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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2 05:03:47
Name 한니발
Subject DAUM <2> 下
베토벤을 날려버려Roll over Beethoven

「베토벤의 작품 35, 창작 주제에 따른 열다섯 가지 변주와 푸가 E 플랫 장조 - 후에 교향곡 제 3번의 종장으로 바뀌어, 그 피아노곡은 다시 이렇게 불리게 된다….」
                                                                                                                                      - 스기이 히카루, 『안녕, 피아노 소나타』中


  마재윤과 변형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그 둘은 당대 CJ 엔투스를 이끄는 중심축이었다. 둘째로, 둘 다 자기 자신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곤 사실 그 둘 정어도가 다다. 그 두 가지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마재윤과 변형태는 차라리 철천지원수 - 같은 하늘 아래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마재윤은 내려다보는 자다. 테란을 무릎 꿇린 그의 힘은 견줄 데를 찾기 힘든 뛰어난 통찰력이다. 상대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그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측한 뒤 고요하면서도 유연한 대처로서 좌절시키는 것이 그의 전쟁이다. 전지성(全知性)이라 부를만한 그 재능에 기반하여 마재윤의 전쟁은 대부분 압살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전쟁에서 그 호흡조차 흐트러뜨릴 필요가 없었다.
  변형태는 올려다보는 자다. 그 이름 석 자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싸울 곳도 싸울 놈도 가리지 않는 맹렬한 투쟁심과 불꽃같은 자존심이다. 그 싸움은 쳐서는 안 되는 곳을 치고,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을 건드리며, 그리하여 감히 예상치 못했던 적을 찢어발긴다. 그 의외성은 차라리 무지(無知)함의 수준이며, 그렇기에 옷자락에 흙 자국 묻히는 것도 질색하시는 높은 분들을 대차게 쏘아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한 명은 물 위에 파문조차 일으키지 않고 걷고, 한 명은 진창을 뒤엎으며 내달린다. 한 명은 양들을 제 뜻대로 이끄는 목자이지만, 한 명은 코를 꿰여 끌려가느니 제 발로 불길에 뛰어드는 늑대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법이라 하나 이 둘을 보고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는 의심스럽다. 그래서인지 이 두 사람이 만난 신한은행 S3 4강은, 이것이 팀킬전이 맞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정도로 살벌한 난타전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변형태는 그 싸움에서 졌다. 다크스웜을 지나쳐 돌격함으로써 극복하고, 마재윤의 마지막 숨통에는 SCV를 드랍하는 등 또다시 모든 이의 예측, 예상을 박살냈지만, 그래서 그 천하의 마재윤도 가쁜 숨을 헐떡대게 만들 정도였지만. 여하튼 그 맹렬한 자존심 싸움에서 변형태는 졌고 마재윤은 그 길로 이윤열까지 추락시킨 뒤 영광된 7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변형태는 마재윤을 이해해보기로 했다.
  그는 마재윤과 협연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그는 락(Rock)사운드로 그의 클래식을 맞이할 것이다. 급조된 락사운드가 거장Maestro이 지휘하는 그 속도, 그 정확성, 어느 것도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변형태는 이미 그렇게 결정했으며 더하여 마재윤의 악단이 아닌 마재윤과 협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위해 변형태는 치열한 비책과 기원을 숨긴 곡을 선택했다.
  어쩌면 협연이라 쓰고 결투라고 읽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1회차 A조 1경기 마재윤 VS 변형태 in 파이썬.

  협연의 시작은 저음부의 단선율이며, 처음 32소절을 변형태가 가져간다.

  "마재윤을 상대로 빌드를 연구할 때 (마재윤이) 잘 알거나 한 번 당해봤던 전략을 고민해서 선택했다. 생마린 압박이 테란 입장에서 많은 부담도 되고 저그들이 잘 막는 전략이다. 그래서 오히려 방심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 2007. 6. 22 변형태, 마재윤과의 1차전 승리 후

  변형태의 생마린이 맵을 가로지를 때, 그는 아마도 마재윤의 가늠수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4배럭의 바이오닉 불꽃이 일제히 스팀팩을 맞고 성큰 라인으로 돌격해왔을 때, 그도 아마 마재윤의 가늠수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변형태는 둘 다 했고, 그래서 마재윤은 두 번 다 뚫렸다.

