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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2/13 22:41:32
Name 카우카우파이넌스
Subject [일반] "반국가단체 성화신국"(대법원 1956.6.29. 선고 4289형상60 판결)
아래에 고려대 '김일성 만세 대자보' 사건 관련글을 보면
국보법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여러 논의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국보법을 존치해야 하나, 적절한 해석, 적용을 통해 해악을 줄여야 한다는 정도입니다.)

이 글에선 국보법 제정 이래 가장 웃긴 사건을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무려 이승만 대통령 시절 판결이고 유명한 가인 김병로 선생이 재판장인 사건이었는지라
이 사건에 관해 알려진 건 이 대법원 판결문 정도가 고작인 것 같습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도 이 괴이한 반국가단체(?)에 대한 기사가 검색되진 않는군요)


1. 사건 개요(판결문 대부분이 검사 상고이유를 인용하고 있고, 고어로 구성되어 있어 임의로 현대어로 번역합니다)

(1) 피고인은 해방 이전 일제시대부터 충청도 근방에서 '상제교'라는 종교를 창립하여 스스로 그 교주 자리에 오른 뒤
일정 지역을 통치하며 급기야는 '성화신국'이라는 제국을 건립하여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2) 이후 1945년 해방,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50년 국가보안법 제정 등을 거치는 와중에도
피고인은 자기 휘하 세력을 보통의 종교단체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계속 황제로 군림하며
매년 음력 정월 1일에 황제 즉위 기념식을 가지고 선전물을 배포하고 교세 확장을 꾀하는 등의 행각을 계속했다.

(3) 한편 피고인은 황제로 즉위하는 동안 각종 무기를 불법으로 장기간 소지하고 있었다.

(4) 피고인을 섬기던 신도 일부가 배신하고 피고인을 국보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신고했다.


2. 검사 공판청구서(공소장의 옛이름) 적용법조

(1) 사실: 구 국가보안법 1조 1호(반국가단체 수괴: 사형)
(2) 사실: 구 국가보안법 3조(반국가단체등 목적사항 실행협의, 선동, 선동, 목적수행: 10년이하 징역)
(3 사실: 구 군정법령 5호(무기불법소지죄: 법정형 불명. 현재라면 총포도검화약법위반으로 규율될 사안일 겁니다.)

* 참고로 '반국가단체'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북한'이 있습니다. 이 반국가단체를 도울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이적단체'입니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직접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사유로 처벌되는 사유가 많았지만, 오늘날엔 국내에서 무슨 단체를 만든 경우는 '이적단체'로 보는게 보통입니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단체'인 셈입니다.


3. 법원의 판단

(1), (2) 사실: 무죄
[형식상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는 단체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해 조직과 주장이 비과학적이며 초현실적으로서 혹세무민의 소업에 불과한 것인 경우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

(3) 사실: 유죄(선고형: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4. 흠....

이 사건은 1950년대, 한국인들의 마음 속 반공의 횃불이 가장 활활 불타던 시절에 터진 사건이었습니다.
황제폐하를 국보법 위반으로 꼰지른 신도나, 이 사건 공소를 계속 유지한 검찰이나 뭐 그런 멘탈리티를 공유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당대의 반응을 알 수 있을 자료는 접해보지 못했지만 아마 지금하곤 온도가 좀 다르리라는 상상은 갑니다.
한마디로 뭔가 반정부적인 냄새만 나도 빨갱이라는 반응이 기계적으로 튀어나왔을 법한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 남쪽을 활보하던 빨치산들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 이 글을 보고계신 모든 분들이 동의하리라고 확신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를 참칭하며 반도의 시골 한구석을 통치하던 성화신국의 통치자(?)가
국가 안보에 어떤 위협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흠....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반국가단체 성화신국에게 영토주권을 침탈(?)당하고 있던 중인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은
배신한 상제교 신도들이 경찰서로 뛰어오기 전까지는 저 정체불명의 제국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지요.

다행히도 60년 전 판사들은 이 점을 깨달을 정도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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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용 에탄올
15/12/13 22:47
수정 아이콘
반국가단체로서 실제적인 위협이 된 물건의 대표적 사례라면 북한, 5.16 쿠데타의 그냥반들, 12.12~5.17쿠데타의 그냥반들 정도 로 생각됩니다.

다른 반국가단체 양반들의 영향은 이양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고, 애매모호한 물건들도 많았으니...
카우카우파이넌스
15/12/13 22:57
수정 아이콘
그리고 보면 우리 법상 이런 류의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이 꽤 많습니다.

일단 국보법의 '반국가단체', '이적단체'는 위에서 본 바 있고
형법상 '내란죄'는 행위태양상 '내란단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고
군형법 상 '반란죄'도 마찬가지 논리로 '반란단체'라는 것을 전제하니까요.

지금까지 사법부가 박정희 쿠데타를 판단해본 일은 없었으나
전두환 집단의 쿠데타는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를 적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전두환 휘하 쿠데타세력은 '내란단체' 또는 '반란단체'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다만 그건 검찰이 기소를 그렇게 한게 중요한 이유였지만요.
(검찰이 그건 기소를 안하려고 무슨 지랄을 쳤는지는 일단 별론으로 하고...)

결국 박정희, 전두환에게 국보법위반죄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지는 하늘만이 안다옹
15/12/14 06:02
수정 아이콘
성공적. 지난일. 처벌x.
도들도들
15/12/14 08:59
수정 아이콘
재밌는 사건이네요. 삼국지도 생각나구요. 크크
15/12/14 09:37
수정 아이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생각나네요. ^^
15/12/14 10:50
수정 아이콘
제가 항상 빨갱이 타령 하는 분들께 하는 말이 저거죠... 니 논리대로면 사이비 종교 교주들 다 처넣어야 한다고
그럼 뭐 걔들은 사회에 별 해악이 없다(!!!)느니 북한보다는 양반이다(??)느니 종교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느나 말같잖은 소리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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