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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5/18 16:57:07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20)
롯데월드까지 일주일 남은 날이었다.

밥 먹고 직원들과 포켓몬을 하며 산책로를 거닐고 있는데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와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벚꽃 사진을 찍어 여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산책로인데 벚꽃이 너무 예쁘네요.

-오와, 사진 정말 잘 찍으셨네요.

-날도 따뜻하고, 꽃도 피고, 지금 산책하기 딱 좋은 거 같아요.

-다음 주 월요일에 같이 점심 드실래요? 산책로에서 도시락 싸 들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 지나갔다.

이거다!

-그럼 같이 김밥 드실래요? 제가 준비해 갈게요.

-여기 근처에 김밥집이 있어요?

-제가 싸갈게요. 음료수만 들고 오세요.

-김밥도 쌀 줄 아세요? 대단하다!

-자취만 5년이 넘었습니다. 김밥 정도야 뭐 껌이죠.

-기대되네요! 그럼 월요일에 봐요!

다음날 나는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마트에서 김밥을 싸기 위한 재료를 샀다.

쇼핑하면서 오만 망상이 다 들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드디어 월요일이 왔다.

재료 손질은 일요일에 이미 다 끝내 놨고

김밥을 싸기 위해 월요일 새벽에 일어났다.

엄마가 김밥을 싸줄 때면 항상 말했었다.

전날 싼 김밥은 정말 맛이 없으니 그날 새벽에 싸야 한다고.

'어머님의 가르침 잊지 않고 수행 중입니다.'

교리 김밥, 돈가스 김밥, 계란 김밥을 한 줄씩 싸기 시작했다.

디저트로 방울토마토 몇 개를 같이 챙겼다.

완벽하다. 이 정도면 요섹남이다.

스스로 뿌듯해하며 김밥 꽁다리를 주워다 먹었다.

미리 구해둔 카카오 프렌즈의 프로드가 꽃다발을 들고 있는 피규어도 잊지 않고 챙겼다.

'시나리오는 완벽하다.'

그날은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여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벌써부터 설레고 떨린다.

여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어? 오늘도 똑같은 색 옷 입었네요?"

여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서로 밝은 파랑의 아우터와 검은 계열의 바지, 치마를 입고 왔다.

"우리 석촌호수에서도 똑같이 입고 왔던 거 알아요?"

"헐 그랬어요?"

석촌호수 때는 전혀 몰랐다.

"영화 볼 때도 똑같이 입고 오고. 우리 진짜 뭐 통하나 봐요!"

벌써부터 손이 덜덜 떨린다.




나무그늘이 있는 벤치에 마주 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꺼냈다.

여자가 김밥을 보더니 어디서 사 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며 놀란다.

김밥을 하나 먹어보더니 더 놀란다.

남자가 해주는 김밥을 처음 먹어보는데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됐다! 됐어!

그리고 디저트를 꺼냈는데 여자도 후식을 가져왔다며 무언가를 꺼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롤케익이었다.

"어? 이거..."

라고 말하니

"맞아요 XX 씨가 그때 선물해준 거예요."

"아직도 안 드시고 계셨어요?"

"언젠가 같이 먹으려고 했죠. 오늘 아침에 찾아온 거예요.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오늘은 진짜 각 인가 보다.




점심을 끝내고 시간이 많이 남아 같이 꽃구경하면서 걷기로 했다.

고백할 생각을 하니 온몸이 다 떨린다.

나란히 같이 걸어가는데 서로 손이 맞닿아 스쳐 지나갔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OO씨"

"네?"

"따로 만나는 분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 OO씨 좋아해요."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다.

여자가 놀라며 날 쳐다본다.

"아...아... 감사합니다."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만난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에요.
우리가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다거나
굉장히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건 아니지만
OO씨 같은 사람을 가벼운 약속으로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만날 수 있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OO씨는 저에게 정말 과분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어요.
OO씨와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요.
더 여러 가지를 알아가고 싶어요.
더 재밌는 곳으로 놀러다니고 싶어요.
좋아합니다. 저랑 사귀실래요?"

여자가 연신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이런 말 할 때는 무릎 꿇고 꽃다발 내밀고 하던데 요즘은 그렇게 하면 촌스럽잖아요.
그래서 그걸 대신해줄 친구를 데려왔어요."

라며 준비했던 프로드 피규어를 내밀었다.

다시 한번 말했다.

"좋아합니다."