  - 클래식이다.
  마재윤은 그 선곡에 경악했고, 변형태는 그래서 그 선곡에 만족했다.
  첫 번째 트릭.
  첫 32소절, 그 울림은 간결하지만 또한 널리 알려졌으며, 따라서 전지한 거장은 이 곡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알고 있기에, 너무나 잘 알기에 이쪽의 연주에 끌려 들어올 수밖에 없다. 연주를 듣는 순간 변형태의 페이스에 따라 자연스럽게 협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 32소절, 두려움 없는 선수(先手)가 변형태의 손에 따라 이 협연 전체의 속도를 결정할 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기타 사운드 속에서 변형태는 단상 위를 의기양양하게 올려다본다.
  함께, 마재윤은 단상 아래를 고요히 내려다본다.
  마재윤은 그의 앎을 되짚었다.
  변형태가 선택한 곡은 연주 후반에 반드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와 페르마타<일시정지>를 포함한다. 곧, 일정 간격으로 곡은 정지한다.
  그 일시정지는 반드시 연주의 흐름을 끊는다. 그 흐름이 정지하는 순간순간마다, 연주의 주도권은 그 주인을 바꾼다. 거장의 현란한 지휘로부터 변형태가 자신의 속도를, 페이스를 지켜내기 위하여 선택한 또 하나의 책략일 것이다.
  이것이 틀림없는 두 번째 트릭이다.
  그러나 반드시 주도권을 빼앗기는 쪽이 거장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재윤은 단상에서 내려온다.
  그는 변형태를, 관중들을 마주한다.
  이번에는 전지가 무지를 꿰뚫는다.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2회차 A조 2경기 마재윤 VS 변형태 in 히치하이커.

  변형태가 이어 빼든 연검은 팩토리를 띄워 감행하는 벌쳐 난입이었다. 마재윤은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드론 한 기를 팩토리에 따라 붙여 그 착륙조차 금지했다.
  그 수 또한 알고 있었다.
  변형태는 굴하지 않고 연주한다. 팩토리를 본진으로 거두고, 좌절 없이 진군하는 바이오닉을, 배회하는 뮤탈을 두려워않는 무모하리만치 용맹한 그들의 돌격과 산화를 연주한다. 그와 함께 마재윤은 땅과 하늘을 파도와 먹구름처럼 덮어오는 저그의 병력을 연주한다.
  지휘가 아니라, 연주한다.
  거장은 비로소 지휘봉을 대신하여 기타를 집어 들었다.
  불타는 테란의 폐허 속에서, 변형태는 이를 가는 대신 상쾌하리만치 깨끗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푸가의 시작이다!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2회차 A조 3경기 마재윤 VS 변형태 in 몬티홀

  마재윤은 본진 트윈, 변형태는 노배럭 더블로 시작.
  마재윤은 저글링 트릭으로 급습을 노려보지만. 그는 쉽게 무산되고 초반은 조용히 진행된다. 그 어느 쪽도 쉽사리 상대를 파고들지 못하는 채 신중히 자신의 악보를 달려 나간다.
  당연히도, 적막은 변형태의 손에서 깨졌다.
  변형태의 바이오닉과 탱크가 진출하면서 폭풍 같은 푸가가 시작되었다.

  둔주곡으로 번역되는 푸가는 바로크 시대, 바흐가 완성한 작곡 기법이다. 이는 선행하는 하나의 선율과 그를 추격하는 복수의 어긋난 파트가 함께함으로써 성립한다.
  변형태가 자리를 박차자, 마재윤이 쫓는다.
  소수의 저글링이 변형태의 본진으로 파고들어 그 발목을 붙잡고, 마재윤은 성큰-러커-가디언의 삼박자로 가속한다.
  이제 더 이상 선수(先手)의 이점은 없다.
  발목을 붙드는 리타르단도와 페르마타도 없다.
  열사의 지휘자, 위대한 거장은 그의 클래식, 전심전력의 속도로 변형태의 기타 사운드를 쫓는다.
  마재윤의 병력은 마침내 변형태의 본진에 입성했고, 마재윤은 승리를 확신했다.
  - 따라잡았다.
  푸가를 끝내기 위해, 마재윤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변형태는,
  떨쳐냈다.

