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세 유럽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2를 치트나 모드없이 플레이하며 쓰는 연재글(연대기)입니다.
- 게임에 대한 설치 문의, 한글패치 다운로드는 유로파 카페(http://cafe.daum.net/Europa)에 가입하셔서 얻으시면 됩니다~
- 그 외 질문은 댓글로 해주시면 아는 만큼 최대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그러나 저도 오랫만에 플레이 하는거라 잘 모름;;)
- 마음대로 퍼가셔도 상관 없습니다. 저에게 물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
" .........................그리하여 시몬 왕은 이슬람을 물리치고 카톨릭 세계를 지켜내었습니다. "
" 그래요. 알헤시라스 방어전은 국사 시험 범위에 들어가니까 반드시 복습해 둘 것! 자, 다음 페이지는 존슨 학생이 읽어줄래요? "
" 음... 1337년 아키텐 왕 시몬은 파리를 비롯한 옛 프랑스 지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그 지역 독립 군주들은 동맹을 맺고 시몬 왕에게
저항 하였으나, 막아내지 못하여 프랑스는 시몬 왕의 손에 통일된다. 1340년 파리로 수도를 옮긴 시몬 왕은 프랑스 왕국을 부활시켜
스스로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한다. 그 뒤 몇번의 크고 작은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아즈텍 제국의 세력을 계속해서 몰아냈고
그의 봉신들의 추대로 인하여 아사그라 왕조 아키텐 제국을 선포하여 시몬 1세로 즉위한다. "
" 잘 읽었어요.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직접 시몬 1세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하는 동시에 시성식을 거행하여 시몬 1세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더이상 카톨릭의 수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교황은 그들의 세력을 지켜줄 강력한 세력이 절실했는데
마침 시몬 1세가 이슬람과 아즈텍 이교도, 발도파 이단들까지 몰아내었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상대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
-딩동댕동-
" 아, 벌써 시간이... 다음 시간에는 아키텐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대종교전쟁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
.
.
.
.
.
.
.
.
.
.
.
.
.
.
.
.
.
.
.
.
.
.
.
" 황제 폐하 만세!! "
" 신이시여, 시몬 황제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
교황이 무릎을 꿇은 시몬 데 아사그라의 머리 위에 황제의 왕관을 씌우자 지켜보던 병사들과 봉신들에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제 그는 정당한 아키텐 제국의 황제가 된 것이다.
교황의 손에 입맞추며 일어난 시몬 왕, 아니 황제는 처음 써보는 황제라는 호칭과 새 왕관의 감촉에 어색해했다.
" 하하! 시몬의 꼬맹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황제라니! "
제국의 섭정이자 집사인 랄프 레지나는 황제의 등을 두들기며 기뻐했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가득한 흰수염과 주름의 랄프였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고, 은퇴할 생각 따위는 없다고 한다.
" 모두의 덕분이야. 나 혼자서는 절대 이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거야. "
" 언젠가 노르웨이의 왕이 될 예정이기도 하지.... 그런데 시몬, 에스테파니아는 어디 있지? 아까부터 모습이 안보이는데 "
" 그 분은 결혼식 준비가 바쁘셔서, 막내 공주님과 함께 좀 전에 돌아갔습니다. "
그렇게 나타난 것은 중년의 성직자 로지어였다.
" 로지어! 자네는 어째서 시몬의 추기경 제안을 거절 한거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좋은 기회잖나. "
" 랄프의 말이 맞아. 지금 교황 성하를 뵐 수 있는 이 기회에 왜 추기경을 거절 한거지? "
시몬은 콘클라베의 추기경 자리에 로지어를 추천했고, 그를 위한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는데 로지어가 거부를 한 것이다.
그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저는 그런 자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폐하를 도와서 신의 뜻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
" 허 참... 아까운 일이구만. "
" 폐하,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폐하는 유일무이한 카톨릭의 수호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힘을 거의 잃은 아즈텍을 완전히 박멸하고, 사방에서 날뛰는 이단자들을 개종 시키셔야 합니다. "
" 나는 개종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은 없지만... 시몬, 신성 로마 제국이 몽골에게 승리했어. 무승부가 아니라 승리했다 이말이지.
조만간 그들과 반드시 붙을 날이 온다. "
젊은 황제는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
" 물론. 몽골과의 싸움이 끝난 신성 로마 제국은 새로운 황제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지. 순결파와의 전쟁이 시작될거야..
.... 앗, 우리 공주님 아니신가! "
황제는 쭈뻣대며 자신에게 어색하게 다가오는 어린 클레멘시아를 번쩍 들어올려 안았다.
" 아, 아버님. 황제 등극 축하드려요. "
" 고맙구나, 클레멘시아. 너도 이제 황제의 딸로서 어엿한 레이디가 다 되었어. "
그러자 황후 엘비라가 이제 아장아장 잘 걷는 어린 아들의 손을 붙잡고 황제에게 다가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시몬 2세.
