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3/12/04 01:06:27
Name white
Subject [잡담] 백지 답안지를 내던 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처음 보던 시험 날
많은 기대를 안고 들어서서 자리에 앉아 받아봤던 수학 시험지는
하얀것은 종이요 검은것은 글자....
그것 뿐 이었습니다

준비를 안한 것도
시험 보는 것 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긴장한 탓인지
너무 기대를 많이 받은 탓인지
시험을 잘 보겠다는 마음이 컸던 탓인지
그냥 머릿속이 하얘 지는 기분...
그것 뿐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저는
시험시간이 끝나도록 그냥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있었고
시험 답안지는...그냥 처음 받았던 그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나온후에
저희 어머님은 영광스럽게도 담임선생님께 호출을 받고
학교로 달려오셨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셨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하루 종일 내내
저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내야 했습니다

교실에 저를 보러 오지 않으시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어찌 뵈야 할지 몰라서
그날 집에 돌아가지 않고
집 주위를 내내 배회하고 돌아다녔습니다

패스트푸드 점에도 가고
백화점에도 가고
나중에는 더 갈데가 없어서
집앞 놀이터 시소위에 앉아 있다가
해가 뉘엇뉘엇 지는데 갈데는 마땅치 않고해서
결국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졸이며 힘들게 집안에 들어서는 저와는 달리
어머님은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 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여느때와 다름없이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 없이 식탁에 앉아 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등을 토닥여 주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울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슬픈건지, 서러운건지...
도저히 알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그냥 내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지만 천천히
저의 모습으로, 저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챌린지리그 예선전이 있었습니다
경기 결과를 보던 저는
마우스에 올려놓은 손가락으로 휠을 앞으로 뒤로 수도없이 돌려보았었습니다

혹시 오타가 아닌지
혹시 오보가 아닌지
보고, 또 보고, 또 확인하고....

그때, 제가 그리 아끼는 박서가 MBC 게임 예선에서
2경기만이던가요 아주 깨끗하게 ^^; 패하고
6개월 정도는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도
이렇게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더이상은 어떤 위로의 말도
질책의 말도
격려의 말도
떠오르지를 않으니....
제 국어 실력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거겠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끝난것도
게임 리그가 막을 내린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내가 응원하는 선수는 이번에 그리고 다음에 보기가 어려워 진것 뿐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선수들.....
어머님 눈치 살피느라, 걱정되서,
집에 못들어오고 집앞 놀이터 시소위에 앉아 한숨쉬고 있던 저 처럼
혹시 방황하고 있는 지는 않는지 모르겠네요

그들이 여러분 곁에와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거든
혹은 속상한 기색을 보이거든
혹은 담담한 기색을 보이거든

그냥...
조용히 웃어주고, 등 한번 두들겨 주고, 머리한번 쓰다듬어 주고,
그리고 손한번 잡아주는 여유를 보여주면 어떨까요...

우리가 너무 사랑하는 선수들
다시 힘내서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죠...

