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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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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24 08:04
은하영웅전설 보면서 저도 처음엔 라인하르트와 같은 재능 있는 인간의 독재정에 매력을 느꼈지만 그 불안성과 불확실성을 또한 알고 말았죠. 아무리 민주주의가 약점이 많고 허점이 많지만 현재까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도라기보다 인간이죠. 인간의 다양성과 욕심은 그 누구도, 그 어떤 법령으로도 제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06/01/24 08:15
독재, 혹은 왕정의 가장 큰 문제는 필수적인 세습-이겠지요.
개인적 자아와 감정을 억제하고 사회적 자아와 감정을 가진 인간이 있다하더라도....그 혼자서 모든것을 혼자 할수 없으며- 결국 누군가는 그 권력을 세습하게 되는데...그 자질에 대한 검증은 지도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마련이죠. 인간은 배부른돼지-가 아니겠습니까. 데굴-
06/01/24 08:30
아키라님이 말씀하신 형태는 아마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가장 비슷할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횡포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체제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불완전함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06/01/24 08:45
YS 나 딴나라당이 아이엠 에프 터트려서 나라 다 말아 먹고 수십년간 쌓아 놓은 공적 자금 다 날리고 한국민들 다 빛쟁이 만들어 놓았는데 만약 이런 사람들이 왕이나 귀족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지금도 집권 하면서 설치고 있겠죠 (아직도 설치고 다니지만) 한국 사람들 속 터져서 다 죽었을 겁니다.
06/01/24 08:46
저도 어쩔 때는 민주주의보다는 파쇼가 더 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겠죠.
아키라님이 말씀하신 감정을 없애버린 결과는... 글쎄요, 그게 생명이 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그러한 감정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믿었기에 - 불교사상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 그러한 감정이 있음으로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부처님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06/01/24 08:48
왕정의 체제유지는 결국은 계급사상에 기반한다고 봅니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데서 왕정이 존속할 힘이 나오죠.
역설적이지만 아키라님이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도출할 수 있는 것도 그 민주주의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 과거였다면 자신은 "만적" 아니면 "왕"이었으니, 왕당파고 뭐고 생각할 것도 없었겠죠.
06/01/24 08:55
어떤 정책이 옳던 그러던간에, 사람이 어떤 '완벽'한 사람을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멋진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하고, 완벽한 스승을 기대하고, 현명한 CEO를 기대하는 것과 같겠죠. '왕'을 기대하는 마음 역시 말입니다. 어려운 얘기 다 떠나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이런 생각 해 볼 것 같네요.
저도 은영전이 생각나네요. 은영전 민주주의도 민주주의가 아니긴 했지만요. 은영전에서는 정치보다는 '사람은 사람을 따른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엄청 해댔었죠. 민주주의던, 전제정치던 말입니다.(혹자는, 이를 통해 일본 민주주의 수준 낮다고 하기도 했습니다만.)
06/01/24 09:18
글쓴분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글이 너무나 심한 단순화와 자기 중심적 논리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군요.
민주주의를 싫어하시는 이유가, 그닥 효율적이지 않은 일반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피상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 집단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상상을 하고, 그런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가지는 단점이 싫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시작부 부터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별로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일단 현대 민주주의는 엘리트 민주주의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사회를 움직여보려는 의지와 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자들이 정치 집단을 구성한 것이고, 일반 대중은 그들이 일궈내는 결과물을 기준으로 다음 집권 세력을 결정하죠.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왕이던 대통령이던, 사회의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어차피 세부 정책은 '집단'이 입안하고 실천합니다. 최고 권력자는 큰 방향을 정할 뿐이죠. 왕정은 절대권력이라는 점에서만 민주주의와 다릅니다. 사실 실제로 존재했던 왕정은 그냥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왕 마음대로'는 절대 아니고 민주주의의 속성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글쓴 분은 그 부분은 다시 무시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글쓴 분의 그런 지나친 단순화를 인정하더라도, 결국 그런 왕정은, 위에 적은 민주주의에서 1. 정치 전문가를 최소화하고 한명이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명령권을 행사한다는 점, 2. 그 왕이라는 정치권력에 대해서 일반 대중이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 이렇게 두가지만 다를 뿐입니다. 결국, 나을 것은 하나도 없고, 안좋을 점만 두가지 있는 셈이죠. 글쓴분의 왕정에 대한 호의적 감정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홉스의 군주론이죠. 왕정이 민주정보다 우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일견 논리적으로 정리해놓은 책입니다만, 고대 민주정하의 그리스, 입헌군주제에 가까웠던 초기 로마 제정에 비해 중세 유럽이 얼마나 퇴보했는지 이 하나만 보더라도 그런 '말장난'식 논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자명합니다. 왕정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지만, 인간의 판단력이 신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판단력이 딸려서이지 감정이 추가되어서는 아닙니다. 1+1 = 2 라는 것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수학적 직관력이 결정하는 것이지, 감정을 배제한다고 해서 나쁜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죠. 정치적 직관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생에 대해 크게 크게 감정도 가지고, 그 감정을 잘 제어할 수 있는 더 큰 의지를 갖는 것이죠. 애초에 감정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겠죠.
