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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20 17:21:30
Name 누텔라에토스트
Subject [일반] 우리의 생각은 오롯이 우리의 것인가?
  종교가 없는 분들 중 신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종교가 없기에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보면, 저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말하는 '확신적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신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있더라도, 내가 착하게 산다면 신이 그 점은 인정해주지 않겠냐.' 정도가 제 입장이거든요.

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비종교인로서 앞의 명제를 받들며 살려고 노력하던 중, 한 고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죄와 벌'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저로서는 -엉엉 도끼형 날 가져요-당연한 수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 한 글귀 덕분에, 제 도덕관은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것이 허용된다."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문장은 책의 도입부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아버지 카라마조프씨가 수도원의 평화를 박살내고자 침 튀기며 내뱉은 이 말은, 사실 둘째 아들 이반의 사상을 인용한 것이지요.

  처음 문장을 읽었을 때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머리가 멍해지더군요. 결국 신이 없다는 것은 절대자가 세운 진리 따위는 없다는 것이고, 진리가 없다면 세상에 절대적인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요. 결국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그렇다면 모든게 허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전에 옳고 그름에 마치 정해진 기준이 있는 듯 행동했던 제 자신에게 엄청난 회의감이 들더군요. 마치 '전쟁은 평화다.'의 모순을 뒤늦게 깨달은 기분이랄까요. 소위 현자타임이 어느 때 보다 강하게 왔습니다.

  소설의 결말로 보나, 그의 생애로 보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의 해법은 결국 '신과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난 사람들이 세상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해." 주인공이자, 셋째 알료사가 형 이반과의 대화 중 말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에, 우리는 어릴적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작가의 말은, SNS 속에서 본인을 포장하기에 바쁜 우리들에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태생부터 종교가 없던 저에게, 신앙과 구원이라는 요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더군요. 덕분에 책을 덮으며, 큰 일 보고 닦지 않은 듯한 찝찝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명제에 '아니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그렇다고 이제와서 절대자의 존재를 열렬히 믿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던게 사실이거든요.

2. 달과 6펜스

  머리속이 엉킨 실타래같은 느낌을 한창 받을 무렵,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이유없이 단지 제목이 멋있어서 읽게된 책이었죠.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토대로 구성한 소설입니다. 실제 고갱도 다소 그랬지만, 그를 표현한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매우 이기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정을 버리기도 하고, 호의를 베푼 친구를 배신하고 발톱의 때만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가 신경쓰는 것은 단 한가지, 그림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한 태도가 저의 허세 감성을 자극시켰습니다. 세상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은 채, 본인만의 미(美)를 추구하는 모습에 그만 감명 받고 만 것이죠. 런던 대저택에서의 풍요로운 삶과, 타히티의 정글 속에서의 하루하루 중, 스트릭랜드가 무엇을 선택 했는지는 분명하니까요. 몸의 다른 작품 '인간의 굴레에서'도 고갱은 언급되는데, 그의 삶을 잘 설명 해주는 글귀라고 생각됩니다. "그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예술을 하지 못한다면 시들어가는 사람들 말이야. 그도 그런 부류였지." 책을 옆에 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이와 비슷한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생은 자기만족이라는 것이죠. 세상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의 잣대가 있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이 생각은 앞서 언급한 고민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 해 주었습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도덕률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내 인생과 가치관을 토대로 나름의 기준은 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점이지요. 대충 요약해 보자면, "그래,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정답도 없어. 그런데, 그게 왜? 내 인생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정도가 되겠네요. 중2병 걸린 만화 주인공이 할법한 대사로 느껴지셨다면 기분 탓입니다.

3. 멋진 신세계

  이로서 나름 고민을 멋지게 해결했다고 좋아하고 있던 차에, 멋진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의문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죠. 멋진 신세계에서는 '세계국(World State)'이 출산과 교육을 전담합니다. 그들은 계획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인공수정으로 생산-출산보다 생산이 적합한 표현 같네요-하며 배정된 역할에 따라 DNA를 조정합니다. 가령, 광부가 될 태아에게는 더위를 좋아하고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DNA를 제공하고,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될 수정체에는 독성을 주입해서 층계번호만 외치더라도 즐거울 수 있는 저능아로 만드는 방식이죠. 또한 태어난 뒤에도, 아기들이 그들의 신분에 만족 할 수 있도록 파블로프 교육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로, 멋진 신세계 속 문명인들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안정적인 사회가 되다보니, 소설 속에서는 많은 개념들이 현재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은 거론하기도 역겨운 끔직한 단어가 되었고, 문학은 감성을 자극하여, 구성원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릅니다. 결혼은 금지되지만, 원하는 남녀와 누구든 성관계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문학은 사라졌지만, 휴식시간에는 누구든 촉감영화-라고 쓰고 포르노라고 읽습니다-와 장애물 골프를 즐길 수 있거든요. 그래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정부에서 개발한 마약인 소마를 복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책을 읽으며, 저에게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누군가의 의도로 형성된 것이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도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사실 저는 혼전 동거에 매우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고 Cool한 선택같이 여겨졌거든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 해 보니, 과연 이 결론이 제가 내린 것인지 의문스러워 졌습니다. 왜냐하면 혼전동거에 대한 생각을 특별히 해보기 전, 저는 미국드리마 'How I Met Your Mother'의 열렬한 시청자였고,  미드에 나오는 커플들이 동거를 하는 모습들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과연 그 시기에 제가 HIMYM를 보지 않았다면, 과연 혼전동거를 찬성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4. 그래서?

