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2/13 02:04:46
Name 눈시BBbr
Subject 광해, 왕이 ( ) 된 남자


"임금이 세자를 정하지 못하여 여러 왕자의 기상을 보려고 앞에다 보물을 성대하게 진열해 놓고 마음대로 취하도록 하니, 여러 왕자가 서로 다투어 보물을 취하는데 유독 광해군만은 붓과 먹을 가지므로 임금이 기이하게 여겼다." - 정무록

"임금이 시험삼아 여러 왕자에게 묻기를, '반찬 중에서 무엇이 으뜸이냐?' 하니, 광해가 대답하기를, '소금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소금이 아니면 온갖 맛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자, 임금이 또 묻기를, '너희들이 부족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냐?' 하니, 광해가 말하기를, '모친이 일찍 돌아가신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 대답을 기특하게 여겼다. 광해가 세자가 된 것은 순전히 말에 힘입었다고 한다." - 공사견문

"광해군 혼은 젊은 나이에 재주가 특별히 뛰어나 신하와 백성들이 복종하니, 혼으로 하여금 충성스럽고 의로운 배신을 선발하여 데리고 전라와 경상 지방에 주차해서 왜적의 방어를 맡게 하여 성과를 요구하는 데 편리하게 하소서." - 양호

"조선 세자는 청년으로 영특하여 그 나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복종하니, 마땅히 전라ㆍ경상 양도에 있으면서 명 나라 장수 유정과 만나서 협력하여 수비하라는 황제의 명을 이미 받았다" - 송응창

왕이 되기 전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습니다. 까는 경우는 아무래도 영창대군과 엮이는 경우겠죠. 어렸지만 총명했던 영창이 성깔 더러운 광해 대신 됐어야 했다... 이런 식이죠. 뭐 위에 공사견문에서도 말빨만으로 왕 됐다는 투로 적고 있긴 하군요.

실록으로 가면 굳이 말 할 필요가 없겠죠. 아무래도 아버지랑 비교가 돼도 너무 되니까요. (...)

그는 임란 때 요동으로 가겠다는 선조를 대신해 전쟁을 지휘합니다. 분조, 둘로 나뉜 조정 중 하나를 이끌고 말이죠. 선조가 그대로 요동으로 갔다면 그가 정말 다 이끌었겠지만, 못 가면서 좀 애매해졌죠. -_-; 요동으로 도망가려다 실패하고 의주에 틀어박힌 왕과 일본군 점령지를 종횡무진하며 전쟁을 이끌었던 세자, 이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 명에서 오더라도 백 명 정도만 오고 건물도 안 좋은 걸 내준다고 했죠 -0- 이런 상황에서 고니시가 평양에서 멈춰버리니 이건...


임진왜란 때 겪은 실무경험, 이걸 비교할 수 있는 왕은 나라를 세운 태조, 태종 정도겠죠. 형과 동생이 있음에도 당연한 수준으로 세자로 낙점된 것, 이건 당대에도 이미 그 능력이 입증됐다는 얘기입니다. 그 개차반-_- 명나라 장수들도 인정한 능력이었습니다. 거기다 임란 때 그는 20대였습니다.

조선 역사상 이 정도로 준비된 왕을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 역사로 봐도 정말 어렵게 왕이 된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연산군과 동급의 폭군으로 취급됐고, 반정을 당합니다. 그리고 공정왕이 정종으로,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숭되면서 역시 유이하게 왕을 했으면서 왕으로 대접받지 못 한 이가 됐죠.

조선의 왕들 중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이가 있다면 바로 광해군일 겁니다. 조선시대 내내 폭군으로 여겨졌다가 일제시대부터 재평가가 시작됐고, 지금은 그 재평가가 너무 지나쳐 반감이 나오고 있죠. 그에 비하면 다른 왕들은 평가가 크게 엇갈리진 않죠. 정조(근대화 떡밥)나 세조(쿠데타 -_-a), 고종(무능이냐 어쩔 수 없느냐) 정도는 좀 싸우는 편이겠습니다만.



예전에 병자호란을 다루면서 그에 대해 좀 다루긴 했었죠. 하지만 역시 어려워요. 그 때는 중립외교 떡밥과 전쟁 준비를 정말 한 거냐는 것을 주로 다뤘고 나머지는 무시했으니까요 -_-; 나름 제게 있어 광해군의 모습을 정리하긴 했습니다만 다시 좀 제대로 다뤄보고 싶긴 하네요. 과연 그가 성군일지 폭군일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영화 광해는 두 사람으로 나눠서 간단히 해결했군요 (...)

