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공화당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거점은 민주당의 성지 뉴욕이다. 뉴욕의 부동산 부호로서, 트럼프는 꾸준히
다양한 정치가들을 후원해왔다. 클린턴 부부와의 친분, 낙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 에이즈로 사망한 동성애자 변호사와의 우애.
세계각지의 다양한 종교, 민족과 협력해 진행하는 사업. 다양한 의미에서 트럼프는 민주당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할 자격이 있었다.
단 하나, 오바마 대통령과의 불화를 제외하고.
그리하여 트럼프는 공화당을 선택하였다. 장기간의 민주당원 생활을 변명하고, 총기면허를 자랑하고, 성경과의 밀착을 강조하면서,
낙태를 반대하였다.
샌더스가 굳이 민주당에 들어갈 이유가 있었을까? 장기간 무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한 샌더스의 거점 버몬트주의 벌링턴시는
인구 4만의 촌락에 불과하다. 알래스카 다음으로 총기사용이 보편화된 장소이며, 대선과 같이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버몬트는 샌더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주지사가 당선되었다. 보호무역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총기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준 샌더스는
공화당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샌더스가 유대교이고 공화당에 개신교의 기세가 강하다고 하지만 공화당은 몰몬교 롬니를 선출할 정도의
융통은 가능한 조직이다.
다양한 후보가 난립하던 공화당과 다르게 민주당은 힐러리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러기에 경선 흥행을 위해 경쟁자가 필요했다.
장기간 무소속을 유지해온 흙수저 출신 정치인은 흥행요소였다. 챔피언에게 대항한 이탈리아 종마 록키처럼.
유권자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선거이다. 정치가가 유권자를 선택하는 것은 정치이다. 그리고 정치가는 그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희정에겐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라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친문패권을 논하면서 탈당, 자유한국당에서 수년간 백의종군하며 몇차례의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하면 된다. 그럼 자유당의 강성한 지지자들도 그 진심을 인정하게 되리라.
선택에는 대가가 필요하고, 대가를 두려워하지 않음이 결단이다. 트럼프가 내린 결단은 뉴욕의 동료들이나 그들의 가치관과 적대한다는
것이었고, 배신자를 단죄하려는 기축세력의 공세야말로 심술많은 부호가 진심이라는 유력한 증거였다.
반기문은 선택하기를 두려워했다. 반기문은 보수적 정부지지자들을 비판하며 민주당의 경선에 뛰어들 수도 있었고, 진보시민들을
비판하며 새누리당 경선을 택할수도 있었지만, 무엇 하나 선택하지 않은 끝에 자멸했다.
한때 DJ의 유력한 계승자였던 이인제는 선택을 반복한 끝에 부정적 의미의 불사조가 되어버렸으며, 유시민과 생사를 같이하던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문수는 독재자의 딸을 적극적으로 찬양하는 정부의 고위간부가 되었다.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승리한다는 것은 표를 위해 내심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표를 위해 선택한 길을 나아가는 것이다.
안희정은 길을 선택했다. 최소한 민주당의 지지자 중에 상당수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안희정은 그 길의 목적지를 각오하고 있을까, 아니면 갑작스레 찾아온 갈림길에 당황하고 다시 돌아설 것인가?
정치인이 선택한 길을 벗어나 돌아섰을 때, 의심에 찬 시민들은 가혹한 조건을 요구하고, 그 가혹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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