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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7/28 18:09:15
Name 상록일기
Subject [일반] 공무원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도 다소 불합리하진 않은가?
2020년 제주도에서 관광객이 부서진 난간 사이로 추락해 부상을 입고, 검찰은 이에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합니다. 올해 초에 나온 항소심에서는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사건이 일어나기 몇 해 전 업무분장에서 해당 산책로의 관리가 삭제되었던 것이 꼽혔습니다.(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11832) 바꿔 말하자면 업무분장에 그것이 여전히 존재했다면 무죄가 아니었수도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제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 제가 있던 부대는 장병의 숫자에 비해 부대 단위가 컸고 소수의 인원이 많은 업무를 분담해야했습니다. 저는 당시 행정병의 신분으로 인수인계도 받지 못했던 업무들에 치였고, 각종 시설물의 안전책임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연히 본 문서들에서 제가 책임져야 할 시설들이 제가 듣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고 어떻게 관리해야할지 알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그것을 배울 곳도 없다는 것에 아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선임들과 간부님들은 유능하고 선량하신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에게도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제 군시절 동안 그런 시설물의 관리하자로 인해 사고가 났다면 저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제가 군생활하는 동안 별 사고는 없었지만 그것은 저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닌 순전히 행운에 기댄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업무분장이 실제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라기 보단 사고가 났을 때 책임질 누군가를 만드는데에만 효과가 있는 방식이 아닌가합니다. 저는 제 능력밖의 임무를 부여받고, 거기에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책임만 떠맡았던 겁니다.

저는 군생활 이외의 공직을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공직에 있는 몇몇 친구들의 하소연들을 들어보면 현행 공무원들의 업무분장도 그런 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줌도 안되는 공무원들을 서울의 한 구(區)만한 크기의 행정구역 전체의 공공시설물의 안전담당으로 지정하고 그 시설들을 관리하게 하는데 업무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의문이 듭니다. 공무원들의 인수인계체계가 주먹구구식이고 인사이동이 짧은 주기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제가 군생활에서 했던 것처럼 자기 임기 중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행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지 않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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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빠돌이
23/07/28 18:22
수정 아이콘
책임 지는 사회가 아니라 책임 지게하는 사회...
사고가 나는 환경을 바꾸기 보다 사고를 낸 사람을 바꾸기를 선택한거죠
23/07/28 18:23
수정 아이콘
멀리 나갈 것도 없이 누칼협 알빠노 메타 극혐한다는 피지알조차 뭔 일만 터지면 기승전공무원 탓 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은거 보면 대한민국 많은 국민들이 이런 시스템을 원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그 니즈에 맞춰서 실무하는 공무원들 조지는거고
23/07/28 18:31
수정 아이콘
원칙적으로 안전관리자는 겸직이 안됩니다.
안타깝게도 군인/공무원은 아닌듯 하지만요.
Regentag
23/07/28 21:09
수정 아이콘
군에서는 비 전문가가 겸직을 합니다…
군사정보 직렬로 뽑힌, 보안 업무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사람들이 안전업무도 겸하는걸로 되어있죠.
산다는건
23/07/28 18:31
수정 아이콘
정부입법이 아니라면 일반 공무원이 고려 대상이 아닐거 같습니다.
미분기하
23/07/28 18:33
수정 아이콘
결국 내일 아니니 '알빠노'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특히 요즘은 더더욱요...
No.99 AaronJudge
23/07/28 18:34
수정 아이콘
허……
이선화
23/07/28 18:39
수정 아이콘
그 점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불합리성이라기보다는 공무원의 인수인계/업무분장의 불합리성에 기인한 거라서 약간 궤가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사고가 있었고, 그것이 예방가능한 사고였음에도 인재로 예방하지 못했다면 누군가가 그걸 책임져야 하는 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현실적으로는 듣도보도못한, 관리해본 적도 없고 관리할 능력도 가르치지 않은 무언가에 이름만 책임관으로 올라있는 일이 다반사라, 실제 공무원 입장에서는 자기가 책임관인 동안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이 점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그대로 두되 인수인계나 업무분장 부분에서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이상론적인 얘기라 그게 될까? 싶습니다...
레드빠돌이
23/07/28 18:49
수정 아이콘
예방 불가능한 사고가 존재하나요?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 보면 모든 사고가 예방가능하지 않나요?
이선화
23/07/28 18:53
수정 아이콘
당시에 현실적으로 예방가능한 선이죠. 이미 과실을 판단할 때 그 점을 법원에서 고려하고 있어서 만약 법원이 판단하기에 (현실적으로 예방가능한 사고였음에도) 예방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과실에 대해 처벌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Answerer
23/07/28 19:00
수정 아이콘
법원까지 가야하는순간 현실성이 없는 해결법이죠.
이선화
23/07/28 19:04
수정 아이콘
엥... 해결책이라는 뜻이 아니라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고, 잘 모르는데 불합리한 업무분장으로 책임관으로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게 문제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자체는 문제가 없지 않나, 하는 의견입니다.
지구 최후의 밤
23/07/28 19:09
수정 아이콘
안전관리자같은 경우 공기업, 공공기관처럼 순환근무를 하는 곳은 공무원처럼 직재가 따로 있지 않는 이상 다른 직무와 겸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와중에 안전 직무에 충실하려면 상사 및 타부서와 부대끼면서 안전을 추구해야 하는데 유난떤다면서 진급길 막히기 십상입니다.
일정 규모 이상 되서 안전 직렬을 아예 따로 뽑아도 진급 심사는 같은 급수끼리 동일하게 받는 경우가 다반사라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구요.
widemoat
23/07/28 19:17
수정 아이콘
한파 속 취객 방치한 경찰관 2명, ‘업무상 과실치사’ 검찰 송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49/0000252018?sid=102
'떡 먹던 노인 질식사', 복지센터장 "빨리 먹이지 말라고 교육했는데…"[서초동 법썰]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5253902
경찰, '독방 미결수 사망' 동부구치소 교도관들 송치…과실치사 혐의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414158?sid=102
‘분당 정자교 붕괴’ 구청·업체 직원 8명 추가 입건…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810317?sid=102

