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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24 16:41:57
Name 깃털달린뱀
Subject [정치] 다자주의의 종말, 각자도생의 시대. 한국의 체급은 안녕한가?
트럼프의 당선은 국제사회의 다자주의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이후 WTO는 식물 상태이고, 미국은 국제기구를 무시하고 협약을 탈퇴하는 등 기존의 국제질서가 어그러졌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를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일탈' 정도로 여깁니다만 사실은 미국이란 국가의 방향전환에 가깝습니다. 트럼프의 첫 당선은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두 번째부턴 다릅니다.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바이든이 당선되고도 WTO는 복구되지 못했고 오히려 IRA를 도입하는 등 무역질서를 뒤흔든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우리나라는 다자주의 체제 하에서 잘 적응한 국가입니다. 세계화의 시대에는 복잡한 것 필요 없이 물건을 싸게, 잘만 만들면 그만이었습니다. 주어진 규칙을 그저 잘 지키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국제질서'가 무력화 되었습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합의된 규칙보다는 각 국가 간 협상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동맹이라고 굳이 더 우대받지도 않습니다. 원래 공짜였던 시장 입장권은 이제 줄 건 줘야하는 비싼 물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협상의 시대에는 '체급'이 중요합니다. 공정한 대결이 아니라 힘싸움이니까요. 미국은 우리나라에게 방위비를 청구하고 관세로 협박할 수 있지만 그 역은 불가능합니다. 힘도 없을 뿐더러 협상에 내놓을 카드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전기차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대응해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유럽산 수입차 관세 부과? 독일 빼곤 꿈쩍이나 할까요? 보복은 시장이 유의미하게 크거나 주요 자원을 통제할 때나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둘 다 아니란 게 불행한 점입니다.

결국 체급이 깡패인 강대국이 유리해지는 시대입니다. 말이 좋아 힘의 논리지 강대국의 횡포에요. 미국이고 중국이고 유럽이고.


이러한 국제질서는 우리나라 단독으론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체급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장 좋은 건 국가 연합입니다. 유럽연합이나 아세안처럼요. 문제는 동아시아에는 연합할 국가가 일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일관계는 차치하고서라도 둘 합쳐봤자 규모가 애매합니다.

차선은 함께 목소리를 낼 국가를 모으는 것입니다. 다자주의가 힘이 약해졌다지만 아직까지 UN 체제는 존속 중입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를 강조하며 이들과 공동행동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와 연대할 국가들을 규합해 깊게 관계를 맺고 공동대응하는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예 브릭스처럼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드는 것도 좋고요. 물론 이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여태 선진국 위주로 물건 파는데만 관심 가졌지 정치적인 공동행동 따윈 관심도 할 네트워크도 없었는데다 애초에 그런 걸 해볼 생각조차 못해본 나라니까요. 이러기 위해서는 이제 골치아픈 국제정세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도 내야하는만큼(남중국해 문제 등) 굉장히 골치아플 것입니다만 어쩌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예 아세안에 직접 가입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단순히 물건만 팔 시장 취급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요. 또 그래야만 더 원활히 시장에 접근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여러 이유로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제 우리는 독고다이로 우리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끝난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함께할 국가를 규합해 세력을 불려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여태 안해본 일이기에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예 이런식으론 생각도 안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제 진단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아무쪼록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제질서 속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제가 살아있을 동안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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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
25/01/24 16:48
수정 아이콘
사실상 군사행동을 배제한 제국주의가 다시 부활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타국과 연합이나 공동체 구성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보다 체급 낮은 국가들 뜯어먹는 방향밖에 남지를 않지요. 완전 약육강식, 야만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깃털달린뱀
25/01/24 16:56
수정 아이콘
사실 미국 중국 정도만 가능한 제국주의 아닌가 싶긴 합니다. 유럽만 해도 시장 가지고 대응할 순 있어도 이제 더이상 앞마당 아프리카에도 개입하기 힘들어하고 있고... 경제력이야 마음에 안들면 씹으면 되고.

