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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17 17:58:52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도 다시 보자...
얼마 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을 읽은 기억은 나는데 제대로 된 책으로 읽고 나니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 명작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의 영예를 가져다주었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는 아무래도 배경이 나이든 어부가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내용이다 보니 여러 가지 고기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원문에 ‘dolphin’이라고 되어 있는 고기도 있는데요.

dolphin이 들어간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원문 한 부분

"What an excellent fish [dolphin] is to eat cooked,” he said. “And what a miserable fish raw. I will never go in a boat again without salt or limes."


그런데 이 dolphin이 가리키는 대상은 결코 우리가 아는, 수족관에서 쇼를 하는 그 "돌고래"가 아니라는군요. 국내의 한 블로그를 읽다가 알게 된 내용인데 그 블로그를 읽고 난 후 인터넷에서 좀 더 정보를 찾아봤더니 실제로 헤밍웨이가 소설 속에서 dolphin이라고 했던 대상은 dolphinfish (mahi-mahi)라고 불리는 돌고래와는 다른 어류라고 합니다. 이 어류는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만새기"라고 불리는 고기라는군요.

그런데 예전에 일본어판을 중역하거나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들은 여지없이 다 이것을 "돌고래"라고 번역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나서 저작권이 풀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민음사와 문학동네에서 [노인과 바다]를 번역하면서 양쪽 다 이 dolphin을 "돌고래"라고 번역하지 않고 "만새기"라는 어류의 이름으로 정확하게 번역을 했다고 하네요.

저부터도 얄팍한 지식으로 번역이 조금만 이상한 것 같아도 발 번역이네 뭐네 비판은 많이 하는데 (지난 번 신시내티 레드스 건도 그렇고...--;;;) 실제로 번역이라고 하는 작업은 정말로 전문적인 분야이고 해당 언어를 좀 안다고 함부로 덤벼들 분야가 결코 아니라는 게 다시 한 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당장 제가 [노인과 바다]를 번역을 했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dolphin’을 "돌고래"라고 번역했을 것 같습니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바다에 돌고래가 나타났다는데 무슨 의심을 했을까 싶네요.

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맥락으로, 작가가 어떤 의도로 사용되었나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단적인 예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도 다시 한 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돌고래


만새기 (이게 헤밍웨이가 dolphin이라고 했던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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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14/10/17 18:05
수정 아이콘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대개의 경우 사람이 지식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를 보면, 맞는지 틀리는지 긴가민가할 때 벌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보다는 특정한 정보가 사회적으로 널리 당연시 되거나 혹은 스스로 당연시한지가 워낙 오래되어 이미 단단하게 내면화되었을 때, '당연히 이게 맞을 거야'라는 의식적인 과정조차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확한 정보라는 판단이 뇌리에 스쳐가면서 부정확한 지식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심을 품을 수 있는는 지적 능동성이 차단된 상황에서 벌어지죠. '문화컬쳐'라는 어휘가 이럴 때 동원되는 것일 테고..

