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기종목과 스타크래프트 ::
- 세계를 지배하는 둥근 공
세계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포츠는 둥근 공으로 이루어집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탁구, 테니스, 골프 등등등 인기있는 대부분의 스포츠는 둥근 공으로 이루어집니다.
공이 지닌 마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 볼 다툼, 볼 점유율
드래곤 볼, 슬램덩크와 함께 저의 10대를 지배한 만화입니다. 갈수록 이야기가 무협지스러워지긴 하지만, 근본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력의 여의주, 드래곤볼을 둘러싼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공, 그것을 갖기 위한 싸움. 이것이 구기종목의 핵심입니다.
축구는 골을 넣는 자가 승리합니다. 골은 공을 골대에 넣어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공을 가진 자만이 점수를 낼 수 있고, 상대에게 공을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수비입니다. 공은 경기의 주도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팀이 좀더 오래 공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의미하는, '골 점유율'은 경기를 평가하는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치열한 볼 다툼. 그것이 구기종목의 묘미>
- 스타크래프트는 구기 종목인가?
'볼 마우스의 공도 둥글다'며, 스타크래프트도 구기 종목이라 말합니다. 농담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스타크래프트 역시 주도권 싸움이란 면에서는 구기종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주도권은'누가 중앙을 잡고 있느냐'로 볼 수가 있습니다. 중앙을 잡아야 공격도 할 수 있으며 중앙만 잡고 있으면 수비가 돼니까요.
- 공 돌리기와 24초룰
2006년 월드컵, 한국은 토고를 상대로 2:1로 점수상 앞서자, 공격 대신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 즉 '공돌리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수비적인 모습에 실망하는 사람도 생겼지요. '공돌리기'는 구기종목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점수상 우위라면, 경기시간동안 그 차이만 지키면 승리합니다. 게다가 공을 잡은 상태, 즉 주도권을 갖은 상태라면 방어는 더더욱 쉽습니다.
그래서 존재하는게 농구의 24초 룰입니다. 공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4초 뿐이기에, 공이라는 이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동안 있는 힘을 다해 공격하게 됩니다.
< 마린대 저글링은 테란의 승! >
< 저글링 럴커와 마린의 대결은, 저그의 승! >
< 한방 조합과 저글링 럴커의 싸움은, 테란의 승! >
< 디파일러가 갖춰지면, 저그 승! >
- 테크트리와 물량
초반 유닛간의 싸움에는 A가 유리했다가, 중반 유닛간의 싸움에는 B가 유리했다가, 후반 유닛간의 싸움에서는 다시 A가 유리해지는것이 스타크래프트입니다. 그래서 존재하는게 '타이밍'이구요. 이런 타이밍은 테크트리에 의해 변해갑니다.
이는 마치 농구의 24초 룰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상성상 유리할때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공격을 해야 하고, 상성상 불리할때는 자신의 유리함을 되찾을때까지 참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물량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테크트리를 포기하는 대신 엄청난 수의 기본 유닛을 생산하는 거지요.
24초룰의 역할을 하던 테크트리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자 공돌리기와 같은 수비형이 나타난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입니다.
:: 로스트 템플식 중앙 힘싸움 ::
- 로템식 중앙 힘싸움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스 앞마당-미네랄 멀티, 모든 자원줄과 연결된 중앙 전장.
간단히 요약하여, '원하는 병력을 마음껏 뽑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자원'과, '커다란 잇점을 가진 중앙 전장'. 이것이 로스트 템플식 힘싸움의 핵심 입니다.
한번 져서 밀려도, 자원줄이 안정적인 만큼 다시금 힘을 차려 자신이 유리해질 타이밍을 노릴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은 모든 멀티와 이어진 만큼 장악만 하면, 단숨에 경기를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중앙을 둘러싼 밀고 밀리는 접전을 테마로 지닌 로스트 템플식 힘싸움은, 스타 방송이 시작된 이후 7년 동안 훌륭한 벨런스로 공식맵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중앙 힘싸움 맵, 로스트 템플>
- 물량 시대의 마지막 주자, 저그
'물량'은 그것이 통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습니다. 타 종족의 한방 조합에게 너무나도 약했던 저그의 기초유닛들로 인해, 저그에게, '물량'은 먼 나라의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신예 저그들은 다릅니다. 뮤탈과 럴커, 그리고 멀티와 하이브라는 정석적인 대테란전 흐름에 마재윤은 3해처리의 안정감을 더했습니다. 디파일러의 다크스웜과 플레이그에 조합된 저글링과 히드라는 마린메딕, 질럿 드래군과 최소한 대등한 수준의 싸움을 벌입니다.