위 기사들에서 적용된 혐의가 적절한지는 판단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업무담당자가 인식하는 업무의 범위와 책임의 크기와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괴리가 큰 것 같네요. 취객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집 안까지 안내하지 않은 잘못이 되니까요. 분당 정자교 사건도 업무담당자의 입장에서는 90년대 택지개발 속도전 하면서 교량 설계에 결함이 있었던 것을 30년 후 업무분장 받았는데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요.

그러면 내부 직원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안전, 재해, 민원, 복지 등의 업무를 회피하는 것이 최적 전략이 됩니다. 같은 돈 받는데 뭐하러 저런 업무를 받을까요. 민간에서는 아무리 탈건한다고 말하고, 소방관리자 입건되어도 인건비가 올라갈 뿐 사람은 구해집니다. 근데 공공에서 계속 문제가 생기는건 결국 인센티브 구조가 기형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지불해야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같은 공간에서 다같이 고생하면 납득이 될 일도 일부만 고생하면 납득이 안 되니까요. 해결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민들레
23/07/28 19:31
수정 아이콘
사고가 나면 재발방지 대책보단 책임자 한명을 지목해서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러니깐 실제로 유용한 정책보다 면피용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류의 정책이 많죠
23/07/28 19:3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받는 돈이나 위상에 비해 책임질 영역이 지나치게 많다고 봅니다.
인간실격
23/07/28 19:40
수정 아이콘
공직 업무분장은 정말 노답수준이고 실제 업무가 없는데 책임자 하나 둬야되니까 이름만 올려야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뭐 이걸 제외해도 위의 개별건을 보면 업무상 과실치사라는게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보여지긴 하네요.
23/07/28 19:58
수정 아이콘
제가 신규 시절 모처 대테러담당자였습니다. 예비군 뒤로는 총 만져본 적도 없고 뭘 교육받은 것도 없고 인계받은 건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이름 올릴 사람이 있어야하니까 올린거죠.

한마디로 공무원이 된 지 얼마안된 사람에게
ㅡ 너, 오늘부터 대테러담당자.
ㅡ 예? 제가요?
이거였습니다.

