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 무겁다는 자유게시판의 글을 처음 눌러보는 방주라고 합니다.
늘 회사에 출근 후 매일 해야 되는 규칙적인 일을 하고 나면, 하루동안 쌓인 자유게시판의 글들과 롤 유저로써 겜게나 유게의 유머를 이해하는 것이 소소한 기쁨인 외국인 노동자이기도 하구요.
어제 점심 먹은 직후, 자유게시판에다 인생 선배님들께 의견을 구해보고 싶은데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되는 것인지에대해 질문게시판에다 글을 하나 올렸었습니다.
https://pgrer.net/pb/pb.php?id=qna&no=102798
그 내용은
'새로운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였는데 현재 회사에서 저를 붙잡아서 고민이다. 의견을 구하고 싶은데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되는가' 였죠.
빠른 피드백으로 인해 바로 질게에 내용을 적고 있다가 보스가 불러 약 3시간 정도 다른 일을 한 후 회사를 옮겨야겠다고 마음이 확고해졌고 더이상 물어볼 이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만,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여러분들과 나눈다면 제가 여러 군데에서 사회 선배님들의 글을 통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저와 같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하여 글쓰기 버튼을 눌러보았습니다.
저는 현재 싱가포르에서 한국의 최저임금정도 되는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 적응해서 살아내고 있었죠.
그 비싼 나라에서 저 돈 받고 생활이 되나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룸렌트 50
교통비 5
통신비 3
식비 1만원 이하 x 30 일
해가지고
월 30만원씩도 저축할 수는 있습니다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만 살겠습니까. 마이너스였죠... 쿨럭
그렇게 한국에서 모아온 돈을 좀 쓰다가 3개월 지난 후 월급이 너무 작다고 징징대니 월 200불(약 16만원)을 더 주겠다고 해서 약간 오른 월급
+ 야근 및 주말 출근수당으로 월 160만원정도 받으면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포인트는 이게 아닌데, 하도 주변에서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국가에서 어떻게 그 돈으로 살아?'라는 질문을 하도 많이 들어서 혼자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여튼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전 제가 취업을 통했던 현지 취업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에이전시를 통해 취업을 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저를 담당하던 한국인 매니저 분이 저를 좋게봤는지, 이번에 새롭게 한국 시장을 오픈하게 되었는데 한국인을 한 명 더 뽑고 싶다. 방주가 싱가포르에 와서 요거 저거 열심히 하고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평판도 좋은 것을 보니 함께 하면
좋겠다 저를 추천했더라고요. 그래서 면접을 보고 ('면접을 본다'라고 쓰고, 일방적으로 사업 구상에 대한 얘길 듣는다 라고 읽는...) 합류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일단 저는 좋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제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바닥부터 시작하는 비지니스에 대해서 어느정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고, 저와 어느정도 케미가 맞았던 분과 일을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에이전시들이 그렇듯 여기 회사도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었고 저 역시 엄청나게 욕을 했던 한 사람으로써 제가 불만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었죠.
싱가포르의 경우 대게 2주 혹은 한 달 정도의 노티스를 줘야 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1달의 노티스인지라 지난주 토요일날 면접 후 바로 월요일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스가 저를 워낙 좋아했던지라 서운해할 것에 대해서는 예상을 했지만 삐져서 3일동안 말을 안하는 것에 대해서는 예상을 못했던거죠.
그래도 감정은 감정, 회사는 회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딜을 하더라고요.
현재 받는 금액은 160만원 안팎이었는데 200만원까진 맞춰주고 휴가도 연 10일이었는데 12일까지 준다고 했죠 (싱가포르 법정 최저 공휴일은 7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작년 9월 1일) 지금까지 업무를 도와주셨던 풀스택 개발자 분께서 다음 달에 정식으로 합류하기에 저도 그 밑에서 새로운 것을 이 것, 저 것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저 혼자서 쇼핑몰 사이트를 런칭하는 일을 헀었는데 (덕분에 문송한 제가 프로그래머를 하겠다고 국비 교육을 한 달간 받았던 경험도 써먹을 수 있었죠) 기본 구성은 거의 다 끝났었거든요.
이제 마케팅만 열심히 하면 되는 상황!
나를 도와줄 풀스택 개발자가 오기로 확정된 상황!
월급도 25%나 올려주고! (애초에 겁나 작았던건 함정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연봉이 올라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알고 있습니다)
요런 일 덕분에 회사 내에서 제 가치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죠. 그래서 떠나는 것에 대해서 떠나는 것이 나을까 남는 것이 나을까 선배님들께 여쭤볼려고 했던 것이였죠. 그런데 이미 결정을 어느정도 내렸네요.
회사를 떠나는 쪽으로 마음이 거의 기울었습니다.
여기보다 돈도 적고(기본급은 지금과 똑같은데 야근이 없고 야근 수당 없어요)
이제 주 6일에다 출장도 잦고 (주5일에 칼퇴였죠...)
보스는 그놈의 퍼킹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데(저는 제가 그만둔다고 말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이쁨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별명이 보스의 아들)
지금 업무와 1도 상관 없는 일 (에이전시 업무,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고 엥간히 잘하지 않고서는 욕 먹는 자리지요)이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네요.(아직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고 통보하진 않았습니다. 사직서만 낸 상태죠)
이직을 결정을 한 이유는 사람 그리고 비전이었습니다.
저는 톨스토이 작가의 가치관을 좋아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래서 저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보스가 시키는 일 불평불만 없이 다 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꽤나 괜찮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일한만큼 회사도 직원들을 아끼는 회사이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리더가 비전을 가지고 직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길 바랬고 저는 그 밑에서 일하고 배우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랬죠.
근데 어쩌면, 여기서는 그게 너무 허황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을 소모품으로 알고, 좋은 직원은 놓치기 싫은데 돈은 더 주기 싫고, 자기 마음에 안들면 자르고.
이번에 제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완전 삐져서 저한테 말도 안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화요일) 전에 일했던 분이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정중히 메일을 보냈더니 그 메일을 프린트해서 한국인 직원들에게 돌린 다음
'너네 얘 메일 봤지? 여기 그만두고 나가면 취업 힘들어. 너네 한국인들 이제 그만두면 다시 못들어와 알았으면 여기 싸인해 그만두면 다시 못오겠다고'
라고 하면서 한국인들 싸인을 받더라고요. 물론 그 전에 일했던 분의 메일은 당연히 씹고요.
우린 직원이지 노예가 아닌데 말이에요.
사실 저의 경우는 저 혼자 일을 하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온전히 전권을 주었기 때문에 업무상 스트레스는 1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따로 사주기도 하고요 (물론 자기가 먹고 싶어서 사서 먹은 다음 먹고 남은걸 주는 것은 안자랑-_-)
그렇지만 저에게 잘해준다고 다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곳이 제가 성장할 수 있고 커리어가 되는 곳이 아니라면 더더욱이요. 당장 한 두푼의 돈을 더 받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적어도 제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며 이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가 조건은 별로였지만,
사람냄새가 너무 나서 좋았습니다.
물가 비싼 싱가포르에 살면서 솔직히 한 푼이 아쉬운 것은 맞습니다만,
멀리 보지도 말고 한 2년정도 지난 후, 저를 돌아봤을 때 제 선택이 옳았다는 느낌이 들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