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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2/30 11:30:12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영화 토크] 2016 PGR 아재 무비 어워즈 (PAMA) - 상
※ 이 글은 올 한해 개봉한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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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달 : 2016 병신년을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영화 토크로 돌아왔습니다. 농염한 아재들이 모여 올 한해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는 시간. PGR 아재 무비 어워즈, 줄여서 PAMA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회, 기록, 업로드를 맡은 충달입니다.

??? : 근데 나는 Eternity로 소개해? 영원으로 소개해?

충달 : 니 맘대로 하세요.

Eternity : 안녕하세요. Eternity입니다.

renton : 안녕하세요. renton입니다.





1. 사운드상 (음향, 음악 통합)

충달 : 가타부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 시상 부문은 사운드입니다. 사운드는 음향과 음악을 통합한 부문입니다. 통합한 이유는 시간입니다. 재작년에는 토크만 10시간에, 타이핑에 수십 시간이 걸렸거든요. (편집자 주 : 그러나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 올해 사운드가 가장 좋았던 영화를 뽑겠습니다.

renton : 최근에 가장 강렬하게 본 영화가 <라라랜드>입니다. 음향과 음악을 모두 고려해볼 때 <라라랜드>가 많은 것을 지배했어요.

충달 : 저는 기대감이 엄청났거든요. <위플래쉬>가 너무 좋았으니까요. 기대가 높으면 막상 보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라라랜드>는 그 기대를 충족시켰어요.

renton : 음악의 쓰임새도 좋았고, 특히 오리지널 스코어* 뮤지컬이라는 점이 훌륭했죠. 라이언 고슬링이 호숫가를 지나며 "City of Stars"를 부를 때 사랑에 빠졌고, 엔딩에서 "Mia and Sebastian's Theme"이 나올 때 제대로 꽂혀버렸어요. 영화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OST를 찾아들었는데 가슴이 벅찰 정도였어요. 지금도 하루에 서너 번씩 듣고 있네요.
*스코어 : 일반적인 작곡(composition)과 구분하여 특별히 영상과 관련한 음악을 작곡하는 것 또는 곡 자체를 의미한다.

충달 : 저도 <라라랜드>! 오리지널 스코어라는 점이 가장 큰 시상 이유입니다. 요즘 뮤지컬 영화를 보면 이미 뮤지컬로 성공한 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라라랜드>는 과거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어요. 신곡으로 모험을 걸었죠. 그리고 이 정도 결과물을 보여줬다면 칭찬해야 마땅합니다. 음악과 음향이 서사에 잘 녹아든 점도 훌륭해요. 사운드에서는 올해 <라라랜드>가 최고였습니다.

Eternity : 저도 <라라랜드>의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찾아 들었습니다만, "과연 최고였냐?"라고 묻는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요. <라라랜드>의 사운드는 한방이 없었어요. <겨울왕국>의 "Let it go"나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은 주제가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한방이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 중에서는 <드림걸즈>의 "Listen"이 있었죠. 이런 곡들에 비하면 한방의 파괴력은 부족했달까요?

충달 : 그런 면에서 <라라랜드>는 뮤지컬과 영화 중에서 영화 쪽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라라랜드>가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낸 이유는 영상에 있었죠. 사운드는 거들뿐. 그래서 아쉬움이 있어요.

충달 : 그럼 Eternity님은 무슨 영화죠?

Eternity : 그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제가상을 꼽으라면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을 뽑겠어요. 주인공 주디의 주토피아 입성 장면에서 흘러나온 음악이죠. 노래와 영상이 100% 호응하는 환상적인 장면이었어요.

충달 : 그럼 사운드상은 <주토피아>?

Eternity : 그런데 주제가만으로 사운드상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곡성>도 생각해봤어요. 일광(황정민) 등장 신에서 꼬불꼬불 고갯길을 운전할 때 굿판을 연상시킨 배경음악이 나오는데 그때 영화의 공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충달 : 저는 <샤이닝>의 오프닝이 떠올랐어요.

Eternity : 정말 소름 끼쳤어요. 배경음악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공기를 확 바꾸니까요.

충달 : <곡성>은 음악보다 음향이 훌륭한 영화였죠. 저는 일광의 휘파람이 올해 최고의 사운드 중 하나였어요. 일광이 휘파람을 불며 마당을 훑고 다니자 평범한 공간이 오컬트*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놀라운 연출이었어요.
*오컬트 : 물질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에 대한 지식을 뜻한다. 신비학(神祕學) 또는 은비학(隱秘學)으로 부르기도 한다.

Eternity : 그런데 <곡성>도 한방이 있었냐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결론은 <캐롤>입니다.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이혼을 앞둔 부잣집 중년 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챗)과 백화점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테레즈(루니 마라)의 치명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캐롤>의 사운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 1950년대의 공기를 그대로 전달해줘요. 음악 자체도 좋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식도 훌륭했어요. 오프닝과 엔딩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똑같은 음악이 흐릅니다. 그런데 오프닝과 엔딩의 감성이 전혀 다르게 다가와요.

충달 : 저는 오프닝에서는 음악에 아무 느낌도 못 받았어요. 그냥 레스토랑에서 으레 흘러나올 법한 음악이었죠.

Eternity : 그런데 엔딩에서는 그 음악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어요. 이는 음악이 영화를 관통하면서 엔딩에 이르러 영화를 지배한 겁니다. 음악이 모든 서사를 함축하며 영화 전체를 장악한 셈이죠. 관객이 음악만 들어도 캐릭터의 감성에 동화되었기에 대사가 필요 없었어요. 이런 게 장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라라랜드>보다 영화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충달 : 마지막에 테레즈 등 뒤에서 음악이 쓱 따라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 감동이 폭발해버렸어요. 그 음악이 너무나 애잔하고 가슴이 아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Eternity : 전율이었죠. 이 영화를 PAMA 준비하면서 숙제하는 기분으로 봤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보면 영화를 즐기기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킵 한 번 없이 푹 빠져서 봤네요. 단번에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 되었어요. 주변에 강추하고 싶어요.

충달 : 저도요. 누가 봐도 아름다울 영화였어요. 그럼 사운드 부문은 <라라랜드>, <캐롤>, <라라랜드>로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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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는 renton, Eternity, 충달입니다. 연장자 우대





2. 시나리오상

충달 : 두번 째로 시나리오상을 선정하겠습니다. Eternity님부터 가실까요?

Eternity : 시나리오상. 하... 힘들다. 저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천의무봉(天衣無縫),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아 깔 데가 없죠.

충달 : 저는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같은 영화였어요.

