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9/09/02 04:38:37 |
Name |
Judas Pain |
Subject |
'거장' 최연성 |
올해 4월에 쓰여진 글이었으나 개인 사정이 있어서 커뮤니티에 올리는게 늦었습니다.
최연성 선수/코치는 존재감이 크면서 관계도 복잡하고 호오도 강하게 갈리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게이머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구시대(2003~2005)를 지배했던 최연성에 대한 헌사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이 과거에서 흘러와 현재에 이른 만큼 최연성의 영향력을 빼고 스타크래프트를 이해하긴 어렵다. 이 글은 전성기 최연성의 전략/전술을 논해 테란 최연성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현시대의 게임 양상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할 목적으로 쓰였다.
(1) 전략과 전술
(2) 최연성의 전략- 자원론
(3) 최연성의 전술- 주도적인 선방
(4) 테란의 거장
1. [전략과 전술]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가 완벽하게 전쟁을 재현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고 전쟁의 굵직한 원리는 스타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 중에서 현대 미군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테란이 군사이론에 가장 어울려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삼종족 모두 전쟁에 대한 세 가지의 SF적 은유라 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보편 화두는 전략과 전술이다. 스타에서 정상을 차지한 선수들은 모두 스타의 전략/전술에 한 획을 그었다. 그 중에서도 전성기(2003~2005) 최연성은 전략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게이머였다. 최연성은 테란을 선택했고 테란은 최연성 이전과 최연성 이후로 나뉘게 된다.
스타의 게임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른 만큼 최연성의 영향력을 빼놓고 테란 그리고 테란과 싸운 두 종족을 논하거나 이해하긴 어렵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략의 정의에 대해 논해야 순서가 맞을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이 "전쟁의 목적을 위해 전투를 운용하는 지도"라고 했다. 이 정의는 전쟁 개념으론 명확하지만 스타에선 명확하지 않다.
스타의 게임 안에서의 전략이란 무엇일까? 구름을 그려서 달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전략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전략적 우세와 전략적 열세로 그 윤곽을 볼 수 있겠다.
전략적 우세라 하면 결국 시기(天)와 지형(地)과 병력(人)이 상대에 비해 우세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일반론으로 더 축약하자면 '결정적 지점에서의 수적 우위'다.
*참고*
-결정적-이란 말은 양측의 승패가 갈리는 섬멸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의 주력회전을 뜻한다
-지점-이란 말은 보통 주력회전이 벌어지는 맵의 중앙 공터를 뜻한다.
-숫적 우위-란 말은 물량의 상대적 격차를 뜻한다.
스타의 맵은 보통 중앙 공터나 주 교전장소를 가지고 있고 양측의 조건이 무르익으면 언젠간 전면교전을 회피할 수 없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 시뮬레이션답게 조건이 제한되어 있다.
란체스터의 법칙에 의하면 동질병력의 전력차는 병력수의 제곱이다. 즉, √(m²-n²)이다.
A 병력 10 과 B의 병력 5가 싸우면 10-5=5 로 A가 반수 남기고 이기는 전력차가 아니라
10X10=100 5X5=25 로 √75, A가 약 8~9의 병력을 남기고 대승할 정도의 전력차다.
전쟁에서 숫적 우위란 그 무엇보다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승리의 조건이다. 물론, 병력 조건과 환경 조건과 전술 조건에 의해서 란체스터식 계산은 절대적이지 않다. 스타에선 테크와 업그레이드, 유닛 상성, 컨트롤, 종족간 특성,특수 기술, 마법이 전투 변수를 늘리는 요소다. 그러나 물량 우위만큼 간단명료하며 객관적으로 승산을 높이는 잣대가 없다는덴 변함이 없다.
이게 가장 단순한 전략적 우세다. 전략적 열세는 그 반대다.
만들어진 승산을 확인할 뿐이란 점에서 전략은 시간의 엄격한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뛰어난 전략가는 최종적인 승리의 형태를 설정하고 이에 이르는 단계를 역추적해 나간다.