+) 제게 제일 어려운 건 대동법과 송시열로 대표되는 효현숙 때입니다. 이건 뭐 다 어려운 떡밥들 뿐이니 =_=; 언젠가는... 쓸 수 있겠죠.

이번 편에서는 업적보다는 좀 개인적인 부분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왕이 곧 나라이던 그 시대, 왕의 개인사는 곧 그 왕의 정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와 연결되겠죠. 그럼 시작해보죠.

아 그리고


저는 병헌이형보다 태우형이랑 진영이형이 더 좋다능 *-_-* 7번방의 선물 류승룡도 좋았지만 정진영은 정말 명불허전이여요

---------------------------------------------------------------------

뭐 이젠 욕할 기운도 없는 선조, 그는 중전 박씨에게 자식을 얻지 못 합니다. 대신 공빈 김씨를 가까이 했고, 두 명의 아들을 얻죠. 임해군과 광해군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광해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게 됩니다. 1577년, 광해군 세 살(임해군 네 살) 때였습니다. 그녀는 죽으면서 다른 후궁들이 자기를 저주해서 그랬다고 했고, 선조는 다른 후궁들을 모질게 대했다고 하죠.

하지만 죽은 이가 산 이를 이길 순 없는 법이죠. 그 틈을 파고든 이가 있었으니 인빈 김씨입니다. 그녀는 은근히 공빈을 욕했고 선조는 그녀에게 빠지면서 공빈 김씨의 아들들과도 멀어졌죠. 이렇게 그녀는 물론 다른 후궁들도 아들을 순풍순풍 낳았구요. 그 중 선조의 이쁨을 받은 건 신성군 이후, 인빈에게서 얻은 넷째 아들이었죠.

+) 멀리 했다 했는데 해봐야 1년도 안 된 거 같고 말이죠 -_-a

문제는 첫째 임해군이 다 커가도록 세자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못 해도 열 살 때는 해야되는데 말입니다. 임란 때 이미 임해군은 열아홉살이었습니다.

임해군이야 성깔이 워낙에 더러워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으니 세자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째 광해군이 있었죠. 그 역시 열여덟살이었구요. 하지만 선조는 딱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직계가 아닌 방계라 컴플렉스가 있어 적자에게 물려주려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후 영창대군과 결부된 문제죠. 하지만 그럴려면 중전 박씨와 열심히 생산활동(-_-)을 해야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빨리 국본, 나라의 근본을 세워야 했죠. 적통 문제는 이미 자신이 깨뜨렸고, 그럼에도 그는 정치를 정말 잘 해 온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통설은 선조가 신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딱히 명분이 없어서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는 것이죠. 1591년에 정철이 류성룡 등과 함께 광해군을 세자로 하자고 건의했고, 선조는 이에 화내면서 정철을 쫓았다고 하죠. 이산해가 세운 계략으로 인빈의 동생인 김공량과 짜고 정철의 뜻은 인빈과 그의 자식들을 해치려는 것이다고 퍼뜨린 것입니다. 인빈이야 선조에게 달려갔고 정철이 딱 그 얘기를 꺼내자 열 낸 거였죠.

이른바 건저의建儲議 사건입니다. 류성룡은 소극적이라서 한 발 뒤에 있었고, 같이 하자고 했던 이산해는 병을 핑계로 같이 안 간 것이죠. 뭐 이게 딱 기축옥사(정여립 사건)가 끝나 정철의 이용가치가 떨어졌을 때랑 겹쳐서 어디까지가 사실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선조가 세자 책봉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는 건 확실하죠.

그러다가 큰 일이 터지니 그게 임진왜란이었죠. 자기도 죽거나 명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자가 필요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대신 전쟁을 이끌 능력 있는 세자가 필요했죠. 피난 논의가 한창이던 4월 28일 밤, 선조는 세자를 세워야 된다는 건의에 대신들을 불러모읍니다. 하지만 막상 말은 나왔는데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죠. 선조는 누가 좋겠냐, 이산해와 류성룡 등 대신들은 님이 알아서 하셈이라고 하는 말을 서너차례나 하면서 밤이 깊었다고 합니다. 다들 머리속에 같은 사람이 떠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말을 못 했죠. 안 되겠다 싶어 이산해가 물러나려 하자 애초에 얘기를 꺼낸 신잡이 "오늘은 결정내야 된다"면서 잡습니다.

결국 선조의 입에 나온 것이 광해군, 참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냄새가 팍팍 납니다. 다음 날로 간략하게 세자 책봉을 한 후 피난길을 떠나게 됐죠.


이 때가 광해군의 나이 열여덟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왜란이 없었다면 그가 세자가 되기나 했을까 싶은 것이죠.

