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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7/16 22:25:57
Name 메텔
Subject [일반] 우울증 환자에게 호갱님이 되었던 이야기(?)
예전에 제가 잠시 마음이 아픈 분과 본의 아닌 썸을 탄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 프리랜서로 느긋한 생활을 즐기던 저는 그분과 인터넷 동호회 같은 데서 만났고, 많은 얘기를 밤낮 가리지 않고 나누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잠시 마음의 병이 약간 심해지셔서 결국 전에 다니던 병원에 가 의사와 상담하였고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저에게 온갖 얘기를 늘어놓는데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생각하였고 그당시 좀 어렸던지라 순진하게 그냥 참았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노골적인 작업을 거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의 마음의 병이 두려워 대놓고 거절하지도 못하였지요.

그러다 그분이 애완동물을 분양받게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매우 더운 날이었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꽤 지루한 길이었습니다. 더운 날 길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이 인간을 빨리 떼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게 하는 중, 저녁을 먹자는 겁니다. 점심을 얻어먹은지라 저녁은 제가 사드렸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이분이 약을 드시고 나더니만 갑자기 잠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과약이 꽤 독한지라 먹으면 졸음이 온다고 하는데 저로선 많이 난감하였지요. 당황해서 근처에 어디 가서 재워야 하나 싶은데 갑자기 저희 집에 오셔서 주무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같이 살던 친구는 분가하여 당시 혼자 살고 있었지만, 친구 이사간 뒤에 짐정리도 채 안 되어 있고 당시 키우던 애완동물이 마루에서 날뛰고 있는데 와서 자겠다고?

그러나 졸려서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하는 이 남자에게 거절의 말을 못하고 저는 얼굴 한 번 본 남자를 집에 들였습니다. 일단 잠자리를 마루에 봐주자 그대로 주무시더라고요.
저는 들어와서 게임을 하고 놀았던 거 같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다음날 잘 가시라고 하고 잘 헤어졌습니다.

그분은 계속 저에게 들이대었지만 저는 구렁이 담 타넘어가듯 모르는 척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 지난 뒤 그분은 선 같은 걸 봐서 결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잘 떼어냈다 싶어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시. 결혼 준비를 하면서 발생하는 온갖 스트레스를 저에게 풀어내는데 저까지 매리지 블루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일단 약을 꽤 오래 먹을 걸 아는지라 심한 말도 못하고, 가급적 들어드리려 했습니다. 그러길 한 달여. 결국 부인될 양반이 혼수로 모피코트를 사달라고 했다고 격하게 화를 내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해 버렸습니다. 그럼 결혼 엎으라고. 그러자 말을 그렇게 가볍게 할 수 있냐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사실 그간 쌓인 울분을 다 토하려 했지만 그는 마음도 아프고 곧 결혼도 코앞에 둔 사람. 그래서 더러웠지만 미안하다 사과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래요, 결혼하면 이 사람 자주 못 볼 줄 알았던 거죠. 그러나 저처럼 좋은 호갱을 만난 그가 쉽게 떨어져 나갈 리가 없었습니다.

그 뒤 그분은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저에게 와서 온갖 얘기를 늘어놓으셨고 저는 그 얘기를 다 들어드려야 했습니다. 왜 남의 부부 잠자리 얘기까지 미혼인 저에게 늘어놓으셨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러길 무려 5,6년.

저는 이 사람이 저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 친구니까 하는 마음으로 가급적 참아줬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친구도 아닌, 그냥 이 사람의 호갱님이었을 뿐이지요.

그러다 마침내 제가 대노할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친구가 당한 일로 격분하고 있는데 그분이 얘기를 듣다 말고 '니 친구가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니가 니 부인 이상하다고 욕할 때 그러냐고 얘기는 들어주었을망정 네 부인 된장녀에 완전 bitch라는 험한 소리 한 번 한 적 없건만, 감히 내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

그래서 여태 너가 했던 어떤 말도 나를 귀찮게는 했을 망정 나를 화나게 한 적은 없는데 오늘 진짜 화가 난다, 나는 앞으로 너랑 말을 섞지 않겠다, 오늘부터 메신저고 뭐고 차단하고 핸드폰 번호도 지우겠다 하고 다 삭제하였습니다.