전술은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전투에서 전투력 운용에 관한 지도'다
전투는 예로부터 불에 비유되어 왔다. 그 변화가 심하고 일각을 다툰다. 환경 조건이 복잡하고 병력 자유도가 커질수록 그렇게 된다. 여기에 전술이 개입할 조건이 있다.
다르게 보자면 전략은 객관적 승산을 불러오는 행위고 전술은 주관적 승기를 쟁취하는 행위다.
뛰어난 전략가에게 있어 전술은 필요악의 존재다. 전투를 회피할 수는 없지만 전투력을 운용하는 전술은 항상 변수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최종 승리의 형태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전술의 역할을 분명히 제한하는데 전략가의 미덕이 있다.
손자는 "용병을 잘하는 자는 잘 싸운다고 칭송받지 않는다"고 했다. 요컨대,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이다. 싸우기 전에 이긴다는 건, 지피지기의 준비단계와 모공(謨功)을 실행하는 전개단계에서 유리함을 딴다는 이야기다. 전략은 의도와 그 움직임이 미세하게 드러나는 쌍방의 초기단계에서 승기를 가져오는 행위다.
2. [최연성의 전략- 자원론]
스타에서 가장 단순명료한 전략적 목표를 해결한 선수가 바로 전성기 최연성이다.
패턴이 파악 안된 신빌드와 빌드 전개시의 심리전으로 사소한 이득을 얻어내 자원 격차를 내고 자원 격차로 더 자원 격차를 내고 전술 극복이 어려운 물량 격차로 더 물량 격차를 내 굳히는 게 전성기 최연성식 테란의 기본 발상이다.
패턴이 드러나지 않은 빌드 창조력과 빌드의 목적에 대한 이해, 빌드 전개에서의 융통성이 결국 승패를 가른다.
스타에서 빌드는 전쟁수행 조건을 갖추는 행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는 자원을 가지고 일꾼,병력,테크,업글,확장 등의 요소를 기회비용에 따라 분배한다는 점에서 경제/경영 활동과 매우 유사하다. 선택과 배제가 있다는건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빌드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스타는 게임이라 정치적인 고려가 작다. 그러므로 스타 한판의 목적은 대개 1승뿐이다. 결국, 승리를 어떻게 쟁취하느냐는 문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빌드는 승리를 '어떻게' 쟁취하냐에 대한 설계도라 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바꾸자면 전략이란 "빌드의 목적을 위해 대국적 게임컨트롤을 운용하는 가르침"이다.
전술은 '전투(게임컨트롤 중에 발생하는)에서 국지적 유닛컨트롤 운용에 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명제는 테란에 유효하다. 세밀하고 최적화된 조립식 빌딩에 적합한 테란에게 있어 빌드란 초->중->후반까지 구상되는 특정 전략의 한계를 초기 조립부터 강하게 설정시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빌드 목적에 따른 최적화를 테란에게 공리로서 정착시킨 게이머가 바로 최연성이다.
한국 스타계에서 최연성 이전의 테란은 전투에서의 국지적 유닛컨트롤과 이를 운용하는 공격전술에 경도된 종족이었다. 정보력이 떨어지고 기동력이 약하고 본진에서 동선이 먼 자원확장이 불편하며 고유 특징인 원거리공격 병과만의 구성이 조합과 컨트롤과 지형에 따라 극심함 성능차를 내기에 고난이도 컨트롤과 복잡한 공격전술 의존을 통한 한방 순회공연이나 타이밍 러쉬가 필연이었다. 또한, 자잘하게 다룰 게 많은 종족 특성은 빠른 손을 요구했다.
그러므로 빠른 손과 컨트롤과 공격전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테란은 거북이 마냥 특유의 본진 방어력에 기대 웅크릴 수밖에 없었고 원시테란은 주도권을 내주는 게임진행 덕에 저그와 프로토스에게 전략적인 관점에서 패배를 약속받았다.