- 아카디아 II, 사라진 24초 룰
아카디아II의 TvsZ의 양상은 정말 특이합니다. 10:0이라는 어마어마한 언벨런스도 특이하지만, 정말로 이상한 그 동안 테란이 '하고 싶은거 다해고 졌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언벨런스 맵들은, 자원 확보를 못해 원하는 조합을 갖추지 못한 특정 종족의 열세가 원인이었습니다. 할거 다 할 수 있는 자원 지향적 부자맵, 즉 '로템식 앞마당&미네랄 멀티의 구성'은 항상 최소한의 벨런스는 보장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카디아에서 테란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테란은 저그가 장악한 중앙을 수복하지 못한체, 결국 진출이 막혀 패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저그까지 물량의 시대로 접어들자, 테크트리란 변수가 사라지고, 24초 룰도 사라졌습니다.
하이브 확보가 빠르고 안정화된 만큼, 테란과 저그의 싸움은 마린,메딕,탱크,베슬과 시작해 저글링,럴커,디파일러과의 싸움으로 시작해 마린,메딕,탱크,베슬과 시작해 저글링,럴커,디파일러의 싸움으로 끝납니다. 테크트리란 병력 조합의 변수가 사라졌기에, 한번 힘싸움에서 밀리면 병력 차이를 감내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하고 맙니다.
<한숨 돌린 아카디아, 하지만 0:10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 흔들리는 로스트템플 신화
아직까지 대세는 로스트 템플입니다. 아직 국민맵은 로스트 템플이며, 그 자리를 다투는 강력한 도전자는 역시 로템형 맵인 루나입니다. 안정적인 앞마당과, 싸우기 좋은 중앙 전장이란 컨셉을 벗어나기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그 아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테크트리란 이름의 24초 룰이 사라진 현재, 중앙이란 이름의 공을 잡고 나면, 유리한 측은 공만 돌리지 공격하질 못합니다. 한번 빼앗긴 공을 되찾지 못한채, 한번 기울어진 추를 붙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 팀플의 변화 ::
- 왜 싫어하는가?
팀플과 동종족전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타종족전인 개인전을 좋아하고요. 대표적으로 제가 그렇죠.
왜 싫어할까요? 제 경우는 '유닛 조합이 단순해서'입니다. 어쨌든 한종족의 유닛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서로 같은 유닛으로 싸우는 만큼, 유닛의 다름에서 오는 변수, 다이나믹함이 부족합니다.
- 타종족전 또한 다르지 않다
요새 동종족전도 재미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동종족전과 타종족전 간의 재미의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말에는 저 또한 한마음 가득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종족전이 재밌어진것 보다, 타종족전이 재미없어진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타종족전도, 동종족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테크트리의 변수도, 종족 조합의 변수도 사라졌습니다. 생산력과 컨트롤만의 승부로 압축되었습니다.
- 개인전을 모델로 한 팀플레이의 변화
엄청난 수의 질럿과 저글링의 거한 한방 싸움, 헌터식 팀플레이의 정석을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좋아하지 않아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이런 팀플레이의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팀플 맵은 독특한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철의 장막, 그리고 망월, 그리고 뱀파이어 입니다.
가장 성공을 거둔 팀플 맵인 철의 장막은, 사실상 개인전과 다를바 없는 1:1구도, 그리고 테크트리 올리기 좋은 섬맵 구도를 통한 성공입니다.
망월, 뱀파이어의 컨셉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테크트리를 올리는데 필요한 자원은 미네랄보다 가스고, 본진에 2가스를 둔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 새로운 방향으로의 변화, 불가능할까?
테크트리의 상실, 유닛의 몰개성화에 대한 일반적인 대책은 '테크트로의 회복' 입니다. 본진 2가스 또한 그런 발상에서 시작한 겁니다. 미네랄 중심의 기초유닛에서 탈피해, 가스 중심의 고급 유닛의 힘을 키워주려는 발상이요.
가장 정석적인 해답입니다. 하지만 가장 정석적인 해답이 최선책이라고 확단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제3의 길, 진정한 최선의 길은 없는걸까요?
:: 장기에서 바둑으로 ::
- 스타크래프트와 장기
장기는 각기 다른 16개의 말로 상대와 겨루는 보드 게임 입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차(車), 차 못지 않은 위력을 가진 마(馬), 숫자로 승부하는 졸(卒).
특성이 다른 여러 말들의 아기자기한 싸움이, 강력한 마법을 보유한 하이템플러, 엄청난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시즈탱크, 한번에 두기씩 나오는 저글링등 유닛의 개성으로 싸우는 스타크래프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 스타크래프트와 바둑
그런데 사정이 변했습니다.
개성적인 유닛들의 합은 오히려 몰개성적입니다.
환상적인 컨트롤로 경기를 지배하는 영웅이었던 마린은,
마린&메딕&탱크&베슬 군단에 속하자,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던 바둑돌이 되었습니다.