Eternity :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의 시선이 절제되어있고, 담담하고, 신파나 MSG가 전혀 없습니다. 제목은 스포트라이트인데, 누구 하나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에게 잘 배분되었죠. 심지어는 짧게 등장하는 국장이나 부국장의 존재감도 확실합니다. 원맨팀이 아니었어요. 팀플레이가 인상적이었죠. <스포트라이트>는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다룹니다. 픽션이 아니라 실화죠.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수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탐사 부분까지만 다루죠. 자극적인 부분 직전에서 멈춥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충달 : 한국 영화였으면 <도가니>가 나왔죠. 소재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영화를 보면서 부들부들하지 않았어요.

Eternity : 플래시백*이 하나도 없어요. 한국이었으면 신부가 성추행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해서 관객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겠죠.
*플래시백 :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그 기법.

충달 : <도가니>에는 관객이 경악하는 장면이 있었죠. 교장(장광)이 화장실 문 너머로 얼굴 내밀 때. 입에서 탄성과 욕이 절로 나왔거든요.

Eternity : 한국 영화였으면 각 캐릭터에 개인 사연을 넣으며 뚜렷한 개성을 부여했겠죠. <도둑들>, <국가대표>,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그리고 러브라인도 좀 넣어주고...

renton : 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봐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소재가 있잖아요. 이걸 JTBC에서 보도하기 직전까지만 다루면 그대로 <스포트라이트> 한국판이거든.

Eternity : 하지만 충무로가 JTBC 보도 직전까지만 다룰까요? 그렇게 만들면 흥행이 어렵죠. 태블릿 PC 보도 직후부터 재밌어졌는걸요.

renton : 그래도 <스포트라이트>라는 레퍼런스가 나왔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스포트라이트>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은 충분하다는 거죠.

Eternity : 제 생각은 달라요. 제가 생각하는 충무로 제작사들은 웰메이드 영화를 따르기보다 관객이 원하고, 관객에게 잘 팔리는 것을 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충달 : 이번 박근혜 게이트는 영화로 만들면 <내부자들>처럼 만들겠죠.

renton : 또 하나 짚고 싶은 부분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담담하거나 혹은 심심한 영화를 많이들 극찬하는데, 이게 다큐와는 뭐가 다르냔 말이죠.

Eternity : 흔히 다큐가 건조하고 담담한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많아요.

충달 : 다큐멘터리 <자백>에서 원세훈이 씨익 웃는 모습을 쫘악 당겼을 때 부들부들했죠.

Eternity : 다큐멘터리는 클로즈업, 정지화면 등으로 현실을 취사선택하죠.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언론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을 보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도하지 않느냐이다.". 다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에 따라 감정을 고조시키고 작품에 방향성을 부과하죠.

충달 : 사실 다큐야말로 가장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장르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르가 모큐멘터리 혹은 페이크 다큐죠. <제이슨 본>으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 작품 중에 <블러디 선데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아일랜드판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입니다. 극 영화임에도 다큐처럼 촬영했어요.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감정과 사상은 완전히 편향됩니다. '영국 경찰 나쁜 놈들...'하며 분노케 만들어요.

Eternity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 할머니가 무덤가에서 우는 장면을 수미쌍관으로 길게 잡으며 감정을 끌어올려요. 오히려 다큐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을 넣는다고 봐야죠.

renton : 즉, 노잼을 선택한 대담함이 완벽한 각본을 만들었다는 말이군요.

충달 : <스포트라이트>의 담담한 기조는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스포트라이트>에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등장하고, 후반에는 자신의 저널리즘을 반성하는 내용도 나와요.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차가운 시선 속에 머물도록 만든 점이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해요.

Eternity : 스타일과 서사 밀접하게 닿아있으니 빛을 발하는 거죠. 그냥 담담한 게 아닙니다. 담담한 형식이 주제를 완성했어요.

충달 : 그럼 renton님은 어떤 작품에 시나리오상을 주셨나요?

renton : 생각할 것도 없이 <곡성>. 올해 최고의 각본은 <곡성>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놀래게 만들었죠.

충달 : 저도 <곡성>! 이런 영화는 충무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다시는 안 나올 겁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잖아요. 처음에는 스릴러처럼 시작했다가 오컬트로 빠졌다가 좀비도 나왔다가... 동서양을 다 집어넣은, 말 그대로 장르의 잡탕이었죠. 이 잡탕이 영화를 못 만들면 개밥이 됩니다. 그런데 <곡성>은 완벽하게 버무러지면서 독특한 작품으로 거듭났어요. 마치 부대찌개랄까요?

renton : 포스터에서부터 현혹이라는 단어가 나오죠. 관객을 현혹한 결과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처럼 의도를 교묘하게 감추었다는 점. 그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저는 의도했다고 봐요. 나홍진 감독은 매 장면을 찍을 때마다 몇 퍼센트의 관객이 현혹될 것인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으로 살굿이 있고, 닭을 사는 장면, 벼랑에서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우는 장면 등등 관객이 헷갈리기를 바라는 포인트가 있었죠. 하지만 너무 현혹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무리수가 있었어요. 살굿 장면을 보면 장승에 말뚝 박는 모습과 외지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줍니다.
*교차 편집 : 서로 독립된 장면을 엇갈리게 보여주는 편집 기술. 서스펜스를 조성할 때, 액션의 긴박감을 고조시킬 때, 서로 다른 행위들 사이의 대비되는 관계를 설정할 때 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충달 : 그 장면을 보면 장승을 때리는 행위가 외지인을 향한 공격으로 보이죠. 물론 결말까지 다 보면 "아... 낚였구나." 할 수 있지만...

Eternity : 그 장면을 보는 순간에는 일광과 외지인이 적대관계라고 믿을 수밖에요. 이런 식으로 관객을 현혹하려는 장면들이 무리수가 되어 이야기의 완성도에서 허점이 드러난 셈이죠.

충달 : 그래서 <곡성>이 개봉한 이후에 해석이 많이 나왔어요. 비평이 아니라 해석. 예전에 글로 쓴 내용인데, 감독이 작정하고 관객을 속이려는 장면을 넣었다면 이를 해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이거 다 뻥인데. 데헷." 해버리면 이전의 서사는 말 그대로 끼워 맞추기 나름이거든요. 그래서 무엇이 진실인지 해석하기보다는, 어떻게 관객을 속였는지 따져보는 게 비평적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어떤 심리를 자극했는지, 어떻게 장르를 오갔는지 말이죠.

Eternity : 영화는 처음 볼 때랑 두 번, 세 번 봤을 때랑 느낌이 다르죠. 그런데 <곡성>은...