찐 제국주의 시대라면야 우리도 한 발 걸쳤겠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체급 낮은 국가에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한지라 여러모로 답이 없습니다.
자급률
25/01/24 16:48
수정 아이콘
뭐 동아시아 국제연합을 한다면 말씀대로 한-일만으론 규모가 안나오니까 아마 인도네시아 해양쪽 섬나라들, 어쩌면 인도차이나 반도쪽 국가들까지 포괄한 형태의 국제연합이 결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여기서 일본-인도네시아가 한국까지 끼면 내부적으로 복잡해진다고 한국 배제하고 자기들 중심으로 연합 결성한다고 하면 좀 거시기하긴 할지도...
개가좋아요
25/01/24 16:56
수정 아이콘
한중일만 합쳐도 괜찮을듯 한데 서로 너무싫어들해서...
깃털달린뱀
25/01/24 16:59
수정 아이콘
미국은 방위비 올리고 관세 부과하는 선에서 끝이지 중국은 진짜 바로 옆에서 패악질을 부리니까요. 차라리 미국이 선녀임...
동아시아 연방이 탄생하기엔 중국이 너무 체급도 크고 인성도 별로죠.
개가좋아요
25/01/24 17:03
수정 아이콘
뭐 이상적인 이야기긴한데 만약 서로 믿을만하다면 제조국 끝판왕 경제연방으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로 믿을수 없으니 이상이기만 하죠.
군령술사
25/01/24 17:31
수정 아이콘
뭐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보통 좋아지죠. 한중일 합치면 인구,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 문화자본 등등 꿇릴 것 없는 거대 세력이 나옵니다.
하지만 큰 약점 꼽자면 에너지와 식량이죠. 석유, 가스와 사료를 포함한 식량을 외부에서 공급받아야하는데, 한중일 연합을 경계하는 세력이 해상 교역로를 막으면 6개월도 못 버티고 끝장날 겁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중일은 따로 노는 게 안전하다고 봅니다. 걍 적당히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교역하고 여행다니는 게 딱 좋아요.
iPhoneXX
25/01/24 16:56
수정 아이콘
결국 미국 저러면 유럽도 보고 있다 우리도 저렇게 할래, 중국도 저런다고 다 설칠께 너무나도 뻔하죠. 그럼 수출로 벌어먹는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은 다 해외로 빠지고, 한국은 지주 회사만 있는 아주 이상한 국가가 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고 봅니다. 트럼프 4년의 기우로 넘어가면 좋겠습니다만 결국 다 먹고 살기 힘들고 양질의 일자리는 값싼 타 국가에 뺏기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나쁜건 바로바로 배워 써먹는 미래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착륙 생각한다면 시간의 문제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지고, 경착륙도 생각한다면 말씀하신 생존을 걸고 이익이 겹치는 나라끼리 연합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카리 신지
25/01/24 17:08
수정 아이콘
몽골침략 이후 거의 800년 동안 [제국]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게 비극이죠. 베트남이나 태국도 19세기까지 라오스, 캄보디아 등 주변지역을 지배하며 제국적 통치를 해봤기에 외교의 스케일이 큰데, 우리나라는 원-명-청-일본-미국에 짓눌려 외부에 영향력 행사를 제대로 못해봤기에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음.
깃털달린뱀
25/01/24 17:15
수정 아이콘
솔직히 이전까진 미국이 짜둔 판 안에서만 놀아도 충분한 걸 넘어서 더 이득이었으니... 굳이 힘들고 귀찮게 그런 걸 왜 신경써야함?이란 시선이었죠. 북한 신경쓰기만도 벅차기도 했고.

뭐가 됐든 해외를 무작정 시장 취급만 하는 관점은 어떻게든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사실 세계화 시대만 예외였지 해외시장이란 건 원래부터가 정치경제외교군사 영향력 총 동원해서 얻어내는 것에 가깝기도 했으니 적응해야겠죠.
No.99 AaronJudge
25/01/24 19:05
수정 아이콘
인정합니다.
그런게 없어요…..
크레토스
25/01/24 17:30
수정 아이콘
외교에 자꾸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부여하고 특정국가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문제죠.
우리는 처한 외교적 환경이 너무 특수해서 복잡하고 섬세한 외교를 해야지 단순하고 답을 정해놓은 외교를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무냐고
25/01/24 17:41
수정 아이콘
규모가 너무 작은것은 동의합니다만 마땅히 대안이 없다봅니다.
아세안에 가봤자 군사력, 첨단기술력, 에너지안보, 화폐안정성 등 다방면에서 너무 취약한거같아요. 합쳐봤자 경제규모도 애매하구요.
폭주하는 미국과 반발하는 중국, EU 사이에서 선이나 잘 타는게 낫지않나 싶습니다. 일본 인도 호주 캐나다 등과 더 긴밀하게 관계 유지하면서요.
번개맞은씨앗
25/01/24 17:43
수정 아이콘
깃털님 좋은 글 많이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깃털달린뱀
25/01/24 21:17
수정 아이콘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뭐랬
25/01/24 17:53
수정 아이콘
미래 어느 부분을 봐도 한국에 유리한게 안보이네요. 각자 각오를 다지는 방법뿐
0126양력반대
25/01/24 17:57
수정 아이콘
대장이 못 된다면 꼬리라도 잡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세계 질서에서 어떤 기능을 취할지가 중요하고.. 제조업 국가여야만 할 텐데.. 에너지는 안나오고.. 쉽지 않네요.
No.99 AaronJudge
25/01/24 19:03
수정 아이콘
참 씁……..어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Multilateralism,즉 다자주의에 기반한 기구들과 국제법을 열심히 배웠던게 얼마 전인데….참 앞으로의 미래는 어떨까, 우리는 저 풍파 속을 어떻게 헤챠나가야 할까 잘 모르겠네요
씁쓸하기도 합니다
번개맞은씨앗
25/01/24 19:43
수정 아이콘
불확실한 세상일수록, 인격수양을 하고 내실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로마 철학자 키케로처럼요. 걱정만 한다고 세상 좋아지지 않고, 각자가 인격과 실력을 발전시켜 나가는게 필요하다 봅니다. 결국은 사람 개개인의 수준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거라 봅니다. 
닉네임바꿔야지
25/01/24 20:37
수정 아이콘
유로파 유니버설리스처럼 게임으로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일본과 합쳐야겠지요. 근데 그게 쉽지 않을 거라... 게임에서야 행정력, 외교력, 군사력 딸깍한 다음에 반란 일어나면 진압하면 끝이지만 실제론 그렇게 안 굴러 가는거라...
고민시
+ 25/01/24 22:00
수정 아이콘
답은 탕핑인가
+ 25/01/24 22:52
수정 아이콘
머랄까.. 꾸역꾸역 합쳐놓은 EU도 모래알처럼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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