같은 아사그라 가문의 공작, 백작, 친척들도 황제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시몬은 아내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자신의 후계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뭐, 전쟁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지금은 이 기쁨을 가문의 모두와 공유하고 싶을 뿐이야. "
1187년 1월 1일 알바라신의 백작이 되고, 비잔틴 제국의 안드리아노폴리스 공작의 외동딸 에이린과 결혼했다.
이베리아 반도 최약체의 세력을 가졌던 그는 언제 아라곤이나 이슬람의 공격으로 멸망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아라곤 왕 알폰스의 봉신이 되었고, 왕은 그의 능력을 신임하여 왕국의 재상으로 뽑았다.
그 후, 영지의 발전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그는 성직자들의 재산을 싸그리 몰수하여 폭군이 되었고
교황에게 그 사실을 밝히러 가던 주교 아즈나를 몰래 살해한다.
그는 당시 아라곤의 왕 알폰스의 충실한 신하였고, 왕의 개라고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충성을 바친 끝에 왕에게 영지를 하사 받는다.
1188년 안달루시아 십자군이 발발하자, 그는 십자군에 참여는 했지만 정작 이슬람과는 싸우지 않고
같은 편인 칼라타유드를 공격해서 빼앗으며 악명을 떨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1192년 아라곤 공작으로 즉위하게 만들어 주었고
아사그라는 아라곤 왕국의 유일한 공작이 되어 2인자가 되었다.
1197년 4월 1일 지병이 악화되어 30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
아사그라 가문의 시조로서 그의 행동 일체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라곤에게로의 항복, 유일한 왕당파로서의 왕에 대한 아첨, 교회 재산의 몰수, 같은 편을 공격하여 땅을 빼앗는 악행...
그러나 그가 악명을 얻거나 비웃음을 당할수록 결과적으로 아사그라 가문은 점점 강해졌고 후대를 위한 발판으로 남게 되었다.
'사자의 심장' 잉글랜드 왕자 리처드.
당대 유럽 최강의 전사였던 그는 잉글랜드 왕국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는 1188년 안달루시아 십자군에 참가하여 이베리아 반도로 출정한다.
몇번에 걸쳐 이슬람의 대군을 물리치고 그의 이름을 사방에 알렸지만, 같은 십자군간의 불화와 비협조.
십자군으로 지원병을 보내기로 했던 알바라신 백작 아사그라 1세의 겁쟁이 같은 도주로 인하여 전쟁에서 패배하고,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평생 패배를 몰랐던 그는 십자군에서 첫 패배를 당한 이후 고국에 돌아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계자 없이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뒤 잉글랜드 왕국은 내전에 휩싸여 완전히 쇠락의 길에 접어든다.
'아이유브 왕조' 술탄 살라딘.
뛰어난 전략가이자 명군이었던 그는 1차 예루살렘 십자군 이후 끝없는 분열과 내전, 동족상잔에 빠졌던 혼란스러운
이슬람 세계의 상당수를 통일하여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 술탄으로 등극한다.
1188년 안달루시아 십자군의 방어에 나선 그는, 십자군을 계속패서 격파했고
사자의 심장 리처드까지 패퇴시켜 전쟁을 종결. 카톨릭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후 수니파 칼리프를 도와 예루살렘 왕국을 침공하여 결국 완전히 멸망시키고 카톨릭을 아랍에서 몰아낸다.
그는 이슬람 최고의 성군으로 불렸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아이유브 왕조는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아즈텍 제국과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낸다.
<아사그라 가문 2세대>
'조안 데 아사그라' 통칭 조안 1세.
1197년 5살에 아사그라 가문의 가주가 된다.
그는 프랑스 여왕 스태파니와 결혼하려고 시도 했지만 실패하고 스웨덴 공주 군힐드와 결혼한다.
그는 1211년 10월 프랑스 남쪽 지방 베아른을 정복했고
아이유브와 전쟁 중이던 알모하드 왕조에게 성전을 걸어 발렌시아 공작령을 빼앗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1221년 우르겔 백작령을 공격하다 안포스 3세로 인하여 강제로 전쟁이 종료되자
조안 1세는 분노하여 왕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1222년 비잔틴 제국이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노리고 공격해 왔을때도 안포스 3세의 군대와 손발이 맞지 않아 합류를 못하여 실패.
제노아의 루나 남작의 대군에게 공격받아서 위험에 빠졌을때 프랑스 여왕 스태파니가 도와줘서 겨우 이겨내기도 한다.
1229년 우르겔 백작 다시 공격해서 승리하여 결국 영지를 빼앗는다.