  세 번째 트릭. 이 곡은 E 플랫 장조다.
  E 플랫 장조는 기타나 베이스로 연주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조 가운데 하나이다. E 플랫 장조의 곡에서 가장 빈도가 잦은 E 플랫 음은 기타나 베이스가 낼 수 있는 최저음보다도 반음이 더 낮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이 포지션으로 현을 눌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손의 움직임이 매우 어지러워진다.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그러나 똑같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처음부터 이쪽의 모든 현을 반음 낮게 조율하면 되는 것이다.

  마재윤이 변형태의 본진에 입성하는 그 시점.
  테란과 저그의 멀티 수는 동일했다. 저그가 일 기 일 기 200여씩의 가스를 먹어치우는 가디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위대한 거장이 최고 난이도의 E플랫 장조를 막힘없이 연주하는 동안, 변형태는 반음 낮은 튜닝에 의지하여 최저 난이도의 E 장조를 질주한다.
  같게 들리지만 .달리 달린다.
  다수 베슬과 2-2업 바이오닉이 변형태의 본진을 수복해냈고, 뒤이어 드랍쉽이 공중의 동선을 장악했다.
  마재윤의 디파일러가 이탈음을 내질렀고, 테란의 멀티에 패악을 부리며 끝까지 발악했지만. 끝끝내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변형태였다.
  청중의 귀를 찢는 마지막 굉음으로, 변형태는 적막 속에 인사를 마친 뒤 무대를 내려갔다.
  망연한 마재윤만이 무대에 남았다.

  

  삼연발의 트릭을 숨긴 선곡.
  2005년 우주배 이후 최초로 양대리그 4강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고, 2006년 70%에 육박하던 승률은 2007년 50%로 추락했으며 그나마도 동족전을 뺀다면 8승 11패에 불과하다.
  청중은 이제 그의 등 뒤에서 박수치지 않으리라.
  마재윤은 문득 그가 단상을 내려왔음을, 지휘봉 대신에 악기를 집어 들었음을, 격렬한 연주로 그 온 몸을 땀으로 적셨음을, 그리고 청중들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청중들과 비로소 대면했다.
  등 뒤에서 박수치던 이들이 이제 내 앞에 던질 것은 무엇일까.
  마재윤은 수치와 분노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채 그대로 무대를 뒤로 하고 달아났다. 그의 등 뒤로 무슨 소란인가가 끊임없이 쫓아왔기에 그는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마재윤의 청중들은 그 순간에도, 기립하여 그들 거장의 등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홀로 무대를 빠져나오며 변형태는 그와 거장의 협연을 되씹었다.
  그의 선곡에는 세 개의 트릭과 네 번째의 기원이 있었다.
  마지막에 오는 푸가 : 그 추격전에 마재윤은 반드시 달려든다. 그 때가 되면, 맞부딪치는 칼 대신 얽히는 현으로, 변형태는 비로소 그에게 말해줄 수 있다.
  무뢰한이 검극을 벌이기 위해 호적수가 필요하듯이,
  혼자서는 절대로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 있다.
  이 곡은 바로 그를 위한 것이었다.
  닿았던가, 그렇지 못했던가.
  아무래도 좋으리라. 변형태는 금세 그를 잊고 무대를 뒤로 했다.

  간결하지만 널리 알려진 도입부, 후반에 리타르단도와 페르마타를 포함하는 것은 변주곡의 특성. 그에 뒤따르는 푸가를 가진, E 플랫 장조의 클래식.
  베토벤의 작품 35. 창작 주제에 따른 열다섯 가지 변주와 푸가 E 플랫 장조 - 후에 교향곡 제 3번의 종장으로 바뀌어, 그 피아노곡은 다시 이렇게 불리게 된다.

  『에로이카』- 변주곡 : 영웅.





  영웅Eroica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부터 있은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 루쉰, 『고향』中


  네 조각 하늘의 주인들이 숱한 전설들과 누비던 낭만 시대는 한 명 거장의 등장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그의 시대에 새롭게 눈뜨는 모든 재능들은 그의 영광을 위한 번제로 바쳐질 것이며, 그는 유일무이한 태양으로서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다망 강렬한 빛과 숨 막히는 열기를 내려 보내어, 그 어떤 풀꽃의 개화도 용납지 않고 홀로 고고히 그 시대를 영위하리니, 그는 곧 열사(熱砂)의 주인, 사막의 군주이리라.
  낭만 시대의 별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로서, 그들은 단 한 번 새로운 지평(UZOO)에 집결하였고, 열사의 주인에 대적할 자를 자신들 사이에서 가려내었다.
  그리하여 낭만시대의 명운을 짊어진 채 영웅이 마지막에 선택되어 열사의 주인에 맞섰고, 그는 사막의 시대에 바쳐진 첫 번째 번제가 되었다.