------------------------------------------------------------------

"세자가 책봉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세자가 없는 것이다." - 1599년

뭐 우예됐든간에 세자가 됐으니 이제 끝났다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죠. 문제는 명에서 나옵니다. 임란 내내 광해군의 능력을 신뢰한 명이었지만, 정작 세자 책봉은 뒤로 미룹니다. 지금은 전쟁이 급하다는 이유였으니 나름 납득할 만한 거긴 했죠. 하지만 임란이 끝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째 임해군이 있는데 왜 둘째를 하냐는 거였죠.

세종 대까지 조선에 참 많은 것을 요구한 명이었습니다만 이건 내정간섭 수준이었습니다. 조선 초 정도전과의 대립 외에 정치적인 간섭은 없었고, 세종 이후 무리한 요구도 많이 줄었죠. 그런데 갑자기 세자 책봉을 거부한 겁니다. 이런 문제는 말만 허락이지 조선에서 정하면 인정해주는 수준이었고, 청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란 때 파병해 줬으니 더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거였을까요?


조선 황제 (...) 만력제

이건 명의 내부사정과도 연결됩니다. 만력제는 셋째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신하들은 그걸 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서 둘째가 세자가 되는 걸 인정해주면 만력제가 어디로 튈지 몰랐죠.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의 책봉을 인정하기가 참 어려웠죠.

+) 만력제가 그냥 밀어붙였다면 모르겠는데 그럴 놈이 또 아니라서 -_-; 아나 조선황제라면서 이런 건 또 무관심인지...

문제는 선조가 이를 오히려 좋아했다는 겁니다. 뭐 임란 중에야 중요하게 여겼겠습니다만, 이런 상황이 그에게 불리한 건 또 아니었거든요. 임란 끝난 1599년에 바로 위의 말을 한 것만 봐도 -_-;

요동으로 가려고 애쓰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돼 버린 선조, 참 하면 안 되는 짓을 합니다. 선위 파동이었죠. 왕이 물러났다 했을 때 신하가 아 그러셈 하면 이건 불충입니다. 선조 때 세자에게 선위하라는 상소가 왔고, 선조는 그걸 역이용합니다. 자기가 물러난다 말을 할수록 신하들은 그걸 말려야 했고, 자기의 입지는 더 높아졌죠. 태종과 영조도 참 많이 써먹었던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부작용은 세자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태종은 세종의 입지를 확실히 만들어주는 걸로 막았지만, 영조는 그런 세자를 자기 손으로 죽였죠.

이 때 선조의 방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임란 내내 심심할 때마다 선위 파동을 벌였고 신하들은 전쟁은 둘째치고 무릎끓고 반대해야 했으며, 광해군 역시 그랬습니다.

그렇게 떨어져가는 세자의 권위, 여기다 명에서는 끝까지 인정 안 하는 상황, 이게 선조에게는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자를 바꿀 기회 말이죠.

-----------------------------------------------

"중궁의 책봉을 즉시 주청했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유사가 계품하지 않으니 일이 자못 전도된 듯하다. 먼저 국모를 바르게 한 뒤에야 인륜의 기강이 서게 되는 것이니 어찌 국모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 살펴서 하라" (1602년)

역시 명에 세자 책봉해달라고 신하들이 말하자 선조는 이렇게 답합니다. 의인왕후가 1600년에 죽었고 국모가 필요하긴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참 묘하죠.

이렇게 정해진 게 인목왕후 김씨입니다. 1584년생, 열아홉의 나이였죠. 참 초스피드로 왔습니다. -_-; 뭐 결혼은 십대 중반에는 하고 남자가 늙고 재혼일 경우 좀 나이 찬 처자를 받긴 했으니 틀린 선택은 아닙니다. (당시 열아홉이면 노처녀죠) 문제는 이게 광해군에게 미칠 여파죠.

명이 책봉을 거부하니 세자는 세자가 아니고, 굳이 빨리 할 필요는 없다, 이게 선조의 입장이었습니다. 뭐 인목왕후랑도 아들이 없었으면 문제 없었겠습니다만... 1606년에 영창대군이 태어나 버렸죠.

나이야 한참 어리지만 적자의 탄생이었습니다. 선조가 정말 방계가 컴플렉스가 돼 적자를 바란 거면 광해군에겐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광해군 자신이 싫은 거라면?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죠. 명분을 전자로 삼지만 속마음은 후자일 수도 있고 말이죠.