뭐 이런 것 때문에 지식적인 실수에 대해 관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잘못될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경우면 모를까 자기 스스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를 가지고 질책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예컨대 '네오 클래시컬 메탈'을 '바로크 메탈'로 알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바로크 메탈이라는 어휘가 진짜로 맞는 어휘일까? 어디선가 누군가 왜곡된 어휘를 소개한 것이 일파만파 퍼져서 내가 잘못된 정보를 습득한 것이 아닐까?'라는 극도의 자기 반성적인 가정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맞춤법지적봇
14/10/17 18:05
수정 아이콘
역시 맞춤법, 표준어는 중요합니다.
이브나
14/10/17 18:08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저건 원문으로 읽어도 비슷한 오류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도 사실은 생강나무(우리가 아는 생강이 아닌 잎에서 생강냄새가 나는 나무) 꽃의 강원도 방언이라고 하죠
원작을 원어로 읽는 사람들도 내용을 머리속에 그릴 때 우리같이 돌고래를 그리면서 읽는 경우도 적진 않을 것 같네요
Neandertal
14/10/17 18:14
수정 아이콘
그런데 마냥 돌고래가고만 했으면 나중에 좀 싸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게 원작에 저 만새기가 여러번 나오는 데 저걸 낚시로 낚아서 보트 위에서 회를 쳐서 먹는 내용이 나오는데 사실 노인이 탄 보트는 아주 작은 배라서 왠만한 돌고래가 올라오면 회는 둘째 치고 배가 다 차서 앉을 만한 데도 없을 정도거든요...하지만 그걸 잡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엘에스디
14/10/17 18:12
수정 아이콘
사실 공들인(?) 오역은...
역자의 오역 -> 편집자가 주변 정황에 잘 맞게 맨질맨질 -> 역자가 교정하면서 다시 맨질맨질
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독자가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보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죠... =_=
14/10/17 18:13
수정 아이콘
흠.... 지금도 노인과바다 생각하면 돌고래 대가리에 가상의 십자가를 긋고 작살 날리던 장면이 떠오르는데 돌고래가 아니었군요..
Neandertal
14/10/17 18:15
수정 아이콘
그건 아마 상어인 것 같네요...작살 그리고 몽둥이로 여러마리 아작내죠...--;;;
14/10/17 18:22
수정 아이콘
그건 상어군요. 돌고래는 어느 장면에서 나왔지 크크. 그러고보니 읽은 지 20년 가까이 되어서 책의 주제가 뭐였는지도 기억 안 나네요;;

노인이 큰 물고기를 낚시로 끌려다니면서 겨우 잡은 후, 배에 묶고 오다가 상어떼의 공격으로 고기뼈대만 가지고 항구에 도착하고 끝.

지금 기억엔 요렇게 남아 있습니다 흐흐
Neandertal
14/10/17 18:23
수정 아이콘
돌고래는 노인과 바다에서는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우리가 돌고래라고 알고 있던 놈은 만새기였구요...--;;;
14/10/17 18:14
수정 아이콘
번역쪽에서는 corn도 유명하더군요.
흔히들 corn하면 그냥 옥수수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작품에 corn이란 단어가 나오면 별 생각없이 옥수수라고 번역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데 이건 미국 영어고, 영국 쪽에서는 옥수수가 아니라 그 지방의 주요 작물(보통 밀wheat)을 뜻합니다.
옥수수가 서양에 소개된 게 미대륙 발견 이후인데, 덕분에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옥수수를 먹고 있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그래도 몇 번 대차게 까이다보니 요즘엔 옥수수로 실수하는 경우는 잘 없다더군요.
ohmylove
14/10/17 18:15
수정 아이콘
이런 경우도 있죠. 예전 월드컵 때 박지성이 골을 넣었을 때, 앙리가 silly goal을 먹었다, 라고 했습니다. 이를 우리 언론은 앙리가 박지성의 골을 멍청한 골이라고 비하했다며 논란이 일었죠. 심지어 어떤 신문은 '세상에 멍청한 골은 없다'라는 칼럼까지 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silly는 멍청한, 보다는 어이없는, 으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결국 해석 하나 잘못한 것이 큰 나비효과가 되었죠.
구밀복검
14/10/17 18:22
수정 아이콘
그것도 생각나네요. 코파 아메리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승리를 거두지 못한 뒤 메시가 'unfair'라고 했는데, 이것은 경기 결과가 불공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했는데 아쉽게도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노력과 결과의 불일치를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나, 번역되는 과정에서 어감이 상실되면서 패배를 납득하지 못하는 투정처럼 되어버렸죠.
엘에스디
14/10/17 18:57
수정 아이콘
딴 이야기지만 만새기 하면 어릴때 ABC 문고에서 읽었던 <콘티키>에서 등장했던게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파이 이야기에도 나왔던 것 같기도 한데 이쪽은 긴가민가하고...

