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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11 10:37:37
Name likepa
Subject [일반] 부동산=투기 혹은 희망 이라는 공식에 대한 잡설
글의 서두에 미리 밝히겠습니다. 강남3구에 어디 즈음에 30평대 아파트를 자가 소유중인 마흔을 앞둔 직장인 입니다.
금수저인 것도 전문직인 것도 아닌 정말 평균연봉 조금 상회하는 7세 아이하나 키우고 있는 맞벌이 가정입니다. 그저 결혼이 동년배에 비하여 빠른 편 이었고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전세집 전전하는게 싫어 수도권 신도시에 프리미엄 붙은 분양권 대출 끼고 샀다가
아이 초등학교 입학전에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야 와이프나 제가 아이를 돌보기가 더 좋을거 같아 시세만큼 오른 신도시 아파트 정리하고 작년 여름에 강남3구 변두리 어디 즈음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전략적이지도 않았고 투자의 티읕도 모르고(주식은 아예 모릅니다), 그냥 꾸역꾸역 은행에 대출금 갚을려고 회사 다니고
세가족 조금 더 편히 살 생각에 이런 저런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이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이죠.
주변에서들 부동산의 귀재니, 타이밍 천재, 진지하게 정부쪽에 아는 사람 있었냐는 질문까지 받았지만 정말 그냥 의식주중 ‘주’의
해결에 대한 고민이 결혼과 출산으로 남들보다 몇 년 빨랐을 뿐 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주변에서 부동산 관련 상담을 엄청 요구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동네 전망이 어때 보이냐, 저 동네에서는 어떤 아파트를 잡아야 될 거 같으냐, 다음 부동산 정책은 어떨거 같으냐(내가 어케 알아요??!!!) 등등 별의별 질문과 의견을 구하시는데 그저 남들보다 좀 잘 알게 된 건 대출 서류의 구비 방법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상담을 해주다 보니 몇 몇 정말 남일이지만 가슴 아픈, 가슴이 아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동년배나 후배들과
상담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느낍니다만, 뭐라 딱 설명하기 힘든 감정 때문에 지금도 저는 정말 가까운 지인들에게 집 값이 올라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라고 명확하게 얘기하고는 합니다.
아마도 그 감정은 상담을 해 주는 저나 상담을 받는 그들이나 어느 순간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노력하고 견디면 더 나아지고
좋아질 거라는 ‘희망’ 이라는 단어가 ‘환상’ 처럼 되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편한, 더 좋은, 더 안정적인 장소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 중 하나일겁니다. 그리고 더 편한, 더 좋은,
더 안정적인 장소에서 사는 주체가 ‘내’가 아닌 ‘내 자식’이 되면 그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니라 어떤 짐승적인 본능처럼 절대 쉽게는 놓아버리지 못하는 욕구가 됩니다. 내가 자란 환경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내 핏줄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그 욕구는 이 아이는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욕구입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저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할 거 없는 사회에 널린 부속품 같은 존재라는걸 인정하는게 그리 분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이만큼은 저보다는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이가 용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가재든 붕어든 어떠한 존재로 살던 아이가 사는 개천이 별거 아닌 가뭄에 말라버리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고, 아이가 사는 개천에 말도 안 되는 폐수가 흘러 들어와 오염되지를 않기 바랄 뿐이며, 아이가 개중에 좀 나은 가재나 붕어가 된다면 더 큰 물에도 한번 기웃거릴 있을 만큼 충분한 수량이 그 개천에 늘 흐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집 값 오른거 가지고 ‘희망’씩이나 논하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도저히 올초에 입사한 넘사벽 스펙의 20대 후반 신입에게 그래도 참고 열심히 해라 라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소유한 아파트 값이 더 안 올라도 좋습니다. 아니 오히려 좀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인간적인 욕심 조금만 보태자면 등기칠 때 든 세금이랑 복비 더한 것 보다만 안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당연한 ‘희망’이 되 돌아온다면 말입니다.

