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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11/20 12:40:53 |
Name |
아몬 |
Subject |
[LOL] 페이커에게 보내는 편지 |
페이커 선수, 데뷔 10주년 축하합니다.
이것은 너의 10년, 나의 7년이야.
단지 시대의 조류를 좇아 커뮤니티에서 롤을 즐기기만 하던 한 소녀가 7년 가까이 너를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
상혁아, 나는 가끔 시간이 정말 무섭게 느껴져.
기억은 점차 흐릿해지고, 동영상을 수없이 보면서 그때의 감동과 그때의 두근거림을 회상할 수밖에 없어.
그러다 보니 알았어. 아무리 나이를 먹은 나여도 결국 너에게 닿는다는 것을.
왜 너에 관한 동영상만 보면 눈물이 나는 건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건드린 건지.
나는 재능이 늙어가는 것과 위대한 공을 세운 이가 제후로 봉해지지 않은 걸 오롯이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이야.
*당나라 시 《등왕각서》에 나오는 구절. 「풍당(冯唐)은 (재능이 있었으나) 쉬이 늙어버렸고 이광(李广)은 (큰 공을 많이 세웠으나) 제후로 봉해지지 못했도다.」
하지만 너는 분명히 무려 3관왕인데, 왜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거지?
4년 동안 3번의 우승 이후 6년 동안 우승을 거머쥐지 못한 건 과거의 네가 너무 경이로워서 그런 걸지도 몰라.
온몸이 영광으로 가득한 너는 여전히 경기장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시큰시큰하고 눈물이 나는데, 단지 좋은 결말이 있기를 바랄 뿐이야.
12년의 세월 동안 개최됐던 월드 챔피언십을 돌이켜봤어.
이제야 SKT 이후로 더는 왕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너는 붉은 왕조의 마지막 장미야.
시대가 변하고 있고, 나는 단지 구시대의 잔당일 뿐 새로운 시대에는 나를 태울 수 있는 배가 없어.
하지만 우리 모두 뒤돌아보지 말아야 할 긴 밤 동안 그 휘황찬란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위로할 수는 있지.
상혁아, 그동안 나는 이스포츠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고 너를 좋아한 것이 아주 오래된 옛일인 것만 같았어.
이전의 숱한 패배와 실패를 잊은 것처럼 내가 많은 것들을 잊은 줄 알았어.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 BO5를 잊고, 정말이지, 시간이 흐르면 천천히 잊히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많은 이들이 꿈을 이루지만 그 주_인공은 모두 네가 아니야.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내가 내내 잊지 못하는 이유겠지.
작년 MSI가 끝난 후 나는 너무 우울하고 절망적이었어.
2016년부터 요 몇 년을 되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많았고, S7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기대와 함께 절망도 커져만 갔어.
"너는 몇 년이나 더 싸울 수 있니?"
2017년부터 의혹의 목소리는 끊긴 적이 없고, 2018년 다큐멘터리에서의 너는 자신을 의심하며 울었어.
2019년의 손 떨리는 장면은 만인에게 신이 늙었다는 조롱을 받았고, 2021년은 DK에게는 환호가 T1에게는 쓸쓸한 퇴장이 있었어.
작년에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희망을 주었는지――5개의 관문을 거쳐 결승전에 이르렀고, 다시 마지막의 마지막에 쓰러졌지.
그래서 나는 또 한 번의 윤회에 들어간 것 같다고 느껴졌어.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실패해야 깨달을까?
매번 나는 나 자신이 도저히 기다리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해.
가끔은 '끝내 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은 퇴할 것 같아. 그렇지?' 하며 스스로 위로해.
수많은 무망지재(无妄之灾)가 너에게 닥쳤고, 팬들은 그 속에서 너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단지 경기를 잘하고 싶을 뿐 결코 물러선 적 없지.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16 MSI부터 지금까지, 너를 좋아한 10대부터 여전히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20대까지도 항상 내게 가장 깊은 기억은 새둥지에서의 패배야.
*새둥지(鸟巢): S7 결승전 경기장이었던 '베이징국가체육장' 별칭
우리는 몇 번이나 우스갯소리로 어쩌면 2017년의 패배가 모든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고 말하곤 해.
네가 혼자 우는 것은 경기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승리로 이끌지 못해 동료들을 우승시키지 못함을 자책하는 거지.
게임에 대해 가장 순수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 같아.
예전에 SKT의 훈련 시간은 아침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였는데, 너는 이렇게 강압적이고 힘든 환경에서 10년을 보냈어.
승리에 대한 너의 갈망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나는 이런 너를 숭배하고 존경해.
내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굳센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신복한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건 나에게는 없는 고귀한 품성이어서야.
말하기는 쉬워도 행 동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들 앞에서 너는 10년을 버텼어.
내게 이 세상에 아주 순수한 꿈을 좇는 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나는 영원히 이 적자지심에 감동해 눈물을 흘릴 거야.
너는 나를 국적에 상관없이, 국적을 초월한 감정이 나로 하여금 너를 응원하게 만들었어.
세상의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억측과 악의로 가득하거나 심지어 이상혁을 추궁하고 공격한다면, 너의 편에 서서 조금 더, 더 사랑할 거야.
10년이 지난 지금, 너는 더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미드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시간조차 가져갈 수 없는 영원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GOAT이자 미드 황제야.
다른 사람이 미워하든 질투하든 헐뜯든 절대 흔들리지 않고 데뷔 10년 차에도 계속해서 등반하는 대마왕.
너처럼 이렇게까지 자신을 단속할 줄 알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든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고 늘 말해.
그런데 상혁아,
사실 내가 제일 고마운 건 이상혁이 프로가 되어줘서, 이상혁이 페이커가 되어줘서, 페이커의 팬이 될 수 있게 해준 거야.
나는 이렇게 너를 존경하고, 흠모하고, 숭배하고,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너를 지지해.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하고 너의 가장 충직한 신도가 될 거야.
10주년 축하합니다, 페이커 선수.
세 개의 별이 밤하늘에 높이 걸려 있는 날, 너는 새로운 전설을 맞이하게 될 거야.
행운과 승리의 여신이 오직 너 한 명만을 사랑하고, 오직 네가 속한 팀만을 사랑하길 소망해.
나의 검은 장미, 나의 불멸의 전설.
바로 올해 2023년, 다시 한번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길.
Legends Never Die. 무한한 가능성의 10년 동안 끊임없이 빛나고 있는 너에게 바칠게.
네가 내딛는 모든 걸음은 영원한 너의 찬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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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보내는 편지는 아니고, 중국의 한 팬이 페이커의 10주년을 기념하여 보낸 편지입니다. 롤드컵 이전에 쓴 편지라고 하는데 제 마음과 비슷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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