"이로부터 세자가 문안할 때마다 안으로부터 꾸짖기를, '어째서 세자의 문안이라고 이르느냐. 너는 임시로 봉한 것이니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아라.' 하니, 세자가 땅에 엎드려 피를 토하기에 이르렀다. 기질이 본래 약했는데 이로 인하여 넋을 잃고 사리에 어둡게 되었다." - 정무록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갑니다. 선조는 광해군을 괄시했고, 신하들도 둘로 갈립니다. 선조 말은 북인이었던 유영경이 선조의 마음에 들었고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갈립니다. 유영경은 특히 영창대군을 밀었고, 소북 내에서도 유당(黨)을 만듭니다. 반면 정인홍 등 대북은 광해군을 밀었죠.

이런 가운데서 인목왕후는 자기 가족들을 중심으로 재산도 축적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 갑니다. 영창대군의 옷도 세자 수준으로 입혔죠. 그럴수록 광해군의 입지는 좁아져갔고, 궁녀들까지 그를 무시하는 수준까지 갑니다. 빨라도 너무 빨랐죠. 그 정도로 중전이라는 입지와 적자를 낳았다는 자신감이 있었겠습니다만... 그 모든 건 선조가 오래 살아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1607년, 어느새 재위 40년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56, 임란을 겪은 것치곤 정정했죠. 비교적 건강하게 오래 산 편이지만, 시간은 그를 붙잡기 시작합니다.

선조 40년 10월 9일, 그가 새벽에 갑자기 쓰러집니다. 이틀 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왕위를 넘기거나 안 되면 대리청정이라도 시키겠다는 명을 내리죠.

유영경은 이를 반대합니다. 뭐 원래 이런 말 나오면 반대하는 게 맞긴 합니다만 오늘내일 하는 상황은 또 다르죠. 인목왕후는 현실 감각이 있었던 건지 선조의 명을 따르라는 언문 교지를 내렸죠. 유영경은 또 반대하고...

차라리 그대로 죽었으면 좋겠는데 선조는 또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서 세자 자리를 둘러싼 대립이 수면 위로 올라와버리죠.

여기에 앞장선 것이 정인홍이었습니다. 그는 유영경이 세자를 세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유영경은 그게 아니라고 해명합니다. 뭐 사실 이 때 그게 맞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선조는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정인홍이 세자로 하여금 속히 전위를 받게 하려고 하였으니 그 스스로 모의한 것이 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실은 불충함이 극심하다. 제후의 세자는 반드시 천자의 명을 받은 뒤에 비로소 세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자는 책명을 받지 못했으니 이는 천자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천하도 알지 못한다." (41년 1월 22일)

좀 살 거 같으니까 딴 생각이 드나봅니다.

그런 상소를 올린 정인홍을 비롯한 대북을 좀 처리해주고 세자고 뭐고 일단 내가 왕이다 하고 있었던 선조, 하지만 그에게 허용된 시간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2월 1일, 그는 찹쌀밥을 먹더니 쓰러졌고, 그 날로 세상을 뜹니다.

광해군은 그 날로 왕위에 오릅니다. 보통 3일은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종의 경우에서 그렇듯 이를 급히 했다는 건 그의 입지가 얼마나 약했는지를 말해줍니다. 흥미롭게도 이걸 주도한 건 인목왕후였습니다. 광해군의 마음을 맞추려 한 걸 보면 나름의 정치감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늦은 것 같긴 하지만요.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 하죠. 선조는 이렇게 자기 자식의 앞길을 참 어둡게 하고 갑니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유영경 등에게 보낸 유언이었죠.

"단지 대군이 어린데 미처 장성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내가 불행하게 된 뒤에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니, 만일 사설(邪說)이 있게 되면, 원컨대 제공들이 애호하고 지키기 바란다. 감히 이를 부탁한다."

... 어쩌란 겁니까. 세자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영창대군 걱정하고 있었던 거죠. 물론 어리고 정을 많이 준 자식이니 부탁할만 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세자에게 더 힘을 실어줬어야죠.

거기다 세자에게 내린 유언은 이겁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내가 있을 때처럼 하고 참소하는 자가 있어도 삼가 듣지 말라. 이로써 너에게 부탁하니 모름지기 내 뜻을 몸받아라."

유영경 등에게 따로 내린 유언이랑 합쳐보면 참 묘하죠. 이게 정말 광해군을 위해서 한 말인지 영창대군을 위해서 한 말인지요. 지가 애초에 자식을 사랑했다면, 아니 자식 중에 가장 중요한 세자를 아꼈다면 상황이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건데 말입니다.