  그래서, 현재 제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합니다. 세상에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다는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건 시간과 함께 변하니까요. 도덕도 예외는 아니겠죠. 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제 인생 속 옳고 그름은 다름 아닌 제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나의 도덕률이 사실은 누군가가 의도한 작품이었다면?

  멋진 신세계는 다 읽은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만, 책을 덮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느낌은 여전하네요. (소설의 결말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기는 합니다.) 아무튼 결론은 제 머리 속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도끼, 이 나쁜사람....은 아니고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는 겁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글을 읽어오셨다면 죄송하지만 지금 제 상황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의 생각이 제 것이라는 걸 확신 할 수 있을까요? 확신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답이 안나오니 참 답답하네요. 사실 혼자 끙끙거리고 있으려고 했지만, 킹왕짱 pgr현자님들이라면 저를 구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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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물리
17/08/20 17:33
수정 아이콘
가치는 우리 인간들이 특정 시점에서 특정 장소에서 그 특정한 시대상황의 누적된 현황에 따라 그때그때 구성하는 것이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그 가치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고.

나의 결정이라는 것은 원래부터가 나의 내적인 판단과 외부로부터의 입력의 어떤 형식으로의 합의 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주체적인 한 인간이라는 관념은 망상이죠.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고. 실제로 그렇게 되면 웃길 테니까요. 그런 인간은 실상은 '주체적이지' 않고, 오히려 '독단적'이거나 '유아적'이라고 묘사하는 게 맞겠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0 23:13
수정 아이콘
사람이 사회와 격리 된 채 살아갈 순 없겠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먹고 자고 싸는 것 밖에 못할테니까요.

다만 결정이 나의 내적 판단과 외부 상황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하셨는데, 의문스러운 것이, 오롯한 나만의 내적 판단이 존재 할 수 있는가 싶은거죠. 나의 내적 판단의 근거가 결국은 어릴 때 부터 받아온 환경적 영향의 산물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나의 가치 판단이라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이 위협받게 돼요. 멋진 신세계 속 쌍둥이들 처럼요. 그런데
그건 너무 무서운 것 같아서, 주입되는 가치에 유의미한 정도 차이가 있다.... 정도로 타협을 볼까 생각 중입니다.
언어물리
17/08/20 23:18
수정 아이콘
나의 내적인 정신t1 + 나의 주변환경으로부터의 입력t1 = 나의 내적인 정신t2

나의 내적인 정신t2 + 나의 주변환경으로부터의 입력t2 = 나의 내적인 정신t3

나의 내적인 정신t3 + 나의 주변환경으로부터의 입력t3 = 나의 내적인 정신t4

... 이런 식으로 계속 변화하는 것이죠.

오롯한 나만의 내적 판단이 왜 존재해야 하나요? 왜 그러한 순수한 주체성을 상정하시고 또 거기에 어떤 류의 숭고함이나 신성성을 부여하려 하시는거에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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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정하는 사이에 대댓을 다셨네요. 본문에서의 고민이, 언어물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적 t1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거라서요.

내적 t1을 없애면 결국 환경 t1이 나의 내적 t2가 되고,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출발은 환경 t1부터가 되니까요.
언어물리
17/08/20 23:29
수정 아이콘
내적 t1이 없으면 내적 t2도 없죠. 내적 t1과 환경 t1이 모두 내적 t2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본질이죠. 시작은 내적t1과 환경t1 모두에게서 출발하죠. 시작이 내적t1에서 왔든 환경t1에서 왔든 아니면 그 둘 다에서 왔든 그 사실 여부가 나의 존엄성을 해치나요? 또한, 시작만 중요한 게 아니죠. 그 이후의 작용들도 중요하죠. 그 모두가 '나'를 이루는 본질입니다.
누텔라에토스트
17/08/20 23:34
수정 아이콘
내적 t1이 존재한다고 믿으신다면, 근거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 내적 t1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요.
언어물리
17/08/20 23:37
수정 아이콘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처음 초보적인 뇌와 신경계를 이루었을때 처음 형성한 심상 혹은 무의식?