충달 : <곡성>은 볼수록 힘이 빠지는 기분이네요.

Eternity : <곡성>은 보면 볼수록 구멍이 눈에 들어와요. 그에 반해 <스포트라이트>는 여러 번 봐도 한결같거든요.

renton : 하지만 Eternity님이 리뷰에 자주 언급하듯이 영화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체험하면서 받았던 충격을 부정할 순 없어요. 예를 들어 마술을 두 번, 세 번 보고 나서 마술의 트릭을 알아낸 후에 "이 마술은 트릭을 알고 나니 별로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거든요. 마술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유효했으니까요.

충달 : 그래서 저는 <곡성>은 해석하면 할수록 작품의 가치를 깎아 먹는다고 생각해요.

renton :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를 마술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하지만 <곡성>은 마술적 체험이었습니다.

충달 : 그럼 시나리오 부문은 <곡성>, <스포트라이트>, <곡성>으로 마무리... 하기 전에 올해 최고의 명대사 한 번 꼽아보죠.

Eternity : 저는 <최악의 하루>에서 나왔어요. 주인공 은희(한예리)가 남자친구(권율)와 다툰 후에 남산에서 내려오다가 예전에 양다리 걸쳤던 유부남(이희준)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둘이 차 한잔하는데, 아직도 은희를 좋아하는 유부남이 "요즘 만나는 남자 있냐?"고 묻거든요. 남녀 사이에 오가는 뻔한 질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은희의 대답이 가관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다는 듯 한참을 쏘아보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사람 만나는 기계에요?". 이 뻔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리얼하게 와 닿아서 빵 터졌어요. 크크크. 거짓투성이라는 연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날카로운 대사였어요.

renton : 저도 최고의 명대사는 <최악의 하루>입니다. 같은 장면에서 은희와 유부남이 미묘하게 밀당을 주고받다가 줄이 팽팽하게 땡겨진 순간에 "전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라고 하는데 줄을 끊다 못해 폭파시키는 느낌이었어요. 그 대사를 기점으로 이희준이라는 배우가 3D로 보이는 것처럼 영화에서 도드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나오는 일련의 대사들이 모두 명대사였어요. 공포의 삼자대면에서 도망가는 은희를 보며 "은희 씨 왜 이렇게 빨리 걸으시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쫓아오는 데 정말 최고였습니다.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들보다 더 무서웠어요.

충달 : "전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라는 대사. 너무 어이가 없는 개소리라 저도 빵 터졌습니다. 대사의 찰진 정도만 따진다면 올해 최고는 <최악의 하루> 같네요. 그런데 저는 다른 영화입니다. <캐롤>에서 테레즈 남친의 친구(존 마가로)가 하는 대사죠.

Eternity : 복잡하다... 주인공의 남친의 친구...

충달 : 대사는 이래요.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 뿐이다." 저는 이 대사가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오류예요.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부족하다."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캐롤>은 이처럼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장면이 여럿 등장해요. 그래서 동성애 영화이지만, 동성애 영화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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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집상

충달 : 이제 편집상을 골라보겠습니다. 올해는 편집상으로 고민이 많았어요. 편집으로 조지고 들어가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재작년에는 <나를 찾아줘>가 있어서 고민이 없었는데...

renton : 어휴... 그노무 핀처는 얘기만 하면 맨날 나오네.

충달 : 그래서 고심 끝에 <설리>를 뽑았습니다. <설리>는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불시착 사건 자체는 5분도 안 걸렸어요. 그걸 가지고 90분짜리 영화를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주로 쓰는 기법은 플래시백입니다. 그런데 보통 플래시백을 쓰면 영화가 촌스러워져요.

Eternity : 왜 그럴까요?

충달 : 상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니깐 세련미가 떨어지죠.

Eternity : 구구절절 설명하는 기분이군요.

충달 : 그리고 영화의 흐름이 뚝뚝 끊어집니다. 잘못 쓰면 지루해지기 십상이죠. 그래서 플래시백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Eternity : 그럼에도 <설리>를 뽑은 이유는?

충달 : 플래시백을 정말 잘 썼거든요. 5분짜리 사건을 플래시백을 활용하여 90분짜리 매끈한 영화로 만들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죠. 그런데 <설리>는 플래시백으로 영웅 서사를 완성합니다. <설리>에는 플래시백이 세 번 등장해요. 각 플래시백은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플래시백에서 영웅의 고난을 보여주고, 두 번째에는 영웅의 자질을 보여주고, 세 번째에 이르러 설리(톰 행크스)를 영웅으로 완성합니다. 아까 대부분의 플래시백이 노골적이라고 했는데, <설리>의 플래시백은 반대로 우회적입니다. 촌스럽게 "설리 짱짱맨"하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었죠. 이게 거장의 클래스랄까요?

Eternity : 그렇게 훌륭한데 왜 고민했어요?

충달 : 그래도 쩐다는 기분은 안 들었거든요. 머리로는 훌륭한 줄 알겠는데, 가슴에 꽂히지 않았달까요. 그래도 굳이 편집상을 고르라면 <설리>를 고르겠습니다. 뭐... <설리>도 타이틀 하나쯤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

Eternity : 저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입니다. 장면과 장면을 이어 붙이는 것도 편집이지만,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것도 편집이거든요. <아가씨>에서 전반부는 숙희(김태리)의 시선으로 진행하다가 후반부는 히데코(김민희)의 시선으로 바뀝니다. 그로 인해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관객에게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이게 편집의 힘이고 편집의 매력이거든요.

충달 : 이런 걸 몽타주*라고 해요. 어떤 장면 뒤에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편집의 특성이죠. <아가씨>의 끝단이(유민채)가 몽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에요. 하녀로 들어가는 숙희를 바라보며 끝단이가 눈물 흘립니다. 처음에는 끝단이가 숙희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잠시 뒤에 드러나기로는 자신이 가지 못해 우는 것이었어요. 똑같은 상황이 앞에서는 이타적 장면이었다가 뒤에서는 이기적 장면이 됩니다. 이런 서술 방식을 1, 2장에 걸쳐 극 전체에 녹여냈다는 게 대단했어요.
*몽타주 : 영화의 각 쇼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또 다른 메시지를 만드는 편집 기법.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쇼트는 다른 쇼트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전달한다."라고 하였다. 몽타주가 쇼트와 쇼트 사이에서 이미지를 만든다면, 미장센은 하나의 쇼트 안에서 이미지를 만든다.

Eternity : <아가씨>처럼 몽타주를 큰 스케일로 그리는 영화가 또 있나?

renton : 그런 건 타란티노 영화에 많아요. <저수지의 개들>을 예로 들면, 미스터 오렌지(팀 로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영화 전체 이야기가 재구성되거든요.