그렇게 광해군은 왕위에 오릅니다. 세자 생활만 16년이었습니다. 임란이 터지지 않았으면 세자가 되지 못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선조가 한 10년만 더 살았으면 왕이 되기나 했을지 궁금한 상황입니다. 이 모든 건 왕이 된 그에게 너무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광해, 왕이 참 힘들게 된 남자입니다. 이 괄호에 뭘 붙이든 '어렵다'는 거면 뭐든지 다 들어갈 겁니다. 욕으로 점철한 후 '힘들게'라 하면 더 감정이입이 될지도요 -_-;


뭐 어쨌든 왕 됐으니 기념샷~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죠. 그는 세자였던 기간만큼도 왕 노릇을 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쫓겨난 후 죽을 때까지의 기간 역시 왕이었을 때보다 더 길었죠. 그의 인생에 비하면 참 짧았던 왕이었던 시절, 그 때로 가보도록 하죠.

=========================================================

... 원래는 설 연휴 동안 특별편 느낌으로 쓰려고 했던 건데 -_-; 분량조절 실패군요. 에궁;;; 무오사화는 좀만 더 기다려주셔요.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3-04 07:42)
* 관리사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사직동소뿡이
13/02/13 02:20
수정 아이콘
빨리 다음 편 써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예요
Practice
13/02/13 02:21
수정 아이콘
광해군은 진짜 세자 시절부터 해서 왕이 된 이후, 폐위된 이후까지 너무나도 기구한 것 같습니다. 공이 어떻고 과가 어떻고 이런저런 소리가 많긴 하지만, 가진 바 능력과 뜻에 비해서 이렇게까지 기구하게 살다 간 왕은 또 없지 싶네요.
13/02/13 02:21
수정 아이콘
으앜
재밌게 읽는도중
갑자기 광고배너가 보이다니ㅜㅜ

엄...엄청난 절단신공!!
냉면과열무
13/02/13 02:27
수정 아이콘
멋져요!!!!! 아 정말 빠져드는 글입니다.
알고보면괜찮은
13/02/13 02:44
수정 아이콘
선조는 진짜 자기가 영창이 클 때까지 살 수 있으리라 여겼던걸까요...선조가 죽을 때 영창대군의 나이가 겨우 세살. 군호도 받지 못했었죠. 광해군 즉위하고 나서 몇년 뒤에나 영창이란 군호를 얻었구요.
10년은 더 살 수 있다 생각했어도 13살. 대비가 수렴청정한다 해도 전란 직후의 어린 왕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죠. 도대체 뭔 생각을 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Cool Gray
13/02/13 02:46
수정 아이콘
유경영이라고 쓰신 게 몇몇 보이네요...
어쨌든 광해, 참 불쌍한 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자 시절도 안습하고, 왕위에 올라서도 명과 청 사이에 끼여서 고난의 행군을 하지를 않나, 인척 문제와 그로 인해 비화된 정계 갈등에 휘말리지 않나, 정변 얻어맞지 않나...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왕이 인조고 그 다음이 선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불쌍해 보입니다. 아 인조... 생각하니까 갑자기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네요. 쩝.
다음 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honnysun
13/02/13 13:40
수정 아이콘
저도 인조를 최악의 왕으로 생각합니다.
왕이 되질 말았어야 했는데..
13/02/13 14:31
수정 아이콘
능양군도 사실 많이 봐줘서 살아있었던겁니다. 조지려면 얼마든지 조질수 있었죠.
왕이 안될 사람이 왕이 된후에 아무 생각 없이 외치를 하니 원..
13/02/13 03:04
수정 아이콘
외쳐!!
(눈시)BB!!!!!!
사직동소뿡이
13/02/13 03:07
수정 아이콘
이런 식으로 눈시님이 마성의 피지알러가 되가는 거군요
역시 눈시님....
13/02/13 05:44
수정 아이콘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를 들켜버렸군요...
김도진
13/02/13 03:28
수정 아이콘
글과 상관없이 딴소리지만

이병헌 제가 참 싫어하는 배우라 스크롤을 쭉 내려버렷네요
혜교누나, 민정누나를 너무 좋아하는데, 누나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사실 확인은 안되는 뜬소문이지만 몇년전 이병헌 여자문제에 대해 안좋은 쯔라시도 퍼졌었고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이랑 항상 연인관계로 출연해서 참 정이안가요
흑흑흑...
13/02/13 04:12
수정 아이콘
아아아 불쌍하다....
유료체험쿠폰
13/02/13 04:30
수정 아이콘
선조는 까야 제맛
홍승식
13/02/13 05:13
수정 아이콘
진짜 선조. 하아~
세조와 함께 제가 생각하는 조선왕조 최악의 왕입니다.
모자란 왕이면 바보라고 놀리기만 하면 되겠는데, 똑똑하신 분들이 왜 결정적으로 후대에 안좋은 일만 넘겨주나요.
왕조시대에 왕 자신의 이익은 나라의 이익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의 장래를 망쳐버린 대표적인 분들이죠.
능력이라도 없던가. ㅠㅠ
불쌍한오빠
13/02/13 06:21
수정 아이콘
눈시BBbr님처럼 광대한 역사지식을 가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같은 초심자가 볼 수 있는 책같은게 있을까요?ㅠㅠ
13/02/13 14:33
수정 아이콘
쉽게 보시려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부터 보시고 개별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만화라서 읽기가 쉬운 강점이 있는데 세세한 디테일을 원하시면 각각에 해당되는 책을 구해서 보신후에 다시 돌아오시면 되죠.

