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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17:43
조선 왕가에서 정신병으로 유명한 사람을 셋만 꼽으라면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죠
근데 이 세가지 케이스 모두 부왕의 책임이 크다는 게 참... 그나마 후계자(?)는 잘 만난 게 사도세자지만, 정작 정조가 수구로 빠져든 것도 역적아들 컴플렉스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23/05/15 17:53
사도세자와 가장 유사한, 그러면서도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양반이 프리드리히 대왕이죠. 아비가 한 막장해서 정신질환 올 정도로 온갖 구박을 받았다는 점은 같은데, 사도세자는 못 견디고 스스로 자멸했다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악깡버로 존버해서 명군이 되었다는 차이가 꽤 재미있습니다. 영조가 어쩌면 사도세자에게 프리드리히 수련법을 시키다가 실패했던건...? 흐흐흐;;
23/05/16 10:07
사도세자가 27살즈음에 죽었고, 프리드리히가 28살에 즉위했는데, 둘의 가장 큰 차이점 세가지만 꼽으라면
1.사도세자는 궁궐을 못벗어났지만 프리드리히는 아버지 손에 동성애인 목이 잘린 후(...) 약 10년간 나가살았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그중 2년은 감금) 사도세자처럼 계속 같이 살았다면 프리드리히도 미쳤거나 아버지 손에 죽었을겁니다. 아님 아버지를 죽였던가. 2. 영조는 사도세자 죽고 정조가 장성할때까지 오래 살았지만 프리드리히의 아버지 빌헬름은 건강관리에 실패해 말년에 침대신세였고 적당히 살다 갔습니다. 3. 프리드리히는 친어머니가 왕비였고, 부왕보다 오래살았으며, 죽을때까지 프리드리히의 든든한 아군이었습니다.
23/05/15 18:28
오늘도 열심히 근무지를 개척 중인 공붕이.
공붕이의 특기는 업무 거부하기. 취미는 반말하는 민원인에게 반말로 응수하기. 윗선에 항의해서 짤라버리겠다는 민원인에게 제발 좀 짤라달라고 조롱하던 그가, 눈을 떠보니 사도세자가 되었다. ‘어차피 뒤질거면 평소처럼 꼴리는대로 하자.’ 공붕이는 그렇게 마음먹는데… "밥은 먹었냐?" "예." - 철퍽! '또 지랄이군.' 영조는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으면 꼭 물로 귀를 씻었다. 자식을 액받이 취급하는 영조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는 공붕이.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영조를 아버지가 아니라 미친정신병자게장xxx라고 생각하는 공붕이에게는 별 타격이 없다. "너는 무제가 좋으냐, 문제가 좋으냐?" "문제가 좋습니다." "이는 나를 속이는 것이다. 너의 마음은 반드시 무제를 통쾌하게 여길 것인데, 어찌하여 문제를 훌륭하다고 하는가?" 이건 뭐 답정너 병xx끼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며 공붕이는 박수를 친다. "경하드립니다!" "무엇을 경하한다는 말이냐?" 어리둥절해서 묻는 영조.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꿰뚫어보시다니! 우리 전하께서 천하의 갖은 학문에 통달하시더니 비로소 관심법까지 대성하셨습니다. 이것을 경하드리는 것입니다." 영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네가 감히 나를 놀리느냐!" "어찌 소자가 전하를 놀리겠습니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청국이 눈치보고 왜국은 전전긍긍할 것입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온갖 욕설을 하지만 공붕이는 정신을 빼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다. 민원인 앞에서 자주 쓰던 스킬이다. "저하, 주상 전하께서 많이 노하셨습니다. 어서 가서 용서를 비십시오." "제가요?" "예." "용서를요?" "예." "왜요?" "..." '어쩌라고 xx 폐세자 시킬거야?' 다른 자식도 없는데 이런거 가지고 폐세자 운운하면 지만 병신되는거지. 