1231년 엠푸리에스를 공격하다가 안포스3세가 다시 전쟁을 멈추게 만들자
또다시 분노한 조안 1세는 자문회를 그만두고 왕에 대항하여 선거제 파벌을 만들었으며, 왕에 대한 암살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결국 들켜서 반역자가 되지만, 당시 안포스 3세는 조안 1세보다 군대가 적어서 투옥을 시도하지는 못한다.
대신 왕은 조안 1세의 파벌 동료들을 전부 빼내가서 조안에게 역습을 성공.
분노한 조안 1세는 왕을 납치하려고 시도 했으나 또다시 실패. 왕에게 다시 암살자를 보냈으나 부상만 입히고 실패한다.
모든 음모가 실패하자 1234년 엠푸리에스와 포익스를 명분으로 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그는
아라곤의 반역자, 왕 시해 시도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는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1235년 파죽지세로 아라곤 수도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그는
왕의 동생, 아내 등 바르셀로나 가문의 친척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왕의 조카 안포스만 살려둔다.
결국 안포스 3세와 원수가 된 그는 1235년 독사를 풀어 안포스 3세의 암살에 성공한다.
그는 새로 왕이 된 안포스4세와 전쟁을 하게 되고, 장녀 귀슬라의 엄청난 활약으로 1236년 승리를 하지만
전쟁에 익숙치 않았던 그는 불구가 되어 1236년 10월 27일 45세의 나이에 불구의 후유증으로 사망.
당시 아라곤의 왕 안포스 3세에게 재무관으로 임명된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사업과 재산증식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재능있는 상인이었으며 투자, 무역을 좋아했고 신하들과 무역 원정을 떠나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조안 1세가 남긴 무역로, 시장, 도시등은 수십년간 아사그라 가문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의 후손들의 살을 찌웠다.
그가 남긴 재산과 영토로 인하여 아사그라 가문은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한편, 그는 장녀인 귀슬라를 총애하였고 여성도 얼마든지 남성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에 대한 인권을 매우 신경쓴 그는, 여성의 권한을 상승시키는 법안을 계속해서 통과하여
페미니스트 공작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안포스 데 바르셀로나. 아라곤의 왕 안포스 3세.
조안 1세의 이야기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인 그는, 초창기에는 조안 1세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조안 1세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시키자 불안함을 느낀 안포스 3세는 2번에 걸쳐 조안 1세의 전쟁을 강제 종료시켰고
이런 불합리한 명령을 계속 당한 조안 1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수도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조안 1세가 잔인하게 왕의 아내와 가족을 모조리 참살하자, 안포스 3세는 조안 1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고
조안 1세도 똑같이 그를 암살하려고 시도하며 완전히 원수가 된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두 사람의 대립은 결국 안포스 3세가 독사에 물려 사망. 얼마 뒤 조안 1세가 불구가 되어 사망함으로 끝나게 된다.
<아사그라 가문 3세대>
아사그라 데 아사그라. 통칭 아사그라 2세.
14살의 나이에 가주가 된 그는, 누나 귀슬라가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된다.
어렸을 적부터 강인하고 늠름했던 그는 타고난 역사(力士)였고 그 누구보다 힘이 세고 검술도 뛰어났다.
1237년 툴루즈 여공작 베아트리스가 아사그라 2세의 포익스를 노리고 공격하나, 누나 귀슬라가 활약하여 막아낸다.
1238년 성인이 되고 4살짜리 프로방스 여공작 알라이스와 약혼.
1240년 안포스 4세에게 잔드리는 자 + 대장군으로 임명된다.
1240년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나, 당시 길을 막던 도적들을 참살하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1244년 카스티야 왕국과 전쟁하여 승리한 알모하드 왕조의 병력이 줄어든 틈을 타 무르시아를 성전으로 공격한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1245년 아키텐 왕국이 베아른을 뺏기위해 전쟁을 걸게 되고, 양면 전쟁이 발생한다.
한계까지 용병을 고용하고 이슬람과 싸운 그는 전쟁을 무승부로 종결시키고
남은 아키텐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누나 귀슬라와 함께 활약하여 1247년 무승부로 전쟁을 종결시킨다.
1247년 교황에게 바르셀로나 공작위 명분을 요청하여 누노왕을 공격, 누노왕을 격파하고 '강인한 자' 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러나 1259년 아즈텍이 아사그라 2세의 베아른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고
아사그라 2세는 누나 귀슬라와 함께 처절하게 싸우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서 패배하고 만다.
그로 인하여 베아른의 영주이자 아사그라 가문의 데릴사위였던 게럴트와 여동생, 조카들을 빼앗기는 굴욕을 맛본다.
그 후 프랑스와 동맹을 하기 위하여 카페 가문의 소년왕 레이너트와 조카인 엘리센다를 약혼시켜 아즈텍 포위망을 만든 그는
1264년 카스티야 왕국을 선제 공격하던 중, 1265년 아즈텍 제국의 아키텐 십자군이 발동되자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뒤 십자군에 참가한다.