쓰고보니 시오노 스타일이군요 -_- 이게 잘못하면 단편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지만 초심자분들이 입문하시기엔 좋습니다.
불쌍한오빠
13/02/14 02:00
수정 아이콘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땐 안그랬는데 나이 좀 먹으니 역사가 땡기네요
국사교과서와 함께 파봐야 겠습니다 크크크
나이렁
13/02/13 06:53
수정 아이콘
새벽에 일어나서 정독해버렸네요
언능 담편 주세용 ^^*
레지엔
13/02/13 07:14
수정 아이콘
아비가 미치면 어찌 되는가가 조선사에 종종 보이는데 그 중 으뜸은 누가 뭐래도 영조일 거고, 선조도 세 손가락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하긴 죄다 미쳐돌아갔던 고려 말기보다야 낫겠다만은...-_-;
Je ne sais quoi
13/02/13 07:27
수정 아이콘
역시 선조 망할 넘 ㅡ.ㅡ
마스터충달
13/02/13 07:43
수정 아이콘
선제리 손제리는 까야 제맛
13/02/13 08:10
수정 아이콘
다음 편을 빨리 내놓으세요!!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항즐이
13/02/13 08:13
수정 아이콘
진짜 선조는 신하빨...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눈시BB님의 글을 읽고 나니 신하빨+세자빨..

얼른 다음편도 흑흑.
나이트해머
13/02/13 09:06
수정 아이콘
근데 솔직히 광해군을 선조보다 좋게 보기 힘들어서... 거기다 잘못한 걸 죄다 '이게 다 선조 때문이다!'로 몰고 가는 것도 변명으로밖엔 안들리고. 왕권이 강했다 약했다는 보기에 따라 갈린다 봅니다. 선조의 견제도 임란 기간중에 정국 주도권이 광해군에게 넘어가는 걸 막으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군주와 후계자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거야 제환공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죠. 제환공은 아들들 때문에 굶어죽었고, 한무제는 황태자와 내전을 벌였으며, 북위 태무제 또한 태자를 죽였고, 당고조는 아들들 싸움에 강제 폐위, 당현종은 태자를 죽였고, 당숙종은 그런 당현종을 태상황으로 만든 후 유폐시키고 군재가 보이는 아들을 사사, 당대종은 또 그런 당숙종 말년에 황후와 충돌하여 당숙종을 거의 쇼크사시켰고, 원나라 때쯤 가면 내전과 쿠데타의 생활화가 일어나기까지... 이런 케이스와 비교하면 선조의 그것은 상당히 가벼운 편이죠. 이해하기도 쉬운 편이고.
미남불패
13/02/13 09:43
수정 아이콘
진짜로 궁금했던 부분 바로 앞에서 끊어버리시네요..ㅠㅠ
그리메
13/02/13 10:03
수정 아이콘
어릴땐 연산군 = 광해군인줄 알았지요. 세조는 보기드문 명군이고 단종은 그냥 밟고 지나가야하는 존재로 알았어요.

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죠. 광해군은 역사의 희생양이라는 것을...얼마전 광해 왕남자 영화를 보니 다른건 제쳐두고 총탄 흉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장수들이 쿠테타를 일으켯을때 우리들의 군주...그가 맞나를 확인하러 왔다고...

선제리 멍청이가 일찍 죽어버리고 광해가 왜란 평정하고 이순신을 중용하여 조선이 새롭게 바꼈다면 어땟을까...명에 명분을 챙기고 청에 실리를 챙겼으면 호란(클레지콰이T.T) 없이 새로운 태평성대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법요.
(물론 이순신의 서거에 대한 여러 가정법 중 일부로 총탄을 보호하지 않고 순직했다는 걸 중심으로)

아무튼 정말 안타까운 왕입니다. 명분과 실리를 쫓았으나 둘다 챙기지 못했고 이후 못난 왕 때문에 휘호조차 받지 못한 안타까운 왕입니다.
루키즈
13/02/13 12:06
수정 아이콘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최고 권력자 측근의 힘이 약할경우 이렇게 된다는걸 보여주는 첫번째 사례가 아닐까......
두번째는 노무현 씨고요.....
나이트해머
13/02/13 14:38
수정 아이콘
광해군 권력기반은 자기가 자기 손으로 갉아먹은 겁니다. 남 핑게대는 건 그만둬야죠.
13/02/13 14:48
수정 아이콘
광해군 보다 훨씬 약한 왕권을 가진 사람은 널렸습니다만 광해군 같은 무리수를 둔 왕은 없습니다.