그런데 저는 처음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인데요 = =;; 또 내적이든 환경이든 그것이 단독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네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03
수정 아이콘
내적 t1의 존재유무가 제 고유성의 실마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물리
17/08/21 00:04
수정 아이콘
그것은 느낌일 뿐이죠. 시간적으로 처음이라는 것은 그냥 시간적으로 처음이라는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17/08/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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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이야기하는 primal mover 같은 개념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건 게 없다고 해서 그렇게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스카이넷을 만들어낸 미래가 있다 치고 스카이넷이 인간보다 모자란 점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24
수정 아이콘
OrBef 님// 제가 스카이넷인지, 386 컴퓨터인지 확신이 잘 안서서요. 386도 정보를 던져주면 그것을 토대로 계산은 잘 하던데....
17/08/20 17:41
수정 아이콘
본인의 생각이 오롯이 본인의 것일 수 있다는 발상이 오히려 현실과 괴리된 오만한 발상이죠.
하다못해 인간이 사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타인들이 만든 것인데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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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지, 결국은 우리도 이 시대의 요구대로 산다는게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과 다를게 없는것 같네요.
미나가 최고다!
17/08/20 17:43
수정 아이콘
개인만의 독자적인 생각이나 가치라는 게 원래부터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도 다른 누군가의 사상과 믿음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보다는 낫겠죠. 우리가 누군가의 의도대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일테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시기의 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님처럼 생각하게 되었을테니까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0 23:56
수정 아이콘
그런데, 어릴 때 부터 처해진 환경으로부터 누적되어 만들어진 가치관은 대개의 경우 맹목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가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비판적 사고가 결여되니까요.

결국 유년기의 환경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고, 그 시기에 교육을 책임진 사람의 의도대로 대부분 살게되지 않나 싶네요. 유년시절 주입받은 가치에 반발한 사람들도 결국 현 세상이 제공하는 다른 가치를 받아들인 것일 뿐일테고요.
유스티스
17/08/20 17:43
수정 아이콘
직접 경험한 기억에 있어서도 불완전함을 요즘 자주 느껴서 이런 철학적 질문에는 내 것이 내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07
수정 아이콘
내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네 것도 네 것이 아니고, 이거 다 누구의 것일까요.
닉 로즈
17/08/20 17:49
수정 아이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
인간은 갈대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파스칼
파스칼이 데카르트를 엄청 비판하거든요 쓸모없는 이라는 평가를 해가면서요. 데카르트의 생각 개념은 파스칼과 다른거에요. 생각이란 말은 너무 광범위해서 내 생각중에 어떤 것이 내 것이냐 아니냐를 논하기 어려운 정도에요.

생각이란 결과라기보다 과정이에요. 그러나 질서가 있어야 유익해요. 어느 한 철학이나 종교에 중심을 단단히 두고 그걸 전제로 인식의 지평을 점진적으로 넓혀가는게 좋아요.
생각이 무질서하면 인생을 반드시 허비하게되요. 내가 지금 하고있는 생각은 몇백년 몇천년전에 어느 누구가 나 자신보다 훨씬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이미 생각했던거에 불과하거든요. 우리 대부분의 경우는요.

