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선거 기간동안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12/14 11:42:13
Name 두둔발
Subject [일반] 네! 아버님. 걱정하지마세요.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과장되고 편파적인 게시글들과 이를 반대하는 분들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섞인 댓글들을 보면서 가끔은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오는데 아래 어떤 회원분이 쓰신것처럼 머리를 식혀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게시판이 너무 과열된 것 같습니다.

박근혜씨든, 문재인씨가 당선이 되든 제가 생각하는 차기 정부는 지금의 MB정부보다 덜 권위적이고, 덜 편파적이고, 아마 민생을 많이 챙기면서 복지를 위해 더 투자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큰 대의는 빗겨갈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향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안철수, 김문수, 박원순씨등 합리적인 이미지의 정치인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과 그 이후에 새롭게 떠오를 더 훌륭한 신진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분이 되지 않았다고 너무 상심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 아래 글은 치열한 선거게시판에서 쉬어들 가시라고 쓰는 글이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남편은 5학년, 저는 4학년으로 4살 터울이지만 아직도 상대방에 대해서 자기야 또는 ~~씨 라고 서로 호칭하는 사이입니다.


"자기야!  아버님이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본데 머뭇머뭇하네요. 받아봐요."


어제 밤에 남편이 천안인근의 시댁에 전화를 해서 두루두루 통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저 말을 하면서 전화기를 넘겨줍니다. 평소에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안부전화 말미에 자연스럽게 며느리 목소리 들어보라고 나를 바꿔주곤 했는데 어제따라 아버님이 먼저 며느리랑 통화하시고 싶다니 무슨 중요한 일인가 싶어 안방에서 조용히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부인사를 드리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라고 되물어도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다가 저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지 결정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아버님의 온화한 얼굴과 미소가 떠올랐고 질문하신 의도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다 헤아렸습니다. 자식들한테는 이야기를 할수 없기에 차마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 시아버님의 마음이 깊이 와 닿아버렸습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셨지만 정치,사회와 관련해서는 본인의 뜻과 일치하는 자식들이 없어서 종북과 안보 그리고 새누리당 및 박근혜씨 지지자로서 집안내에서는 늘  외롭고 고군분투하시는 시아버님입니다. 남편은 아버님과 정치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님 마음이 되려 편치 않으실걸 배려하는 마음으로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어도 잘 하실거예요 라는 말로 아버님과는 정치이야기를 회피하거나 듣기좋은 말만 건성처럼 항상 하곤 합니다.



시아버님은 흔히 말하는 보수우파 지식인입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윤여준씨처럼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붙는 분이면 좋았겠지만 젊은 분들의 이야기로는 수*에 가까우신 분이죠.

1962년도에 우리나라 최고학부를 졸업하면서 5.16군사정변으로 박정희씨가 급조하였던 국가재건청년단 소속으로 공직생활을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4.19혁명세대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있으셨기 때문에 유신통치 및 전두환군사정권에 대하여 심정적인 반대는 했었지만 국가공무원이라는 입장과 근대화,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몸소 체험하였기 때문에 박정희씨와 박근혜로 이어져 오는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분이시죠.

전두환군사정권이 종식되면서 1987년 직접선거를 통해 노태우씨가 당선되면서 민주화를 염원했던 진보좌파는 남북통일과 사회복지를 투쟁의 목표로 삼았고, 보수우파는 위험한 급진통일론에 대한 경계심리로 안보와 종북논리로 이들을 몰아세우면서 지금과 같은 이념대립 구도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때 시아버님도 조갑제씨와 같은 보수우파의 이론틀 속에서 합리보다는 경직된 보수주의자가 되었다고 보여지지만 정치사상이 그렇다는 것이지 저에게 있어서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시아버님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분께서 MB씨의 선거때는 이런 권유가 없으셨는데 아무래도 이번 선거는 아버님한테도 특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최근 지지율 접근현상을 보면서 우리 남편만큼이나 정반대 입장에서 노심초사하고 계시는지 저에게까지 전화를 하셔서 부탁하신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시아버님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버님!  전 누굴 뽑아야할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어요. 아범은 저한테 ***에게 투표했으면 하는데요.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후보도 좋아 보여서 고민예요”

...
<중략>
...
...