여자가 피규어를 들고 말없이 걷고 있다.

나도 조용히 옆에서 같이 걷고 있다.

대답이 바로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고민 좀 해보겠다 하고 하루? 이틀? 정도 후에 대답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날은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XX씨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그날은

"저는요"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XX씨랑"

가장

"지금 이 정도 관계가 좋은거 같아요."

비참해진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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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8 17:01
수정 아이콘
프로드 피규어?! 뭔가 했는데 카카오 이모티콘 이군요
나름 귀여운데 .. ㅠㅠ
17/05/18 17:01
수정 아이콘
미나사나모모
17/05/18 17:05
수정 아이콘
헐...
냉이만세
17/05/18 17:05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최근에 2달 동안 썸만 타다가 결국 까인 경험이 있어서 깐딩님 기분을 잘 알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니 제일 어려운것이 연애와 결혼이 된것 같습니다. 흐흐흐흐
17/05/18 17:05
수정 아이콘
왜죠 왜때문입니까 ㅠㅠ
이혜리
17/05/18 17:06
수정 아이콘
헐.............................................................................
17/05/18 17:09
수정 아이콘
헐.........
힘내고화이팅하자
17/05/18 17:09
수정 아이콘
제가 겪었던 상황이랑 너무 비슷하네요 ㅠ.ㅠ
그래도ㅠ깐딩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 일거라 믿습니다
MiguelCabrera
17/05/18 17:12
수정 아이콘
아......
VinnyDaddy
17/05/18 17:13
수정 아이콘
저번 편을 읽으며 웬지 모를 싸-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ㅠㅠ
좋은데이
17/05/18 17:15
수정 아이콘
아........아...
으...
ㅠ.ㅠ..
그래도 여자분이 마무리는 지어주네요.. 고맙게도...
17/05/18 17:16
수정 아이콘
여자분 진짜 나빴네요....
배유빈
17/05/18 17:16
수정 아이콘
헐...
Outstanding
17/05/18 17:18
수정 아이콘
그래도 속없이 롯데월드는 같이 다녀오셨겠죠?!
17/05/18 17:20
수정 아이콘
헐...... 왜 때문이죠 근데 저런분 나빠요 결국은 달달함만 즐기고 책임은 지기싫다는 것처럼 보여서 물론 제가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해서 이러는거 맞습니다
냉이만세
17/05/18 17:29
수정 아이콘
저도 최근에 2달 썸만 타다가 까였는데...
제가 선물 주는건 다 받아가고, 최대한 그 여자분 스케줄에 맞춰주고, 아버지 생일까지 챙겨줬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주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해서 2달을 기다렸는데...가장 마지막으로 만난날 마음이 더 커지질 않는다는 말을 들었죠...
참 기분이 아주 아주 안 좋더군요. 흐흐흐흐흐 저 역시 최근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17/05/18 19:17
수정 아이콘
으아아앙 동지여 대체 여자들은 왜그러는걸까요???
냉이만세
17/05/18 20:57
수정 아이콘
제가 만나던 여자분은 남자에게 바라는 점이 10이라면 10이 다 충족되어야 되는 분이라서 그랬던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저에게 8~9가지는 마음에 드는데 단 1가지가 고민이라고 했고,결국 1이 9를 이기는 기적의 수학!??이 일어났죠. 흐흐~그 1이 전 본인이 생각하는 연봉보다 낮다고 까였죠. 제 명의로 집을 샀을때 이정도면 최소한 연애시장 혹은 결혼시장에서 명함은 내밀수 있겠다...했는데 현실은 더 냉혹하더군요. 그래서 전 결국 그 여자분 때문에 다른 곳에서 들어오던 선자리도 날라가고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되었죠.
전광렬
17/05/18 17:30
수정 아이콘
ㅠㅠ 진짜 제 옛날 생각나네요.
여자가 원하는건 바보온달이 아니에요... 백마탄 왕자지...
평강공주를 원하는 마음 이해하지만 평강공주는 노력한다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바보온달처럼 여자에게 접근하면 안되요. 내 이런이런 약점도 감싸줄 여자는 엄마 밖에 없어요.
이걸 전 깨닫는데 33년 걸렸어요.
그래서 저는 백마탄 왕자 처럼 보이도록 노력중입니다.
MiguelCabrera
17/05/18 17:36
수정 아이콘
변화구 말고 직구로 가르쳐 주세요 명의님...
쪽지로라도 부탁드릴게요 흐흐흐
전광렬
17/05/18 17:51
수정 아이콘
제가 글 한편 쓰겠습니다....
17/05/18 17:58
수정 아이콘
기대되네요 흐흐흐
17/05/19 03:22
수정 아이콘
허준의 고백(1) 시리즈로 부탁드립니다?! 크크
17/05/18 17:58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미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심하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주변에 좋은 남자들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바보온달 같은 남자를 선택할 필요가 없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인의 경우 10대 후반~ 20대 초중반까지는 키 크고 몸좋고 잘생긴 남자와 사귀다가
20대 중후반~최대 30대 초에 미모가 떨어지기 전에 (자신의 주변 기준)기본 +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같더군요.
이걸 뒤늦게 깨닫고 외모와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치 몰빵하기엔 실력이 안 되고, 외모에 몰빵하자니 오징어였거든요.
이제 노력한지 4년째인데 역시 쉽지 않지만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포기하는 순간, 진짜 그냥 노총각으로 늙어죽을 테니까요. 흑흑.
MiguelCabrera
17/05/18 18:55
수정 아이콘
제가 뭘 알겠냐만 Quasar님 댓글 중 후반부는 깐딩님께서 한 방법이랑 큰 차이가 없어 보여요. 깐딩님도 어떤 계기로 외모 중 체중감량+복근 세기기 등을 하셔서 하나의 무기로 장착하신거거든요.