생각하는 법은 성실히 배우는거에요. 생각은 소위 횡재와 매우 다릅니다.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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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한 이런 쓸데없는 고민도 과거에 누군가는 했을텐데, 그 사람들의 해답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도 추천 해 주실 수 있나요?
하심군
17/08/20 17:57
수정 아이콘
요즘들어서 메탈기어 솔리드2가 생각나더라고요. 요즘 세태하고 비교 해서 보면 그 때부터 정보의 홍수속에서 알아서 자신을 찾아야한다는 메세지를 던졌다는 게 의미심장 하기도 하고요. 사실 메기솔이 전통적으로 마지막이 좀 복잡한 편이긴 한데 자신을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게 전부 기만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깨달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붙잡은 건 기만 속에 남은 손에 잡히는 현실의 한 조각이었죠. 그걸 붙잡으며 살아가기로 결정했고요. 인생 사는 게 별거 있겠냐 싶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손으로 더듬으며 살아가야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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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복잡한거 필요없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하나 때문이라도 인생은 살만한 것 같긴 합니다.
Quantum21
17/08/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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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가 존재하더라도 사람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저의 경우에는 [1][2]의 차이는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어짜피 절대적 진리가 있던 없던 내가 인식할수 없다고하면 아무 의미 없으니
사실은 없다고 주장하는 [1] 의 말장난 아니냐 의 관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이기에 가지는, 진리를 이해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는 어쩔수없더라도,
어제보다 조금더 깊은 이해, 조금더 나은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서 이미
속 마음으로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해야 현재의 나의 행동이나 모습을 더 잘 설명하는게 아닌가..
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언어물리
17/08/20 18:09
수정 아이콘
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연과학적인 부류의 지식에 대해서는 [2]가 맞고,
인문학적인 부류의 지식에 대해서는 [1]이 맞은.. 하지만 여러 상상할 수/예상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을 추구하는 지식들 중에서 '더 낫다'라고 판단되는 몇몇 지식들이 두각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뭐 그런 생각이에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1:35
수정 아이콘
종교인이시군요. 아무래도 저는 비종교인이라 그런지 고민을 해봐도 [1]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1]을 선택했기 때문에 삶이 의미 없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고, 선택 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더욱 책임감 있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니, 생각했었죠. 지금은 '스스로의 판단'이라는 것에 의구심이 든 상태라서요.
Quantum21
17/08/2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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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의미의 종교인은 아닙니다.
기성 종교중에서 그럴듯해 보이는것은 못찾기도 했고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것 같습니다.

어쩌면, 분몬의 도입부에 쓰신 이반의 생각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것이 허용된다"

비록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조금 거부감이 있는 표현입니다만 무엇인가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모든것이 허용되는, 그래서 아무런 기준없는 [진리]들이 임의적으로 선택되는 상황은 심지어는 상상력 속에서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것을 인정한 순간, 절대적 진리가 없다 라는 표현은 형용 모순에 가깝고, 그렇게 말한다는게 위선이라는 공격에서 버티어내기 어렵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비록 온전한 인식은 불가할 수 없더라도], 인간인 이상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상정하고 있다는걸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것을 도저히 막을수 없었습니다.

제 사유에서는 삶이 중요할지 말지, 삶이 의미없어진다 같은 개인적 인상 등은 어떤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어떤게 진실일지 혹은 좀 더 가까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뿐입니다.

[1]을 택하였기에 삶을 더욱 책임감있게 살수있다고 하셨는데,
책임감있고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신의를 어기는것]을 미덕으로 삼고 계신다면야 혹시 모를까,
[1]을 택하였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가치관의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상태, 즉 [2]를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는것으로 보일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판단"일지 아닐지에 대한 것은
"스스로"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그냥 사막에 모래가 아무렇게나 한번 쌓였다가 흩어지는것과 같은 현상을 "스스로"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바일수도 있겠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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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이 바빠 답글이 늦었네요.

이반의 발언을 보고 저도 똑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의를 어기는 삶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 것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진리가 없다고 믿을 때 그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선택이 내 삶 뿐만 아닌 내 주변의 삶, 인류 전체의 삶을 결정짓는데 기여한다면, 신의를 어기는 삶을 과연 미덕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도, 본인은 정작 불의를 행하면서도, 모두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기기만적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고 생각합니다. 전 지구인이 도둑이 된 세상에서는 도둑들도 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본인의 선택이 단순히 나만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 [2]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삶을 더욱 책임감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모래가 스스로 흩어졌다고 말하든, 바람이 모래를 흐트러뜨렸다고 말하든, 모래가 흩어진 '사실'이 중요하다고 믿어야 겠습니다. 다른분들이 말씀하시는 바도 그 점인 것 같고요.
Quantum21
17/08/22 09:35
수정 아이콘
신의를 어기는 삶을 미덕으로 여기는 규범을 사례로 든것은 단지 임의적을 택할수있는 여러 가능성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무거나 지칭한다한들 말씀하신것과같은 여러 단계의 사유를 거쳐 그것의 현실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정합성같은 소위 옳고 그름을 따지게됩니다.

진리란 "옳음"의 다른 말입니다.

옳음을 판단하는 누텔라에토스트님의 기준x가 있고 저의 기준 y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화가 된다는것은 x와 y의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과연 모든 개개인이 가진 옮음을 따지는 기준들의 교집합을 생각했을때 공집합이라면 진리가 없다고 할수 있겠죠. 하지만 그럴까요?

더 나아가서 외계인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에너지보존법칙을 따르는 우주에서 온 존재라면 최소한 그들의 진리와 인류의 진리에는 교집합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신의를 어기는것이 미덕인 사회는 존재할수 있을까요? 아마도 신의를 어기는 행위와 사회를 구성하기위한 공리사이에 모순이 발생할겁니다.