06/01/24 09:22
개인의 사상의 자유야 전적으로 존중하는 바이지만...
아키라님이 바라는 것은 '특정한, 동시에 매우 비일반적인' 인물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정인 듯하네요. 다시말 하면 그건 하나의 체제가 아닌 한 체제의 어느 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키라님의 말씀처럼 '감정을 배제한' 합리적인 인간이 단지 '가끔' 나타날 뿐이라고 할 때 그러한 왕정이 과연 체제로서 적합할지 의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 나타나서 그의 생전에 (30년? 40년?) 적절한 왕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다음왕이, 또 다음왕이 계속 그렇지 못하면 반세기도 버텨내기 힘든 체제가 되겠죠.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는 충분히 효율적입니다. '효율성'의 가장 중요한 척도라 할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적절하게 결합한 시장경제의 역할 수행으로 지나치다고 할만큼 '효율성 우선주의'가 이루어지고 있죠. 오히려 지금처럼 사회 각 분야게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시기에는 전제정치 - 전제정치라는 표현이 맘에 안드신다면 monarchy라고 해두죠. 그 말이 그 말이지만 - 가 더 비효율적이라는 데에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만...
06/01/24 10:07
위에 분들이 워낙 잘 정리해서 말하셨네요. 잡소리 몇마디 덧붙이자면...
감정을 없애서 부처가 된다...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네요. 실제 불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혹시 사사로운 감정없는 냉정한 판단력을 부처에 비교하셨다면 비유가 별로 맞지 않네요. 컴퓨터에 비유하는 것이 낫겠어요. 님이 말씀하신 절대통찰력을 가진 왕은 언젠가 실현될수도 있습니다. 팔십년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같은게 개발되면 말이에요. 그런 감정없는 완벽한 논리로 만들어진 기계가 나온다면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왕으로 만들어되 되겠죠. 하지만 그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까요? 과연 행복한 결과를 나을까요? 게다가 비록 완벽한 왕이 지배하는 세계가 온다해도 그 세계 어디선가는 분명 버려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릴겁니다. 결국 지배자가 누구냐는 보다는 인간 그 자체가 문제니까요.
06/01/24 10:44
조금 단순화된 분석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소수집단에서는 왕정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죠. 대형교회가 그렇고 군대가 그렇고 S그룹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이 그렇죠. 그 어느 곳도 긍정적인 면을 보기가 힘들죠.
06/01/24 10:52
역사적으로 한 개인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지지기반이 필요하고 그 지지기반의 '이해-라고 쓰고 부패라고 읽습니다.' 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기본이요. 만약 정책방향이 다르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설득 시키지 못한다면 바로 뒤집어 지는게 정권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유능한 왕은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요? 전통적인 방법이 있죠. 영웅쟁패. 그리고 국민은 전란에 휩싸이고 죽어가는 겁니다. 권력의 향방을 결졍하는 방법을 전쟁에서 투표로 바꾸는데 인류가 소모한 시간은 수천년입니다.