당시 프랑스, 신롬, 베니스, 아라곤 등이 한꺼번에 참전하여 아즈텍을 공격했고 이대로 간다면 아즈텍을 몰아낼 수 있을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쟁 도중 1267년 7월 1일 알수 없는 사고로 44세에 사망.
아사그라 가문의 최강의 남자였던 아사그라 2세는 말 그대로 역발산기개세의 엄청난 힘과 무력을 자랑했다.
그의 누나 귀슬라 또한 당대 최강의 장군이었고,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기지 못하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적으로 너무 강한 적들과 싸워야 했다.
고작 공작에 불과했던 그는 동시에 알모하드와 아키텐 왕국과 전쟁을 벌여야 했고 최전성기의 아즈텍 제국과도 싸워야 했다.
천하를 호령하기에 당대의 적들은 너무나 강했고...
정작 중요한 전쟁에서 어이없이 사망한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남자였다.
귀슬라 데 아사그라. 통칭 귀슬라 장군
아사그라 2세의 누나였던 그녀는 조안 1세의 장녀였고 당연히 계승권이 있었다.
그녀는 남동생을 죽여서 스스로 가주가 되려고 했으나, 음모는 실패하여 동생에게 용서를 빌게 되고
마음을 고친 그녀는 동생과 가문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는 대장군이 된다.
그녀는 당시 유럽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유능한 장군이었으며, 그녀의 측면에서의 공격은 너무나 매서워
당대 적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동생을 위해 수많은 전쟁터에서 싸우고 이겨온 그녀였지만
동생이 어이없게 사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하여 여생을 보냈고, 오랫동안 장수하여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사그라 가문 4세대>
아사그라 데 아사그라. 통칭 아사그라 3세.
12살의 나이에 가주가 된 그는 음모에 관심이 많았고, 재능도 있었다.
그는 모친 알라이스와 누노2세가 자신의 아버지 아사그라 2세를 죽였다고 주장했기에
그 복수를 위해 계속해서 음모를 꾸미게 된다.
1272년 노르웨이의 잉링가문의 잉그리드와 약혼한 뒤, 자문회를 무시하고 폭군이 되어 강제로 아라곤에 독립 전쟁을 선포한다.
1275년 반란에서 성공하여 아라곤의 왕위를 빼앗지만 바로 아즈텍에게 항복. 어린 황제에게 첩보관으로 임명된다.
1275년 7월 모친 알라이스를 사고사로 위장하여 암살한다.
1280년 아내에게 영지를 물려주기 위해 처형 오소르를 독살하는데 성공하지만 들키고, '알려진 살해자' 가 된다.
1280년 7월. 같은 아즈텍 소속 가스코뉴 공작령을 공격하여 1년후 완전히 점령한다.
1285년 그에게 반항하던 막내동생 조안 2세를 납치 감금한다.
1286년 누노2세를 암살하려다가 들킴. 그래도 끝까지 강행하여 결국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여 복수를 마친다.
1289년 분노한 누노2세의 아들 아이메릭이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나, 겁먹은 아사그라 3세는 결투를 피한다.
그 후 아이메릭을 감옥에 가두어버린 그는 명분없이 아이메릭의 영토를 빼앗고, 모든 봉신들에게 폭군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1290년 5월 5일. 알수없는 병사들에게 화살을 맞아 33세의 나이에 사망
아사그라 3세는 그의 부친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 아사그라 2세가 강인한 체구의 기사로서 평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냈던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아사그라 3세는 단 한번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은 신하들에게 맡긴 그는 평생을 복수심에 몸부림치며 음모와 계략으로 보냈는데
아내의 가족들, 자신의 동생, 자신의 모친과 왕을 모조리 죽였고 봉신을 핑계삼아 땅을 점령하고 그 봉신을 다시 죽여버리는 등
그로 인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잔인한 행위를 비난했으며, 아라곤의 '음모왕' 으로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그는 수많은 사람을 암살했을 뿐 아니라, 아즈텍 제국에게 항복하여 카톨릭의 배신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결국 수많은 악행의 끝에 그 자신도 똑같이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가 누노 2세와 그의 가족을 살해하고, 처가 식구를 학살한 것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아사그라 가문의 영토는 크게 증가했으며, 수십년이 지나 시몬 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는 밑바탕이 된다.
더불어 아즈텍에게 항복한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가문은 멸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
가끔 귀신을 봤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으며, 주위 신하들은 그가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알라이스 우르겔. 통칭 프로방스 여공작 알라이스.
