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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3/03/12 11:16:21 |
Name |
화잇밀크러버 |
File #1 |
min.jpg (105.9 KB), Download : 77 |
Subject |
민들레 꽃 길 - 2 - |
발열하는 도구는 오랫동안 사용하면 과열되기 때문에 열을 식혀가며 사용해야 된다.
가장 뜨거울 열을 발하는 태양도 마찬가지로 그는 하늘에서 지상을 비출 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더 뜨겁게 달궈지며,
한계에 다다르면 붉게 노을지어 더 이상의 사용은 위험하다고 신에게 경고한다.
그러면 신은 태양을 저물게 해 열이 내려가도록 휴식 시간을 주고 그 사이 달을 떠올리게 해 미약하게나마 땅에게 빛을 내려준다.
그렇게 세상은 어둠에 물들게 되는 것이다.
이소는 태양이 휴식기에 접어들기 전에 민들레의 종이 되어보겠냐는 제안에 답을 해야 했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길이 안 보일뿐더러 산에 사는 짐승에게 습격당할 수 도 있으니 어서 귀가해야한다고 민들레가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이소는 일단 그녀에게 산을 내려가면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고 둘은 노을의 주홍빛에 잠기며 민들레의 집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동안 이소는 민들레의 제안을 심사숙고했고 민들레는 그가 깊게 고민하는 것을 아는 것 마냥 길만 인도하며 말을 걸지 않았다.
사실 이소는 그 제안을 들었을 때부터 거부보다는 승낙 쪽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놓인 상황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살아가기 위한 최선책을 찾는다면 이 시대 사람인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것을 주저하게 만든 것은 ‘종’이 된다는 것과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여인을 생각나게 만드는 민들레의 외모였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 뚜렷한 대안이 없어 더 이상 오래 생각해봐야 헛수고였기에 결론을 낸 이소는 말했다.
"생각을 마쳤습니다. 당신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소의 대답에 민들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이소가 생각하기에 왠지 종을 얻어 기쁘다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 담긴 듯했다.
"호칭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주인님? 아가씨? 전 어느 것이든 상관없습니다만….”
“저도 호칭은 상관없어요. 그냥 편한 대로 불러주세요.”
민들레는 가벼운 말투로 마음대로 불러달라고 했지만 자신이 말하는 호칭이 상대 마음에 드는지 싫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소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게 명이라면 따라야겠지'라는 생각에 그는 무엇이 좋을지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가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좋아요.”
앞장서서 걷는 민들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자 여기가 제 집,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집이에요.”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이소의 생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사람이 적든 많든 마을이 있어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집은 홀로 산속에 위치하여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크게 동 떨어져있었고 일반 집보다는 왠지 사당에 가까운 듯한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집에는 민들레 외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
“아가씨, 아가씨는 이런 인적없는 곳에서 혼자 사시는 겁니까? 부모님이나 같이 사는 다른 사람은 없는 건가요?”
“네, 본래 천관은 부모님이 없답니다. 없다기보다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모른다는 표현이 적절할까요.
하늘님을 모시는 직업인지라 태어나면 그 즉시 선대 천관 밑으로 맡겨져 하늘님을 부모로 여기며 자란답니다.
그러니깐 굳이 따지자면 항상 절 비춰주시는 하늘님이 제 부모님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혼자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살아야할 이유는…….”
“천관은 하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 인간들과 함께 지내며 가까이 있으면 하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끈의 매듭이 인간쪽으로만
매어져 하늘님과의 끈이 끊어져 버릴 수 있기에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생활한답니다.
그래도 아예 만나지 않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이 하늘님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정기적인 공물을 받칠 때면 항상 저를 통해서 하늘님과 소통하니까요."
무엇보다 이소가 궁금한 것은 ‘이렇게 사는 그녀가 쓸쓸하지 않을까’였지만 너무도 활발하게 대답해주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물어보기가 힘들었고 쓸쓸했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자신이 반응하기 힘들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그녀는 저녁밥을 지어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가있으라고 이소에게 말했다.
민들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 칸으로 들어갔고 이소는 종이 그냥 이렇게 기다리다 밥을 얻어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민들레의 말대로 방에 들어갔다.
“자 맛있게 밥을 먹어볼까요.”
민들레는 밥과 세 종류의 나물 그리고 간장이 놓여있는 상을 방안에 들여놓으며 활짝 웃었다.
“그… 아가씨, 전 아가씨의 종이니까 제게 존댓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밥도 기본적인 것은 저도 할 수 있으니 제가 모르는 것만 제게 알려주십시오. 식사 준비 같은 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이소는 미안함이 담긴 멋쩍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는 자신이 종이 되겠다는 계약을 맺고 이 집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접받는듯한 분위기가 불편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민들레는 너무도 가볍게,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웃으며
“음… 종은 종인데 뭐랄까… 그러니깐 손님같은 종이에요. 아하하, 어차피 제가 다 하던 일이니 부담갖지말고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해 할 수 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다.
식사는 이소가 솔직히 표현하면‘맛없다’라고 할 정도로 별로였다.
반찬들은 너무도 싱거워 간장이 없으면 그냥 식물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지만 얻어먹는 처지에 그런 것으로 투정부릴만큼 어린애가 아니었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어쩔 수 없으려니’하고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민들레는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밥을 먹었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너무 해맑게 싱긋하고 웃어주어 그 웃음에 왠지 쑥스러워진 이소는 억지로 시선을 피했다.
“맛있었나요?”
천하제일의 맛없는 음식을 먹여놓고도 이런 표정으로 물어보면 맛없다고 대답 못할 미소로 물어보는 탓에, 이소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흐흥… 그 표정은 뭔가요? 억지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는 거 티나잖아요.”
민들레가 뾰루퉁한 얼굴로 이소를 압박하자 이소는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며 속이 안좋아서 표정이 그렇다며 궁핍한 변명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 말에 민들레는 정말로 걱정하는 모습으로 허둥대며 약을 가져올테니 기다리라고 말한 후 방을 나가버렸다.
이소는 이해안되는 환대가 부담스러웠다. 자신을 종으로 삼아놓고는 ‘손님같은 종’이란다. 이 모순되는 단어와 종을 상전모시는 듯한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기에 원래 자신이 있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라는 궁금함마저 그의 심리를 압박했다.
아예 세계를 이동한 것인지 아니면 시체는 그 곳에 남아 죽어버린 것인지, 가족이나 지인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가지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러다가 정신없어 잊어버렸던 이 곳에 오기 바로 전이 떠올랐다.
죽음 때문에 이별 할 수 밖에 없었던 연인과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비틀거리며 산을 헤매였던 자신의 모습에 깊은 한숨이 나와 길게 숨을 뱉어냈다.
그러나 한숨이 만든 벽도 물밀 듯이 몰아치는 추억 속의 연인을 막아내지 못했고 울적함이 밀려와 가슴이 겨울파도마냥 너울댔는데, 순간 그녀와 똑같이 생긴 민들레가 약을 가져왔다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추억하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이소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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