06/01/24 10:54
은하영웅전설이 아닌 실제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읽어보시면
왕정이란 체제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건지 느끼실 겁니다.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치체제중에서는 가장 덜 악한 체제입니다.
06/01/24 10:56
OrBef 님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셨고..
현대 사회에서 왕정제가 어떤 형태를 가질지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지만, 사실 현대 민주주의와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조선 시대라고 상정한다면, 다만 최고 권력자의 임기(제한된 민주주의와 죽을 때 까지 지속되는 왕정) 정도에 차이가 있고, 현대의 대통령이나 총리에 비해 더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는 점을 빼면 그 이상의 차이를 단순히 왕-대통령 or 총리 사이에서 찾기란 어렵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핵심은 왕이 아닌 사람들의 지위에 달려있죠. 최고 권력자를 바꾸거나 그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나 정당성이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왕정에 비해 대단히 높습니다. 또한 신분적인 차이도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대단히 약화되었죠. 단순히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로 환원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왕정이 단순히 한 인간에 의해 지배된 것도 아닙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왕과 신하들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의사소통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고, 조선시대의 경우 근대적인 관료제 형태가 상당히 세련된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다 하면 돼'라는 식으로 '언어적 상상'을 해 볼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구체적인 상상'은 잘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왕정과 민주주의의 차이는 권력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자가 아닌 사람들의 지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이미 그런 사태를 오랫동안 경험해 왔죠. 저는 그 시대를 그다지 오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만, 조금 지겹지 않은가요? 그리고 감정의 배제는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정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논리를 따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왕이 A를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죽였다고 할 때,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왕이 '감정에 넘치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정해진 절차(법이든, 관습이든)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회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거겠죠.(물론, 사회의 규칙 자체가 왕 마음대로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다면 왕이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라는 말이 뜻을 잃게 됩니다) 중요한 건, 이성이든, 판단력이든, 감정이든, 욕구이든, 모두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논리와 합의에 근거한 전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왕정제든, 민주주의든 일정한 도구적인 체계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물론 여기서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에 의거한 권력 수립 체제 정도로 한정해서 썼습니다) 무엇이 감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이성적인 것이며, 무엇이 정당한 판단이고, 무엇이 부당한 판단인지는 사회 속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선이고, 악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고자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바라는 결과'를 추구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그 욕구가 누가 보기에는 저급해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06/01/24 11:36
효율 vs 비효율?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만큼 비효율적인 생명체도 없겠죠.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행위하는 이상. 감정이 배제된 자가 왕이 되고 모든 사람이 효율성을 위하여 감정이 거세되어야만 살아남는 세상이 온다면 전 자살을 택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인간다운 행위니까요. <은하영웅전설>을 보시고 민주주의와 제정에 대한 비교를 해보신 분들이 많은 듯 하네요. 전 그 책을 중학교때 읽고 깊은 감동을 느꼈고, 대학교에 입학하고서 다시 읽고 그 책에 감동을 느꼈었던 제 자신에 대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시간 죽이기 이상의 의미가 없는 책이죠.
06/01/24 11:43
은영전을 시간 죽이기 이상의 의미가 없는 책이라고 단정하시면 안될꺼 같은데요 그 중학교 시절이 지난지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감동을 느낀 것에 대해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죠.
저를 포함해서 그 책을 아직까지 좋아하시는 분이 있을텐데.
06/01/24 11:46
민주주의가 수많은 고통 끝에 나온 결론이고, 그걸 지지합니다.
민주주의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기에, 지금 현재의 민주주의에서 왕정 냄새가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아닌 척 하는 왕정.. 이란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합니다. (심각한 소리는 아니고, 그냥 불만이란 뜻입니다...) 글 내용 역시, 나올 수 밖에 없는 의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06/01/24 12:04
정말이십니까? 한명도 동지를 발견 못할 줄 알았는데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들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입장 자체의 특성상 그리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록 여러 답글 쓰신 분들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말이 안된다는 걸 알지만, 결국 심정적으로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객관과 주관의 충돌이죠..그래도 그 와중에서도 호응해준 한 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 드립니다. (저도 오늘 다 끝냈습니다. 사실 어제였지만요) 감정을 없애면 절대적 이성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명제는 제가 계속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저랑 생각이 다른 분이 많은 것 같지만 이거 하나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 모든 걸 이미 알고 있고 알 수 있고 알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방해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 혹은 감정이고 그것을 없애는 댓가를 치루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아는 과학적 방법이란 인간이 선택한 '감정으로부터 영향받지 않는다고 확실히 검증된 요소'들의 경험적 총합이라고 생각합니다..