아사그라 2세의 아내였던 그녀는 겉으로는 아사그라 2세와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었지만
남편 몰래 아라곤의 왕 누노 2세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노 2세와의 불륜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사생아 레이몬드를 낳았으나 그 아이는 몸이 약해서 일찍 죽게 된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누노 2세와 간통을 한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 아사그라 2세를 누노2세와 함께 모의하여
암살하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불륜을 저질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행동으로 인하여 서유럽의 역사는 완전히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아사그라 2세는 모든 군대를 끌고 프랑스, 베니스, 신성 로마 제국 등등 수많은 카톨릭 국가와 연합하여
아즈텍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남편을 죽이는 바람에 동맹은 끊어졌고, 연합군은 각개격파 당하여 아즈텍에게 패배한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하여 아즈텍 제국은 훨씬 오랫동안 서유럽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까지 누노 2세와 불륜을 저질렀던 그녀는 결국 친아들인 아사그라 3세에게 암살당해 사망한다.
누노 데 바르셀로나. 통칭 누노 2세.
조안 1세가 안포스 3세를 죽이고 그의 친척들을 학살했지만, 정작 뒤를 이은 안포스 4세에게는 충성을 바쳤고
아라곤의 왕실 가문인 바르셀로나 가문은 계속해서 왕위를 잘 유지했다.
그러나 누노 2세가 알라이스와 간통을 저지른 행동이 발각되는 바람에, 아사그라 3세의 분노를 사게 되어
결국 아라곤 왕위를 아사그라 3세에게 빼앗기게 되고, 차후 프로방스 백작령까지 모조리 빼앗겨 바르셀로나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그의 간통으로 인하여 가문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알라이스의 뒤를 이어 아사그라 3세에게 암살 당하며 끝을 맞이하게 된다.
<아사그라 가문 5세대>
아이네스 데 아사그라. 통칭 아이네스 여왕. 아사그라 가문의 첫 여군주였다.
그녀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당시 그녀의 세력은 형편없이 약했으며
하필 왕국의 섭정은 삼촌이자 1순위 왕위 계승자였던 아톤 공작이었다.
당시 아톤 공작은 발렌시아 공작 미카엘의 계략으로 강제로 선거상속제 파벌에 들어가 매우 위협적이었다.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나 1290년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 잉그리드가 아톤을 섭정에서 몰아내고 스스로 섭정이 되어 아이네스를 지킨다.
안전하게 1297년 성인이 된 그녀는 1년간 여름 축제, 가을 축제, 봄의 연회를 열어 백성들과 봉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1298년 비잔틴 황제의 동생 다가토와 약혼한다.
1298년 6월, 아키텐 여왕 세실리아에게 툴루즈 명분으로 전쟁을 걸고, 1300년에 아톤 공작의 공성 능력으로 전쟁을 승리한다.
1301년 봉신들의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났는데 반란군의 수는 16000명이 넘었으나 여왕의 군대는 겨우 11000명 뿐이었다.
그러나 아톤 공작이 엄청난 활약을 하여 적을 무찌르고, 반란군 수장 오토 백작의 아들 페란드를 생포해서 전쟁을 종결시킨다.
1303년 천재아들 시몬을 출산. 폐렴에 걸리지만 운좋게 완쾌한다.
1303년 7월, 흑사병 발발
1304년 12월 흑사병 멈춤. 그러나 남편과 친구들이 모조리 사망하고 아사그라 가문의 2/3이 사망한다.
1305년 두번째 남편 램버트와 결혼
1306년 아즈텍 독립 전쟁을 벌인다. 당시 병력은 아즈텍 46000 여왕 51000
로지어의 잉글랜드 특공대가 엄청난 활약을 했고, 니스 백작 베르톨도와 템플 나이트 그랜드마스터 오비조의 돌격으로 전쟁에서 승리.
1307년 7월 독립에 성공한다.
1308년 세실리아 여왕의 아키텐 왕위를 빼앗고 아키텐을 아사그라 가문의 대표 왕작위로 선포한다.
더불어, 아키텐의 독립 군주들을 회유하여 모두 그녀의 봉신으로 만든다.
1309년. 아즈텍 봉신들을 개종시킴. 거절하면 전부 영지를 몰수했으며, 아키텐의 독립 아즈텍 군주들을 공격해서 영토를 빼앗음
1312년 잉글랜드+시실리 여왕 로라와 후계자인 시몬을 약혼시킴
1313년 예전 동맹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지팍토날을 선제 공격.
그러나 로지어가 지팍토날을 죽여버려 그의 영토가 아즈텍 황제에게 양도되어 강제로 전쟁 종결
1314년 포이투 공작이자 재상인 산초의 명분으로 뤼지냥 백작령을 공격했으나,
파리에서 클레임 조작 중이던 산초가 사망하는 바람에 전쟁이 강제 종결
1315년 막내딸 알리에노르를 낳는 도중에 질병에 걸림.
1315년 12월 8일 33살의 나이에 사망
그녀는 아사그라 가문의 첫번째 여왕이었지만 매우 힘든 일생을 보냈다.
