는 나폴레옹이 원수들에게 내린 명령으로, 대기 명령을 받았던 마르몽에게는 필요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로 전달되었고, 마르몽이 전선 이탈을 할 생각이 있었다는것을 알고 있던 현 책임자 스무아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바로 나폴레옹이 마르몽의 이탈 관련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마르몽을 처벌하기 위해 소집 명령을 내렸으며 방금 찾아온 원수들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마르몽은 도망친 것이라고 말이다.


 공포에 질린 스무아는 이제 나폴레옹의 처벌은 피할 수 없으니, 방법은 연합군에 항복하는 수단 밖에 없다고 여겼다. 스무아가 다른 장군들을 설득한 끝에, 6군단은 파리를 향해 행진하여 러시아 부대로 도망쳤다. 퐁텐블로에 남아 있는 나폴레옹을 중간에서 지켜줄 부대가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마르몽 군단이 나폴레옹를 배반하고 적에 합류했다."


 당사자인 마르몽은 연합군과 교섭하기 위해 파리 시내에 있는 네이의 공관에서 이 소식을 들었고, 곧바로 망연자실했다. 최악의 경우 전선 이탈은 각오했지만, 적군에게 부대를 넘겨줄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마르몽은 다른 원수들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르몽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이로써 연합군과 교섭을 할 재료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마르몽은 필사적으로 말했다.


 "적군에 군대를 넘긴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 정말이야. 만일 누군가 이를 취소해줄 수 있다면 내 팔을 잘라주어도 좋네."


 마르몽의 말에 침묵을 지키던 네이가 불쑥 대답했다.


 "팔이라고? 머리를 잘라주어도 부족하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마르몽은 자신의 부대로 달려갔다. 러시아군 밑으로 들어간 6군단은 마르몽의 모습을 보자, 장군들의 명령은 배신이라며 자신들은 나폴레옹의 밑에서 싸우다 죽고 싶다고 간청했다. 폭동이 일어날 듯한 열기에 마르몽은 위험을 느꼈다. 이들이 퐁텐블로로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제군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보다 이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 이 나라의 의회는 나폴레옹을 폐위하기로 결의했다. 나폴레옹은 이미 황제가 아니며, 그대들은 그에게 복종할 의무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폴레옹은 지금 그대들과 똑같은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 사람을 추종해 의회가 있는 파리를 공격하게 된다면 그대들은 반역자가 되고 반란군이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나라를 위해 애써운 그대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길이다."


 마르몽은 병사들을 설득해서 베르사유의 병영으로 향하게 하였다. 이로써 더 이상의 군사적 충돌은 막았지만, 그에게는 역사적 배신자라는 낙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그 놈이! 그 마르몽이! 나와 빵을 나누어 먹던 그 놈이! 내가 발탁하여 원수까지 승진시켜 주었는데! 내가 재산과 명예까지 주었는데! 배은 망덕한 놈! 그런 놈은 나보다 더 불행한 꼴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제 아무런 협상의 여지도 없어졌기에, 연합군은 나폴레옹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이에 심지어 이탈리아로 향해 게릴라 활동을 하려는 생각까지 했던 나폴레옹은 남아 있는 원수들의 압력 때문에 결국 두 번째 퇴위서에 서명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나폴레옹에 연합군의 결정들이 계속해서 전달되었다. 나폴레옹은 엘바 섬의 영주로 임명 된다. 프랑스 정부는 매년 200만 프랑의 연금을 나폴레옹에게 전달한다. 


 네이나 베르티에 같은 역전의 원수들은, 이제 새로운 권력에 영합하기 위하여 나폴레옹을 떠나고 있었다. 쭈삣거리며 떠나가는 그들을 본 나폴레옹은 삶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며 본래의 자신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 아무런 목표가 없는 생을 마감하기로 했다. 그는 러시아 원정에서 만일을 대비해 준비한 독약을 입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약이 너무 적었는지, 혹은 너무 오래되어 약효가 떨어졌는지 모른다. 나폴레옹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는 격심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독물은 일단 몸 밖으로 나왔고, "내 침대에 누운 채 죽기도 힘드는구나. 삶과 전쟁 사이에 별 차이도 없는 마당에!" 라고 중얼거린 나폴레옹은 결국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운명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은 것인가?


 나폴레옹은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죽음의 신은 내가 침대에서 죽는 것보다 전장터에서 죽기를 더 바라는구나. 아직은 살아야겠다. 이런 을들을 겪고도 삶은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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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정오, 나폴레옹은 최후의 근위대 열병식을 했다. 근위대는 영광스러운 전투를 위해 출정할 때처럼 훌륭하고 단정된 모습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그들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본 나폴레옹은, 계단을 내려와 근위 부대 앞에 서더니 손을 들어 북을 두드리는 군악대를 멈추게 했다. 