충달 : 그런 타란티노의 특징을 잘 받아 계승한 감독 중에 한 명이 박찬욱이죠. 그럼 마지막으로 renton님이 선정하신 올해의 편집상을 들어보겠습니다.

renton : 저는 <빅쇼트>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다룬 영화죠. 영화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연관성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마치 네 명이 한 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집을 절묘하게 붙여놓았어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2007년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현재까지 계속되는 경제 불황도 모두 이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Eternity : 그런데 저는 <빅쇼트>가 난잡했어요.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딱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도 없고, 편집도 중구난방 정신없었어요.

충달 : 근데 그렇게 정신없이 중구난방 쑤시는 게 설계였을 수도 있어요. 당시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데도 아무도 사태를 몰랐습니다. 위기인 줄 모르는 게 진짜 위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딱 그 상황이었죠. 그런데 조각조각 흩어진 망조의 단서를 하나하나 짜 맞추다 보니 "아뿔싸. 망했구나. 버블이구나."하고 깨닫습니다. 난잡해 보이는 편집으로 진실을 흩어놓음으로써 결말에 이르렀을 때 충격을 배가시켰죠.

Eternity : 결국 난잡해 보이는 편집도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군요.

renton : 담담하고 완전무결한 서술이 <스포트라이트> 자체를 말해주는 것처럼, 난잡하고 정신없는 편집도 <빅쇼트> 그 자체였던 셈이죠. 유기적이지 못하다 보니 몰입감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속도감은 대단하죠. 경제가 어떻게 순식간에 파탄 나는지 관객에게 체감시킵니다.

Eternity : <스포트라이트>가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면, <빅쇼트>는 경락마사지나 임요환의 드랍쉽 같네요.

충달 : 그럼 편집상은 <빅쇼트>, <아가씨>, <설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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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주얼상 (미장센, 특수효과 통합)

충달 : 이번에는 비주얼상을 고르겠습니다. 영화 시상식에는 영상과 관련한 부문이 많아요. 소품, 의상, 미술, 조명, 촬영, 특수효과 등등 정말 많죠. 그런데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눈이 호강했는지만 따지면 될 것 같아서 비주얼상으로 통합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어떤 요소가 좋았건 영상이 제일 끝내준 영화를 골라주시면 됩니다.

renton :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시상 부문이 비주얼로 통합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장 최근에 봤던 <라라랜드>에서 비주얼 뽕을 맞아버렸거든요. 정말 황홀했죠. 그래도 특수효과 측면을 고려했을 때 상반기에 봤던 <정글북>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CG와 실사를 구분하는 시기는 끝났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떻게든 위화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깐 그저 좋더군요. 그야말로 정글을 체험하는 작품입니다.

Eternity : <레전드 오브 타잔>과는 다르다... <레전드 오브 타잔>과는... 저도 <정글북> 좋았어요. 실사와 CG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동화적 세계관이 완성되었죠.

충달 : CG가 발달하면서 영화가 다시 연극화되어간다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세트도 거대해지고, 촬영 장비가 발달하면서 로케이션 촬영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CG가 발달하면서 블루스크린에 둘러싸인 소극장 같은 세트에서 혼자 연기하게 되었죠.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renton : 그래서 이안 맥캘런 옹이 <반지의 제왕> 찍으면서 자괴감이 드셨다고...

충달 : 특수효과만 따지면 <정글북>도 좋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도 좋았어요. 제가 <닥터 스트레인지> 짤평을 쓰면서 "비주얼 혁명들을 계승했다."라고 썼죠. <매트릭스>도 연상되고, <인셉션>도 연상됩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가 기존에 완성된 비주얼을 계승, 발전시켰다면, <정글북>은 자신만의 비주얼 혁명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Eternity : 글쎄요. 저는 굳이 <닥터 스트레인지>는 완성이고, <정글북>은 혁명이라고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CG의 발전은 이전에도 꾸준히 이어졌고, <정글북>도 그 연장선에 있거든요.

renton : 하나 첨언하자면 <정글북>은 디즈니 실사화의 분기점이 될 겁니다. <정글북> 감독이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죠. 그리고 다음 작품이 <라이온 킹> 영화입니다. 이러면 <정글북>이 디즈니 Full CG 영화의 시초가 될 수도 있겠죠.

충달 : 이런 Full CG 영화의 시초를 따져 본다면 <파이널 판타지(2001)>를 꼽을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거든요. 그러나 Full CG 영화는 항상 이질감이 있었어요. <정글북>에 이르러서야 이질감 없는 Full CG 세계가 완성되었죠. 그래서 Full CG 영화의 제대로 된 시작은 <정글북>이라고 생각합니다.

Eternity : 그런데 <파이널 판타지>를 논하면서 우리의 <디 워>를 빼놓을 수는 없죠.

충달 : 왜 그래여...

renton : 빼도 돼.

Eternity : 죄... 죄송합니다.

충달 : Full CG를 논하면 안타까운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죠.

Eternity : <틴틴>에다 올해 <마이 리틀 자이언트>까지... 도전은 꾸준한데 평이 안 좋아요.

renton : 존 파브로는 정말 영리한 것 같아요. 존 파브로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으로 마블-디즈니의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2>에서는 빠지더니 <정글북>을 내놓았거든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죠. 디즈니가 실사 영화를 매번 죽 써왔는데 <정글북>으로 이렇게 터뜨렸으니... 정말 대단한 감독이에요. 저는 작년에 가장 좋았던 영화도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였습니다. 이런 감독이 만든 <라이온 킹>이라니 기대할 수밖에요.

충달 : 이번에는 제가 뽑은 작품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라라랜드>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서 현란한 영상에 푹 빠졌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자마자 뇌가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엄청난 비주얼 쾌감이었죠. 그래서 결론은 <라라랜드>입니다. <위플래쉬>에 이어 명암도 잘 쓰는 데다가 색감으로 관객을 후두러 패더라고요.

Eternity : 빛도 명암대비에 그친 게 아니라 계절과 연계해서 빛의 뉘앙스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여름이 인상적이었어요.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그 자체로 둘의 사랑을 전해줍니다.

충달 :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같은 도로인데 빛의 뉘앙스가 바뀌면서 "겨울"이라고 자막이 뜨잖아요. 저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Eternity : 환상의 뮤지컬 공간이 교통 체증의 현실적 공간으로 바뀌었죠.

충달 :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데서 정말 눈물이...

Eternity : 저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라라랜드> 중에서 고민하다가 <라라랜드>를 골랐습니다. 긴 설명보다 한 마디로 말씀드릴게요. 영상을 보면서 오르가슴,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충달 : 쌌네... 쌌어...