  그래. 그가 첫 번째 패배자였다.
  그가 마재윤에게 이 시대를 내어주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프로토스의 혼 - 영웅 박정석이 그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마재윤이 영광을 구가하던 이 1년간 아무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김택용의 혁명이 있은 후에야,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는 돌아왔다.
  모든 전설과 낭만이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토 속에 잠긴 뒤에야, 또한 그 사토를 달구던 태양마저 떨어진 뒤에야.
  살을 에는 추위와 음산히 우는 삭풍을 뚫고서, 넝마와도 같은 영웅은 쓸쓸히 돌아와 지금 일찍이 자신이 한 번 떨어뜨린 프로토스의 미래와 마주한다.
  박정석은 송병구와 마주한다.

  

  박정석과 송병구가 So1에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 박정석은 송병구에게 신 3대의 자격을 물었고 송병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송병구가 물을 차례였다. 낭만과 전설의 시대, 그 마지막 잔해가 된 남자에게 송병구는 최후라는 이름의 자격을 물었다.
  박정석은 칼로 답했다.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1회차 B조 1경기 박정석 vs 송병구 in 몬티홀

  센터 로보틱스가 발각되자마자 영웅은 뒤를 버리고 멀티를 포기한 채 과감한 공세를 감행했고, 멀티를 택한 송병구는 어이없으리만치 쉽게 정면을 잇달아 뚫리며 패배하고 말았다.
  박정석의 노호였다.
  전승으로 질주해온 황제의 꿈을 최후에 불살랐고
  머큐리가 삼키지 못한 아이옵스 단 한 명의 프로토스였으며
  지독한 통증과 싸우면서 질레트의 결승에 올랐고
  최연성을 셧아웃시키고 조용호를 극복한 낭만 시대 명운의 검이었던
  마지막 영웅의 노호였다.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최후의 일인이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다. 지금에 이르러 새삼 그에게 최후의 자격을 묻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는 프로토스의 미래에 되물었다.

  

  송병구는 그에 비예(睥睨)한다.
  박정석이 두려움을 버림으로써 최후의 희망으로 남았던 그 순간들만큼
  그가 두려움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그 희망들을 헛되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함께했음을.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2회차 B조 2경기 박정석 vs 송병구 in 몽환

  황제의 꿈을 불살랐지만 이윤열에게 패주했고
  아이옵스 유일의 프로토스였지만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한 채 탈락했으며
  질레트의 결승에서 프로토스의 재앙이 될 투신을 일깨웠고
  최연성을 셧아웃시키고 조용호를 극복했지만 마재윤에게 패배했다.

  박정석은 이번에도 선공을 택해, 리버로서 송병구의 후방을 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송병구도 역시 2리버로 박정석의 후방에 맞불을 놓았고, 두 사람의 일격은 서로에게 적중했다.
  송병구가 입힌 상처가 좀 더 깊었다.
  그 무엇도 이루어내지 못한 희망의 가치를 물으며, 송병구는 작렬하는 크로스 카운터 끝에 두 번째 승부를 앗았다.



  박정석은 오직 송병구만이 그에게 이처럼 힐문할 수 있음을 알았다.
  혁명아는 그 누구의 계보에도 닿지 않는 고아로서, 홀로 일어나 홀로 싸워갈 것이다. 그는 프로토스임에도 프로토스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송병구가 여기서 자신을 짓밟고 올라선다면, 그는 자신의 그 모든 것을 계승할 것이다.
  이제 그가 아닌 송병구가 낭만 시대의 마지막 잔해가 되리라.
  이제 그가 아닌 송병구가 천부의 재능들에 맞서는 마지막 목소리가 되리라.
  상속자는 유산과 함께 그 빚도 이어받는다. 박정석이 싸워낸 6년 동안 그가 프로토스의 혼으로 불리며 해낸 일들이 단지 헛된 희망을 뿌리는 것이었다면 이제 송병구가 싸워나갈 시간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가 첫 번째 시험에서 송병구를 떨어뜨린 지 2년이 지났고, 그 2년간 느린 걸음으로 다시 돌아온 미완의 대기가 이제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박정석은 대답을 결정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대답이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못하든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다만 바뀌는 것이 있다면 송병구가 어떤 프로토스로 자라날 것인가, 다만 그 뿐이라는 것을 박정석은 알았고
  마지막 영웅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의 손은 다시 칼자루로 향했다.