06/01/24 12:04
호텔아프리카님// 일단 표현이 너무 단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제가 부끄러움을 느낀 건 처음 은영전을 읽을 당시의 제가 유치하고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고 저 혼자 주위 친구들은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높은 수준의 지식을 습득한 것처럼 의기양양했었죠. 시간 죽이기라는 말을 나쁜 뜻으로만 쓴 건 아닙니다. 여가시간을 흥미로운 책과 함께 보내기에는 '판타지 소설'로서의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책이 부족한건 아니죠.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특히 정치제도,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심도 있게 제기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겠죠.
06/01/24 12:10
글쓴분의 의도는,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결론이 이르기까지의 감정적 논쟁의 소모를 치룰필용 없이, 사회를 위한 판단을 잘하는 현명한 왕이 있다면 한번에 결론 내려줄테니 좋을것이다라는 것 같은데요.
당연히 실현불가능한 얘기죠. 그냥 그런걸 꿈꾼다라는 얘기일듯...
06/01/24 12:14
Wittgenstein_TheMage님//
애초부터 은영전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 ^ 은영전의 의미는, 중학교 때 그런 두 정치 체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큽니다. 읽고 아무 생각도 안 드는 다른 소설보다는 훨씬 낫죠...(다만, 이 책 안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절대로 반대입니다만...) 은영전 자체의 수준은 제쳐두고서라도, 이 책 때문에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면, 말 그대로 시간 죽이기에 불과한 책이지만요...) 본능적으로.. 민주주의와 왕당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은영전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은영전 내용을 부정하게 된 지금에 와서도 말입니다. (어려서 읽은 책의 힘은 역시...)
06/01/24 12:20
아키라 님//
감정을 없애면 이성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건 의심해보아도 좋을 부분 같습니다. 애초에 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발견된지 천년도 되지 않은 새 것(?)이고, 실제로 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증명도 없이 정초주의적 전제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인과 같은 초인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죠. 더 나아가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06/01/24 12:24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사실 그 절대적 이성자체보다는 그것이 주는 힘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 자체로서 제가 정말 감정적이라는 걸 말해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신의 실체와 연결해서 말입니다.
06/01/24 12:55
"감정을 없애면 절대적 이성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대체 (그냥 이성도 아닌)'절대적 이성'이 무엇인지 해명할 수 있어야겠죠.(그렇지 않다면, 예컨대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킬시오트리오니를 없애면 고르디주상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성과 감성의 대립 문제는 조금은 해묵은 문제인 것 같군요.. 둘 사이의 차이는 다만 '어떤 논리를 따르느냐'에 있을 뿐입니다.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는 종류의 차이, 형식의 차이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입니다.
06/01/24 13:12
개념에 대한 완벽한 합의는 사실 불가능 하다고 봅니다. 현실에서는 통용될 뿐이지만 이상적 정의의 과정에서는 좌절하기 마련이지요..그저 서로간의 개념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제 나름의 그것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의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정도로 정의하고 싶군요..절대적 이성을 찾는 이유는..글쎄요..신의 실체가 너무나도 궁금한 인간의 호기심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06/01/24 13:26
개념에 대한 논의가 개념에 대한 '완벽한 합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합의는 개념이 갖는 다의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지요. 개념의 해명이란 '그런 식의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죠. '사랑이 뭐야?'라고 물으면 '완벽한 정의'를 줄 사람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말이 잘 쓰이고, 의미를 얻고 있죠. 하지만 그런 쓰임을 벗어나 있는 어떤 개념들은 '그 정도 수준의' 해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적 정의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사실 저는 기계적인 사회를 더 선호하긴 합니다만, 그것이 더 낫다거나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 '좋다'거나 '낫다'면, 그 근거 또한 우리 사회 속에서 찾아야겠죠.(나의 근거가 아니라, 우리의 근거) 다만, 이런 논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06/01/24 13:36
글쎄요..그 부분에서 저랑 어긋나는 것 같네요. 개념의 해명이란 결국 언어적 측면을 동반해야 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언어적 해명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고, 개념에 대한 논의는 결국 그것을 접하는 모든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정의가 되어야지 완벽한 논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결국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고 말입니다. 어떠한 개념이 현실에서 실제로 쓰인다고 해서 개념이 완벽히 해명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에 대한 직관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 직관의 측면때문에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에대한 완벽한 언어적 해명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직관이 서로 소통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설명하든 누군가는 완벽한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직감이 맞아떨어지길 바랄뿐이죠..