우선 여왕으로의 즉위 자체도 매우 힘들었다. 모친 잉그리드가 섭정 자리를 빼앗지 않았다면 왕위를 빼앗겼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봉신들은 그녀를 무시해 반란을 일으켜댔으며, 출산 중에 폐렴에 걸려 고생했고 흑사병이 돌아서
친구들과 친척, 남편을 잃는 고통을 겪는다.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다섯째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또다시 병에 걸렸고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여왕 아이네스는 그 어떤 남자들 보다도 훌륭히 여왕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많은 신하들이 그녀를 축복하고 칭송했다. 그녀는 아키텐을 점령하여 아키텐의 여왕이 되었고
영토를 많이 늘렸을 뿐 아니라, 수십년간 아사그라 가문을 지배했던 아즈텍 제국에게 독립하여 자유를 되찾았다.
비록 여성의 몸이었으나 남자 못지않지 않은 위대한 왕이었던 그녀는 차후 아사그라 가문의 성군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멋이 없다는 이유로 아사그라 2세의 경보병 상비군을 해산시키고 중기병으로 이루어진 기사 상비군을 모집했는데
그녀의 단순한 선택으로 인하여 한 남자의 인생이 변하게 된다.
잉그리드 잉링. 아라곤의 왕대비 잉그리드.
그녀는 아사그라 3세와 결혼했는데,
정작 남편이 그녀의 오빠 오소르를 암살하는 바람에 가족을 죽인 남편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은 남편이 암살당하면서 끝났고, 그녀의 유일한 자식인 외동딸 아이네스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고만다.
당시 잉그리드는 그저 왕대비일 뿐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 딸을 지킬 방법이 없었는데
훌륭한 기지를 발휘하여 궁성을 점거. 아톤 공작의 섭정 자리를 빼앗는데 성공하여 딸의 위기를 막아낸다.
그렇게 딸을 교육하여 무사히 성인으로 만든 그녀는, 흑사병으로 인해 잉링 가문의 뒤를 이을 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네스를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딸보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노르웨이의 권력 쟁탈에서 다른 정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노르웨이의 절반 이상의 영토를 먹어 치우는데 성공. 외손자인 시몬 왕에게 많은 재산과 영토를 남기고 사망한다.
토르스테인. 아이네스 여왕의 명재상. 귀족이 아니고 천한 신분이기에 성은 없다.
그는 잉그리드를 따라 노르웨이에서 아라곤으로 건너온 천한 남자에 불과했는데,
뛰어난 외교력을 갖고 있었기에 신분을 따지지 않는 현명한 아이네스 여왕의 선택으로 재상으로 활약하게 된다.
여러가지 작위 클레임을 손쉽게 얻어온 그의 활약은 대단했고,
특히 아키텐 공작위를 얻는데 성공함으로써 아이네스 여왕이 아키텐 왕국을 접수하는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비록 신분 차이와 나이 차이는 컸지만 여왕은 그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하고 대우했으며
그에게 작위를 내려 귀족으로 만들어 주었고, 토르스테인 또한 그녀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친다.
흑사병으로 인하여 사망.
아톤 데 아사그라. 통칭 아톤 공작
아톤 공작은 아사그라 3세의 동생이라 아이네스 여왕의 삼촌이었다. 당시 섭정, 집사였던 그는 왕위 계승권 1위였기에
언제든 여왕을 죽이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딱히 왕위에 욕심은 없었고
계략 때문에 파벌에 강제적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본심이 아니었으며, 잉그리드에게 섭정 자리도 불만없이 양보했다.
그는 오히려 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들을 없애는데 앞장서서 큰 활약을 했고 조카를 지켜주었다.
그는 당시 아사그라 가문의 가장 강한 장군이었으며, 공성전에 특화되어 많은 성을 함락시킨 영웅이기도 했다.
조카를 위해 계속해서 싸우고 무예를 연마하던 그는 여왕의 비원이던 툴루즈를 점령하여 전쟁에 승리한 직후
안타깝게도 흑사병으로 사망한다.
오비조 디 말트라베르시. 통칭 '템플 나이트 그랜드마스터 오비조'
아이네스 여왕이 아즈텍에게 독립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녀의 중기병 기사단을 지휘할 기병 지휘관이 없어서 문제였다.
그러나 당시 그녀를 돕기 위해 참전했던 템플 나이트 그랜드마스터였던 그는 템플 나이트와 왕국 기사단의 기병을 합쳐서
기병 총대장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아즈텍 제국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베르톨도, 로지어와 함께 전투에 참여한 그는 당시 로지어에게 자신의 기병 전술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독립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이슬람 이교도들과의 또다른 전쟁에 참여했다가 명예롭게 전사한다.
랄프 레지나. 통칭 도피네의 장군 랄프.
