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0/25 23:56:48
Name 박영주
Subject 승부의 매력 또는 폐해...
임요환이 졌다. 잘 싸워놓고도 졌다

난 그의 패배가 원통해 죽겠다. ㅠ.ㅠ

코앞에 닥쳐온 논문마감시한...정확히 따져본다면, 이제 36시간도 안남았는데,

난 방금 녀석의 경기를 보고 분을 삭히지 못해, 어디 소리라도 바락바락 지를 데를 찾는다.



그것이 승부의 매력이다. 이겼을때의 희열과 졌을때의 분통함...

내가 응원하는 편이 이겨줬으면 하는 강렬한 욕구.

같은 편을 응원하는 사람과의 무의식중인 동질감.


따지고 보면, 난 언제나 승부의 세계를 좋아했던 듯 하다.

학창시절, 어떤 여학생도 별 관심없어 하던, 고교야구나 뒤이은 프로야구에의 열광...

이충희가 현대의 에이스시절부터 오직 현대!현대!를 외치며 프로농구에 미쳐있었을때...

고2였던가? 모두들 자습에 열중해 있을때도, 혼자 88올림픽을 봐야한다며,

수업시간마저 도망쳐 나왔던 일...

심지어,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에 있던 교육용TV까지 켜서 볼륨 높이다가 반아이들에게 면박당한 일...

아무리 중요한 시험이 눈 앞에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경기라면,

죽어도 놓지지 않고 보았던 일...

게다가 내가 응원하던 팀이 지기라도 하면,

그 분을 삭히지 못해 그 날은 공부는 커녕, 아무것도 못했던 일...

(뭐, 시험은 당연히 망치기 마련이다.)

심지어 최면까지 건다...이번에 이기면, 나도 시험 잘 볼거야...

지금도 가장 감명깊게 읽은 만화를 꼽으라면,

그 주옥같은 순정만화들을 모두 제치고 당연히 '슬램덩크'를 꼽는 것...



사실 그동안 나는 승부의 매력을 잊고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후 10년동안,

엄청나게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고 하면서

그 좋아하던 프로야구 한번 보러간 적도 없고(뭐, 응원하던 팀의 엄청난 부진도 한몫했다)

문경은, 우지원따위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팀으로 간 이후에는

프로농구 중계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다(이 이유에도, 외국인 용병이 판치는 프로농구가 싫기도 했었다)



10년만에 나에게 찾아온 지나치게 많은 여유(?)속에서,

난 내가 전혀 모르던 승부의 세계를 찾았다.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바로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승부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기고 지고, 물고 물리는 혈투의 세계가...

그리고 난 또 누군가를 응원하는 팬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이겨주기를, 절대강자이기를,

그의 즐거움이 나의 것이 되어주기를 염원한다.



나는 승부를 위한 그들의 쉼없었을 준비을 높이 사며,

무대에 나서선,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한 최선의 노력들에 감동 받는다.

이긴자와 함께 기뻐하며, 진자와 함께 슬퍼한다.

그리하여 내가 응원하는 사람의 승패가 드디어 나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새 나의 동지가 되어간다.



난 오늘도 최면을 걸었었다. 오늘 녀석이 이겨주면, 내 논문도 쭉쭉 진도를 뺄수 있을 거야...

물론 결과는 녀석의 패배였고, 난 분초가 아까운 마당에,

이렇게 엄한 넋두리를 해대느라 또 다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정말 폐해다.



그러나 모두들, 애들이나 하는 게임에 미쳤다고 손가락질 해대지만,

난 내가 발견한 새로운 스포츠, 새로운 승부의 세계에서 당분간 멀어질 계획은 없다.

승부가 주는 그 오묘한 짜릿함과 치열한 사투가

아직은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열받아 하고 있으면, 논문은 언제 쓴다냐...헐...

