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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2/10 15:15:07
Name 메피스토
Subject [일반] 기회주의
난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가장 자주 보는 다큐는 '라이프 빌로우 제로'라는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알래스카에서 거주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내용이다. 그 사람들은 알래스카의 혹독한 자연환경에 맞서 그것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얻어냈을 때 항상 자랑스럽게 자신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말한다. 출연자들이 말하는 기회주의는, 예를들면, 연어 때가 올라오면 그물을 치고 순록 떼를 발견하면 순록을 잡아먹는 등의 일이다.

 난 미국의 첫 이주 행렬을 떠올렸다. 아마 그들이 그 기회주의자라는 칭호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의 개척정신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었다. 광물자원, 생물자원 할 것 없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일단 땅이 크고, 거기에 석유도 나오고 금도 나오고, 야생 소 떼는 수억 마리씩 몰려다니고 심지어 그들은 마차로 달려가서 깃발을 꽂으면 그걸 내 땅이라고 주장할 기회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들처럼 서울 어딘가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서 깃발을 꽂아 내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덕에 떵떵거리며 부자로 살 수 있었다면 나도 아마 그 기회주의자라는 칭호가 퍽 자랑스러웠을 듯하다.

 기회주의란 그런 것이다. 금 나오는 땅을 발견하고 야생 소 떼를 발견하면 기관총으로 수만 마리를 죽여서 무두질하고. 먼저 발견하고 누구보다 그것을 취하는 일. 알래스카 거주자들은 지금도 그 전통을 따르고 있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몇몇 제약들은 생겼으나, 기본적으로 동물을 쏴 죽이면 자신의 것이고, 살기 좋은 곳을 발견해 천막을 치면 내 영역이고, 땅을 파다가 메머드 상아가 나와도 내 것이다.

 이건 마치 육식동물의 삶과 같다. 발견하고 사냥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것. 그래서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하루살이와 같을 수밖에 없다.
알레스카에선 물고기 한 마리만 잡아도 그게 팔뚝만 해서 4절 5절을 내서 먹는데, 연어 철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수차 하나 설치하고 다음 날에 나오면 하루에 수백 마리를 잡아 일 년을 먹는다. 그리고 조금만 나가면 순록이 무리 지어 다녀 사냥해 굶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엔 길고양이와 유기견, 비둘기 말곤 정말로 잡아먹을 게 멧돼지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회주의자 칭호는 도박이나 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모욕에 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석유 같은 유형 자원은커녕, 관광 자원 같은 무형의 자원도 터무니없이 모자란 데다가 땅덩어리가 좁아서 잡을 기회가 없다. 좁은 땅을 빈틈없이 누군가가 다 나눠 가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동네에 멧돼지 한 마리 나오면 뉴스에 나올 정도니까. 게다가 그걸 잡는 걸 아무도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삶에서 미국식 기회주의와 가장 맞닿은 일은 어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업 같은 경우엔 9년 동안 흉어라도 1년간 풍어면 9년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서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환경 파괴와 남획으로 인해 여의치가 않다.

 그런데 6·25 때 본 미군에 대한 환상과 기성세대의 아메리칸 드림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식 자본주의를 닮은 나라 중 하나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산과 들에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들어 장작 땔 걱정을 하던 나라가 미국과 같은 자원이 없는데도 기회주의적인 미국의 자본주의를 따른 것이다.

 그럼 우리는 기회를 잡기 위해 자원으로 무엇이 있는가. 바로 땅 면적 자체, 바로 땅 투기. 그리고 옛날부터 유행하던 말이 있지 않은가. 바로 사람이 자원이다.

 우리의 자원이라곤 그것밖에 없다. 마치 알래스카 거주자들이 순록 사냥을 하고 그들의 고기로 연명을 하며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를 등쳐먹고 등쳐먹기 위해 더 높은 학벌을 가져야 하는 사회에 살고있다. 바로 학력과 학벌이 발톱이고 이빨이며 하청과 재하청이 사냥 방법이다.