Eternity : 그런 쾌감을 준 영화가 올해는 <라라랜드>가 유일했던 것 같아요. 장면들을 눈에 넣고 매일매일 재생하고 싶을 정도? 특별히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친구들과 파티에 놀러 가기 위해 도로에서 탁탁탁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충달 : 응? 탁탁탁?

Eternity : ... 님 자제요... 그 장면에서 잔잔히 흐르던 음악이 위풍당당하게 바뀌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영상과 사운드가 환상적으로 호응하는 멋진 장면이었죠. 이게 뮤지컬 영화다 싶었어요.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황홀했습니다. 탭 댄스 장면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바뀝니다.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요. 예전에 이명세 감독이 "영화는 시나리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으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그 말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 <라라랜드>라고 생각해요.

충달 : 영화는 영상으로 말해야죠. 안 그럴 거면 소설 쓰는 게 낫죠.

renton : 저도 <라라랜드>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래도 특수효과를 생각하면 <정글북>을...

충달 : 그럼 비주얼상은 <정글북>, <라라랜드>, <라라랜드>로 정리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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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자배우상

충달 : 자 이제 슬슬 재밌는 부문으로 들어갑니다. 남자배우상을 선정하도록 하죠. 보통 영화상은 주연상, 조연상을 구분합니다만, 우리는 시간이 없으니 통합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로스트 인 더스트>의 제프 브리지스입니다.

Eternity : 이거 본 사람이 얼마 없을 것 같은데...

충달 : 그럴 것 같습니다.

Eternity : 이거 설명이 부실하면 영 공감을 못 사겠는데요.

충달 : 그럼 영화를 간략히 설명해드릴게요. 경제가 몰락한 텍사스의 은행털이 2인조 형제 이야기입니다. 쓸쓸한 사막을 배경으로 카우보이의 몰락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Eternity : 저는 보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올랐네요.

충달 :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세상을 달관한 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냈다면, <로스트 인 더스트>는 늙고 낡은 카우보이의 낭만을 아쉬워하는 영화입니다.

renton : 저는 <로스트 인 더스트> 정말 재밌게 봤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일부와 <파고>의 일부가 짬뽕 된 텍사스랄까? 영화를 보면 약간의 기시감이 있어요. 어디서 본듯한 기분. 이렇게 흘러가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되고, 저렇게 흘러가면 <파고>가 되고. 그런데 결말까지 보면 그 어느 쪽으로도 빠지지 않죠.

충달 : 제프 브리지스는 여기서 보안관으로 나옵니다. 제프 브리지스 나이가 꽤 되죠? 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요. 쭈그렁 할배가 보안관이랍시고 나오는데 너무 비루해 보이죠. 굵은 주름, 처진 가슴, 불룩 나온 배에서 몰락하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빳빳한 셔츠와 모자, 멋들어진 수염에서 몰락하는 낭만을 움켜잡는 허세도 보았죠. 배우의 존재 자체가 그대로 영화의 주제를 표현합니다.

Eternity : <파이란>의 최민식 같은 느낌이네요.

충달 : 제프 브리지스가 곧 영화고, 영화가 곧 제프 브리지스였어요. 이건 무조건 꼽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여성이 주목받는 영화가 많았잖아요. <캐롤>, <아가씨>, <우리들>, <최악의 하루> 등 좋은 영화는 여성이 돋보였죠. 그에 반해 상남자 영화라고 할만한 게...

Eternity : <아수라>?

renton : <내부자들>은 작년이고...

충달 : 남자 냄새나는 영화들이 힘을 별로 못 썼어요.

Eternity : 듀나가 싫어하는 영화? 개저씨들 나오는 영화?

충달 : 그런데 아재들도 나름의 설움이 있거든요.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 설움과 회한과 아쉬움을 제대로 담아낸 유일한 영화였습니다.

Eternity : 왜 <빅쇼트>도 있잖아.

충달 : 그건 남자들만 나오는 "경제" 영화지...

Eternity : ...이건 뺍시다. (편집자 주 : 안 돼. 안 빼줘.)

충달 : 제프 브리지스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연기가 좋았어요. 형으로 나온 벤 포스터는 마초의 낭만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상남자로 남아요. 그리고 동생으로 나온 크리스 파인이 재평가받고 있죠. <스타 트랙>만 봤을 때는 이 정도로 연기를 잘할 줄 몰랐거든요.

Eternity : 저는 벤 포스터를 보면서 <동주>의 송몽규(박정민)가 떠올랐어요. 배우의 힘과 배역의 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충달 : 만약 한국영화로 한정했다면 남자배우상은 <동주>의 박정민 뽑고 싶네요. 하지만 수상자는 제프 브리지스로...

renton : 저는 제프 브리지스보다 두 형제 쪽에 눈길이 갔어요. 이 영화는 크리스 파인에게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꽃돌이 스타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할 줄이야. 형 역할로 나온 벤 포스터도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ternity : 저는 올해 남자배우 중에서 "이 배우 쩔었다."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진짜 고민이 많았습니다. <터널>의 하정우인가, <동주>의 박정민인가, <곡성>의 곽도원인가... 생각해보다가 내가 제일 좋았던 연기를 뽑아야겠다 싶어서 <곡성>의 황정민으로 정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황정민을 가열차게 비판했던 글도 썼었죠.

renton : 이 분 황정민 안티로 유명하신 분.

Eternity : 당시 황정민은 신파 그 자체였어요.

renton : 질려버렸죠.

Eternity :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베테랑>, <히말라야>, <검사외전>까지... 지겨웠죠. 그래서 <곡성>에서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처음 등장하는 꼬불길에서부터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곡성>에서 황정민 첫 대사가 "바깥에 문 좀 닫아라."였죠. 대사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의 황정민과는 전혀 다른 배우로 다가왔어요. 그동안의 신파나 진부함은 사라지고 <곡성>의 일광만 있었습니다.

충달 : 크으~~ 클라스!

Eternity : 감독과 작품에 따라 배우가 이렇게까지 변모하더군요. 그 변화의 정도가 놀라웠어요.

renton : 우리가 계속 진부하다고 비판한 이유도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때도 감독이 바뀌면 황정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죠. 그리고 <곡성>에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Eternity : 클래스를 제대로 입증하며 놀라움을 선사한 배우가 <곡성>의 황정민이었어요.

충달 :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Eternity : 어렵네요. 살굿신도 좋았고... 사실 등장부터 좋았어요. 생각해보니 등장신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renton : 극의 흐름을 바꾸는 신호탄이었죠.