"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화를 마치면서 침대에 걸터앉을때 저도 모르게 눈가에 촉촉히 맺혀있는 그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다.





PS. 저와 가까운 이웃주민, 성당 여신자들, 직장동료, 친구들은 모두 박근혜씨입니다. 젊은 여성들은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40대 중후반이상의 여자분들은 대세가 그렇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최소 75%의 투표율로도 승리하기 어려운데 PGR에만 들어오면 최근 몇일간 벌써 역전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은 지지자들이 결집됨으로서 인의장막처럼 환상같이 느껴지는 선거판의 특성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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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4 11:44
수정 아이콘
님도 역시 주변만 보고 판단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한쪽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두둔발
12/12/14 11:50
수정 아이콘
지지율이 많이 차이가 나다가 근접하게 되면서 느끼는 심리적인 현상인가봐요
마빠이
12/12/14 11:45
수정 아이콘
역전분위기는 아닌거 같습니다.
할만해졌다,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희망이 생겼다.
이정도 스텐스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주변 얘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 주변얘기하면 문후보 당선 확정입니다. -_-;;
하지만 연령대나 지역별 유불리가 있기에 사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지요.
12/12/14 11:46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선거는 문재인후보가 이기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리 설레발 떠는 징후가 많이 보인다고 생각하구요. 지난 총선 이전의 인터넷 분위기 처럼 말이죠.
거기에 지난 총선보다 박근혜후보는 몇배 더 강력한 상대거든요.
그러니 꼭 투표합시다. 여러분.
12/12/14 11:46
수정 아이콘
대부분 할만해 졌다. 추세가 좋다라고 하지 이겼다라고 하시는 분은 별로 못봤는데요.
두둔발
12/12/14 11:48
수정 아이콘
분위기상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다보니 제가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빠독이
12/12/14 11:48
수정 아이콘
한 표 한 표마다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씩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선거라는 게 무겁네 느껴지네요.
The xian
12/12/14 11:48
수정 아이콘
아무리 누가 강권하고 주위의 분위기가 어떻다 한들 투표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는 겁니다.
어차피 기표소 안에 들어서면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도 간섭하지 못합니다.

누구를 지지하든 소신대로 투표하시면 될 일이지요.
두둔발
12/12/14 11:49
수정 아이콘
네 맞는 말입니다. 저나 우리가족처럼 이미 정해진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죠.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부동층들이 마지막 관건이라고 보여집니다.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2/12/14 11:49
수정 아이콘
사실 이것도 케바케지요.. 주변이라봐야 2-30명 정도라.. 그걸로 대세를 가늠하긴 이른 판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최근의 급 들뜬 분위기는 좀 우려되는 면이 있긴합니다. 총선 때 그러다가 단체로 멘붕이 왔었죠... 뭐 막 박근혜 후보 입장에선 악재가 쏟아지고 있긴한데 잊지말아야할 것은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여론 지지율을 앞서고 있으며, 메이저 언론이 그의 편이고 정당이 새누리당이라는 겁니다.
12/12/14 11:51
수정 아이콘
그리고 그 지지율은 하늘이 두쪽나도 유지된다는거... 그게 가장 무섭더군요.
두둔발
12/12/14 11:52
수정 아이콘
맞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모두 이런 상태라서 문재인 지지한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제가 소심해서 그런가봐요.
12/12/14 11:55
수정 아이콘
PGR만 보면 이미 문후보가 이긴것 같은 기분이긴 한데 제 주위 나이 많으신 분들은 거의 박후보를 지지하시더군요. (흔히 말하는 TK지역입니다)
더우기 총선때 넷상에선 MB정권 심판 심판 노래를 부르다가 실제 결과는 싹 엎어진것도 있고 해서. 여전히 모를 일이죠.
12/12/14 12:03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것처럼 저 같은 경우는 이번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제가 했던 그 어떤 투표보다 상심이 클거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 그러한 가능성이 좀 더 크죠.