그 뒤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일찍 안 했냐고. 너는 그에게 호갱님이었을 뿐이라고. 단지 마음이 아픈 인간이 구애하는데 모른 척 무시하는 게 걸렸던 게 이유였을 뿐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당연히 따뜻하게 보살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유로 이런 착취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저처럼 연인이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이유로 할 말 못하고, 감정적으로 착취당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대놓고 NO라고 하십시오.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있으면 이렇게 장시간 정신적으로 착취당하게 됩니다.

특히 20대 여성분들이 정신이 불안한 분들이 많으신데 이런 사람들이 자살과 자해를 무기로 삼아 남자를 조종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이런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리전증후군 핑계를 대면서 감정이 심하게 왔다갔다 하던가, 술만 마시면 운다던가, 잠이 오지 않아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던가 어떤 낌새가 보이시면 바로 도망가시던가 하세요. 오래 사귀신 분들 경우에 이유 있는 우울증이 왔을 때야 곁에서 같이 힘써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정신이 아픈 사람과 연애를 해줄 의무는 없으니까요. 아무튼 희대의 미친x를 만나 고생하지 마시라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정말 걱정되었기 때문에 잘해 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만 당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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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
13/07/16 22:44
수정 아이콘
읽다가 멘붕올뻔 했습니다. 인내심이 대단하시네요.
13/07/16 22:46
수정 아이콘
그런 오랜 기간동안 그 분과 인연을 맺었는데 금전적 사기가 아니었고 그 분은 님과 대화를 혰던 것이고 님 역시 같이 인간적 관계를 맺으셨다면
적어도 후회는 안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만약 정말 마음이 아픈 분이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위안과 위로를 해드리고 진작에
판단하셔서 연락을 해야겠다 말아야겠다 결정을 하셨어야지 지금 님의 이 글은 제가 볼때 님의 과거 행위를 과하게 부정하는 글로 보여요.
王天君
13/07/16 22:49
수정 아이콘
부정이라기 보다는 의미없음을 발견하는 정도로 봐도 될 것 같네요. 보통 깨달음이란 그런 거지 않나요?
RookieKid
13/07/16 22:47
수정 아이콘
호갱님인지 아닌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호갱님....되고 싶어서 되나요 뭐
지금 벗어나서 밖에서 나를 보니까 호갱이었구나... 하는거지
王天君
13/07/16 22:48
수정 아이콘
정신과 약중에 졸음이 심하게 오는 게 있나요?? 저도 예전에 우울이 도져서 몇번 복용했지만 잠이 안오고 오히려 생각만 깊어지던데.... 수면제 처방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레지엔님!! 어디 계십니까 레지엔님!!)
저건 우울이 아니라 정신적 미성숙이군요. 보통 우울한 사람은 자기가 거절당하거나 그로 인한 상처가 두려워서 저렇게 들이대지 못하는 법인데.... 더군다나 자기가 우울하다고 털어놓지도 않거든요.
13/07/16 23:17
수정 아이콘
자기 자신을 좀 더 아끼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피자21
13/07/16 23:29
수정 아이콘
남자입장에서 보면 그냥 계속 메텔님한테 작업한거겠죠. 넘어왔으면 하는데 확실한 신호는 주지 않고.. 그렇다고 이런저런 하소연 하는데 얘기는 참 잘 들어주고, 연락도 지속되는거 보니 가능성이 없는거 같지는 않고. 왜 잠자리 얘기까지 하겠습니까.. 이걸 모르시다니요. 답답합니다! 흐흐.