06/01/24 13:46
아침에 글을 썼다가 저 역시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 같아서 삭제를 했었는데요. 여기에 글을 쓰신 분들을 보니 저역시 한마디 써보고자 합니다.
(사람들마다 주관이 다름을 전제로 하고, 그 전제가 제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심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결코 다른분들의 의견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또한 말씀드립니다.) 눈팅족님의 말씀처럼 아키라님의 글은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많은 부분이 일맥상통합니다. 플라톤 역시 고대 그리스의 부패한 민주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가장 완벽한 체계를 구상하다고 결론에 도달한 것이 '철인정치'였습니다. 절대진리에 도달한 사람이 최고의 위치에서 조직을 통솔하는 '철인정치'야 말로 플라톤이 꿈꾼 유토피아였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후세에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면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은 세계사 시간에 우리가 열심히 배웠던 르네상스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초석을 마련하였고, 그의 사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인본주의로 인해 현재의 눈부신 자연과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인본주의에 기이한 자연과학의 발전과 사상적 기반은 '資本主義' 등장에 초석이 됩니다. '人本主義'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 이 철학사상으로 중세의 신중심의 세계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가 시작되었고, 인간이 중심이자 절대진리가 되므로 자연을 극복하고, 이용하게 되는 철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부정적인 측면도 야기하는데, 우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와 같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물론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의 등장에 사상적 기반이 되어버립니다. 그럼, 왜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야기한 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긍정적인 측면이었던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한계에서 촉발됩니다. 다시 말하면 불완전한 존재이자 진리일 수 없는 인간이 세상이 중심이 되었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계속 변하는 존재입니다. (갑자기 이영도씨 작품인 '드래곤 라자'가 생각이 나는군요. 거기서도 인간은 계속 변하는 존재로 그래서 변하지 않는 존재인 드래곤보다 종국적으로 우월하게 되는..그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므로, 처음 전제부터 잘못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아키라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왜 현재의 대다수 국가들이 많은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적용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자본주의와 가장 궁합이 많는 정치시스템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은 사유재산의 인정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은 구성원의 독립된 자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효율성이 왕정정치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키라님의 왕정정치는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되면 성립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과거의 경우를 보면 왕정정치는 일종의 변형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결정권의 범위의 문제이자, 권한이행의 자의성 문제이지 과거의 왕정정치도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황제나 우리나의 왕들도 결코 혼자 정책을 결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하들의 힘이 강했던 적이 훨씬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요. 절대군주이자 '짐이 곧 국가'라고 했던 루이 14세 역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음...그리고 개인적 자아를 버리고 사회적 자아를 넣을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하셨는데...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회적 자아만이 있는 사람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조금은 의문입니다. 여기까지 제 말을 정리하고요. 다시한번 개인의 생각은 어떤 것이든 존중함을 알려드립니다. 갑자기 열혈강호에서 (4권인가?) 한비광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세상에 선과 악은 없다. 다만, 다들 생각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06/01/24 13:54
굉장히 황당한 주장으로 물의를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완벽한 지혜에 도달함이 왕으로서의 가장 큰 조건이겠지만 누구도 그걸 평가할 수 없고 또한 도달할지도 미지수이기때문에 결국 제 심장은 원하지만 머리는 아직 그것에 회의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무라까미님의 지적은 저 자신도 깊히 동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줄에 대한 생각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진정한 선과 악은 존재한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있다라고 현재는 보고 있는데 과연 저 자신 속에서도 어떠한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너무 재미있습니다. 궁금합니다.