모든 선수들 경기 하시느라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3년 12월 3일은 등뒤에 남겨두고 12월 4일, 5일 6일....을 생각하도록 하죠 ^^
앞으로 남은 많은 날들은 모두 여러분의 날들이 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당신들을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모두 힘내세요 ^^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12-04 13:18)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sweethoney
03/12/04 01:27
수정 아이콘
제목을 보고 어떤 글일까 조금 짐작하긴 했지만...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글이예요.^^
(회원정보에 나와있는 white님의 자기소개글도 정말 이쁘네요)
저 역시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03/12/04 01:45
수정 아이콘
멋지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이런 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남자입니다~
경락마사지
03/12/04 01:56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글이군요..추게로 넘어갑시다.
..정말.. 감동입니다.
언뜻 유재석
03/12/04 01:56
수정 아이콘
^^ 제 정신이 아닌 요즘 제 정신을 찾게 해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100점 만점에 99점 드릴게요.. 1점은 전에 가불하신거..;;
lightkwang
03/12/04 03:55
수정 아이콘
정말.. 감동입니다.. 힘내세요.. 옐로우..
CherishQueen
03/12/04 07:48
수정 아이콘
로그인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저도 감동 받았습니다. ^^
추게로 가는 건 어떨지...+_+
03/12/04 08:56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
03/12/04 10:30
수정 아이콘
옐로우, 다음 기회에 반드시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
어제 같이 낙방했던 선수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물빛노을
03/12/04 12:01
수정 아이콘
로그인을 하게 만드시는군요...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동이 벅차오르는 멋진 글입니다ㅠ0ㅠd
지붕위1004
03/12/04 12:31
수정 아이콘
님들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pgr의 온도가 1도 정도는 올라갈 것 같습니다.
white님이 말하는 그분이 제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는 진 모르겠지만 님과 같은 팬이 있기에 그 분도 힘을 내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두 추게로 추천합니다.
하루나
03/12/04 13:05
수정 아이콘
감동이네요^^ 저도 어제 챌린지결과를 확인하고 머리속이 새햐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못본걸로, 모르는걸로 머리속에서 지우고싶더군요.
잘한다고, 3개월만 쉰다고 말했는데, 더이상 팬들에게 할말이없어, 면목없어서, 그가 어디서 방황하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세요.
화이트님 어머니처럼 따뜻한 밥상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따뜻한 글과 응원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팬들이있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모든 팬분들의 마음이 그러하겠지요.^^
모든 프로게이머들, 몇번의 패배와 탈락에 주눅들 필요도, 위축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는 더욱더 없습니다.
그냥 힘내서 더 열심히 하시면 되죠^^ (그리고 이글은 추게로 GoGoGo!)
식용오이
03/12/04 13: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3/12/04 14:02
수정 아이콘
화이트님 결국 추게에 오셨군요..글 잘 읽었습니다.
리포트는 잘 쓰셨는지..^^;;
(해묵은 얘기를 끄집어내서 아는척 해보려는 몸부림 -ㅅ-;)
스킨쉽-_-v
03/12/04 15:50
수정 아이콘
누군가를 위로할 때 "힘내!" 라고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뭘 위해 힘을 내야하고, 어떻게 힘을 내야 하며, 힘을 낸다 한들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툭 내던지는 무책임한 말 같아서..
하지만 지금은 힘내시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다 잘될꺼예요.
03/12/04 18:08
수정 아이콘
엘로우우우우우 ㅠㅠ
03/12/04 18:3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화이트님.. 화이트님 글 덕분에 저야말로 기운을 얻은 것 같네요. 모두들 수고하셨고, 모두들 힘내세요. 그리고 모두들 감사합니다.(__)
이진주
03/12/04 19:04
수정 아이콘
아...저도 고등학교 처음 들어와서 봤던 첫 모의고사가 생각납니다.(몇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싸인펜을 보니 다 뭉개져 있더군요;. 그래도 '힘내!'라는 말을 듣는것이, 안듣는것 보다는 낫겠지요^^;? (저는 그말을 들을때 안심이 되거든요.)
03/12/04 22:03
수정 아이콘
잠시 아파하시는 모든분들, 누구에게나 현실은 녹록치 않네요, 혹시나 이순간에도 아파하고 계실분들(에 저도 물론 포함되네요) 모두 힘내시길 응원할꼐요. 우리는 실패한게 아닙니다. 잠시 쉬고 있을뿐이거나 혹은 아주짧은시간, 힘들어하고 있을뿐이지요. 자 이제 힘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준비해야겠네요. 힘내요, 우리!
iCeBerry
03/12/04 23:30
수정 아이콘
white 님 글을 읽고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YellOw 계속 기달릴께요...
당신들은 반드시 돌아올껍니다...^^
The Siria
03/12/05 09:50
수정 아이콘
끝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기다리는 거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빵싼종이
03/12/05 14:37
수정 아이콘
white님.. 덕분에 건조한 제 눈이 눈물이라는 쉼을 얻었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정말정말 고맙습니다..(_ _)