 그는 누구인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그들은 누구인가? 나폴레옹의 근위대이다. 이탈리아의 초원을 달리고, 이집트의 모랫폭풍을 돌파했으며, 올룸에서 적들을 무너뜨렸으며 아우스터리츠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다. 늪지 같은 에스파냐에서도, 러시아의 혹한에서도 황제의 옆을 지켰다.  나폴레옹은 이제 입을 열었다.

 



 내 고참 근위대의 장교, 하사관, 그리고 병사들이여.


 그대들에게 작별의 길을 고한다!


 지난 20년 동안, 그대들은 항상 명예와 영광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융성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용기와 충성을 보여주었다.


 여러분과 같은 병사들이 있는 한, 우리는 지지 않았다.


 여러분과 같은 병사들이 있는 한, 우리는 대의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끝이 없었다.


 자칫하면 내전이 벌어져 프랑스는 더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이익을 희생한다.


 나는 이제 출발한다!


 내 친구인 그대들이여, 언제까지나 프랑스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내 염두에는 프랑스의 행복밖에 없고, 그것이 항상 내 소망일 것이다.


 내 운명을 동정하지 말라.


 내가 이렇게 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대들의 영광을 위해 다시 한 번 도움이 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위대한 업적들을 기록할 것이다.


 잘 있게, 나의 병사들이여!


 그대들 모두를 내 가슴에 안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 하다면, 그대들의 장군, 그대들의 군기에 입 맞추게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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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사들에 대한 작별 인사가 끝나자, 나폴레옹은 한 걸음 앞으로 나온 프티 장군을 껴안은 다음,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잘 있게!


다시 한번 말하겠네, 내 오랜 전우들이여!


부디 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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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은 마치 미련을 끊어야겠다는 듯 마차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폐위된 황제의 눈 앞에서는 눈물이 글썽 거렸다. 근위병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심지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영국 위원 켐벨 마저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황제는 마차에 궁정 대원수였던 베르트랑 장군과 함께 올라탔다. 덜컹 흔들리던 마차는, 양쪽으로 갈라서서 길을 내 준 군중들 사이를 지나 문으로 달려 나갔다.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 벨기에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론 강 유역에서도, 피레네 지방에서도 최후의 저항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렇게 끝날 남자가 아니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10-18 15:5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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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fish
13/10/01 20:29
수정 아이콘
이 사건 덕에 마몽 원수는 배신자의 대명사로....
13/10/01 20:42
수정 아이콘
너무 잘 읽었습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3/10/01 20:56
수정 아이콘
워털루라니...무지 기대하고 잇습니다~
13/10/01 20:59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감상입니다 흐흐

다 읽었는데 현기증 나네요. 어서 2편을 흑..
지금뭐하고있니
13/10/01 21:00
수정 아이콘
마지막 연설은 그가 얼마나 병사들의 마음을 잘 북돋았는지 느낀수있게 하는군요. 하긴 거지 군단, 이탈리아방면군으로 이탈 리아를 차지한 사람이니..
wish buRn
13/10/01 21:21
수정 아이콘
기대되네요 흐흐
아.. 그리고 뻘질문인데요. 당시 프랑스는 왜 그렇게 원수들이 많은 건가요?

총병력를 원수..등분하면 원수당 병력이 군단장급도 안나오던데요
swordfish
13/10/01 21:46
수정 아이콘
원수가 군단을 지휘했던게 당시라서 말이죠.

약간 프랑스 제국군은 좀 체계가 특이하죠.

같은 군이라도 영국군 대리 장군(현대 중장)인데 대륙국가는 장군(현대 대장) 반면 제국군 원수는
일개 군부터 최소 군단까지 다 이끌 수 있습니다.

애초 이시기에 사단 규모도 정말 생소한 규모이고 군단은 나폴레옹 군대가 최초 였습니다. 집단군이라는 개념 역시 이시기 첨 나와서
사단은 소장, 군단은 중장, 군은 대장 이런게 아예 없었고 애초 나폴레옹 군대 빼면 장군은 여단장- 대리 장군- 장군 3개 정도로 세분화
되었을 뿐이죠. 원수 직위는 정말 명예직이었을 뿐입니다.
단지 나폴레옹만 군단장 이상급에게 이 명예직을 뿌렸을 뿐이죠.
wish buRn
13/10/01 21:50
수정 아이콘
답변감사합니다 (- -)( _ _)
드라고나
13/10/01 21:34
수정 아이콘
이 글 보니 오래간만에 워털루 DVD가 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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