약세에 놓여있던 원시테란을 벗어날 흐름을 이끈 건 김정민과 임요환이었다. 김정민은 주력회전의 중규모 교전 컨트롤 및 수동적 전술운용을, 임요환은 게릴라전의 소규모 교전 컨트롤 및 능동적 전술운용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 둘이 각각 백만 년 조이기와 드랍쉽 타격으로 대표되는 이유다. 전술 이상을 볼 때, 주어지는 자원을 낭비 없이 소모하는 면에선 김정민이 뛰어났지만 자원에 관한 전략적 시야에선 임요환의 압승이었다. 임요환은 가난한 체제로 상대에게 타격을 줘 양측을 가난한 개싸움과 국지전으로 몰고가 테란 특유의 수비력으로 승기를 굳히는 전략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 다음은 천재 이윤열의 시대였다. 소수병력 게릴라로 상대를 흔들며 앞마당을 더욱 빠르게 점유해 꽉 조여진 게임컨트롤 분배로 상대적인 물량격차를 만든 뒤 압도적인 교전컨으로 찍어 누르며 기계소년의 전설을 만들었다. 이윤열의 목표는 김정민+임요환이었고 그 자신의 재능 탓에 단순히 이 둘의 결합을 넘어선 승리 공식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윤열이 공식 외의 게임을 푸는 직관력과 만들어진 공식을 실전에서 녹여내는 감각은 말 그대로 천재의 것이었고 이윤열의 게임을 지탱하는 육체적 반사신경과 손 빠르기는 당대에 유례가 없는 경지였다. 흉내는 가능하지만 모방은 어려웠다.
최연성은 보다 단순했다. 그는 손이 아주 느렸고 대신 계산은 무척 빨랐다. 그리고 최연성은 이윤열이 보여준 소수병력의 가치->보다 빠른 앞마당 확보에서 나온 동시 자원의 폭발력-> 병력양이 만들어낸 힘에 주목했다. 직관에서 구조로의 전환이었다.
최연성은 기동력 문제에 대해 결정적 지점에서의 수적 우위를 강제해 상대적으로 맵을 좁혀 해결했고 원거리공격 병력은 공격력의 낭비가 적어 모이면 모일수록 즉각적으로 화력이 강해진다는 점으로 전술 난이도를 해결했다. 그리고 두 문제제기를 충족시킨 건 '자원'이었다.
최연성은 TvsZ에선 빌드 전개 후 본진 자원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앞마당 확장을 시도하는 패턴을 2배럭에서 바로 앞마당을 먹고 빌드를 전개하는 패턴으로 바꿨고, TvsP에선 본진-앞마당에 가까운 제2멀티(삼룡이)까지의 빌드 진행을 최적화시켰다.
더해서 빌드 구성에 따른 다수 커맨드의 다수 컴셋을 통해 디텍팅과 정보력을 강화시켰고 감각과 직관 의존 부담을 줄여주었다.
게임 중반, 중간테크 단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내는 건 테란이다. 이 말은 중반 물량차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종족이 테란이란 뜻이다. 그래서 최연성은 자원론을 통한 병력의 다다익선을 지향했다.
그리고 '자원'을 얻는 방식은 빌드 전개에서의 심리전과 그에 연동되는 명확히 절제된 수비 전술에 의존했다.
최연성은 느린 손에도 불구하고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SCV생산과 병력 생산 그리고 건물 건설 최적화 리듬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예약 생산도 하지 않았다. 생산 자체에만 필요한 손속/명령횟수는 분당 100회면 충분하다.
그러나 당시에 피아니스트를 연상케 하는 손이 없는 선수가 완벽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었던 건 최연성이 전략적으로 명확한 목적의식에 따른 배제와 생산리듬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최연성은 자원론에 의한 전략 행위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술 행위 외에 사소한 건 사소하게 취급했다.