 우리는 물건에 욕심을 내면 천박한 것이고, 돈을 밝히면 천박한 것이며, 기회주의적인 건 하루살이의 삶, 친구와 이웃을 도와가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라고 어렸을 적 교육받는다. 그런데 겨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린 애들을 초중고 입시경쟁 우겨 넣는다. 그 기회를 놓치면 도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기회주의자적인 태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다. 그러니 그래서 우리나라는 X선비의 나라라 불릴 수밖에 없다.

 국민성이 더러운 게 아니라 땅덩어리가 이래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원이라곤 서로밖에 없으니 서로를 뜯어먹는 기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걸 이미 알고 계시던 높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가치 없는 땅을 사 놓고 거기에 공장과 회사를 지어 자신들의 미래 자원인 사람들을 옮겨와 파종하셨다. 그럼 땅값도 올라 떼돈을 벌 수 있을뿐더러 보너스로 사람을 공장과 회사에 갈아 넣어, 하청 재하청을 주고 부산물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바로 한반도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다. 그게 한류로 표방되는 문화콘텐츠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결국 갈려 들어가는 것도 사람이고 값 매겨 팔려 나가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파종 당한 우리는 우리가 파종된 사실조차 모르고 아직도 '저렇게 투기나 하면서 천박하게 돈 벌 생각 말아야지. 남 등쳐먹지 말고 노오력으로 정직하게 벌어야 돼!'라고 생각하고 있고, 높으신 분들은 심지어 대학교육으로까지 똘똘 뭉쳐, 돈으로 대학을 만들고 '우리 밭에 파종 되려면 우리가 산악협력하는 대학에서 등록금 내고 일해야 돼' 라는 것으로까지 돈을 벌고 계시다. 대학가 근처 땅값 오르는 것으로 땅장사 하는 건 보너스.

 파종할 씨를 좋게 가공하는 건 어찌 보면 그들의 당연한 일이지만, 가공비도 안내고 돈을 버는 건 정말로 약오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나라는 노오력으로 정직하게 돈을 벌면, 살아남아 살아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뜯어먹히다 죽는 나라가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멍하니 이런 생각이 든 나는, 아직도 난 남 등쳐먹을 생각은 안 드는 거로 봐선 그들에게 세뇌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모은 돈으로 땅이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임대로 장사를 해도 장사가 잘되면 건물 주인 배만 불려주는 일이니까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땅을 사고 높으신 분들이 그 주위에 눈독을 들이는 걸 기다리는 것밖엔 없다.

 땅을 사서 내가 건물을 짓고 내가 공장을 짓거나 장사를 잘해 땅값을 올릴 방법은 없다. 그래서 결국 장기적으론 투기고 그건 노력 없이 돈 벌 생각을 하는 것이니 기회주의적인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나마 양심적인 기회주의 같다. 그리고 우린 서로를 욕하며 살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만든 건 자원 없는 땅에 사는 죄일 뿐이다. 우린 우리가 자원인 이상 평생 우리가 주인인 나라에서 살긴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면 높으신 분들은 우릴 파종할 이유가 없으니 돈을 주실 리 없을 테고 우린 지금보다 더 작은 콩고물을 위해 더 처절하게 서로를 등쳐먹고 경쟁하다 노오력을 외치며 굶어 죽기나 하겠지.

 기회가 없는 기회주의의 나라에 사는 우리. 기회라는 신기루를 쫓아 서로를 뜯어먹으며 무심결에 높으신 분들 배를 채워드리는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헬적화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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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블빠
17/02/10 15:23
수정 아이콘
기회가 없는 나라가 기회주의자니 개인주의자니 선동질 하면서 나치독일식 파시즘만 강요하지요 크크...
메피스토
17/02/10 15:59
수정 아이콘
뭔가 사람 말고 다른 무형자원을 만들어 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아유아유
17/02/10 15:28
수정 아이콘
본문의 기회주의란 뜻이 너무 광범위한것도 있는것 같고..본문 뜻의 기회주의와 한국에서의 이기주의와도 다소 안맞는 듯 합니다.
메피스토
17/02/10 15:50
수정 아이콘
제 글 솜씨가 부족해서 그렇게 보셨을 수 있겠네요.
제가 말씀드린 건 살아남기 위해 잡아 먹는 건 이기적인 일이 아니란 뉘앙스 입니다. 기회주의적인 일이지.
다만 알레스카에선 잡아먹는게 순록이고 한국에선 이웃이란 말이었습니다.