그리고......
당신이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간에,
늘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하늘아이
03/12/05 14:54
수정 아이콘
마음이.. 아려오는 글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늘 그랬듯이.. 그 자리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
피바다저그
03/12/05 17:28
수정 아이콘
예선이 있던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라디오를 켜니,
변진섭에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란 노래가 나오는데...
---------------------------------------------
그대 어깨위에 놓인 짐이 너무 힘에 겨워서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 때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께요........
------------------------------------------------
딱 그때 당시의 제기분을 나타내는 노래더군요..
그노래 들을때의 기분이나 이글을 본후의 기분... 말로표현하기 힘들군요
정말 제대로 쉬고, 제대로 정말 제대로 날아보자고요..
03/12/06 01:5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도 문법실력이 형편없어서.. 어떻게 감사하다는 말밖에^-^
율리아나
03/12/06 02:41
수정 아이콘
^ㅡ^글이 참 멋지네요...감동 받았다는...ㅠㅅㅠ
참..이 글을 지노동으로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련지^ㅡ^;
....pgr에서도 많이 읽히지만 지노동 사람들에게도 읽히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요^ㅡ^
그리고...
YellOw....6개월 뒤에는 돌아오세요.
아무말 없이..그냥..당신을 믿으며 기다릴께요..
03/12/06 11:58
수정 아이콘
아무말 할 수 없어서 아무말 하지 않았는데..
화이트님 덕에 제가 위로를 받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매직핸드
03/12/08 13:14
수정 아이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
저도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혜원
03/12/11 11:41
수정 아이콘
처음으로 남기는 댓글이..이런 글에 달릴수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네요...Yellow...전 그를 믿습니다...6개월 후에 화려하게 돌아올 그를요...^^ 진호님이 이 글을 읽으시고 많은 힘을 얻으셨을거 같네요... 더불어 저까지도요...^^ 요즘 뭔가 힘든일이 많아서... 아까까지만 해도 정말 침울했거든요... 님께 감사드립니다...^^
리안[RieNNe]
03/12/11 18:14
수정 아이콘
정말 예쁜 글입니다.
코 끝이 찡해지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89 [잡담] 그들에게 한 다발 꽃을 보내며 [21] 아랑7281 04/03/21 7281
288 Gallery Dahab - 꿈꾸는 젊은 거장 Nal_rA [49] lovehis15161 04/03/24 15161
287 OSL 관전일기 - 제우스, 두가지 편견을 버려야. [55] sylent18946 04/03/19 18946
284 [낙서]12 help yO.. [47] 언뜻 유재석16008 04/03/05 16008
283 어느 두 장거리 육상선수 이야기 - Jju편 [17] lovehis9452 04/03/04 9452
282 아직 다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 [9] 아제™7709 04/03/03 7709
280 임 빠라고 불리는 막내 종헌이 이야기 [38] 순수나라11598 04/03/02 11598
279 어느 두 장거리 육상선수 이야기 - SC(Silent_Control)편 [23] lovehis9102 04/03/02 9102
278 외계어를 비판하며 이모티콘에 대한 중학 국어 교과서와 저의 보잘것 없는 생각입니다. [21] 작고슬픈나무8040 04/03/02 8040
277 [잡담] What Dreams Are Made Of. [23] Apatheia9175 04/02/29 9175
276 우리집과 스타크레프트. 프로 게이머 이야기 [25] 순수나라11221 04/03/01 11221
275 아직은 더 울어야 할 당신에게(경기결과 있습니다) [37] 공룡15953 04/02/28 15953
274 어느 무명 발라드 가수 Jju [58] lovehis13352 04/02/27 13352
273 글을 쓰는 것... [18] 훼이스8585 04/02/25 8585
271 장재호 선수에 대한 소고 [17] Bar Sur12377 04/02/18 12377
270 최강의 프로게이머는 누구인가? (프로게이머 래더 랭킹) - #3 역대 랭킹 (2000~2003년 TOP 20) [44] 그리피19681 04/02/19 19681
269 최강의 프로게이머는 누구인가? (프로게이머 래더 랭킹) - #2 래더 계산법, TOP 100 [74] 그리피18015 04/02/19 18015
266 [90번째 글-!!]Altair~★님과 기록에 대한 소고 [21] 막군6793 04/02/16 6793
263 아름다운 조연도 필요해요 - 프로게이머가 되시려는 10대분들에게 [19] 막군9017 04/02/13 9017
261 [감상]kimera님의 소고에 대한 소고 [24] 막군9182 04/02/11 9182
260 스타크래프트 파고들기 2 - 다름의 미학, 전투력vs기동력 [32] 김연우17266 04/02/10 17266
259 스타크래프트 파고들기 1 - 길찾기 AI에 관해 [31] 김연우37198 04/02/07 37198
257 E-Sports를 위한 제안 [12] 막군5400 04/02/09 540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