공익 때처럼 배째라 시도하는 공붕이다. 가뭄이 들자 세자를 탓하는 영조. "세자가 덕이 없어서 가뭄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공붕이는 지지 않고 답한다. "주상 전하, 부디 신을 청나라로 보내주십시오." "?" "그럼 청나라에 가뭄이 들테니 그 틈을 타 북벌의 대업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조는 나랑 장난하느냐며 노발대발하지만 정색 빨고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대답하는 공붕이. 허리 아프다고 구라치고 병가 3일씩 끊던 연기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본인이 꺼낸 이야기지만 이런 병신 같은 주제로 입씨름하려니 골치가 아픈 영조. 결국 소리만 지르다가 끝난다. 드디어 대리청정이 시작된다. 영조는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함경북도 성진 방영(城津防營)은 도로 길주(吉州)에 소속시키는 것이 편리합니다." "육진(六鎭)으로 통하는 길은 모두 9갈래가 있는데, 길주는 요충에 해당하지만 성진은 단지 3갈래 길만 막을 수 있습니다." 병영을 옮기라고 하면 왜 멋대로 정하냐며 호통을 칠 것이고, 그렇다고 자신에게 물어보면 대리청정의 의미가 없다며 갈굴 작정이다. 그러나 공붕이는 눈을 끔뻑이면서 묻는다. "길주가 어디요?" "..." 공무원이 엑셀로 생계급여 대상자표를 만들라고 하자 엑셀이 뭐냐고 묻던 공붕이의 실력은 여전하다. 참고로 공붕이는 컴활 1급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양위'를 꺼내든 영조. 이것은 그야말로 조선왕들의 대세자병기나 다름없다. 양위를 받으면 천하의 불효자에 반역자가 되니, 안받겠다고 버티는 세자를 죽기 직전까지 괴롭힐 수 있는 최강의 비책인 것이다. "나는 우둔하고 두려워 감히 대위를 맡을 수 없소." 과연 이렇게 울음을 터뜨리는 공붕이. 역시 필살기 양위쇼에는 공붕이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드디어 허리를 굽히고 영조의 갈굼에 시달려야 하는가? 공붕이는 말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세손이 총명하니 본인은 세손에게 선위하겠소. 나는 태백(太伯)이 왕위를 버리고 형산(衡山)에 숨은 예를 본받아 지방으로 내려갈 터이니 전하께도 그리 전해주시오." 기억해라. 공익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뿐. 공붕이는 그 길로 산천유람을 떠나고 소식을 들은 영조는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 답은 공익세자다. 출처 : 공익갤러리
23/05/15 18:45
사실 공익세자 였어도, 정조가 천재로 태어난 시점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긴 한데
언제 봐도 저런 강철멘탈은 타고나야 된다고 느낍니다.
23/05/15 18:55
있었으면 영조가 세자를 죽이고 신하들이 거기에 동조하진 않았겠죠
세자는 제외하고 세손에게 승계하고 싶었으니깐 세자를 죽이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한거라고 봐야..
23/05/16 10:19
없고 그래서 뒤주라는 답이 나온건데
몰래 독살 암살 같은거 안하는 이상 무능하다 멍청하다 맘에 안든다 따위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양녕도 다들 참참못하다 내린거라서
23/05/15 18:55
어디 전각에 가둬놓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을 뒤주에 가둬 죽였나 싶어요.
뒤주에 갇혀죽은 이야기가 워낙 익숙해서 몰랐는데, 사람을 김치냉장고에 넣어 굶겨죽였다고 생각해보라는 얘기를 보니 진짜 엽기적인 일이었더라구요.
23/05/15 18:56
원래 처음엔 깔끔하게 자결시키려고 했죠 그래야 세손의 정통성에도 문제 안생기면서 폐세자 안하고 그냥 죽일 수 있으니깐
그렇다고 사사 하거나 참형시켜버리면 그건 그거대로 세손의 정통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으니깐 그런 엽기적인 방법을 쓰게 된거라고..
23/05/17 00:28
자결이 불가능해진 순간, 사도는 죽어야했지만 죽여서는 안되었습니다.