다른 직책도 이런게 많습니다. 담당자가 잘못한게 있겠죠. 그런데 왜 잘못했는지 보면 뭐라하기 힘든 게 많습니다.
23/07/28 20:07
수정 아이콘
참고로 대테러담당자로서 수당을 받거나 그거 맡았다고 다른 일 줄여주거나 이런 거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대테러담당자로서 한 일도 없었구요. 그냥 이름만 올려두었던 거죠.
23/07/28 20:12
수정 아이콘
오송읍사무소 직원소개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 각종사업 설계, 집행, 감독
- 농업기반시설 유지관리
(수리시설물 및 농로)
- 소규모수도시설 긴급복구 및 유지관리
- 수해조사 및 복구사업
- 재난업무 및 제설작업

이게 한 사람의 업무입니다. 어깨에 짐을 산더미같이 얹어놓고 왜 빨리 못 가냐고 채찍질을 한다면 그건 너무 불합리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3/07/28 20:55
수정 아이콘
공무원 업무중에 000일반 업무 맡아버리면 정말 너무 힘듭니다.
23/07/30 11: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공무원이 가진 역량, 제공하는 교육에 비해서 책임이 과중한 경우가 많다는 거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예시로 드신 업무가 처리불가능하게 많아 보이진 않아요

저 분이 계절별로 무슨 일을 할지 쪼개보면 좀 명확해지는데



- 농업기반시설 유지관리
(수리시설물 및 농로)

여름
- 수해조사 및 복구사업

겨울
- 소규모수도시설 긴급복구 및 유지관리
- 재난업무 및 제설작업

이렇게 하실꺼고

- 각종사업 설계, 집행, 감독
는 봄 여름 겨울에 생긴 유지보수사항들에 대한 걸로 판단됩니다

일이 많이 적혀 있지만 실제론 계절 한철 장사(?)인 일들이 있는 거죠
전문성 숙련도가 떨어지기 쉬운 공무원 특성상 일이 '자기한테' 어려울 순 있는데
예산, 발주, 설계, 공사, 감독 이 사이클을 이해하면 일이 많아 보이진 않아요

읍사무소에서 발주하는 공사가 대부분 유지보수 차원의 공사라는 걸 생각하면
유지보수가 필요한 부분을 자기가 조사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공사를 발주하는 시스템인데
이걸 업무분장 명목으로 둘로 나누면 조사 담당자가 발주담당자에게 이런 공사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과정이 생겨 오이려 일이 복잡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네요

이번 극한호우때처럼 동시에 일이 겹칠 수 있고
그럴때 유연하게 다른 직원을 끌고 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낫지
일년에 한달 오는 극한호우를 위해서 사람을 많이 뽑아 높는 건 비효율적일거 같습니다
23/07/28 21:07
수정 아이콘
공무원에 대한 전반적인 불합리한 처우는 확실히 문제입니다. 너무 과도한 걸 요구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o o (175.223)
23/07/28 21:50
수정 아이콘
탈 났을 때 잘라낼 꼬리 취급 아닌가 마...
MissNothing
23/07/30 02:03
수정 아이콘
공무원의 책임 회피식의 일처리가 괜히 일어나는게 아니죠... 실무자에게 그 책임이 전부 전가되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안군-
23/07/30 13:15
수정 아이콘
공무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복지부동이고, 그것때문에 욕을 많이 먹지만, 제도 자체가 복지부동하게 만드는게 분명 있죠. 그나마도 오랜 기간 그 일을 계속 하면 요령이라도 생기고, 나름대로의 전문성이라도 갖출텐데, 그렇게 하면 결탁에 의한 비리가 생길까봐 계속 순환을 시킵니다.
다른 국가들, 특히 근대국가의 틀을 갖춘지 오래된 유럽국가들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이런 디테일은 유튜브 등으로도 얻기 힘들어서..
SkyClouD
23/07/31 11: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제가 경험한 바로는 대부분 둘 중 하나입니다.
지방직 공무원이 현지 고정형태로 돌아가서 지역유착이 극도로 심해지고 그로 인한 이득과 폐해를 모두 겪거나, (Ex. 일본, 미국 및 기타 선진국)
아니면 그냥 현지 선출직 공무원 대부분을 지방 유지들이 돌아가면서 해서 알아서 굴리거나. (Ex.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 대부분)
어느쪽이건 대부분의 경우, 아니 거의 99%는 우리보다 못합니다. 크크.

사실 공무원 순환보직의 문제는 순환보직 자체보다는 빈도와 인수인계의 문제죠. 매뉴얼을 만들 생각도 없고, 기간도 전체적으로 너무 짧아서...
해 먹을 생각이 있으면 그 자리에 있는 기간이 길건 짧건 할 놈은 한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전문성과 인수인계를 위해서 최소 기간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국가직 평균 기간이 2년이 안되는건 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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