이렇게 모순을 통해 이 사회가 그리고 자연이 움직이는 법칙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 혹은 "옳음"이란 이러한 거대하고 신비로운 법칙의 총체 혹은 그 정수에 단지 이름표를 붙인것일 뿐입니다. 비록 제대로 이해못해도 이름표딱지는 붙일수 있으니까요.

누텔라에토스트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죠.
자기기만을 하기때문에 신의를 어기거나 더짓말을 하는것이다 라는 말에서 이미 옳음의 기준 즉 진리를 상정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그리고 거기에 상정하신 옳음의 기준은 제가가진 진리와도 교집합에 있고 아마도 그 누구라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힘들겁니다.

물론 상황 따라 답변이 곤란하기 때문에 저또한 아주 편안하게 [누구나 기준이 다를수 있지]하며 도망가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마치 소년만화에서 악당이었지만 결국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식의 이야기같은거죠.

그것이 누군가와의 소통과정에 트러블이 있고 현실적인 장애물이 많을 지언정,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깊이들어가면 이성이 있다면 누구에게 통용될거라 믿을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통용될거라 믿는다는 것이 [진리가 있다라고 믿는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20:49
수정 아이콘
전혀 다른데요. 진리란 옳음의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가 빠지셨네요. 그리고 그런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언제나 감정에 솔직해야 진리에 가까울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 감정을 상황에 따라 숨길 줄 알아야 맞는 건가요. 누구나 파트너가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감정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 때 사랑하는 상대를 택할지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자신이 지는 겁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택할테고, 누군가는 양보 하겠죠. 하지만 본인들이 자기기만 없이 진정으로 그것을 원했다면, 그 선택을 누구도 비판 할 수 없는 겁니다.

누구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보죠.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붓터치만 보고 그림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첫 붓터치는 캔버스의 45도 각도에 칠해야한다.'와 같은 기준이 있습니까? 그림은 그리고나서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술에 반드시 그려야 한다는 기준이 없듯이, 인생에도 그런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겹겹이 칠해지고 나서야, 인생은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성작이 완전히 달라보일수도, 혹은 서로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든 그림은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리가 있는것이 아니라, 서로의 판단이 [같아 보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퀀텀님께서 아마, '결국 같아보이는 그게 진리의 증거다.'라고 말씀 하실 것 같아 한마디만 더 보태겠습니다.

진리라는 것을 상정하게 되면, 우리의 모든 행위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우리의 주체성은 상실될 수 밖에 없고, 자유를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선택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누군가가 부여한 의미를 따르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보다 내 삶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거 계속하게 되는건가요. 아이, 힘든데
Quantum21
17/08/23 10:24
수정 아이콘
협의의 의미가 아니라 진리의 다른 표현으로 "옳음"을 말할때는 "언제 어디서나" 라는 수식어는 사실 불필요합니다.
맞을때도 있고 틀릴때도 있다면 이미 아무런 수식어 없이 "옳다"라 해버리면 어울리지 않는게 되죠.
이 논의에서, 단어 선택을 "진리"이든 "truth"이든 "옳음"이든 그 표현형이 무엇인가 하는가가 중요한것은 아니고 그것의 실제적 의미가 중요할겁니다.

우리는 명제논리에서 명제A가 참인가 거짓인가 라는 것을 따지는 진리표 에서 등장하는 "진리"가 아닌,
"절대적 진리가 있을까?"라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거창한 질문에서 말하는 "진리"를 논의하고 있고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어느정도 상호 동의가 가능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설프게 묘사하자면, 얼추 "언제 어디서나 옳은 어떤 절대적인 무엇인가"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상기하지면, 이 글타래 제일 처음 언급했다시피 저의 주장은 [진리는 있다. 다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뿐이다.] 이며 이러한 표현조차 태생적으로 불완전할수밖에 없다는 점도 일정정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신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가 숨기는게 옳은가 같은 이야기를 예시를 든것은 ,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성을 논하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이상해보입니다.

거칠게 짚어보겠습니다.

1) A를 선택하는것 ( 예를들어 A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것)
2) notA를 선택하는것 (예를들어 notA는 사랑의 감정을 숨기는것,)
3) 이런 상황을 에서는 A를 선택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notA를 선택한다.

반드시 1)과 2)중에서만 진리를 골라야할 이유는 없으며 1),2),3) 모두 진리를 묘사하는 후보일수 있는게 아닐까요?
어쩌면 3)자체가 진리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1)과 2)보다는 진리에 더 가깝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수도 있고,
다른 4) 혹은 5) 선택지가 있어서 더 진리에 가까운게 있는데 아직 못찾은게 있을수도 있을겁니다.