이 당시엔 각종 상황과 변수하에서 행동 우선순위가 최적화되지 않았고 주어진 손속에서 명령을 어떻게 배분하는 게 최적이란가?란 점에서 선수마다 생각이 크게 달랐다.
여기까지가 '자원론'으로서 전성기 최연성이 스타와 테란에 미친 전략적 구조물이다.
따라하기 쉬우면서 명쾌하고 강력한 최연성의 빌드 방법론은 빠르게 신인 테란들에게 전파되어갔다. 전성기 후에 자신의 패턴이 읽혀지고 또 널리 퍼지면서는 단순히 자원론을 넘어서 정밀한 기계같은 테란의 빌드공학과 빌드조립 그 자체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이 뒤에 클래식이 되는 무수한 악보를 남기기 시작한다.
"나는 단지 내가 이기는 패턴을 만든 뒤 기세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식으로 게임을 했다.
상대도 100%의 실력으로 경기에 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력보다는 심리전을 많이 생각했다."
-최연성-
한편, 최연성은 전성기에 우둔하고 힘이 센 선수로 잘못 비쳤으나 이런 이미지를 방치했고 때론 인터뷰를 통해 대놓고 조장하기도 했다. 오해와 공포를 위해서였다. 최연성은 정치를 아는 선수였다. 특히 자신의 이미지를 역 이용해 빌드 수싸움에서 뒤통수를 치는데 능했다.
전략적 우세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함께 실전에선 완벽한 기량으로 서로 부딪힐 수만은 없다는걸 알았기에 연습상대가 프로여야 한다거나 정상급 선수여야 한다는 관념에 구애받지 않았다. 최연성은 결승을 준비할 때도 아마추어와 연습을 하곤 했다.
우수한 전략가로서 전성기 최연성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특징이 광속 GG다. 지는 게임과 이기는 게임이 갈리는 경계에 대한 평가가 항상 냉정했고 전략적으로 유리함 흐름을 잡지 못하면 교전 한번 없어도 미련없이 게임을 포기했다. 이길 때는 상대를 무력하게 지게 하고 질 때는 무력하게 상대를 이기게 한 GG 타이밍은 최연성에게 심리적인 이점과 함께 카리스마를 더하곤 했다.
3. [최연성의 전술-'주도적 선방']
전성기 최연성의 일반적인 전략 마인드 뼈대는 이렇다.
[우선 적당히 자원위주의 빌드로 시작하면 웬만하면 유리해지고 이후 한 번만 막아주면 많이 유리해지고 그러면서 멀티를 늘리면 상대는 조급해진다. 다급한 나머지 병력을 쏟아붓거나 뒤늦게 멀티를 따라가는데, 쏟아부으면 막아주고 멀티를 따라가면 나는 멀티를 또 늘린다. 자원차를 통해 상대를 압도하는 물량 차로 밀어붙이면 양 극복을 위해 집중력이 교전에만 쏠리는데 교전 중에 더 뽑아서 더 많이 보낸다.]
전성기 최연성은 당시로선 허점이 많은 빌드(TvsZ에서 투배럭 더블커맨드 등)를 쓴다고 보인데다 빌드 전개에서 심리전을 잘 썼기 때문에 상대방이 말려들어서 돌파하려다 막히고 관광성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최연성은 준비단계에서부터 7할 넘게 이기고 들어가는걸 목표로 했고 압도적 우세가 달성된 경우엔 교전시 어택땅도 서슴지 않았다. 본진에서 마린메딕 부대를 마우스로 스윽 드래그해서 미니맵으로 전투 지점에서 보내고 미니맵에 적색경보가 올라오면 미니맵에 스캔을 찍고 다시 병력을 드래그해 공격루트에 투입해서 연속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덕분에 최연성 하면 떠오르는 게 발컨(발로하는 컨트롤)이다. 최연성은 손이 느려서(eapm:168) 꼼꼼한 병력관리보단 대국적인 게임컨트를 상에서 명령분배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스타에서 전술과 유닛컨트롤은 차원이 약간 다른 영역이다. 컨트롤은 전술을 받치는 하위 개념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전술로 지도되는 전투구도에서 각 유닛들의 훈련 되고 절제된 움직임의 수준을 말한다. 컨트롤의 비교우위가 크게 드러날 땐 비슷한 양과 질의 병력이 붙는 전투다. 그래서 PvsP'ZvsZ'TvsT와 같은 동종족전에서 크게 중요해진다. 기본기의 영역에 속하며 반복 연습으로 쌓인다.