하지만 상심하는건 그때가서 일이고 선거전이고 박빙이니 내가 지지하는 쪽이 이길 것이다 기대하고 지지하는게 틀린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전하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기 보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는거죠. 이는 아직까지 중도층이나 투표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설득의 근거가 될수도 있구요.
두둔발
12/12/14 12:16
수정 아이콘
... 되길 바라느 마음에서...
아래쪽 문장들이 가슴에 와 닿네요.
12/12/14 12:08
수정 아이콘
참 많은 생각이 들고, 가슴도 한켠 뭉클한...
정치 게시판에서 느끼기 힘든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 잘 보았습니다.
두둔발
12/12/14 12:19
수정 아이콘
선거 정보의 홍수속에서 잠시나마 편한 마음으로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저글링아빠
12/12/14 13:2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날선 게시판에서 가뭄의 단비같이 느껴지네요^^

선거판이란게 승부의 요소를 강하게 가지다보니 한쪽을 마음 깊이 응원하는 간절한 감정을 가지게된다면 그게 이런 저런 출렁임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감자해커
12/12/14 15:2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글 내용이 쏙쏙 들어오네요. 따듯한 감정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두둔발
12/12/14 15:3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렇게 리플글 달다보니 블로그에 글올리고 방문하신 분들한테 일일히 답신하는것 같네요.
12/12/14 15:35
수정 아이콘
주변만 보면 9:1 승리인데..... 다 주변 같았으면 좋겠네요.
두둔발
12/12/14 15:38
수정 아이콘
키젤님은 행복하시겠네요.
전 현실의 주변은 9:1로 포위된듯한 느낌이고 이곳에 오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데 말입니다.
그러려니
12/12/14 17:30
수정 아이콘
저희와 비슷한 그림이네요..
정치에 관심도 많고 자기중심도 확실한 아내지만 벽과 같은 시아버지에게 10년 넘게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표현이 늘 좀 과격하셔서.. 아내는 술 한 잔 꺾으면 그 때 그 때 쌓였던 울화를 저한테 풀곤 하지요 쿨럭;
어쨌든 아버지는 자식들 표가 다 당신이랑 같다 생각하고 스트레스 안 받으시니 좋고, 우리 둘은 쓸데 없는 마찰 없이 찍고 싶은 사람 찍으니 그걸로 된거죠
두둔발
12/12/14 20:25
수정 아이콘
비슷한듯 한데 약간은 틀리네요..
제 시아버님은 자식들 모두가 문재인씨를 찍을거라는것을 알고 계세요. 그동안 몇차례 충돌했던 경험상 이미 서로의 정치성은 인정하고 포기를 하고 계신거죠. 그러다보니 저한테라도 하소연하시는건데... 저 역시 착한 거짓말로 시아버님께 조금의 위로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니
12/12/14 20:52
수정 아이콘
두둔발 님// 네 다르죠.. 저희는 '몇차례 충돌'의 여지마저도 없이 일방통행이십니다;; 자식들도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너무 뻔히 잘 아니까 일찌감치 다 그냥 네네 하는 모양새고.. 또 다른게 자식들 사이에서도 우리 부부만 성향이 다르죠.. 아내 친정 쪽에서도 아내만 성향이 달라서.. 아내가 가끔 그러죠.. 시댁엘 가나 친정엘 가나 정치 얘기만 나오면 너무 외롭고.. 외계인이 된 것 같다고요..

그나저나 시부님과의 관계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모습이신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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