Eternity : 어떤 특정한 장면보다는 일광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는 점이 대단했어요.

충달 : 그런데 곽도원이 못 받는 게 너무 아쉽네요.

Eternity : 곽도원도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죠. 둘 다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분위기를 마음대로 지배했던 황정민을 뽑고 싶네요.

충달 : 마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보다 매튜 매커너히가 돋보인 것과 비슷하네요. 주연보다 강력한 조연.

Eternity : 과거 <부당거래>, <신세계>의 황정민이 돌아와서 반가웠어요.

renton :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

충달 : 그럼 마지막으로 renton님.

renton : 저도 올해 남자배우는 정말 고민했어요. <내부자들> 이병헌이 청룡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는데, 이에 불만을 느끼기도 애매할 정도로 남자배우가 고만고만했습니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내가 정말 반한 배우가 있었나 생각하면 없었던 것 같아요. <동주>의 박정민이 좋긴 했는데, 사실 박정민은 <파수꾼>에서 더 좋았거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빅쇼트>로 돌아와 스티브 카렐을 뽑았습니다.

충달 : renton님은 올해 완전 <빅쇼트>네요.

renton : 사실 모든 배우가 좋았어요. 그래도 <빅쇼트>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한 배우는 스티브 카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을 꼽자면, 처음 집 파는 양아치 부동산 업자를 만나고 나서 "아... 버블이구나!"하고 깨달았을 때 표정. 그리고 채권을 만드는 사람과 만난 후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알고 좌절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스티브 카렐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Eternity : 브래드 피트는 대사로 주제를 말하잖아요. "너희가 지금은 좋아하지만,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죠. 그런데 스티브 카렐은 이를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더군요.

충달 : 대사로 전달하면 머리에는 남아도 가슴에는 안 남아요. 그런데 스티브 카렐 표정을 보면 확실히 X 됐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요.

Eternity : 그런데 스티브 카렐 대표작이 있나요?

renton : 전작 <폭스캐처>가 미친 듯이 좋았죠.

Eternity : 저는 스티브 카렐을 <빅쇼트>에서 처음 봤는데 더스틴 호프만 느낌도 나고...

renton : 스티브 카렐도 코가 크긴 하죠.

Eternity : 아니 그런 거 말고 아우라가... 발성도 독특하더군요.

renton : 발성은 작품마다 다 달라요. 진짜 베테랑 배우입니다.

충달 : 원래 스티브 카렐은 코미디 배우였죠.

renton : 짐 캐리 영화에도 나오고, SNL에도 출연했죠.

Etenity : 그러고 보니 짐 캐리와 비슷한 면도 있네요. 코미디 배우지만 페이소스를 담아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요.

renton : <폭스캐처>를 본 사람은 스티브 카렐에게 빠질 수밖에 없고, <빅쇼트>를 보면 왜 상을 안 주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충달 : 진짜 왜 상을 안 주는 거야. 크크크.

renton : 오스카가 보수적이어서 코미디 배우에게 박하거든요. 짐 캐리도 받을만한 작품 많았는데 골든글로브만 받았고. <트루먼 쇼>하고... 그 뭐드라? 케이트 윈슬렛하고 나온 작품...

Eternity : <타이타닉>?

충달 : AC 진짜... 사람들이 Eternity의 실체를 알아야 돼. <타이타닉>이 왜 나오냐고!

renton : <이터널 선샤인>이었죠. 그 영화에서 짐 캐리가 상 받을 만 했는데 놓쳤고, 스티브 카렐도 <폭스캐처>에서 받을 만 했는데 놓쳤죠. <빅쇼트>는... 디카프리오가 상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그래서 더욱 스티브 카렐을 뽑고 싶었습니다.

충달 : 그럼 남자배우상은 <빅쇼트>의 스티브 카렐, <곡성>의 황정민, <로스트 인 더스트>의 제프 브리지스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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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자배우상

충달 : 드디어 아재들이 고대하던 여자배우상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올해는 여배우가 주목받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남자배우에 비하면 고르기 훨씬 수월했어요. 다만 누굴 주느라, 누굴 못 줘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럼 renton님부터 들어보죠.

renton : 저는 <아가씨>의 두 배우가 좋았는데, 그래도 중심을 잡아준 김민희를 뽑겠습니다. 그런데 스캔들에 묻혀가지고...

충달 : 쉿... 그녀의 이름을 말해선 안 돼.

Eternity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어요?

renton : 제가 배우상을 고르는 기준은 영화에서 빛이 나야 해요. 영화를 씹어먹는 기분이 들어야 합니다. <아가씨>에서는 김민희만 보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백치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영악한 모습도 보여주죠. 백치미가 도드라지는 장면은 1장에서 이빨 갈아주던 장면. 그때의 눈빛은 업진살처럼 살살 녹았죠. 그리고 2장에서 비열하게 바뀌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충달 : 김민희는 이미 우리나라 여배우 탑급이죠.

Eternity : 저는 <아가씨>의 김민희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김민희가 김민희를 넘어서지 못한 느낌?

충달 : 거기서 어떻게 더 넘어요;;;

Eternity : 김민희가 좋았던 기존 작품이 많죠. <화차>, <연애의 온도>...

renton : 하다못해 똥망작에서도 좋았어. <우는 남자>.

Eternity : <화차>에서의 김민희는 전율이었죠. 약 빨았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아가씨>에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재능을 복제 재생산한 기분입니다. <화차>만 못했죠. 박찬욱은 배우들이 보유한 재능 이상을 끌어낼 줄 아는 감독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배두나, <올드보이>의 강혜정,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박쥐>의 김옥빈. 김옥빈은 재평가 수준이었죠. 박찬욱은 여자배우의 잠재력을 잘 끌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박찬욱과 만난 김민희는... 내가 알던 평소의 김민희였습니다.

renton : 연기가 이슈에 너무 묻히는 감이 있어서 굳이 꼽은 면도 있습니다. 만약 김민희가 아니라면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를 뭐라도 하나 주고 싶네요.

Eternity : 저도 국내 한정이라면 한예리 줬을 겁니다.

충달 : 그래서 누구죠? 김민희? 한예리?

renton : 그렇지만 김민희!

Eternity :  한예리도 잘했지만, 대사가 워낙 맛깔나서 배우를 돋보이게 살려준 바도 있어요. 대사의 힘? 정확히는 캐릭터 자체의 힘이 좋았죠.

충달 : 김민희를 굳이 구분하자면 어느 쪽일까요? 하정우 스타일? 최민식 스타일?

Eternity : 최민식 과죠!