전성기 최연성의 공세 전환 타이밍 상 대부대 동선과 진형 등에서의 공격전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걸 제외하고 공격전술에 무게를 두진 않았고 교전시 섬세한 유닛컨트롤을 보일 때는 초반의 소수병력 게릴라거나 특정 빌드 전개상 반드시 집중된 컨트롤이 필요할 때였다. 최연성vs박성준in인투더다크니스(SPRIS-MSL 04-06-18)에서 보이듯이 화려한 컨트롤 스킬 자체가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 당시 최연성이 돋보였던 고급 전술은 방어와 대치전선에 있다. 이 말은 최연성이 압도적인 전략적 우세를 만드는데 방어전술을 접착제로 썼다는 뜻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정교한 유닛컨트롤 역시 방어전에서 보였다.
전성기 최연성의 이런 전략전술이 신선하고 강력했던 건 스타는 주도권을 쥐는 게 중요하고 03년까진 주도권=공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방어에 투자하는 방어 위주의 진행은 하수의 방법론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런 경향은 테란>프로토스>저그 순으로 나타났다. 역설적이지만 종족 자체의 수성(및 공성) 능력은 이 순서대로 우월했다. 더해서 이 순서는 기동력이 느린 순서이기도 했다. 기동이 까다로운 종족일수록 공격 전술의 발전에 무게를 두었는데, 주도권을 뺏긴 채 방어에 전념하면 맵과 자원을 장악당하기 때문이다.
*저그는 양종족에게 기동력·체제변환·병력 회전력·확장력에서 속도 우위를 바탕으로 공격 주도권을 잡고 맵을 장악했다.
*토스는 테란에겐 체제 이점으로 거시적인 우위를 잡아 교전에서 누르는 것에, 저그에겐 압박이나 조합 완성에 무게를 뒀다.
*테란은 프로토스와 저그 어느 쪽을 상대로든 정교한 타이밍을 통한 섬세한 공격 전술에 주력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승기는 공격 전술로 얻어지고, 일반적으로 승리는 뛰어난 교전 기술로 결정된다고 받아들여졌다. 테란에선 임요환 정도가 수비로 승리를 굳혔고, 이윤열조차도 방어는 두 번째 선택이었다.
최연성이 공격보다 방어를 중심로 삼은 건 크게 네 가지 이유다.
(1)테란은 체제상 수비에 능하다.
-일꾼(SCV)의 체력·벙커·값싼 터렛·수리·건물 띄우기·건물 건설 편리성·유닛 사거리·시즈탱크 등이 수비에 이점을 제공한다.
(2)방어는 공격보다 소수 병력으로 가능하다.
-지형선점의 이점과 러쉬거리 상의 병력충원 때문이다.
(3)선방은 최선의 공격이다.
-돌파급 공격은 자원소모를 통한 가난함을 전제로 하고 적극적인 방어는 자원 확보를 목적 삼을 수 있다. 적은 유닛으로 상대의 무리한 공격을 막으면 시간상 피해를 받는 건 공자 측이다.
(4)동일 자원에서 화력이 가장 뛰어난 건 테란이다.
-자원 두 개를 소유한 테란은 자원 3개를 소유한 프로토스를 상대할 수 있고 레어단계 저그를 상대론 전술역량에 따라서 두 배의 멀티도 극복할 수 있는 게 테란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테란이 타종족보다 많은 자원을 소유하면 객관적으로 유리하단 뜻이다.