사실 동식물명 번역은 틀리는 경우 진짜 많죠. 좀 어이없는 홍관조 <-> 추기경같은 오역도 가끔 보이고...
swordfish-72만세
14/10/17 19:24
수정 아이콘
카디널은 크크
기아트윈스
14/10/17 19:18
수정 아이콘
역시 딴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때는 고구마도 감자였지요. 감자라는 단어가 오늘날의 감자와 고구마를 모두 통칭하는 말이었고 그 앞에 각종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예컨대 하지감자 남감자 북감자 등등) 그게 고구마냐 감자냐 뭐냐를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한문 원전을 번역할 때도 감저라고 나왔다고 그냥 감자로 번역하면 안되고 문맥상 이게 뭔지를 한참 고민해야 하지요.
아케르나르
14/10/17 23:03
수정 아이콘
충남 태안 등지에서는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감자라고 불렀다더군요. 고구마 볼 때마다 아버지께선 당신 어릴 적엔 이걸 감자라고 불렀다고 얘기를 하시죠.
겨울삼각형
14/10/17 20:12
수정 아이콘
왈도체로 유명한 마이트앤매직6에 나오는 오역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오역이라고 생각하는 적어보자면..(물론 다른것이 안충격적이라는건 아님)

elven chain mail -> 11개의 사슬 편지, 이건 번역자가 그냥 자기가 알아볼만한 단어를 그냥 짜집기해서 넣어버린..
Apple tree -> 나무상자 ???
가난한쉐리
14/10/17 20:28
수정 아이콘
유게 채병용 관련 글만해도 주야장천을 주구장창으로 쓰고 계신분들 많더라구요;
14/10/18 02:53
수정 아이콘
주구장창 같은 경우는 표준어가 아닐지언정 틀린 표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런진 회의적입니다. 전 사투리가 그러하듯 관습적 용인 범위 이내에 두어야한다고 보네요.
14/10/18 10:22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그건 본문과 전혀 다른 문제인것 같습니다 ;
아케르나르
14/10/17 22:57
수정 아이콘
지금도 돌고래 몇마리 잡아서 배 위에서 먹던 거는 기억나는 거 보면 어릴 때 읽을 때도 좀 이상해하지 않나 싶어요. 그게 만세기였군요. 제가 기억하는 나름 유명한 오역은 은영전인데, 이 책의 첫 한국어 판은 해적판인 데다가 거의 오역 투성이죠. 일단 얀 웬리 ->양 원리 얘기부터 해서 라인하르트 남매간 대화는 아예 통째로 편집한 곳도 있고..
에바 그린
14/10/18 00:28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이건 알아내서 수정된 부분이네요. 그게 오류라는걸 안 과정이 더 궁금하네요 크크크. 어떻게 안거지???

아직도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것과 모른다는것 조차도 모르는것 들이 많겠죠..?
14/10/18 01:27
수정 아이콘
개발 서적 번역과 감수를 몇번 했는데, 개발쪽은 번역자가 오역을 해도 출판사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수자가 감수를 해도 다 걸러내질 못하구요.
애초에 시장의 수요가 작은 때문인지 번역과 감수에 지급하는 금액이 분량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기 때문에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돈도 안되는거 하느라 몇 달 동안 끙끙거리고 야근하면서 번역하는데 원저자의 의도가 뭐였을까 리서치해가면서 번역한다는게 현실적으로 어렵거든요.
그렇게 번역을 마치면 짧은 기간의 감수를 거쳐 윤문자가 표현이 어색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고쳐놓지요.

그러다보니 맥락상으로 보면 딱히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는 책들이 양산되어 나옵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책 번역이 이상한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부족해서 잘 이해를 못하는가보다]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됩니다.
공부할 책 추천해달라는 신입개발자들에게 추천해줄 책이 없어요.
생각쟁이
14/10/18 20:25
수정 아이콘
He fired his luger. 그는 그의 루거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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