질럿,드래군,템플러,옵저버라는 프로토스 군단을 이길 수 있는 병력은, 비슷한 숫자의 '물량'뿐입니다.
기동성과 공격력을 자랑하던 저그, 저글링과 럴커는 디파일러를 더하면서 테란에 못지 않은 전투력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테란이 갖지 못했던 속도상의 강점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력이 군단화 되며 병력은의 개성은 사라졌고, 병력의 개성이 사라지자 종족간 개성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스타크래프트는 장기나 체스라기보다, 바둑과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 로템의 반대향. 비프로스트식 난전 ::
- 공이 하나가 아니라면?
공돌리기는 구기종목의 뼈아픈 약점이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경기장에 하나의 공이 아닌 두개의 공, 세개의 공을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아예 마음 먹고 선수들 숫자 만큼의 공을 넣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공 하나만 빙빙 돌리며 시간끌면 다른 공에게 점수를 뺏깁니다. 하나의 공만 장악해서는, 점수 차이를 굳힐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로템식의 '중앙 전장' 대신, 이득을 보기 위한 여러 루트, 장악해야 하는 여러 루트가 존재하는 곳이 비프로스트이고, 그것이 갈림길 입니다.
- 갈래길의 시작, 비프로스트
2003년, 올림포스배 결승전 2경기. 서지훈vs홍진호, 맵은 Neo Bifrost
홍진호 선수의 환상적인 디파일러 플레이에, 서지훈 선수는 차츰 밀리고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입구로, 입구에서 앞마당으로, 앞마당에서 본진으로.
그렇게 밀리기만 하던 서지훈 선수를 구해준 것은 단 1부대의 마린메딕 입니다. 테란에게 무적을 자랑하는 디파일러와 럴커는, 디파일러의 마나를 채워줄 저글링이 공급되지 못하면 단숨에 그 위력을 잃습니다. 1부대의 마린메딕이 저글링의 공급을 끊어버리자, 저그는 너무나도 허무히 무너졌습니다.
중앙 집중형 맵에서는 힘에서 밀리면 중앙에서 밀리고, 중앙에서 밀리면 공격 기회를 아예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비프로스트에는 우회로가 있기에 주도권을 잃었더라도, 병력상 불리하더라도, 힘에서 밀리더라도 상대에게 타격을 주고 주도권을 되찾기가 훨씬 쉽습니다.
<1부대의 마린메딕이 만들어낸 반전>
- 분산되는 전장. 난전의 산실
하나뿐인 중앙 전장은, 현재의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 곳인듯 합니다.
컨트롤과 생산력이 극대화된 세상입니다. 전술적인 면에서 선수들은 너무나도 강해졌습니다. 너도나도 '맹장'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중앙이라는 단일한 전장만 제공해주면, 게임은 너무 단순합니다.
우회로가 생기고, 맵은 넓어져야 합니다. 전술로는 커버할 수 없는, 전략적인 전장으로 변모해야 합니다. 단순히 컨트롤 잘하고 병력 잘 뽑느다고 해서 이길 수 없는, 집결과 분산, 병력의 기동이 더더욱 중요해 지는 곳이 난전형 전장입니다.
한쪽 귀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지켜보면서, 반대쪽 귀와 변에 끼칠 영향까지 볼줄 아는 안목이 요구되는 맵이 필요합니다.
- 나폴레옹 시대, 재현할 수 있을까?
은하영웅전설의 첫 장면, 동맹군은 제국군을 3면에서 포위합니다. 2배의 병력으로 말이죠.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기동전을 통해, 2배의 적을 각개격파 합니다. 소설의 첫 장면을 장식한 흥미진진한 이 전투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작전 중 벌어진 기동전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필요한 것은, 나폴레옹 시대의 화려한 기동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상성도 사라지고, 테크트리는 사라졌지만 군단은 남았습니다. 아직도 저그는 빠르며, 테란은 장중하고 프로토스는 강력합니다.
기존의 스타리그가, 여포와 관우, 장비와 허저등 강력한 무장들이 벌이는 힘겨루기였다면, 새 시대의 스타리그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벌이는 치열한 머릿싸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전장이 아닌, 두개 세개의 전장에서 벌어지는, 서로의 후위를 잡기 위한 치열한 기동전은 스타크래프트를 장식하는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팀플레이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전 맵에 비해 비교적 관대하며, 힘과 병력운영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나뉘어진 본진 등 난전형 전장에도 적합합니다. 테란/프로토스 조합을 위해, 2칼라를 버티기 위한 저지선을 다수 설치한다던가, '팀플레이'인 만큼 과감하게 256x256맵을 넣는등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신화를 쓰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9-27 13:05)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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