단, 2단계 중간 테크에서 해당된다. 테란은 구조상 중간테크가 연동하는 중반에 가장 강력하며 최종 테크에선 힘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중반이 종종 중심이 되는 시간대인 만큼 테란은 좁은 세력권을 중심으로 방어를 통한 2차 효과를 보기 좋은 특성이 있다.
4가지 관점을 종합할 때 핵심은 주도적 선방의 개념이다.
뛰어난 전략가가 전투에서 생기는 변수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정적이지만 공격보다 강력한 형태인 방어의 전술에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테란을 선택한 최연성에게 있어 상대의 빌드 진행만 눈치챌 수 있다면 초반 빌딩 과정에서의 방어는 공격보다 변수가 적으면서 아주 강력한 형태였다.
본디 공자가 방자에 비해 유리한 건 공격의 기습성과 방어의 분산 때문이다. 반대로 공격 타이밍 및 지점과 패턴을 읽으면 방자는 집중할 수 있고 공자는 역으로 기습받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방어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해 멀티· 테크 ·생산건물로 돌릴 수 있다.
초기 빌드 포석 단계인 본진-앞마당 구도에선 장벽처럼 투입되는 SCV블러킹이 좋은 예인데 여기엔 테란의 특성활용·최소 방어병력 투자·공격패턴 예측이 모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최연성은 셔틀리버-드라군 양동작전에 대해서 셔틀리버는 터렛 둘셋으로 동선만 제한하고 scv를 부대 지정해 앞마당 화면을 주시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드라군이 밀어닥치면 SCV블러킹으로 드라군을 저지시켜 소수 방어병력의 화력에 노출했다.
맵핵이 아닌 이상 상대 빌드는 조각 정보를 바탕으로 한 예측의 영역이지만 최연성은 지독하게 눈치와 계산이 빨랐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막히면 최연성이 자원의 우위에 서는 게 당연했고 최연성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SCV와 병력생산의 리듬을 쉬는 법이 없었다.
'읽고 그 뒤 막는다'
주병력이 본진-앞마당에서 나와 대치전선을 그을 때도 주도적 선방의 연장에 선 개념을 최연성은 보여주었다. 그가 대치전선을 열심히 그을 때는 주로 빌드 전개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큰 이익을 못 봤거나 TvsT를 할 때였다.
테란이 화력을 가장 강력하게 발휘할 때는 단일 방향에서 공격하는 적을 방어할 때다. 즉, 공성과 수성전에 능한 테란에겐 정면 방어가 가장 강력한 공격의 형태가 된다. '조이기'라고 불리는 테란의 유명한 전술은 테란의 방어선을 그대로 앞으로 당긴 형태를 갖는다. 조이기가 보통 상대 입구를 조이는 일종의 타이밍러쉬거나 자신이 입구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형태였음에 비해서 최연성은 맵상에 '대치전선'을 그어 자리잡기를 통한 거점장악의 형태로 병력을 운용했다.
일반적인 교전이나 공격전술과 달리 자리잡기는 특별히 복잡하고 어려운 컨트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좋은 자리들을 좋은 진형으로 선점하는 일이다. '맵컨트롤' 혹은 '알박기'는 손이 느리고 머리가 빠른 최연성에겐 딱 맞았다.
최연성의 자리잡기는 횡렬 시즈탱크를 바탕으로 상대가 병력기동 자유에 압박을 느끼는 바로 앞에 그어졌다. 무시하긴 껄끄럽고 돌파하긴 어려운 라인을 바탕으로 최연성은 다시 자원을 탐했고 이는 전략적인 병력수 우위로 환산되었다. 자리잡기가 그 시점에서 뚫리지 않을 임계점안으로 병력수와 거리를 재는 게 무서운 점이었다. 그건 심리를 이르는 속된 말로 '간 보기'의 절정이었다.