"특정 질문의 답이 있는가" 와 "절대적 진리가 있느냐" 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상황에 따라 더 나은 선택" "경우에 따라 더 올바른 선택"이라는 발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비교라는걸 해야합니다.
그 비교를 하기 위한 기준이 암암리에라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것이고,
어쩌면 저는 그걸 "진리"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좀더 인간사이의 관계로 한정지어본다면,
너와 내가 다른 기준이라는것이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인 것이지
아주아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상황을 비교하고 소통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합의에 도달한다고 믿기때문에 "절대적 진리"는 있다고 믿는겁니다.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라는 것을 상정하게 되면, 모든 행위에 정답이 있어야하고,
삶에 대한 우리의 주체성은 상실될 수 밖에 없고, 자유를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기의 모든 문장사이의 관계에 동의가 안됩니다.
정답의 존재한다고 해서 나의 선택이나 삶의 의미같은것이 훼손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언급하신, [삶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하기에 ~~ 라고 생각한다] 라고 하신 부분,
진리가 있다/없다 로 결론은 반대지만, 그 패턴은 저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저는, 어려운 문제를 앞에두고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하는것이 더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짜피 진리도 없고 정답도 없는데 얼마나 치열할수 있을까요?
적당히 생각하다가 어짜피 정답도 없는데 대충 생각하고 나서 이게 나의 기준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한다는것은,
비록 인간이 도달할수없을지언정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이미 말씀중에, 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삶에대한 올바른 자세" 를 말씀하셨고, 거기서 주체성을 상실하는것등이 올바르지 않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는걸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진리는 없다고 믿고계시니, 이또한 진정 개개인마다 달라지는 그저 상대적일뿐인 기준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정 그렇다면 주체성을 잃어버리는것에 대하여도 그저 개인의 기준일뿐이지 슬퍼하거나 좋지 않다거나 옳지 않다고 여길 필요가 없는것 아닐까요?



아... 그리고,
바쁠땐 이런 대화가 좀 부담되고 힘들어도 이런 기회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하여 짬짬히 나름 성심껏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힘들거나 내키지 않으면 더이상 논의하는것은 언제 어느때라도 그만하셔도 좋습니다.
누텔라에토스트
17/08/24 05:34
수정 아이콘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진리]라는 표현은 너무나 모순적입니다. 왜냐하면 글에서도 직접 말씀하셨지만, 진리라는 말 뜻에는 모든 상황과 시대에서 적용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점도 직접 언급하셨는데,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충족하는 [좀 더 바른 행위]가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생각을 조금 더 확장 시키면, 모든 상황에는 진리에 가까운 선택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됩니다. 진리를 우리가 알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는 질문 것이, 결국 인생이라는 문제에 해답이 있느냐를 물었을 때, 진리를 상정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앞서 한 비유를 빌리자면, 결국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것과 가장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원작이 그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케치부터 하나하나, 똑같이 그리고자 하겠지요.

이것은 곧 주체성의 상실입니다. 자유의 박탈입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있고, 그것에 다다르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마지막 질문에 나름의 답을 드리자면, 진리가 없다고 믿는 경우에는, 어떤 행위도 주체성을 상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인생에서의 모든 선택은 본인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현재의 나는 나의 주체적 결정의 결과물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나]의 삶인 것이고요.


이번 글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대개 이런 경우에는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과 같아서, 토론이 길어지면 했던 말의 반복이 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해서 그랬습니다. 그만하고 싶었던건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엉엉. 안그래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기쁜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일 회사가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유 일하기 싫어.... 좋은 밤 되세요.
Quantum21
17/08/25 17:53
수정 아이콘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 며칠 중요하고 바쁜 일이있어서, 피지알에 오는 것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생각을 주고받는 상황에 기뻐하시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여러번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의 언어로 "진리"같이 뭔가 절대적 무엇인가를 묘사하기는 매우 난감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명제논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진리]라는것도,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진리]라는것도 사실은 둘 다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예컨데 모든 질문에 대하여 가장 올바른 정답을 주는 오라클을 상상해보죠.
상황이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것은 사실 질문이 달라졌기에 답이 달라졌다는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설령 질문에 따라 정답을 다르게 준다고 해서 오라클의 존재에 부정되는것도 아니며
주어진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다르게 적용되는 진리라는 말또한 마찬가지로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도 이미 "진리"의 절대성 안에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
...
전략
....
그리고 그들은 그 것과 가장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원작이 그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케치부터 하나하나, 똑같이 그리고자 하겠지요.
이것은 곧 주체성의 상실입니다. 자유의 박탈입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있고, 그것에 다다르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
말씀하신 이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꽤 오랜기간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절대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얼마만큼 비슷하게 그렸는지도 알 방법도 없는데 어떻께 스케치부터 똑같이 그리려고 할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는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결코 그 진리가 알려주는 답을 알 수 없기에 주체성이 상실되지 않으며 선택의 자유가 박탈되지도 않습니다.