죽이면 처형이되고 이는 역적이 되니 세손의 정통성에 영향이가죠. 하지만 반드시 죽어야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들어가자마자 죽지는 않지만 오래 살아서는 안되는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창고 같은 곳에 가두면 굶겨죽이는거야 가능했지만 뒤주보다 오래 살았을 것이고, 자결을 말리던 사람들이 음식이나 물을 주며 돕는걸 뒤주만큼 감시할 수는 없었을테죠. 그래서 생각한 공간이 뒤주였고, 왕이 뒤주에 가두라 했지 죽이라 한건 아니니 더이상 신하들도 따지지 못했죠. 그렇게 조금은 더디지만 확실히 죽는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기에 다들 사도의 죽음을 기다렸을겁니다. 유일하게 슬퍼한 사람은 아마 세손이 아니었을까요. 당시엔 혜경궁 홍씨조차 세손을 보호하는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부분이 소름끼치죠. 뒤주라는게 절대 즉흥적으로 나온 공간이 아니라 영조가 다 계산한 공간이라는 겁니다.
23/05/15 19:06
신하들도 저 일에 동참하면 정조가 즉위했을 때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서 최대한 영조를 말리는 쪽으로 갔죠
그러다 보니 영조가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방법도 그만큼 거칠 수 밖에 없었죠...
23/05/15 19:17
왕으로서는 또 백성들에게 좋은 임금이긴 했다는게...(..) 물론 영조 전반기와 후반기의 갭이 좀 크긴한데
좋은 왕이라고 좋은 아버지는 아니라는 예시이긴합니다. (이 반대가 순조..)
23/05/16 09:35
최악의 아버지 1위는 선조입니다 2위는 인조 그 다음이 영조구요
영조는 성군이 되라는 압박을 아들한테 풀었다면 선조는 시기 질투까지 한 미친왕이었죠 그리고 지 아들을 청에 볼모로 보내놓곤 게다가 성군의 자질까지 있는 아들에 열등감 느껴 며느리 손자까지 독살한 인조가 2위구요 그런거보면 태종은 참 인간적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을 그대로 둬서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긴 했지만
23/05/16 14:54
저는 선조는 광해군만 빼면 자식들에게 무한 애정을 준 아버지라고 봐서요. 딱 광해군한테만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이 영조보다 더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질투의 영역이 아닙니다. 사색당파를 가른 것이 정치적 영역이듯 말이죠. 또한 인조에 대한 국수님의 평에도 동의하게 어렵군요. 성군의 자질? 열등감? 글쎄요. 관점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23/05/16 17:27
임진왜란을 수습한 아들에 대한 시기심 그 후 선위파동을 생각하면 유독 광해군한테 박대했던 선조의 인성이 잘 보이죠 그럴꺼면 세자를 시키지 말았어야...
인조의 소현세자는 뭐 워낙 유명해서 드라마 추노 중 유일한 팩트이다보니... 아버지 대신 청에서 볼모 그러나 거기서 조선인 챙기고 청의 신임을 받고 왕재감으로 불리며 서학 등 각종 학문을 습득...개혁 군주의 부푼 꿈을 안고 예비 국모와 환향 그러나 인조 등의 박해 후 알 수 없는 병과 음독 추정으로 절명 아내 강씨도 사망 아들 셋 중 막내 제외 삭탈 및 병사 봉림대군이 북벌북벌한건 자기 형처럼 되기 싫었기 때문인게 설득력 있는 점을 보면 소헌세자는 인조가 치운거죠 그게 열등감이든 청조와 친한거에 대한 왕권 위협이든
23/05/16 17:59
청나라야 볼모로 잡아간 입장이니 별 말을 다 할 수 있죠. 청의 왕재감 이야기는 립서비스로 봐야합니다. 유명한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일부 사가를 제외하고는 개혁군주론도 별 반 증명될 바가 없는 희망사항으로 보고 있는데요. 설사 개혁의 의중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상황상 실현은 불가능입니다. 개혁의 부재를 인조 한 명에게 책임을 씌울 일이 아닙니다. 대동법과 가장 관련이 깊었고 호포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진 시기의 군주였음을 생각해보세요. 그 정도가 한계였던 겁니다. 국론 전체가 오랑캐라면 치를 떠는 상황에서 여론을 저버리고 '매국'의 길을 지향하는 일이 과연 가능했을 것 같습니까? 폼만 가득한 북벌의 기치를 백 년이 지나도 내리지 못했던 것은 여론의 문제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에 통일을 국시에서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 명분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 그 시절에,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왕이, 전쟁에서 패한 왕 또는 그 아들(북한물 먹고 왔다 생각하시면 됩니다.)이 그 오랑캐 냄새가 나는 정책을 시도한다?