한차례 여기저기의 대치전선에서 실랑이가 끝날 무렵엔 최연성은 집중된 물량으로 화끈하게 밀어버렸다. 특히 TvsT에서 상대의 방어라인을 뚫어 버리는 대부대 탱크의 진격이 장관이었다.
이런 패턴에 적이 익숙해질 무렵에 상대에게 과잉 투영된 방어력 이미지를 이용해 대치전선 병력을 줄이면서 조금 더 자원에 투자했고 그마저도 읽힐 즈음 최연성의 대치전선 그 자체의 허실에 적이 주의력이 쏠릴 때 몰래멀티로 승기를 가져갔다.
그러나 최연성의 대치 전술이 쌍방의 공성능력이 상쇄되는 TvsT전에서 크게 유행한 덕분에 계산력이 부족한 테란끼리 붙을시 길고 지루한 경기양상을 가져왔고 이병민·변형태·한동욱으로 대표되는 기동전의 달인들이 테란의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찰 때까지 '테테전=수면제' 란 악명을 만들기도 했다.
4. [테란의 거장]
최연성 이후, 테란 그리고 테란과 싸우는 저그와 프로토스에서 최연성의 영향을 빼놓곤 어떤 이론도 성립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이라 부를만한 전환점이었다. 이건 그가 大 전략가라는 반증이다.
그 영향들은 어떤 면에선 긍정적이었고 어떤 면에선 부정적이었다. 최연성이 이후 테란은 발전했지만 동시에 정체했고, 최연성의 게임은 재밌었으나 최연성을 모방하는 테란들의 게임은 재미가 없었다. 전략의 포인트가 자원싸움에 맞춰져 신산귀모(神算鬼謀)류의 뒤통수를 크게 때리는 전략의 가치는 작아졌고 자원 전략과 연동하는 방어전술의 강력함이 입증되면서 경기의 역동성은 매우 줄어들었다.
이는 테란 뿐만이 아니라 테란을 상대하는 타종족도 마찬가지였다. 최연성 덕분에 TvsP에선 앞마당을 먹는 빌드 시간대가 너무나 중요해 졌고 자원 우위에서 바탕하는 위력을 따라가기 위해 게임의 외형은 쌍방 모두 양적으로 부풀려져만 갔다. TvsZ에선 앞마당을 기본으로 게임을 풀어갔던 저그에게 악몽이었다. 레어 단계에 들어오는 첫 러쉬부터 저그는 점점 가난해지며 두드려 맞던가 아니면 올인을 강요받았다.
06년까지 테란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최연성의 SK텔레콤 T1은 각종 최적화 빌드를 개발해 냈고, 최연성 전략/전술론을 이어받은 T1류 테란의 걸작인 전상욱은 테플전-'FakeDouble'과 테저전-'8배럭 후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컴'을 쌍검으로 해서 '빌드로 이득보고 경기를 길게 늘인 뒤 수비로 변수를 줄여나가 굳히기' 패턴으로 깔끔하게 개량해 05~06년에 고승률의 악명을 떨쳤지만 정작 결승진출과는 인연이 없었다.
빌드빨을 통해 앞마당 다툼에서 앞서나간 테란을 이길 방법을 거칠게 줄이면 세 가지다. 테크· 돌파· 확장. 그러나 시간자원 싸움에서 밀렸다면 셋 모두 리스크를 동반한 선택이 된다. 만약 상대가 하이테크로 비약하려 들면 총공세로 전환한다. 돌파하려 들면 종라인을 늘려 수비한다. 확장을 택하려 들면 확장한다. 전상욱은 빌드 굳히기에 대한 세밀한 계산이 뛰어났고 미세한 빌드이익을 밑천으로 주판을 두들기며 변수를 지워나가는 운영의 전문가였다. 끝에 가서 남는 건 반발짝 앞서 맵을 장악한 테란의 병력이었다.