아이네스 여왕의 영토 확장은 주위 영주들을 자극시켰고 국경을 맞댄 도피네 공작은 여왕과 충돌한다.
당시 도피네 공작의 장군이었던 랄프는 비록 전투는 패하기는 했지만
아이네스 여왕의 3부대의 공격을 혼자서 다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아톤 공작을 끝내 격파한다.
그 이후, 도피네 공작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 해방군을 공격. 해방군 대장 아메디의 목을 날려버리며
화려한 전적을 사방에 알리게 되고, 유럽 최강의 남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아메디 데 페르시. 통칭 프랑스 해방군 대장 아메디.
당시 프랑스 왕국은 아즈텍 제국의 단 한번의 인베이전으로 인하여 멸망한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국민들은 아즈텍을 몰아내길 윈했고, 당시 프랑스 최강의 지휘관이었던 아메디는 해방군의 대장이 된다.
해방군은 파죽지세로 아즈텍의 영토를 공격하여 성을 점령했으며, 날이 갈수록 합류하는 병사들이 늘어나
점점 그 위세와 반란군의 규모는 커져만 갔다.
당시 아즈텍은 잉글랜드를 공격 중이라 너무 바빴기에, 이대로만 간다면 정말로 프랑스를 독립 시킬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아메디는 어처구니 없게도 도피네 공작의 군대와 싸우는 도중 랄프의 손에 의해 목이 날아간다.
뛰어난 장군이었던 아메디의 사망으로 인하여 프랑스 해방군도 세력을 잃고 결국 와해되고 만다.
시몬 데 아사그라. 통칭 시몬 왕
어머니 아이네스 여왕의 사망 직후,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새 아버지 램버트가 섭정+교육을 맡기로 했으나, 그는 자식들을 버리고 먼스터로 떠나버려 어린 시몬과 여동생들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1316년 당시 시실리 왕국 섭정에서 쫓겨난 랄프 레지나를 초빙. 랄프는 왕국의 대장군, 지휘관, 집사, 후견인으로 동시에 임명된다.
몇개월 뒤 시몬 왕의 친척인 공작 아사그라 4세, 아톤 2세, 니스 백작 베르톨가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의 수는 압도적이었기에, 스위스 용병대를 고용해서 각개격파를 노렸고
아톤 2세의 돌격을 랄프의 방어적 전술로 카운터, 로지어의 영웅적인 카운터 돌격전술로 적을 갈아버려서 전쟁에서 승리한다.
1318년. 아사그라 3세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나, 약혼녀 로라 여왕이 약혼을 파기. 시몬에게 구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한참 전쟁 중이던 1319년 레온 왕국 후계자인 엘비라 공주와 약혼하여 이베리안 웨딩을 성사.
1320년 랄프와 로지어의 활약으로 반란군을 모두 격파하여 감옥에 넣는다.
그러나 몇개월 뒤, 서레이 여백작 아벨린이 아즈텍 제국의 에섹스 공작 이퀘후아카트진에게 납치되어 심장이 뽑히고
복수전에 나선 시몬 왕은 전쟁 승리 직전, 1323년 라데니드 왕조가 발렌시아에 성전을 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즈텍과 휴전한다.
다행히 잉글랜드 워릭 공작과 장인어른 럿버트 왕이 방어전에 참여. 칼라트라바 기사단도 참여한다.
전쟁은 랄프와 로지어의 돌격으로 승리 중, 1324년 여동생 엘레나가 시몬을 암살 하려다 들키고 도망치는 일이 발생한다..
1326년 다시 한번 에섹스에 성전 선포 -> 랄프가 에섹스 공작 이퀘후아카트진을 생포하는 대활약을 벌이며 전쟁에서 승리한다.
1329년 플랑드르 발도파 이단들에게 성전 -> 1332년에 승리
1332년 7월 외할머니 잉그리드 사망 -> 노르웨이 영토를 한꺼번에 획득한다.
1332 8월 아이유브 왕조와 전쟁 -> 1335년 무승부로 종결
--------------------------------------------------------------------------------- [1336년 아들 시몬 2세가 태어남]
[1337년 프랑스 지역에 대규모 클레임 전쟁 선포 -> 1340년 전쟁에서 승리. 수도를 파리로 옮기고 프랑스 왕국 부활]
[1342년 아즈텍 잔당을 정리, 아키텐 제국을 생성 -> 황제의 자리에 오름.]
----------------------------------------------------------------------------------- [13??년 신성 로마 제국과 大 종교 전쟁 발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시몬은 자신과 여동생들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된다.
천재였던 그는 영리하게 랄프를 초빙하여 자신의 아버지이자 보호자로 삼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신의 한수가 된다.