충달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작품에 따라서 자기를 바꾸기보다는 어떤 배역이든지 김민희 화 시키거든요.

Eternity : 전형적인 메소드 파 배우죠.

충달 : 이번에는 Eternity님이 생각하시는 올해의 여배우를 들어봅시다.

Eternity :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입니다. 가장 관객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 연기였어요. 배역뿐만 아니라 배우한테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충달 : 지금 뭔가 굉장히 포장하고 계시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한테 꽂혔다는 말씀이잖아요.

Eternity : 맞아요. 완전 제 스타일이었어요. 제 이상형인 앙칼지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상이거든요. 그리고 연기도 좋았잖아요. 엠마 스톤의 연기는 묘한 면이 있어요. 고전적인 연기도 잘 소화하면서 현실적이고 개성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식당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신데렐라처럼 뛰어가는 장면은 상당히 고전적이었어요. 그러데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찾아와 오디션 기회를 알려줬을 때는 현실적인 투정을 보여줍니다. 이때 엠마 스톤 본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요.

충달 : 저에게 엠마 스톤 본연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I Ran"이었어요.

Eternity : 그 장면 보면 완전 또라이 같죠.

충달 : 엠마 스톤이 원래 또라이라고 합니다. 크크.

Eternity : "I Ran" 장면에서는 똘끼를 분출하면서 관객을 당황시키고 웃게 만들다가, 오디션 장면에서는 숙녀가 되어 관객의 마음을 흔듭니다. 공주와 망나니를 오간달까요? 그런 매력이 정말...

충달 : 완전히 꽂히셨네요.

Eternity : 완전 내 스타일! 하정우가 미워할 수 없는 본연의 매력을 가진 것처럼 엠마 스톤도 뭘 해도 사랑스러운 본연의 매력을 갖고 있어요. 결론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renton : 나는 엠마 스톤이 <라라랜드>에서는 평소보다 안 이쁘게 나온 것 같더라고...

충달 : 다른 영화에서는 메이크업이 진했는데. 이번에는 수수했죠.

renton : 초반에는 진짜 촌스러웠어요. 화장하고 배우가 되니깐 이쁘더군요. 그래서 다음에는 좀 꾸미는 역할이 많았으면 좋겠다?

충달 : 엠마 스톤이 가장 좋았던 장면은 뭔가요?

renton :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주변에서 전화 받고 사람들 들락날락하니깐 당황하는 모습. 집중이 안 돼서 표정은 썩어들어가는데 어쨌든 연기는 해야 하는 미묘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더군요.

Eternity : 그런 생활 연기가 좋았어요. 오디션에서 당황하는 연기. 오디션 포기하겠다는 말에 세바스찬이 소리 지르니깐 조용히 하라는 연기. 이런 모습이 현실과 밀착된 느낌입니다.

충달 : 저도 오디션 망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난이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연기가 연기 못하는 연기입니다.

Eternity : 심지어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아예 못하는 연기는 쉬워요.

충달 : 딱 오디션에서 떨어질 정도의 연기.

Eternity : 그 어중간한 부분을 짚어내서 표현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죠.

renton : 저는 놀라는 장면은 다 좋았어요. 처음에 세바스찬이 피아노 치는 거 보고 놀라서 바라보는 장면에서 엄청 예뻤어요.

Eternity : 표정이 살아있는 배우죠.

renton :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이걸 막판에 엔딩에 붙여주니깐 그냥... 막... 어우...

Eternity : 정말 환상적이었죠.

충달 : 그럼 마지막으로 제 차례네요. 저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 저도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었습니다.

Eternity : 올해의 여배우? 하는 순간 딱 떠오르죠.

충달 :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PAMA 준비하면서 저도 숙제 삼아 <캐롤>을 봤는데, 이걸 보고 나니깐 <캐롤>에 연기상을 안 줄 수가 없었습니다.

Eternity : 게다가 여배우가 둘이잖아요. 누구누구였죠?

충달 : 케이트 블란챗하고 루니 마라. 그래서 <라라랜드>와 <캐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도저히 <캐롤>을 무관으로 넘길 수 없어서 결국 <캐롤>의 루니 마라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칸에서 루니 마라가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왜 공동수상 안 주냐? 케이트 블란챗과 루니 마라 공동 수상해야 한다."라는 항의가 있었죠.

Eternity : 이해가 갑니다. 저는 케이트 블란챗이 더 좋았거든요.

충달 : 하지만 제 신념 상, 여기가 무슨 MBC 연기대상도 아닌데 공동수상은 개뿔이고 무조건 한 명 줘야 했습니다.

Eternity : 그런데 왜 루니 마라에요?

충달 : <캐롤>이 여여 간의 사랑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이었으면 돈 많은 유부남이 젊은 여자 꼬시는 내용에 불과해요. 이러면 갈등은 유부남이 합니다. 나는 가정이 있는데 왜 저 여자가 끌리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여여 간의 사랑이 되면서 갈등하는 존재가 젊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해도 되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맞나?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표현하지? 이런 고민이 정말 세심한 부분이라 연기하기 어려운데, 루니 마라는 이를 완벽하게 연기했어요.

Eternity : 그러니깐 남자가 봐도 여여의 사랑에 공감하는 거죠. 애잔하고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충달 : 그래서 케이트 블란챗과 루니 마라 중에 저는 루니 마라를 선택했습니다. 보다 깊이 있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ternity : 그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제가 케이트 블란챗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비록 남자지만, 저런 여자라면 동성이라도 끌릴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충달 : 그러니깐 케이트 블란챗한테 꽂혔다는 말씀이잖아요.

Eternity : 내 스타일이야! <캐롤>은 시선의 영화라는 말이 있던데, 그 시선이 너무나 매혹적이니까요.

충달 : 처음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부터 노골적으로 쳐다보죠. 매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Eternity : 그리고 엔딩까지...

충달 : 엔딩에서 둘이 마주 볼 때, 저는 <관상>의 송강호가 떠올랐어요. 회한에 찬 복잡미묘한 표정. 그걸 송강호 혼자 했을 때도 "캬~ 죽인다." 이랬는데 <캐롤> 마지막에서는 두 사람이 합니다. "이야... <관상>의 두 배네."라면서 봤네요.

renton : 저 바꿔야겠어요. 지금 딱 떠올랐는데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고 로비.

충달 : 이건 뭐야. 크크크크.

renton : 지금 돌아가는 걸 보니깐 올해의 여배우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각자 꽂힌 배우를 꼽고 있는데, 그럼 나도 마고 로비 가겠어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혼자서 영화를 하드캐리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사살 보통 영화라면 캐리하는 배우야 종종 나와. 그런데 이 정도 쓰레기. 이 정도로 망한 영화에 숨을 붙여놓은 존재는 지금까지 없었어요.