진리가 없다고 믿는 경우에는 말씀하신것처럼 주체성이 상실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손쉬운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져나오긴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판단이나 행동들은, 정말 주체적으로 무엇을 숙고하여 결론을 내리고 실천하는경우보다는 그저 살아오던대로의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것이 대부분입니다. 많은 경우 이미 저질러 놓고 그것을 반성하기보다는 자기합리화 하는게 보통이죠.

이쯤에서 다시한번 제가 이 글타래 처음에 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네요.
----------------
[1] 세상에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가 존재하더라도 사람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저의 경우에는 [1][2]의 차이는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
후략
...
----------------------
사실 [존재가 아예 없는것]이나 [존재하지만 절대로 인식할수 없는것]이나 엎어치나 메치나 입니다.
어느쪽을 믿어도 현실적으로 별로 달라질게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치트키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이 존재할것이다"라는 믿음의 항상성을 유지할수 있는것이고
어짜피 정답도 없는데 뭘... 하는 생각에서 빠져나올수 있고, 현재의 내 선택이 완벽했다고 자만하지 않고 너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거죠.


불금이네요,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월요일 프리젠테이션때문에 주말 내내 일해야합니다 ㅜㅠ...
달콤한삼류인생
17/08/20 18:18
수정 아이콘
고전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저자들은 상당한 현학러들이고 재능러들이기 때문에 시대보정이나 주체적 관점 없이 접근하면 오히려 그 사람의 일관성에 휘둘리기 십상이라고 봅니다.
현대 사회는 일정부분 위대한 작가들의 생각들이 반영 되어 있고 그런 기초위에 작동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많은 사회적 경험을 해야 생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뚝딱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언어물리
17/08/20 18:20
수정 아이콘
저는 그래서 고전을 바로 읽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해설서나 개론서를 먼저 봐야한다, 라는 말을 들었어요.

생각은 다양한 많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느껴요. 그것이 자기 스스로 납득 가능하면서 또 이 사회에 꽤 쓸만하면 그것을 우리는 '주체적인' 생각이라고 하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1:38
수정 아이콘
그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머리가 아픈 시련이 있긴 하네요.
사악군
17/08/20 21:04
수정 아이콘
물론 제 생각이 오롯이 저 자신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사람에게 들어간 인풋이 동일하면 아웃풋도 비슷할 가능성은 높죠. 하지만 인풋이 동일해도 아웃풋이 동일하진 않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해요. 외부의 영향이 극히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해도 저 자신이 저 자신이라는 데 지장이 있는게 아닙니다. 어차피 그 모든 인풋을 받은 것도 나고 이런 아웃풋을 내놓은 것도 나니까, 내 생각이 '오롯이' 내 생각이 아니어도 '내 생각'이라는 걸 의심할 필요는 없는거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1 00:32
수정 아이콘
인풋으로 아웃풋을 내는 수식도 남의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윌로우
17/08/20 22:40
수정 아이콘
스스로 답을 찾아야죠.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배워가며 ... 질문에 답이 있네요.
17/08/21 04:30
수정 아이콘
뭐랄까,

자유 의지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종종 나오는, '인과율에 종속되지 않지만 인과의 고리를 생성할 수는 있는 나' 라는 개념

자연 과학이나 인식론에서 이야기하는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발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윤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개인 개인의 의견과 독립적인 보편타당한 윤리는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

이렇게 세 가지가 섞여있는 느낌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셋 다 최소 2500 년 된 질문이고, 아직도 매년 해당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에 나오는 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 질문에 대해서 모두 답이 '노' 일거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게 제 자존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한 때는 이 질문들이 저한테 정말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게 왜 나한테 중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더니, '애초에 나한테 중요할 이유가 없는 질문인데 괜히 고민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신경이 안 쓰이더군요
Quantum21
17/08/21 09:36
수정 아이콘
제 경우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뭐랄까 "불가지론"의 장막 뒤로 숨는 법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별로 신경안쓰이게 된것 같습니다.