진짜 광해군의 기반이 약했나? 라는 전제자체에 전 의문이 들고 진짜 약했다 하도라도 대체 왜 그나마 있는 권력을 자신이 안가지고 이이첨에게 몰아줬는가에 의구심이 들 뿐입니다.
13/02/13 12:44
수정 아이콘
선조실록에 나온 이순신에 대한 사관평보면 광해군의 이순신 중용얘기 안나오실듯...
그리메
13/02/13 13:02
수정 아이콘
백의종군 당시 복직을 광해군이 주장했던 걸로 아는데...선조는 끝까지 의심하구요. 제가 아는게 틀린건가요?
나이트해머
13/02/13 13:36
수정 아이콘
광해군은 일언반구 안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 파벌인 대북의 수장 이이첨이 사초를 자기 집에다 가져다놓고 써갈긴 선조실록 사괸평만 보면 북인계 빼면 죄다 간신 무능 투성이죠. 류성룡, 이항복, 이덕형마저도.
절름발이이리
13/02/13 17:55
수정 아이콘
이순신을 중용했다고 뭔가 달라지긴 힘들죠.
13/02/13 11:10
수정 아이콘
책으로 내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꼭 사겠습니다....^^
AraTa_sTyle
13/02/13 11:57
수정 아이콘
누군가 했더니, 역시 비비님!
13/02/13 12:34
수정 아이콘
얼른 다음편이요ㅜㅜㅜ
13/02/13 12:3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영조도 딱히 욕먹지 않는 상황에 선조가 욕을 먹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광해군뿐 아니라 원래 그 어떤 신하도 완전 신뢰하지 않는게 선조의 정치 스타일이고 그건 아들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죠.

이런 방식은 정치적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고 권력의 집중화를 막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고 오히려 굉장히 현명한 방식으로 보입니다.(광해군의 이이첨에게 권력 밀어주기를 보면 선조가 얼마나 현명했나 볼 수 있죠)

정통성으로 인한 정당의 분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결과적으로 선조가 죽었습니다. 그 시점에서도 영창군을 민 인물은 유영경정도 뿐입니다. 어머니인 인목대비조차 포기했죠. 광해군은 결국 왕이 되었고 왕은 왕입니다. 그 시점에서 이미 광해군은 승리했고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그간의 울분을 왕이된 후 모두 토해냈죠. 유경영은 자살을 강요당하여 죽고 영창군은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고 인목대비는 쫓겨나고...

이상황에서 선조에 대한 비난은 정말 무의미하다 생각합니다. 더한 일을 겪은 정조도.하다못해 경종 조차도 광해군같은 짓은 안했죠.

이런식이라면 연산군은 성종의 책임으로 고종은 흥선군의 책임으로 비슷하게 전가할 수 있는거고요

영화 광해를 보면서 광해군에대해 가장 잘 표현한 말이 나오더군요. 역모로 몰린 신하가 우리 왕이 세자 시절엔 현명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세자였는데 보위에 오른 후론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

개인적으로 광해군에대해 가장 잘 묘사한 거라 생각합니다.
알고보면괜찮은
13/02/13 13:04
수정 아이콘
영조도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많이 비판 받긴 해요. 다만 선조보단 덜한 이유는 아마 선조가 죽을 때 영창대군의 나이와 사도세자가 죽을 때 정조의 나이 때문일듯합니다. 선조가 죽을 때 영창대군은 겨우 세살. 군호도 받지 못했죠. 거기다가 대개 세자 책봉이 대체로 8살 전후에 있었던 걸 생각하면 말도 안되게 어린 나이입니다.(사도세자는 2살 때 세자로 책봉됩니다만...영조 나이가 거진 마흔이었던 것도 있고 다급했겠죠.)
하지만 사도세자가 죽을 때 정조의 나이는 11살이었습니다. 몇 달전에 혼례를 치르기도 했구요.
예종의 적자인 제안대군이 예종이 죽을 때 겨우 4살이었기에 왕위계승에서 밀려나고 13살이었던 성종이 왕위에 오른 걸 보면 아실 겁니다.
13/02/13 14:38
수정 아이콘
그 말의 전제는 선조가 죽을때에 영창군을 정말 왕으로 밀려고 했느냐이지요.