말하기 방법이 여성분이게 설렘을 주는데 실패했다고 하셨으면 수긍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말고 Quasar님도 글 하나 써주세요 흐흐흐
전광렬
17/05/18 19:07
수정 아이콘
xx씨는 제게 과분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직장도 있고 복근도 있고 노래방에서 끝내주게 잘 노는 남자가 왜 저렇게 저자세인가요....
포장을 잘 해야되는데 그게 싫은거죠.
MiguelCabrera
17/05/18 19:10
수정 아이콘
아하 그렇군요 흐흐흐
전광렬님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17/05/18 20:45
수정 아이콘
어떤 점에서 바보온달인가요?
전 잘 모르겠네요.
17/05/18 17:32
수정 아이콘
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때문인거죠 이정도면 충분한 듯한데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시하라사토미
17/05/18 17:32
수정 아이콘
헐.....
17/05/18 17:53
수정 아이콘
전편에서도 그렇고 저는 조금 빠른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읽으면서 '아직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17/05/18 18:11
수정 아이콘
그런가요?
저는 두달이나 이런 관계였으면 지금쯤이 맞지않나 생각했거든요 ㅜㅜ
김블쏜
17/05/18 17:53
수정 아이콘
헐............
신지민커여워
17/05/18 18:04
수정 아이콘
죽창 쓰게해주세요..
걔삽질
17/05/18 18:08
수정 아이콘
와 넘나 야마 도는 것
수박이박수
17/05/18 18:09
수정 아이콘
아오!!!!!!!!!!!!!!!!!!!!!!!!!!!!!!! ㅠㅠㅠㅠ
17/05/18 18:22
수정 아이콘
너무 잘해주시는거 같아요..... 여자마다 틀리지만....
17/05/18 20:03
수정 아이콘
왜....왜......
껀후이
17/05/18 20:36
수정 아이콘
2012 대선 출구조사 보는 기분이네요
어...어라...??
말다했죠
17/05/18 20:48
수정 아이콘
마 고마해 엉엉 이제 그만 해피엔딩 보여주세요
17/05/18 21:29
수정 아이콘
헐...
아니.. 최근 써주신 글은 거의 다 추천 눌렀는데 차마 이건 못 누르겠.. ㅠ
라이펀
17/05/18 22:15
수정 아이콘
허어 이분 또 낚으시네 다음 글에서 오늘부터 1일이라고 나온다에 주머니에있는 100원 걸겠습니다. 이분 선수에요 선수..
Outstanding
17/05/18 22:42
수정 아이콘
아니에요 이 분 불쌍하신 분이에요 사격금지..
네가있던풍경
17/05/18 22:52
수정 아이콘
왜때문에ㅠㅠ
나른한오후
17/05/19 00:40
수정 아이콘
허허.. 이분 왜이리 독자들과 밀땅을 잘하십니까!!!
밀땅을 여자분이랑 하란말입니다!! 엉엉 ㅠㅠ
17/05/19 03:23
수정 아이콘
이제 죽창은 다들 내려놨으니 해피엔딩을 보여주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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