몇몇 대기업도 어찌 못할 지적재산을 가진 뛰어난 천재들 아니면
정말 남을 밟고 올라가서 부리고 인건비 장난이나 말 그대로 뭔가 속여서 등쳐먹는 방법 말곤 살아남는 방법이 없고
사회시스템이 그래서 그런데, 또 모두 알게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걸 이기적이라고 서로를 욕할 필요가 없단 뜻이었습니다.
아유아유
17/02/10 16:02
수정 아이콘
아니에요.뜻은 잘 알겠습니다.하하
다만..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이기주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마스터충달
17/02/10 15:52
수정 아이콘
자원이 사람밖에 없다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빨아먹을 게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 사는 것을 바라지 말고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념에 치이고, 성장에 치이고, 재벌에 치이고, 국정농단까지 흘러왔죠...
자원이 사람밖에 없어서 이래 됐다기 보다는
역사와 상황과 국민 의식이 안 좋게 맞물린 비극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메피스토
17/02/10 15:56
수정 아이콘
네. 저는 점점 자동화 되면서 사람이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돈벌이가 사라져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화 까지 기다리고 있죠.

모두가 잘 살기 위해 교육을 광적으로 열심히 했고, 중동 특수 때만 해도 그게 통했지만
이젠 갈 회사가 없죠. 전 국민 의식이 모자랐다고 보기보단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말씀하신 그런 부분들이 사람 등쳐먹는 것 말곤 다른 먹거리를 찾을 생각을 못하고 안하게 해서
우리 나라의 국운이 끝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고 있고요.

곳간이 넉넉하면 인심이 나는거 아니겠습니까.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니 의식도 변해가는 것 같고...
아무튼 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마스터충달
17/02/10 16:06
수정 아이콘
그걸 뒤집기 위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등처먹는 사람 벌주고, 능력있는 사람 대우하고, 능력 없는 사람 보살피고...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돌아가게 한다면
국운은 다시 되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박보검
17/02/10 16:07
수정 아이콘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저는 이 모든 괴리의시작이 런승만부터라고 생각해요 (선조도.. 통일신라도 있겠지만.. 향냄새도 못맡는 분들이니 제외)
-안군-
17/02/10 16:21
수정 아이콘
자원이 사람밖에 없어서...라고 하기엔,
2차대전 이전까지의 유럽의 강대국들도, 제국주의 시대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풍족한 자원과 넓은 땅을 가진 나라들이 아니었고,
당장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땅 자체는 넓지만, 워낙 산악이 많아서 쓸만한 땅은 적은데도 불구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됐죠.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후진국/개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지요.,,
동남아의 나라들이나 남미의 나라들은 우리나라의 수십배에 이르는 땅과, 천연자원과, 좋은 기후를 가지고도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아요.

농담처럼 단군할배 위치선정 클라스.... 어쩌고 하지만, 사실 이정도면 전 세계적으로 봐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이룩한 나라가 맞고요,
그 빠른 성장에 걸맞는 인식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이 사라져 가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죽어서 사라져 간다죠?
새로운 세대들은 시대에 맞는 의식을 가지고 자라나지만, 기성세대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고성장 시대를 살아오면 굳어진 인식들을 품고 있는 세대들이 물러난 이후에는 많은 것이 변화할겁니다.
동원사랑
17/02/10 17:02
수정 아이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 중 694곳(25.1%)이 노조원 자녀의 우선·특별 채용을 보장하는 고용 세습 조항을 넣었다.

또 근로자 1000명 이상 대형 사업장의 경우 35.1%가 단협에 고용 세습을 명기해 10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20.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이 것 지적하면 저쪽에선 이럽니다.
"대동단결"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냐"
"박근혜/새누리당에 대한 투쟁이 우선"

이런 것들 주어만 바꾸면 그냥 파쇼에요.
"총화단결"
"국론통일"
"북한이 주적"
종이사진
17/02/10 20:36
수정 아이콘
명분을 앞세운 기득권 싸움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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