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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2/03 10:36:51
Name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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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시골집에서 개를 키웠던 기억. (수정됨)


시골 집으로 이사한 뒤. 아버지가 어디서 강아지 두마리를 얻어오셨다.

진돗개 새낀가? 했더니 진돗개 잡종의 잡종이라더라. 그래도 진돗개 피가 섞였다니 암컷, 수컷이었던 두 개의 이름은 당연히 진돌이, 진순이였다.

새끼를 마당에 묶어놓기도 애매하니, 새끼일때는 방 안에 들여놓고 키웠다.

아버지나 맞벌이 하는 어머니때문에, 막내아들 손주들 돌봐주러 오신 할머니는 개새끼를 왜 방 안까지 데리고 오냐? 하는 입장이었지만 다 눈치 봐가며 데려왔었지.

학교에서 우유 나오는거, 우유팩 가지고 와서 강아지들 주면 할짥대며 잘도 먹었다. 나 알아보고 꼬리치는게 너무 귀엽더라.

나는 아직 작은데 조금 커지자 진돌이 진순이는 밖으로 쫓겨나 목줄을 매게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 찡찡대는 애들, 나는 다시 데려오고 싶었는데 아버지와 할머니의 입장은 완고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애들과 나는 끈끈했고, 숙제 다하고 마당에 나가서 개들과 노는 재미로 하루를 다 보냈다.

하지만 나는 얼마후 떨어진 성적때문에 학원을 가게 되었다.

읍내에 있는 학원에 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이미 날이 어두운 뒤. 진돌이 진순이와 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곧이어 성적이 올라 아버지가 사주신 중고 386 컴퓨터로 각종 게임을 시작하느라 (파랑새가 동급생 99% 한글패치를 한 덕이었다) 진돌이 진순이와 놀게 된건 동생들 이야기가 되었고.

눈이 피곤해서 마당에 나와 있으면 여전히 개들은 나와 놀자고 찡찡대었다.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목이 졸려 괴로워 하면서도 가까이 오고자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이전처럼 다가가지 못했다.

동생들도 머리가 굵어졌다. 남동생은 사촌이 기타친다고 자랑하고 간 이래, 기타를 구해서 자기방에서 뚱땅거리느라 정신없어졌고 여동생은 TV 앞에서 살기 시작했다.

진돌이 진순이는 여전히 우릴 좋아했지만 우리는 다가가지 못했다.

덩치는 더 커졌고, 진돌이는 목줄을 끊고 마을 밖을 몇번이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나와 동생들이 하던걸 중단하고 찾으러도 몇번 다녔다. 그것때문에 진순이한테 네 오빠 왜저러냐. 하고 구박도 하고 그랬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워서였을것 같다. 남은건 두 남매뿐에, 우리는 집에 들어왔으면서도 이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두마리 개들이 그냥 집의 일부로서만 기능했던 시간들이 지나던 중.

집에 돌아오자 진돌이 진순이가 없었다.

어디 나갔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목줄은 잘 개어저 창고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게 무슨일이냐? 하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애타게 찾아도 그 어디도 없었다. 그제서야 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토록 외면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이제와서야 찾는거냐, 하는 질문이 마음속으로 행해졌다.

나는 그날이 며칠인지, 날짜를 생각해 보았다.

복날이었다.
시골에 있어, 복날은 멀쩡히 키우던 개를 잡는 날이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저녁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께 찾아갔다. 하지만 다행히 할머니가 요리하시던 고기는 소고기였다. 소고기... 아니 무슨 갑자기 소고기?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공장 하나가 집 근처에 있었는데. 진돌이가 이전부터 살이 잘 올랐네 하고 보던 공장 직원들이 우리 집 개, 복날에 팔수 있으면 팔아달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걸. 어차피 우리들이 별로 관심도 없는거 같으니까 아버지는 약간 고민하시는걸 할머니가 팔자 하신것이다. 진돌이에 진순이 합치니까 꽤 큰돈이었기도 했고.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동생들은 사정도 모르고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못했다.

그제서야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사람좋아하고, 우유먹여서 키울때 찡찡거리던 그 모습들이 눈에 박힌듯 가시질 않았다.
내세라는게 있다면 혹시 볼수 있을까. 만나면 사과하고 싶었다.

살면서 돌아가 바로잡을수 있다면, 내 인생을 바꾸는것이 아니라,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래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먹는 사람들이 잘못됬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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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군
15/12/03 10:41
수정 아이콘
왜 갑자기 돼지덮밥이 생각나지...
몽키.D.루피
15/12/03 10:43
수정 아이콘
저도 어릴 때 귀찮아서 개를 케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애완동물을 앞으로 기를 생각이 없습니다. H님처럼 그때만 생각하면 저도 막 후회되네요.
유리한
15/12/03 11:08
수정 아이콘
dvdprime의 개싸움 류의 훈훈한 글일줄 알았는데..ㅠ
https://pgrer.net/pb/pb.php?id=humor&no=229233

동물들 참 좋아하는데 책임질 엄두가 안나서 안키웁니다.
물생활만 잠깐하다가 어항 통째로 조카들에게 분양한 뒤로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안키우고있네요.
15/12/03 12:28
수정 아이콘
링크하신글 따라가서 재미있게 봤는데 보고 나서 더 쓰신글이 없나 찾아보니까..

이분 다중 아이디로 걸려서 활동정지 당하셨네요..

http://dvdprime.donga.com/g5/bbs/board.php?bo_table=comm&wr_id=9372575&sfl=mb_id%2C1&stx=dldPtnr

위에 링크했던 훈훈한 얘기도 다 창작이었다는 결론........
유리한
15/12/03 13:10
수정 아이콘
덜덜.. 그럼 그냥 필력쩌는 창작물인걸로..
돌아온 개장수
15/12/03 11:16
수정 아이콘
저도 많이 키웠었죠.
리니시아
15/12/03 15:26
수정 아이콘
뭔가 안타깝네요..ㅠㅠ
오쇼 라즈니쉬
15/12/03 18:43
수정 아이콘
파랑새가 잘못했네 라고 쓰려고 했는데... 그런 분위기의 글이 아니네요
저희동네 자동차 정비소에 큰 개를 키우는데, 바로 옆집이 보신탕집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매일 사람고기 냄새 맡으면서 지내는 걸까요. 개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쓰려나. 코는 더 밝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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