랄프와 로지어와 함께 수 많은 전쟁에 참여한 그는 언제나 승리 하지는 못했지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서유럽의 패왕으로 군림하였고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를마뉴 대제에 못지 않는 위대한 황제가 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훗날 많은 역사서와 소설, 사극 등에 등장하게 된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패왕이었지만, 사실은 천재답게 책을 좋아해서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로서의 면모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랄프 레지나. 통칭 아키텐의 대장군, 섭정, 집사, 지휘관, 왕의 교육자로 전해진다.
랄프는 원래 아사그라 가문의 적이었지만, 어린 소년의 열정 끝에 결국 항복하여 시몬 왕의 보호자가 된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전혀 약해지지 않고 끝없이 단련하며 전쟁에서 공을 세운 끝에, 세계 최강의 남자로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다.
그는 중보병과 창병을 지휘하는데 최고의 전문가였으며 언제나 가장 앞서서 적들과 싸웠다.
그는 시몬 왕의 단단한 벽이었고, 전쟁터에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다.
시몬이나 로지어가 활약한 것은 그가 벽이 되어 적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방어 외에도 공격에도 능하여 많은 네임드 장군들을 죽이거나 생포 했으며
시몬 왕과는 아버지이자 친구, 스승이자, 전쟁터에서의 선배로 대우 받았다고 전해진다.
로지어 데 콤본. 통칭 아키텐의 창이자 왕국 기사단장.
그 누구도 로지어라는 평범한 성직자가 이렇게까지 강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물론 아이네스 여왕 시절에도 활약했지만, 본격적으로 그가 전설적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시몬 왕의 치세부터였다.
아이네스 여왕이 남긴 기사단의 총 지휘관이 된 그는 오직 기병만을 다루는데 평생을 바쳤다.
중보병, 궁병, 경보병, 창병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며 70%의 중기병과 30%의 경기병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오직 그의 군대였다.
랄프가 중보병과 창병을, 시몬 왕이 경보병과 궁병으로 적을 묶는 사이 측면에서 기마병을 돌격시켜 적들을 도륙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는 시몬 왕이 위급한 순간이 되면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엄청난 돌격으로 전황을 뒤집어 엎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돌격하는 그의 용감한 모습에, 기사단 또한 훌륭히 역할을 수행하여 아라곤의 창으로 불리게 된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왕을 위해 싸웠고 랄프 대장군과 함께 시몬 왕의 양팔이 되어 평생토록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게 된다.
에스테파니아 데 아사그라. 통칭 에스테파니아 공주.
시몬의 세 여동생 중에서 둘째였던 에스테파니아는 유일하게 여장군으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예전 귀슬라 대장군같이 말이다.
시몬은 단지 그녀가 여동생이라 그런 것이 아닌, 능력만으로 그녀를 랄프 대신 왕국의 대장군으로 임명했고
에스테파니아는 그녀의 오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이유브 와의 전쟁 도중, 전술적인 실수로 인하여 랄프와 베르톨도가 퇴각하여 전쟁이 완전히 끝장난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에스테파니아의 부대는 적들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처절한 백병전을 벌였고
죽을때까지 싸운 그녀가 시간을 번 덕분에, 시몬 왕과 로지어의 부대가 합류할 수 있었고
그녀의 활약이 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녀가 이슬람으로부터 카톨릭을 구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시몬 왕의 대장군이 되어 오빠를 따라 전쟁터를 누볐다고 전해진다.
베르톨도 디 모나코. 통칭 니스 백작 베르톨도.
랄프나 로지어 등의 이름에 가려져서 그렇지, 베르톨도 또한 매우 유능한 장군이었다.
아이네스 여왕이 가장 신임했던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로지어와 오비조와 함께 아즈텍 독립 전쟁에서 대활약을 했다.
그는 기회를 포착 하는데에 매우 유능했기에, 적의 약점과 측면을 후벼파는 전술을 즐겨썼다.
그러나 그는 니스와 인접한 영지인 프로방스를 너무나 원했고, 나아가서 프로방스 공작이 되길 바랬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톨도는 프로방스의 공작이자 백작이던 시몬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신임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반역자가 되었지만 운이 좋게 감옥에 갇히지는 않은 그는 파벌에 가입하는 등, 계속해서 왕에게 반항하다가
시몬 왕이 외할머니의 노르웨이 공작령을 베르톨도에게 넘겨주자, 정신을 차리고 왕에게 충성을 하게 된다.
그는 중간 중간 전술적 패배를 하기도 했지만 매우 유능한 장군이었기에 시몬 왕의 군대의 한 축을 이루어 계속해서 활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
.
.
.
.
.
.
.
.
.
.
.
.
.
.
.
.
< 아사그라 가문 영토의 변화 >
아사그라 가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 동안, 아사그라 가문의 크킹2 연대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도로시-MK2 올림.
아사그라 친구들, 나도 그동안 너희 덕분에 정말로 즐거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