영창군의.나이가 어렸기에 선조도 정통성이고 뭐고 영창군이 그 시점에서 진짜 광해군을 대신할 수 있다 생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세살인데요. 세살. 수렴청정을 15년 가까이 해야하는데 말도 안되는 판단이고 선조가 그정도로 한심한 인간은 아닙니다.

만약 했다 하도라도 실현가능설 자체가 무척이나 희박한 일이고요. 괜히 인목대비가 선조가 죽자마자 광해군을 왕으로 바로 올린 게 아닙니다.
13/02/13 14:42
수정 아이콘
그리고 사도세자 건으로 영조가 욕먹나요? 아니죠 노론이 욕 먹죠. 이X일씨 덕분에.
절름발이이리
13/02/13 17:53
수정 아이콘
선조가 욕 먹는건 결국 임진왜란 때문이죠.
13/02/13 13:14
수정 아이콘
역시 선조는 까야 제맛 ㅜㅜ
honnysun
13/02/13 13:39
수정 아이콘
이분은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에요.
잘 읽고 갑니다. 흐흐흐흐흐흐
Darwin4078
13/02/13 14:04
수정 아이콘
일단 선조는 까고 봅시다.
Eternity
13/02/13 18:03
수정 아이콘
닥치고 선추천 후리플 덜덜
연산과 함께 조선의 양대 핫이슈 임금인 광해라니!
어, 어서 다음 편을 내놓으시오..-_-
연산이든, 광해든 써주시는 대로 굽신굽신하며 처묵처묵 하겠습니다 흐흐
13/02/13 21:41
수정 아이콘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광해군도 즉위 후에 자기가 세자 시절+즉위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꽤 궁금하긴 합니다. 역사에는 물론 가정이란 없습니다만.. 광해군은 유배가서도 꽤 오래 살았으니 건강한 편이였고 그렇게 따지면 자신의 화를 누르고 정치에 집중했다면 달라질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하구요.

갠적으로는 선조도 선조지만 인조도 그만큼 답이 없었던 왕이라고 보는 편이라... 참 그 중요한 시기에 왕들이 다 그모양이였으니 조선의 국운이 기울수 밖에 없었겠죠.
13/02/14 00:06
수정 아이콘
주제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눈시님의 중간중간 개그가 완전 빵터지네요. 잘보고갑니다^^
제 시카입니다
13/02/14 00:11
수정 아이콘
와이파이 안 잡히는 대양으로 나가셨나봐요 ㅠㅠ
암튼 다음편을 얼른.....
13/02/14 08:08
수정 아이콘
아.....선조
OTL

항상 잘읽고 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151 [스타2] [HIGHLIGHT] 2013 GSL S1 Ro.16 Group A Critcal Strike [3] 워크초짜4184 13/02/08 4184
2150 광해, 그의 마지막 길 [9] 눈시BBbr9047 13/02/24 9047
2149 광해, 폐모론과 허균 [10] 눈시BBbr6973 13/02/19 6973
2148 광해, 옥사 또 옥사 [19] 눈시BBbr8142 13/02/16 8142
2147 광해, 피의 시작 [22] 눈시BBbr7843 13/02/15 7843
2146 광해, 왕이 ( ) 된 남자 [50] 눈시BBbr10693 13/02/13 10693
2145 앵 약사의 건기식 가이드- 오메가3 편 [55] 애플보요10194 13/02/12 10194
2144 [LOL] 서포터 입문자를 위한 챔프별 간단 소개 [70] 까망8257 13/02/13 8257
2143 [리뷰] 7번방의 선물(2013) - 7번방의 신파, 하지만 류승룡의 선물 (스포 있음) [43] Eternity8658 13/02/12 8658
2142 [리뷰] 베를린(2013) - 한국형 첩보 영화의 미래를 말하다 (스포 있음) [73] Eternity11974 13/02/10 11974
2140 [기타] 박서의 주먹은 아직 날카로울까? [5] Love.of.Tears.8941 13/02/12 8941
2139 [야구] 최초의 재일교포 타격왕 고원부 [16] 민머리요정8433 13/02/10 8433
2138 이제는 사랑이 장기이고 싶다 [40] 삭제됨15520 13/02/06 15520
2137 그 말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63] runtofly10870 13/02/06 10870
2136 바른 생활 [30] 헥스밤9425 13/02/03 9425
2135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Fin [45] 영혼6920 13/02/08 6920
2134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7 [26] 영혼4893 13/02/07 4893
2133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6 [9] 영혼4450 13/02/07 4450
2132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5 [14] 영혼4659 13/02/03 4659
2131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4 [5] 영혼4686 13/02/01 4686
2130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3 [4] 영혼4658 13/01/25 4658
2129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2 [10] 영혼5228 13/01/24 5228
2128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1 [8] 영혼6773 13/01/23 677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