Eternity : 심지어 단독 영화까지 예정되었죠.

충달 : 영화뿐만 아니라 올 할로윈까지 지배했죠.

renton : 이 정도 파괴력. 이 정도 캐리력. 할리퀸의 마고 로비밖에 없습니다.

충달 : 여러분. 이게 PAMA입니다. 왜 아재 어워즈인가? 여배우 선정에 이렇게나 흑심이 들어갑니다. 연기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내가 꽂힌 게 중요해.

Eternity : 에이... 그건 아니지. 아까 김민희를 두고 치열한 토론도 했잖아요. 그럼에도 마고 로비의 할리퀸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지금 올해의 여배우를 고르고 있잖아요. 올해 할리퀸보다 핫한 캐릭터가 어딨겠어요.

충달 : 아카데미에서 마고 로비한테 여우주연상을 주면 최소 무슨 '사태'가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크크크.

Eternity : 크크크. 엠마 스톤에서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저는 할리퀸에 무릎을 쳤습니다.

renton : 마고 로비. 올해 그 이상의 여배우는 없었습니다.

Eternity : 인정. 인정.

충달 : 뭘 인정이야. 난 인정 못 해!!!

(편집자 주 : 결국, 여자배우상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고 로비,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 <캐롤>의 루니 마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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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충달 http://headbomb.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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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30 11:55
수정 아이콘
이거 되게 재밌네요. 영화 관련 유명 팟캐스트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한번도 들어본 적은 없었네요. 근데 그런 걸 들은 기분.
제 생각과 비슷한 것도 많고 다른 것도 많고.
연말 결산 해주신 세 분 모두, 그리고 특히 기록을 맡아주신 막내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근데 이터니티 님이 이터널 선샤인을 모르다니 이거 참... 크크크
Eternity
16/12/30 12:03
수정 아이콘
사실 <이터널 선샤인>은 예전에 리뷰도 썼었는걸요~
정말 좋아하는 멜로영화입니다.

타이타닉은 나름의 드립(?)이었는데 흐흐
마스터충달
16/12/30 12:29
수정 아이콘
사운드 편집 기술이 없으니, 글쟁이는 글로 씁니.. 크크크

재밌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16/12/30 12:12
수정 아이콘
역시 여자배우상은 빅쇼트의 마고 로비인걸로 크크크
마스터충달
16/12/30 12:30
수정 아이콘
버블 베쓰... ♥
-안군-
16/12/30 12:13
수정 아이콘
아... 아재 셋이 적절히 까는게 꿀잼이네요.
그리고, 역시 저널리즘(?)에서는 편집권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네요. 충달님 신나셨어.크크크...
마스터충달
16/12/30 12:31
수정 아이콘
막상 현실은 패널의 멘트 수정 주문에 시달리는 철저한 을... 입니다.
gallon water
16/12/30 12:33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진짜 팟캐스트로 녹음해서 업로드해도 재밌을것 같아요 크크크
세분 케미가 은근히...
이번 주말 할것도 없고 추천해주신 영화나 달려야겠습니다
마스터충달
16/12/30 13:01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추천 영화글도 곧 올릴겁니다.
gallon water
16/12/30 13:10
수정 아이콘
오호... 연말에 달리시는군요 크크 기대하겠습니다!
리콜한방
16/12/30 12:57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피쟐 내에서 이렇게 영화 얘기 하는 자리가 있으면 언제 한 번 참여하고 싶네요.
마스터충달
16/12/30 13:01
수정 아이콘
시간과 자본이 된다면 한 번 크게 모아보고 싶습니다.
16/12/30 13:56
수정 아이콘
이번에 영화배우 글타래 잘봤습니다.
안그래도 영화얘기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죠~
아린미나다현
16/12/30 13:05
수정 아이콘
마고 로비님이 다 해주실거야!
마스터충달
16/12/30 18:15
수정 아이콘
마고 로비가 대단하긴 하네요.
세인트
16/12/30 13:43
수정 아이콘
하아 출장다니고 일하느라 이 좋은 글을 이제야 보네요. 라고 쓰고보니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구나.
1편만 해도 미치도록 재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차피 올해도 다 가는 만큼, 그리고 당장 오늘밤에도 또 2박3일짜리 출장을 가야 하는 만큼 미리 글 좀 쓰자면,
좋은 영화글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솔직히 영화보는 눈이 높거나 고상한 식견을 가지고 있진 못해도, 영화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그렇지만 식견은 진짜 저열한) 저 같은 사람에게
심지어 올해처럼 너무너무 쉬지않고 바빠서 거의 영화를 못 보는 경우에는 영화글들이 진짜 진짜 너무 단비같고 고맙고 그렇더라구요.
일례로 충달님 짤평 같은 경우는 씨네21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깊이있는 분석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좋았어요 흐흐.
<버드맨> 같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영화 빼면(이건 진짜 영화보는 눈이 까막눈에 가까운 제가 봐도 너무 미친 영화였어요 우와...)
사실 잘 나간다는 평론가 분들이 극찬하는 작품들 중 상당수에서 '음? 뭐가 좋은거지?' 이런 것도 많았거든요.


이런 걸 느낄 때가 많을 정도인데, 딱 저한테 맞는 수준? (그러니 본의 아니게 쭉 닦이영화를 많이 겪으신 충달님은 앞으로도 더 닦으시는 걸로...)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본문 글도 너무 재밌고 되돌아보게 되는 것도 있고...
몇몇 영화는 못 봤는데 보고 싶었던 것들도 있어서 더더욱 극장 가고 싶네요 흐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 그러고보니 여기는 안 껴있지만 구밀복검님께도 감사를... PGR21 말고는 하는 커뮤가 거의 없는 입장에서 영화 리뷰글들이 너무 좋습니다 진짜 가뭄에 단비같은 기분 ㅠㅠ)
마스터충달
16/12/30 13:46
수정 아이콘
그럴려고 시작한 짤평이니까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내용임에도 현학적 허세를 칭칭 둘러 있어보이는 척 하는 글을 쓰느니, 차라리 짧은 멘트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시작했죠. 뭐 그래도 짧지 않은 비평도 간간이 남기니까요. 마... 저도 각잡고 써야 할 땐 각잡고 씁니다. 크크. 항상 글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니깐 닦이라는 이유로 추천하지 말아주싶셒습...
왕십리독수리
16/12/30 14:26
수정 아이콘
아수라가 없다니요...!!
마스터충달
16/12/30 14:32
수정 아이콘
발연기상에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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