  - DAUM 스타리그 2007 S1 8강 2회차 B조 3경기 박정석 VS 송병구 in 파이썬

  송병구는 박정석의 대답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마치 그를 불러내겠다는 듯, 3게이트 옵드라에 이어 과감한 앞마당 더블넥을 가져갔다.
  박정석은 2게이트 이후 리버 드라군.
  1경기와 마찬가지로, 뒤를 버리고 그는 범의 아가리로 짓쳐들어왔다.
  최전방에 앞세운 것은 적의 리버를 순삭하기 위한 두 기의 리버.
  시작과 함께 셔틀이 없는 적 리버를 제거한 뒤, 아군 리버를 다시 후방으로 돌려 적의 드라군을 차차 섬멸해 나가는 전형적인 전술이 박정석의 선택이었다.
  격돌의 순간, 과연 두 기 스캐럽이 먼저 뛰쳐나갔고
  그 스캐럽들이 날린 것은 송병구의 리버를 가로막고 선 한 기의 드라군이었다.
  빗나간 일격의 대가는 이쪽 리버의 전멸.
  송병구의 역습이 박정석을 꿰뚫었다.
  박정석의 병력들은 한 기, 한 기씩 생산되는 족족 부나방처럼 송병구의 병력을 향해 돌격했고 이내 순식간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갈려나갔다.

  패배다.
  여기서 끝이다.
  영웅의 마지막 질주를 바라보던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낭만의 시대가 끝맺는다.
  이 순간이 끝나면 황혼조차 밤에 집어 삼켜진다.
  한없이 느리고 또 느리게, 마지막 영웅, 낭만 시대의 마지막 별은 역습의 칼에 꿰뚫린 채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송병구가 무너져 내리는 적수를 붙들었고, 영웅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속삭였지만 그는 송병구를 제외한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관중의 한 명으로서 나에게 허락되었던 것은 머릿속에서 반복되어 재생되는, 그토록 그가 비장미를 뽐냈던 그 오프닝뿐이었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 - 그 잔인한 캐치프라이즈와 함께, 귓가에 반복되어 울리는 그 가사뿐이었다.
  I promise you,  I promise you,  I promise you….
  무엇을 약속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가사가 먹먹한 귓가에 계속 울리더라만은, 그 이유는 끝끝내 알 수가 없었다.
  이 인간아, 이렇게 끝날 거면서 무슨 놈의 기대만 그리 불어넣었누.
  마음속으로 몇 번씩 원망하며 욕지기를 중얼댔지만
  도무지 미운 마음은 먹을 수가 없더라만은, 그 이유는 끝끝내 알 수가 없었다.
  송병구가 이겼고 그가 나아간다.
  박정석의 질주가 여기서 끝났다.
  그 하나가 한참동안 믿겨지지 않더라만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묻건대,
  영웅이라는 그의 두 번째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던가.
  그가 그 모호한 이름을 갖게 된 까닭에 대해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하련다. 강민이 프로토스의 머리였고 박용욱이 프로토스의 손이었지만, 박정석은 심장이었기 때문이라고.
  심장이 우리에게 닿는 유일한 방법은 그 고동뿐이다.
  어둠이 우리 눈을 덮었을 때, 세상에 혼자인 듯 고요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가슴 저 깊은 곳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뛰어오르는 자신의 고동을 마주한다. 그는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가슴 속에 분명히 자리한 채 일렁인다.
  영웅이란 그 이름은, 다만 박정석 그 이름 석 자를 되뇔 때 가슴 속에 울컥하고 치미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표현하고자 한 힘겨운 노력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닥쳐오는 패배의 멍에 앞에, 뒤따르는 이들 위해 스스로 방패였으며 변치 않는 길잡이이고 청지기였던 그에게, 차마 말로 전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에 다름 아니다.
  아무런 발버둥 없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낯 두꺼운 믿음을 희망이라 부를 수는 없다.
  차라리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리란 절망의 확신 속에서 우리는 그를 뒤쫓아왔다.
  가장 지독한 어둠과 고독 속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그 자리가, 그 어스름의 이름이, 영웅이다. 심장이며, 반석(磐石)이다.
  그 이름이 박정석이었고
  우리는 그를 희망이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 DAUM < 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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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서 도움받은 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영수, 이종족에게 겨누어진 인간의 칼날」- Judas Pain
「김택용, 강요된 평화가 부른 혁명의 철검」- Judas Pain
「박정석, 그의 '멋진' 6년 간의 커리어는 아직 진행 중」- 회윤
[스타리그 8강 2주차 후기] 4세대 프로토스, 송병구의 역습」- becker
[sylent의 B급 칼럼] 공군의 임요환」- sylent