p.s 흥분된 마음에 막 갈겨 써놓고 한참을 망설입니다. 내가 과연 이 글을 이 게시판에 올릴 용기가 있을까...
맞춤법 지적의 압박과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의 식견에 감히 이런 어줍잖은 감상을 늘어놓아도 될까...하구요...
위에도 썼지만 제 친구들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절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나이가 이쯤되면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오크히어로
03/10/26 00:03
수정 아이콘
여기에서 맞춤법 지적하시는 분들은 다 좋은 마음으로 지적하시는 거에요. ^^ 부담 가지지 마시고 그냥 좋게 받아 들이시면 좋겠네요. 머 하나의 문화라고 봐도 무방할듯
(그래도 왠지 글 적고 나면 틀리진 않을까 조바심 나는건 저도 동감입니다.) 이 꼬릿말에도 분명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것이 있을꺼에요. ㅜㅜ
안전제일
03/10/26 00:11
수정 아이콘
승부라는게 참 매력적인건 사실이지요.
'치열' 혹은 '열정' 아니면 '몰입' 같은 단어와 정말 안친한 제가 이렇게 치열한 그들의 경기에 몰입하여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걸 보면 말입니다.
좋은 경기를 너무 많이 봐서 피로한 하루가 지나갑니다..^_^
오크히어로
03/10/26 00:12
수정 아이콘
어느새 제게는 프로스포츠보다 프로게이머들의 박빙의 승부를 더 보게 되네요. 아직은 프로게이머들은 때뭇지 않은 열정이 보인다고 할까요
03/10/26 00:16
수정 아이콘
아직 결과를 몰랐는데, 엉뚱한 글에서 결과를 알게 되었네요. 괜히 녹화를....-_-+
박영주
03/10/26 00:18
수정 아이콘
제가 뒤늦게 프로게이머들의 세계에 빠져든 것도 바로 그 프로(?)답지 않은 풋풋함과 그들만의 가식적이지 않은 순순한 열정이 화면 가득히 묻어나서였습니다...^^
03/10/26 01:00
수정 아이콘
임요환선수를 사랑하는 글이 글속에 가득 담겨있네요..^^
아이리스
03/10/26 01:36
수정 아이콘
저도.. 그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을 사랑합니다..
저랑 증상이.. 제 주위에도 스타을 아니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없어서 오늘도 언니랑 온천약속을 취소하고 혼자 티비보며 열열히 응원을 했는데.. 그만 져버렸네요..ㅜ.ㅜ
눈시울이 빨개져 너무나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못하고 리플레이를 쳐다보는 그를 보며, 힘없이 주섬주섬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겨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그를 보며.. 너무 속상해서 땅을 치고 뛰어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습니다. 양재천에 운동갔던 언니가 들어오다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봅니다. 미쳤다네요.. 요즘은 경기가 많아져 하루걸러 발생하는 환호성과 울분에 곧 아파트에서 쫓겨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너무 속상해서....... 그만................컵라면에 밥까지 말아 먹어버렸습니다.ㅜ.ㅜ 우앙~~ 다이어트 망했습니다.
그가 이기면 하루가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속상했던 일상에 활력이 생깁니다. 힘내세요~~
03/10/26 09:48
수정 아이콘
일도 빼먹고 회식까지 욕먹어가며 빠져나와서 경기 응원했는데. 울분만 잔뜩 쌓이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겨주길 바랬는데. 마지막 빨개진 눈이 보기싫어서 TV도 꺼버렸네요. 어제 미뤘던 일때문에 휴일근무 나가야됩니다......기운이 빠지네요. 듀얼땐.힘내주세요. 도저히 생방 볼 용기는 안생깁니다만, 맘속으로 응원할께요.
레스타
03/10/26 10:59
수정 아이콘
글 잘읽었습니다^^
저같은 증상을 가진 분이 생각외로 많다는 걸 pgr에 와서 첨 알았습니다.
언니랑 동생은 절 약간 광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어제 저녁 정말 속상했었지만, 지금은 힘내려구요. 그를 믿습니다.
우아한패가수
03/10/26 16:10
수정 아이콘
팀리그와 프리미어리그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한 임요환선수를 보고 흥분한 나를 고등학생인 조카가 한마디 하더군요...
이모 초딩같다 -_-
그래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28일 듀얼에선 반드시 승리하리라 믿습니다. 임요환선수~~~ 화이팅!!!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477 결국 비룡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4] 박아제™2744 03/10/26 2744
14476 전위의 한마디.... [12] 김범수4718 03/10/26 4718
14475 [잡담] 흠...이미 잃어버린 처음의 그 순수한 첫느낌에 대해.. [7] 이직신2863 03/10/26 2863
14473 [펌]월드시리즈 6차전경기와 말린스 우승 화보들..... [11] 네로울프2792 03/10/26 2792
14472 배넷에서 무승부를 기록해보다 -_-;;; [9] 높이날자~!!4266 03/10/26 4266
14471 결승가고 싶어요 ㅠ.ㅠ [10] Fischer2771 03/10/26 2771
14470 [in 강원]Unified ProLeague Idea Completed... [11] Daviforever2274 03/10/26 2274
14469 [잡담] NaDa 와 Xellos, 그리고 Boxer와 Eagle. [24] RM6227 03/10/26 6227
14468 [문자중계] KTF BIGI 프리미어리그 중계창입니다. [208] 초보랜덤5569 03/10/26 5569
14467 황제의 자리 . . . [19] 투지4078 03/10/26 4078
14466 수능공부 하면서.. 몇가지 생각. [2] Neos1996 03/10/26 1996
14465 [픽션도 아닌 것이] 꿈꾸는 기사.. 그리고 악마.. 강민 선수와 박용욱 선수의 결승전에 부쳐.. [5] Canna2621 03/10/26 2621
14464 [잡담]이제 날아볼래....? [19] Zard2908 03/10/26 2908
14462 서로다른길...그러나 보는것은하나. [20] Naraboyz2533 03/10/26 2533
14461 달리기 좋아하세요?? [14] 심술이2200 03/10/26 2200
14460 담배... 이젠 끊어야 겠죠... [29] 오크히어로3197 03/10/26 3197
14459 [잡담]새벽 2시43분에 떠오른 잡생각들..2 [1] Return Of The N.ex.T1794 03/10/26 1794
14458 불안합니다.... [18] Slayers jotang2586 03/10/26 2586
14454 승부의 매력 또는 폐해... [10] 박영주2590 03/10/25 2590
14453 옛 기억을 더듬는 유닛..-_-;; [10] 경락마사지3694 03/10/25 3694
14452 온게임넷 - 4강 이후의 전적 [4] PRAY43038 03/10/25 3038
14451 온게임넷&MBC게임 BGM List <2003년 10월 25일> [27] 박아제™3790 03/10/25 3790
14450 한빛배 이후 온게임넷 우승자의 결승 준결승 3.4위전 승패 [19] TheRune3334 03/10/25 333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