마치 흙을 파먹는 지렁이가 왜 그런지 모르지만 태어난이상 그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고
더위가 가시면 덧없는 삶을 마감하는 곤충들도 본능적으로 알고있는 방법대로 오늘을 살아가는거처럼,

광대한 "불가지의바다" 한가운데 서서 하염없이 관찰하고 또 곱씹으며 부질없을지 모르는 사유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여름날의 매미울음처럼 마치 그렇게.

그 뿐이죠.
17/08/21 10:17
수정 아이콘
얼추 비슷하지만 저는 조금은 더 낙천적입니다. 생물이 자신의 종의 한계에 묶여서 어느 수준 이상의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인간은 머지 않아 자신의 종 자체를 엔지니어링 하기 시작할 거라고 보는 쪽이라서요. 스스로 멸망시키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은 상당히 높은 경지의 존재가 될 거라고,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밝게 생각하면서 삽니다!
Quantum21
17/08/21 10:26
수정 아이콘
물론 저도 아주~ 낙천적입니다.
불가지론에 순종하면서 생긴 결과라는게 차이점이겠지만요.

오늘도,
아주 아주 낙천적으로,
우리 후손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라는
[종이 부여한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고 있는중입니다.
17/08/21 10:36
수정 아이콘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다시 일하러....
추천하려고가입
17/08/21 16:07
수정 아이콘
무언가 두분의 대화를보면서 피식 하게 되네요.
두분의 대화가 귀엽게 느껴지는데, 다시 그게 내 이야기라는 자조적 웃음이요.

두 분을 보고 웃은게 아니라, 남겨진 댓글을 보고 웃은겁니다?
아마 잠시후에 다시 이 댓글을보면 본인들도 피식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뭣이 중헌디?

늦었지만 점심 맛있게 드셨길
17/08/21 22:51
수정 아이콘
흐흐흐 이 주제에 대해서 아마추어가 오랫동안 생각하고 나면 보통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아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00:55
수정 아이콘
저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싶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땀 열심히 흘리고 시원한 냉수 한잔 하면 그렇게 행복한 것을요.
-안군-
17/08/21 15:19
수정 아이콘
도스토예프스키의 저 말은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저 구절의 왕을 '신'이나 '법'으로 치환해도 크게 다르지 않겠죠. 저는 종교인이지만, 신과는 별개로 종교는 일종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내려준 절대적인 권위건,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건, 공동체가 동의한 어떤 법칙이 없고, 각자 맘대로 산다면, 그 사회야말로 혼파망이 되겠죠.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01:14
수정 아이콘
물론 어떠한 합의가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왔느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황당무
17/08/21 17:17
수정 아이콘
인간은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얻고 그것 역시 상대적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랑이 없으면 빨강이 붉은지 알 수 없고 밤이 없으면 낮이 환한 것을 알 수 없는 것처럼요.
내가 사각형이라는 걸 알려면 삼각형과 비교하면 되죠. 그런데 삼각형하고만 비교한 사각형과, 오각형하고도 비교해본 사각형은 자신에 대해 아는 정도가 다르잖아요. 그런 점에서 나와 다른 것들과 자신을 계속 비교해보은 것이 그나마 나의 생각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까라마조프랑 달과6펜스 어디 출판사로 보셨나요?? 저는 매번 실패하고 있습니다. 다 번역 탓입니다 후후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01:08
수정 아이콘
저는 둘 다 민음사 판으로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달과 6펜스는 잘 읽혔습니다. 거의 끓지 않고 읽었거든요. 글도 읽기 편했고, 분량도 얼마 안되고요.

카라마조프는, 허허허, 도끼 성님 글이 워낙에 주절주절인 점도 있지만-사실 그게 매력입니다?-가끔씩 좀
막히더라고요. 전체적으로는 재미있는데, 함정이 몇군데 있습니다. 특히나 민음사판 기준 2권 초반 부분인 조시마 장로의 인생사는 그냥 스킵 하시는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합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들이 함정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재미있으니 한번 도전 해보는 것도 좋으실듯 합니다.
황당무
17/08/22 11:58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이번엔 제가 등장인물 이름을 잘 구분할 수 있기를...
cienbuss
17/08/21 20:26
수정 아이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죠.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소위 비판적 사고를 권장한다 해도 그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목적이고 결국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관들을 주입받게 되죠.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기계적으로 받아들였던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교육을 받아도 그것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쌓아올릴 수는 없어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고 그 결과물은 자신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텔라에토스트
17/08/22 01:30
수정 아이콘
그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좋을 것이고, 없더라도 그게 그리 중요한건 아닌가 봅니다. 윗분들 말씀을 보면요.
다빈치
17/08/22 15:16
수정 아이콘
누텔라에토스트가 닉네임인데 종교가 없으시다니! 이거 완전 누텔라판 베드로 아닙니까 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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