더하여, 스기이 히카루의『안녕, 피아노 소나타』에서 마재윤-변형태 부분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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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10/12 08:58
수정 아이콘
영웅의 아련한 뒷모습
엽기제라툴
12/10/12 09:07
수정 아이콘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최후의 일인이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 글이 왜 제가 박정석선수에 열광하고 응원했는지 느끼게 해주네요.
삼성전자홧팅
12/10/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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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인크루트 스타리그나 진에어 스타리그 나 스타1의 마지막 스타리그인 티빙 스타리그 도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글 잘써요..
다리기
12/10/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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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이 부진하면서부터 차차 스타리그에 관심이 줄어가고 msl에서의 마재윤 김택용만을 챙겨보던 저에게 다음 스타리그 8강의 끝은 리그의 종료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스타리그의 결승전은 그저, '야 변형태가 2대0으로 이기고 있데.' 그리고 '...김준영 우승이라는데?' 두 문장으로 기억되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DAUM이란 글은 정말 가슴 벅차게 다가오네요. 글 너무 맛있게 멋있게 잘 쓰십니다. 완결까지 쭉 기대할게요!
포프의대모험
12/10/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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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고 보다 박수치며 끝나는 다음리그..
온겜은 하늘이 돕는다는걸 증명한 대회기도 하고
넌 언제나
12/10/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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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박정석 선수에 관한 부분을 읽다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네요.
아무런 발버둥 없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낯 두꺼운 믿음을 희망이라 부를 수는 없다. 차라리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리란 절망의 확신 속에서 우리는 그를 뒤쫓아왔다.
팬인 저조차도 이번엔 안되겠지 할 때에도 한발자욱 더 나아가주던 그 선수를 가슴 벅차게 응원하던 시절이 다시 한 번 떠올라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것봐라
12/10/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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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이 프로토스의 머리였고 박용욱이 프로토스의 손이었지만, 박정석은 심장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문구가 진짜 와닿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12/10/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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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염보성선수랑 박정석선수의 듀얼 히치하이커 경기도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희대의 명경기..... 그리고 Daum 스타리그에 극적으로 진출했던 박정석선수 ㅠㅠ

박정석선수가 이후에 스타리그 36강 본선에 한번더 진출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Daum 스타리그는 정말 강렬하게 기억이 남아요 ㅠㅠ
12/10/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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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이 다음 스타리그 8강에서 송병구에게 무너지고 난 후에
아마 많은 박정석 선수의 팬들이 '한번만 더 마지막 불꽃을 태워줘' 라고 간절히 원했지만.
아마도 역시나 많은 이들이(아마도 박정석 본인을 포함해서) 그 다음스타리그가 마지막 불꽃이라는걸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박정석 선수는 마지막 불꽃을 영웅의 최후답게 멋지게.....ㅠ

송병구의 팬으로서, 송병구가 박정석의 적통 후계자라는 글을 볼 때마다 항상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나저나 박정석 선수의 간지는 진짜..뭐;;;; 쩝니다
영웅과몽상가
12/10/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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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운 나의 스타리그여 ㅠㅠ
전상돈
12/10/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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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이 프로토스의 머리였고 박용욱이 프로토스의 손이었지만, 박정석은 심장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문구 정말 와닿고 멋지네요! ㅠㅠ

덕분에 다음스타리그 정주행중입니다^^
王天君
12/10/2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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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부분 읽다가 울었네요. 박정석이 탈락하는 순간, 가슴이 허하면서도 송병구라는 신예 아닌 신예의 비상에 희망이 보였기에, 그 당시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는데, 새삼 영웅이라 불리던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비추어보니 눈물을 못참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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