06/01/24 14:14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가진 왕과 그런 왕이 복잡한 개인적 요구와 감정과 입장을 가진 신하들을 통제하는것,그를 뒷받침할 관료체제와 법, 효율적이며 소박한 사회체제,구성원들의 행복추구에 대한 실험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이 된 일입니다
전국시대의 법가의 이상과 그를 집대성한 한비자, 그리고 어느정도 그 이론에 가까운 통치와 천하통일을 이루었던 진시황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흔적을 과거에서도 발견할수 있듯이 현재에서도 여전히 리더라는 '군주'의 존재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어느쪽도 사실상 배제할수는 없는것이고, 좋은 리더에 대한 하나의 수준을 제시해 줄수 있다는 면에서 한비자는 읽을 만한 책입니다 마찬가지로 법가와 절대왕정의 진나라에서 유가와 민주주의성향에 가까운 한나라로의 이전이 역사적인 필연에 가까웠던것을 보면 전 이 두가지가 일종의 흐름이자 하나의 체계라고 보입니다 -혼란은 패왕을 부르고 패왕은 질서를 잡으며 태평성대는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이 다시 혼란을 부른다는 애기입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고도의 민주주와 복잡한 자본경제하에서 생활하는 우리 주위에서도 작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일이지요
06/01/24 14:15
1. 대호왕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대호왕입니다. 잊혀진 아라짓 제국을 살아있게 할..
왕정이 좋은것은, 구심점이 있다는 것과, "다수가 성숙한 것" 보다 "소수 혹은 일인이 성숙한 것" 을 바라는게 확률적으로 좋다는겁니다. 뭐.. 민주주의의 결정적 한계는 미디어에서 시작됩니다만.... 미디아어가 시작이요 문제요 끝이죠. 30년쯤 지나면 독재주의가 빛을 발하리라 생각됩니다... -_ㅠ;
06/01/24 14:31
글쓴이께서는 감정의 제거와 절대적 판단력을 말씀하셨기에 단어의 의미나 정의에 관한 논란에 휩쌓였지만
동양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그다지 특이한 발상은 아닙니다 감정이라기 보다는 사념과 번뇌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입니다 한비자의 주도(主道)편에 보면 사념없이 고요한 태도로 사물을 대하면 현상은 그본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좀 단순하게 말하면 나서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야 현상의 본질을 볼수 있으며 신하들이나 주변에서 애기하는 화려한 언변보다는 실제의 현상과 원칙에만 집중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법가 역시 이상적인 왕은 자신의 뜻과 의도, 지략과 재능을 버려야만 온전히 다스릴수 있으며 정사를 관장하지는 않으나 정사의 득실은 알아야 하며 직접 계획과 책략을 내지는 않지만 책략의 결과가 화복의 어느쪽으로 나타날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많은 말은 필요치 않으나 신하의 언행에 대응은 잘해야 하고 발언을 제한한 필요는 없으나 취함에는 뛰어나야한다는 말은 글쓴분의 뜻을 체계적으로 드러낸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가가 본시, 사람들의 엄청나게 복잡한 요구와 욕망, 민주주의에서 그렇듯이 구성원들의 막강한 권력과 알력과 그들의 복잡한 의사소통에서 골머리를 앓고나서 그 대처법이 나온 것을 보면 리더에 대한 그들의 관점이 결코 허무한게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06/01/24 14:35
쥬다스 페인님 덕분에 뭔가 하나 또 배운 느낌입니다..지금 생각하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고민에도 도움이 될 듯 싶군요..고맙습니다. 나중에 제 생각이 정리되면 위 고민에 대해서도 모두와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06/01/24 15:04
언어적 해명이 불가능한 말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개념 해명이 '모두에게', '완벽히' 납득 가능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정의는 완벽하지만, '쓸모없죠'. 그런 식의 완벽한 정의가 없다고 해서 정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앞서 썼던 바, '이상적 정의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탈 없이 개념(혹은 언어)을 배우고 사용합니다. 그들의 직관이 아니라 학습과 실천에 의지하죠. 그리고 (특정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말을 '완벽히' 해명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런 완벽함을 추구하지도 않고, 완벽하지 않다고해서 문제가 생기지도 않죠.(문제는 그 불완전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생겨납니다) 우리가 오해할 수 밖에 없다면, 직감이 맞아 떨어지는 지를 확인할 길 또한 없을 것입니다. 오해만이 있을 뿐이라면, '오해'라는 말 또한 의미를 잃게 되겠죠. 신기한 것은, 제가 하고 있는 말을 어떤 분들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동시에 그 사람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자신은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죠) 사실 말에 대한 정의 같은 건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별로 과학적인 인간이 아니라서.. 형이상학적인 말 사용에 대한 반감이 있을 수는 있겠죠..