그러면 그건 개혁군주가 아니고 왕조 셔터 내리겠다는 멍청이죠.
23/05/16 18:10
군주 개인에게 자꾸 모든 일의 원인을 묻다보면 해결이 안됩니다.
선조의 경우도 딱 광해군 하나 빼고는 자식들에게 무르디무른 아버지였습니다. 광해군도 세자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렇게 못할 것도 없었죠. 세자에 오른게 문제고 그 다음은 영창대군을 얻은게 문제고 영창대군을 얻고 빨리 죽어버린게 문제입니다. 역사를 잘 아시니 임해군과 순화군의 이야기도 아실 것입니다. 사람을 죽여도 오냐오냐 지 할머니 장례식 장 옆 창고에서 궁녀를 범해도 오냐오냐(물론 사가로 내쫓기는 했지만) 광해군도 세자만 아니었으면 이런 대접을… 아 그건 모르겠네요. 영조도 정조가 약간이나마 성장하기 전에 원래 계획대로 다른 왕자를 얻는데 성공했더라면(딸이 대신 나왔지만요) 지금보다 평가가 더 나빴겠죠. 그 경우는 어떻게 일이 돌아갔을지 가늠이 안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영조였으면 일단은 정조부터 죽였을 것 같아요. 나온게 딸이라 그렇게는 안돌아갔지만. 명군의 자질을 보여줬다? 그건 그 시점에서는 그저 가능성일 뿐이죠. 어쨌든 if는 접어두고 영조는 아들을 직접 죽인 왕이라는 점에서 다른 왕들과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최악의 할아버지는 인조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영조가 될 수도 있었죠. 사실 이 이야기 전체가 그냥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아니라 왕과 세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기는 합니다. 그 관계속에서 부자지간의 정을 찾는다는 접근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23/05/17 00:50
처음부터 세자가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으면 그만한 미션을 주면 안되었죠
선조는 광해군에게 분조를 주었고 대북파 옹호를 받으니 왕권 위협 인조는 소현세자한테 볼모 미션을 주었더니 임청 옹호를 받아서 왕권 위협 통상적 부자 관계와 다르고 권력은 나누지 못한다는 속성이 있더라도 왜 저 두왕만 저 짓을 했을까요? 숙종이 경종 미워했어도 저 지경은 아니었고 태조가 태종을 미워했어도 공은 인정했습니다 영조는 완벽컴플렉스에 노론 눈치를 보는 포지션이니 가혹했다 쳐도 선조나 인조의 행동은 후세가들한테도 욕을 먹었습니다 결국 무능해서 전쟁에서 패했고 장수들이나 세자가 수습하니까 위협을 느껴 제거했는데 아들 갈구는거와 아들 자체를 위협으로 느끼는거와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그래서 전 선조나 인조가 영조보다 더 최악이라고 보는거구요 물론 셋다 적장자 포지션이 아니라서 컴플렉스가 더 강했다고 보긴 합니다
23/05/17 01:21
선조와 인조는 전쟁에서 졌으니까요.(임란은 이긴거긴 하지만) 후세가들이 욕하는 주된 이유가 전쟁에서 져서 아닙니까. 그 후세가들이 누군데요? 조선이 망하고 나서의 사람들 아닙니까? 그 전이야 당연히 연산군 광해군이 조선 최고의 암군이라는게 주된 평가였고요. 고종보고 무능하다무능하다 해도 앞의 순헌철 3인방보다 무능했겠습니까. 누구는 상황참작되고 누구는 안되고 다 전쟁에서 져서 그런거죠.