여튼 너무 우울증에 대한 편견 갖지는 마시구요.
(남자가 얘기 안들어주면 자해하겠다던가 이랬다면 몰라도.. 우울증이랑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 않나 싶네요.)
또 고생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람모리
13/07/16 23:44
수정 아이콘
보살님이 여기 계시는군요.
저는 참다가 선을 넘기면 단호한 편입니다만..
글같았으면 첫번째에서 단호해졌을듯 싶네요.
지나가는회원1
13/07/17 00:07
수정 아이콘
호갱님이라고까지 하긴... (그 사람의 행동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님이 착하신거라는 의미입니다) 좀 뭐하지만,
그 사람의 멘탈이 아프니까요.
저는 이런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받아내는걸 업으로 (하려고 준비중인... 상담 전공입니다.) 하는 사람입니다만,
저도 직업상이 아니면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지인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정말 독하게 연락을 끊기도 했구요. 지금도 전화하는데 첫방에 전화 끊어버립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도 바로 끊구요.
불쌍한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휘둘리면 절대 안되는 사람입니다. 님이 수고 많으셨네요.
어차피 저런 정신병적 기질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들이 제대로 치료적인 도움도 주지 못할뿐더러, 감당해내기도 너무 힘듭니다.
(친구중에 이런 사람하고 잘 꼬여서 이래저래 엮이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하나하나가 우울증 환자에게는 최악의 대답만 해주더라고요.
지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거지만, 치료적인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걸 보고,
이게 말한다고 되는 수준이 아니라서 거리를 두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빨리 끊어내시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거 같습니다.
잉크부스
13/07/17 00:32
수정 아이콘
조울증인듯 하네요..
진지먹자면
조울증은 마음이 아픈병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대사 장애가 원인이죠
(위액이 과다 분비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생리학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환경적 스트래스가 방아쇠 역활을 하긴 합니다.. 그래서 정신병으로 오해받기는 합니다..)

먹는 약도 정신 분열증에 처방되는 약과는 다른약입니다.
주로 리튬을 먹죠..(신경전달물질의 대사 장애를 완화시켜줍니다)

조울증은 경우에 따라 과도한 성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주변에서 이를 잘 조절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선 잘하신듯하고..)
과도한 자신감.. 과도한 우울증..
하지만 리튬을 복용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것 처럼 그런 정신병이 아니에요.. 오해 마시기를
여기 전문가분들이 많으시겠지만서도..
이쥴레이
13/07/17 08:51
수정 아이콘
저는 이상하게 그렇게 이상하거나 어두운(?) 느낌이 나는 여자분들에게 끌렸죠.

징징징하던, 우울하던, 땅을 파고 또 땅을 파고 들어가던..
그런데 오히려 결혼한 아내는 이와 전현 반대 성향입니다. 활발하고 밝고 희망이 가득차 있고
제가 살아온 인생과 전혀 다르게 아주 곱게 자란 아가씨 스타일이지만..!

그 아내도 여러가지 일로 우울하고 어둡게된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옆에서 열심히 케어를 해준거 같네요.
아 그래서 결혼했나?

지금 다시 예전모습 그대로 활기차서 좋기는 한데.. 용돈 받는 남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흑...
내가 우울하군요 ㅠ_ㅠ
아랫길
13/07/17 09:27
수정 아이콘
메텔님도 이렇게 털어 놓으시고 떨쳐내시길 바랍니다. 살다보면 이런사람, 저런사람도 만나는 거겠죠.

덧붙여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어 우울증에 흔히 쓰이는 SSRI(serotonin seletive reuptake inhibitor)는 졸음등의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영문 위키에 잘 정리되어 있어 첨부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sri

또 한번 더 덧붙여 최근 정신건강의학과가 다루는 질병들에 대해서 정신생물학적 관점으로 약물의 사용이 늘고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건
사실입니다. 신경전달물질등, 신경과학적인 요소로 정신과 질병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상담이나 지지적 치료
역시 질병의 관리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고 단순히 신경전달물질의 대사 장애로 환원하기에는 아직 이루어낸 것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환자분의 이야기를 들어 줌으로써 좋은 일 착한 일 했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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