모자란 잡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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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20/12/11 10:48
수정 아이콘
타이밍 천재시네요.흐흐
Michel de laf Heaven
20/12/11 10:5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희망이 환상으로 바뀌면서 오는 절망감’이란 표현이 가슴에 와 닿네요 그럼에도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죠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격언에 공감하는 요즘입니다. 다들 이 어려운 시기 잘 견디고 끝까지 살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쓴 분과 가족 분들 앞길이 순탄하시길 기원합니다
Grateful Days~
20/12/11 10:55
수정 아이콘
전 제가 소유한 아파트가 가격이 올랐으면 좋긴 하겠습니다. 나이들어서 자존심버리고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딱 이 한가지 이유..
바카스
20/12/11 10:56
수정 아이콘
아파트 얼마쯤 올랐나요
20/12/11 11:08
수정 아이콘
저도 전정권 말기 비슷한 지역에서 샀던 아파트가 현재 매입가의 3배가 넘었는데 마냥 좋기보단 뭔가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때만 해도 이제 집사면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분위기라 와이프 성화에 밀려 구매하고 다투기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와중에 영끌해 2,3 채씩 구매했던 주변인들을 보면 확실히 돈 벌 줄 아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글쓴님처럼 회사에서 뭣도 아닌 관리자로 있으며 뭐든 열심히 하면 꼭 노력은 보답한다는 말을 입버릇 처럼 했는데,
최근 들어오는 젊은 신입들을 보며 더 이상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2/11 11:12
수정 아이콘
와이프분이 현자셨네요.
20/12/11 11:17
수정 아이콘
지금 젊은 세대가 좌절하는 이유는 차근차근 자기 일 열심히 하고 테크트리를 밟으면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내 집 마련한다는 계획이 점점 불가능해진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최근 몇년 사이에 아주 급격하게요. 댓글중에 간혹 이런 절규를 투기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이 배아파 하는 한심한 소리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저는 투기보다는 햇지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집이라는게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주식이나 코인마냥 여윳돈으로 가볍게 사고 팔수 있는게 아닐 뿐더러, 내집 마련할 자금이 있어도 결혼이나 인생 계획에 따라서 시기를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지금 부동산 시장을 주도한다고 하는 30대들은, 남들 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데 나도 한 몫 챙겨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집을 샀을때 집값이 떨어져서 괴로운 것과 아무것도 안 했을때 집값이 상승해서 느끼는 좌절감을 저울질해 봤을때, 후자의 공포가 더 크기 때문에 햇지하려는 생각이 더 크다고 봅니다. 최근 몇년의 상황동안 젊은세대에게는 후자에 대한 반복학습이 너무 철저하게 진행되었어요. 사실 이미 햇지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30대들이 내집 마련에 뛰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옳은 방향이냐 잘못된 방향이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현재 정책이나 시장 상황이 이런 심리를 안정시켜주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카미트리아
20/12/11 11:23
수정 아이콘
코인 열풍이 불었을때 코인 투자하는 이유로
코인 아니면 서울에 집 못산다는 이야기가 많았었는데

그때 대비해서 서울 집값이 엄청 올라버렸죠...
20/12/11 11:17
수정 아이콘
전세 살지 않고 본인 소득 내에서 가능한 최선의 입지에 대출끼고 사서 실거주 하면서 시간에 따른 집값 상승 차익을 보신거니 정말 정석적으로 돈 번거죠. 앞으로도 임대 주거 안정성이 두 배로 커진만큼 당연히 그 비용도 비싸지고, 그게 집값에 착실히 반영되는 중이라 보는데.. 지금 사회초년생들은 정말 답답할 것 같습니다.
20/12/11 11:37
수정 아이콘
글과 관련하여 좋아하는 블로거의 글 추천하고 싶네요.
https://m.blog.naver.com/unimk/221643357680

누군가의 안정적인 거주에 대한 희망이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주의자의 투기로 보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맥스훼인
20/12/11 12: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보다 조금 많은 연배이신거 같은데 주변을 보니 결혼을 일찍 했느냐가 부의 형성에 너무나도 중요하게 되버린거 같습니다.
결혼하며 대충 대출받아 집 산 친구들과 아닌 친구들간의 차이가 너무나 커져버렸죠..
저도 기회있을때 빨리 결혼했어야 했는데..싶어요 크읔
20/12/11 12:20
수정 아이콘
투기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고

둘다죠.. 굳이 하나로만 생각하고 싶은사람들이 싸우는거구요..
여수낮바다
20/12/11 13:08
수정 아이콘
글 한줄 한줄을 매우매우 동감하며 읽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노오력하면 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공유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불과 몇년 사이에, 그 믿음은 깨졌습니다.
그래서 헐레벌떡 다들 달려듭니다. 자신과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열망은 말 그대로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무슨 투자수익이 주목적인게 아닙니다. 물론 이왕이면 투자수익도 따르면야 나쁠것 없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 못 사면 영영 못 산다'는 불안 공포 좌절감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안정세다' '자신있다' 등의 공염불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악화되는걸 본게 지난 몇년이고요.
20/12/11 13:43
수정 아이콘
누군가의 신념 안에선 투기죠.

전 그냥 반쯤 포기했습니다.
계란지단
20/12/12 02:42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 가재, 붕어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네요.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현재에는 어렵더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라도 이뤄지기를 희망한 한국에서의 범용한 삶의 모습들, 소위 서민들의 삶의 모습들에 대한 대략적인 맥락이 바로 이 정도의 인상이나 기대수준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진보 정치권의 유명인들이 가붕개와 실개천론과 유사한 이야기를 주장했을 때 대중적인 호응이 있었던 것일 테구요. 유명인사들이 마음속에 품고 구상한 미래상이 평범한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꿔왔던, 본문에서 그려낸 그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우리가 생각한 그 모습을 당신들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주장에 지지를 표했던 것이겠죠.
그러나 현실은 여러 의미에서 잔혹하게 다가왔고 남은 것은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소통과 이해가 아니라 심오한 오해를 교환해왔었다는 사실이었죠. 각자 가슴 속에 품은 뜻이 다름에도 여전히 한 쪽에서는 어긋난 마음에 눈을 돌리고 이뤄질 수 없는 기대를 여전히 품에 안고 일방으로 애정하는 현실을 보면 비극이란 게 삶에서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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