왕조를 망하지 않게 지켜냈다는 것이 최대관건이었던 시대와 민족과 영토를 얼마나 어떻게 지켜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지만... 이 이야기가 핵심은 아니니까 이 쯤 해두겠습니다. 여하튼 선조나 인조나 적장자도 아닌데 전쟁에 진 군주라는 왕권에 치명적인 오점을 안았던 상황에서 후계구도가 벌어질 수 밖에 없던겁니다. (둘이 잘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든게 잘못이죠.) 그리고 태종 숙종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시다시피 숙종은 조선에서 가장 정통성이 높은 적장자입니다. 그에 비해 선조와 영조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죠. 경종이요? 경종의 정통성은 숙종의 정통성에서 내려오지만 불안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숙종의 정치 방식이 그다지 상식적으로 평가받지 않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죠. 까놓고 경종을 내버려둔 숙종이 이상한게 맞지만 적장자 중의 적장자였던 숙종이 딱히 신경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종이 10년 이상 재위에 있었어 보십시오.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진짜 숙종이 만들어놓은 후계구도가 무난한 걸로 여겨졌을까요? 태조-태종의 관계는 조사의의 난으로 이야기가 다 된것 같습니다. 난의 배후에 태조가 있었음은 말하나마나 뻔하고 공을 인정하건 안하건 아들을 상대로한 역모에 가담했다면 그게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니었을까요? 뭐 공이야 인정했겠죠. 태조가 인정안하면 어쩔겁니까. 힘이 없는데. 그나저나 아버지로서의 관계와 왕으로서의 관계가 딱 잘라서 평이 안되는군요. 그러니까 애초에 망한 이야기에요. 저도 이 얘기를 하면서 이게 정답이다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주제에서 이미 휙 벗어난 것 같기도하고. 뭐랄까... 다만 별 생각없이 올린 댓글이었습니다만 생각 이상의 쓸모가 있긴 하네요. 요새 이런 거 하기 쉽지 않아서.
23/05/15 21:44
영조는 정말 끔찍하게 성실한 군주였습니다.
후기 조선의 그 종법도 참 끔찍하게 뻣뻣했습니다. 왕권 좋다지만 정말로 왕권이 막강했으면 세손에게 다이렉트 패스하는 게 뭐 문제 있습니까. 크킹에서도 왕권의 극의는 후계자 자유선택권이죠. 물론 정통이라는 것은 어렵기도 합니다. 절대권력의 표상 북한도 김정남이 뭐 할 인물이 못 되건만 끝내 비명횡사했죠.(백두세손은 어디 잘 있나? 무소식이 희소식)
23/05/15 23:59
조선시대 배경으로 한 크킹없냐. 우리나라 개발진 뭐하냐.
내가 어린 시절 꿈꾼 게임들 다 현실화 되었는데 이것만 없어! (물론 가능성 없음)
23/05/16 01:50
애초에 아버지 영조부터 머리가 비상한 왕이었고 아들 정조는 조선에서도 손꼽는 천재였는데 사도세자가 공부를 싫어하긴 했어도 둔재였을 가능성은 희박하죠. 유전이 어디 가나요.
정조도 세손이라서 예쁨을 받은거지 영조같은 아버지 밑에선 누가 세자였어도 마찬가지가 되었을겁니다. 조금만 밉보여도 인격말살 수준으로 갈구는 아버지 밑에서, 그것도 반항 한번 할 수 없는 유교 법도 아래서 35년.. 미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죠.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23/05/16 05:01
사람을 죽인건 당연히 잘못한거고, 실드받지 못할행동이지만, 솔직히 위에 분 말씀대로 저렇게 구는데 어떻게 살아남으라는건지도 의문이긴합니다. 사도세자가 일방적인 피해자는 절대 아닐지 몰라도, 사도세자를 그렇게 만든건 영조죠. 이건 아마 그 누구도 부정못할겁니다.
23/05/16 08:27
크킹 하면 게임적으로는 이해가 되긴 합니다. 아무것도 유전 못 받은 아들에 천매강 손자. 이러면...근데 게임이니까 그러는거지 현실에서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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