수 싸움 계산력도 좋아서 scv정찰을 늦추거나 아예 생략해 자원에서 1점이라도 더 따려 들었고 종종 쓰는 날빌 적중률이 끔찍하게 높았다. 또한, 빌드이득을 통해 어디까지가 센터에서 진을 칠 수 있는 안정권인가에 대한 계산 역시 정교했다. 테란의 화력 특성은 공세 타이밍을 길게 늘여주었고 늘어지기로 작정한 수비라인은 뚫리지 않았다. 전상욱은 살아있는 산술 계산기였고 전상욱의 시대에 직관과 감각을 보정해 테란의 계산을 돕는 스캔은 사기였다.
그러나 최강은 될 수 없었다
테란의 종족풀이 폭발해 다수 지배종족이 되었지만 상상력과 가능성의 한계를 긋고 빌드에 천착시킨 덕분에 더 이상 임·이·최 같은 S급 테란은 등장하지 않았다.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고만고만한 양산형 테란들이 마이너리그에서 16강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지지부진하던 상황은 07년 하반기를 지나 속도의 이영호 /높이의 박성균이 각각 스타리그와 MSL에서 우승하며 테란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최연성의 그늘은 짙다. 최연성 개인을 말하자면 전성기를 약간 넘긴 06년까지 그가 쌓아올린 승률과 커리어와 포스는 경이적이었다. 데뷔한 03년도 80.85 % 의 승률과 iTV 신인왕전 2003 우승을 시작으로 양대 메이져 리그론 MSL 3회 우승· OSL ·2회 우승, 세계대회인 WCG 1회 우승, 팀단위 리그 7회 우승, 각종 수상경력과 군소리그 입상, 더해서 팀리그 무적포스까지. 대략 4년간 스타의 리그는 최연성의 발아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성기 중 결정적인 위협은 04년 하반기에 최연성의 방어전술을 박살낸 투신 박성준뿐이었고 박성준도 결국 극복을 해냈다. 전성기 이후에 최연성은 박성준을 "내 저그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선수"라고 평했다.
팬 만큼이나 안티도 많았고 사건과 사고도 많았다. 거만한 인터뷰는 늘 화제를 몰고 왔다. 그러나 그런 최연성 역시 한계가 왔다. 본좌 마재윤에 의해 06년 사이언배 MSL에서 0:5 패배를 당하며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선수들은 최연성의 전략/전술에 익숙해졌고 더 이상 전략적 우위를 크게 점하는 건 어려워졌다. 비슷한 양과 질의 병력으로 승패가 갈리다 보니 정교하지 않은 교전 컨트롤이 부각되었고 느린 손에서 나오는 꼼꼼하지 못한 병력관리와 멀티테스킹 약점이 드러났다.
TvsT에선 당대에 요구하는 기본기에서 밀리기 시작했다.TvsP에선 FD조차 극복한 프로토스가 빌드싸움에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박정석을 시작으로 물량 운영을 따라잡고 전투력에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특히 마재윤이 집대성한 TvsZ 변화가 치명적이었다. (1)3해처리 운영 정립은 빌드 싸움에서 테란이 일방적으로 앞서지 못하게 했고 (2)오버로드-뮤탈 뭉치기 스킬 발견은 저그의 전술파워를 비약시켰으며 (3)하이브 테크의 봉인이 풀리면서 중반테크에서 양으로의 압도가 어려워졌다.
최연성 개인에겐 무엇보다 뭉친 뮤탈이 고역이었다. 그건 전술의 영역이었고 그보다는 컨트롤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자신이 구상한 빌드판짜기가 뮤탈 컨트롤 하나에 망가지는 모습은 처량할 정도였다.
전성기 끝 무렵부터 최연성은 자원론보단 테란의 복잡한 빌드조립 공학 창조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자신이 일정한 효과는 봤지만 거장의 '악보'로서 후대 테란들이 재발굴해서 쓴 유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3/3업 버티고, 마인업 더블 등등이 그런 빌드였다.
최연성은 06년 상반기를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