06/01/24 15:16
제가 또 오해라는 걸 한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제 글에 반감을 느끼셨다는 거지 궁금하군요..절대적 지성에 대한 개념적 해명을 요구하셔서 전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간단하게나마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실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적 해명이 이미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얘기지만 개념에 대한 이상적 동의는 모든 언어적 개체가 납득가능할 때 가능 한 것이고 단지 그것을 실제로 현실에서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이 부분은 정말 동의하고 싶지 않은데 이상적 정의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정의가 가능한지요. 그건 그저 실제로 사용할 뿐인 것 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06/01/24 15:17
여기서는 말 어렵게 하는 것이 권위의 상징이자, 지적수준을 가늠케하는
일종의 척도라도 된답니까? 글은 읽는 사람이 보기에 쉽고 이해하기 쉬 워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도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들만 하시는지..
06/01/24 15:22
음... 어쨌든,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우리는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거지요, 중요한건 소통되느냐 안되느냐 해서 아리스텔레스씨의 '소피스트적 논박'은 논쟁을 하는 사람에게(사실상 말로서 논증하고 대화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언어적인 오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해서 그 모순을 해결하고 논리를 정리해 진실에 다다른다는 역설을 주곤 합니다 저도 사람들의 소통은 신기한 일이라고 보인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을 잘하고 좋은 토론을 이끌어낼수 있는 재능은 귀한것임에 틀림없습니다
06/01/24 15:41
쥬다스 페인// 여기서 법가의 논리를 보니 반갑군요.
노자의 무위자연이 당나라 시절 얼마나 철저한 정치논리로 활용되었는지 알고보면 놀랄일이죠. 노자도 자신의 사상을 이렇게 이용할 거라 생각이나 했을지. 당나라때 쓰인 노자의 해석이 본문의 글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군주의 권위는 군주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법위에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자연, 즉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명정의 상태에서 정치하는 것이다. 이것도 참 재미있었는데요....
06/01/24 15:44
제가 언어라는 것 자체에 회의감을 가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떤 식으로 그 개념에 대해 해명해야하는 건지 파악이 안되는 군요. 제가 나름의 개념적 정의를 내렸다 한들 누군가는 반드시 오해하는 것이 언어의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절대적 지성이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정의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건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됩니다.
언어로 이루어진 것의 정의는 언어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짧게 주장합니다. 혹 현실과 언어와의 연결로서 정의를 내리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실체와 언어와의 일대일의 등치만으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이성은 현실에서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대한 정의가 가능하겠습니까? 비트겐슈타인씨는 그럴 때 우리는 침묵하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없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수정해서 요약하자면 우선 절대적 이성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데 정의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고(이런 것을 바라니깐 제가 단지 바램이라고 표현한것 입니다...) 또한 모든 이가 동의할 수 없는 정의가 어찌 정의라는 것입니다..
06/01/24 16:05
Sulla-Felix//
음 법가의 구절에서 노자의 사상을 읽어내다니 예리하시군요^^;; 확실히 법가가 바탕으로 삼은 노자의 원리는 우민사상으로 이용될 여지가 큽니다 백성과 신하를 지나치게 똑똑하게 하지 말것이며 자신의 일에 만족하게 하라는 귀절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동양고전강의에서 애기하듯이 노자의 근본은 관계와 풀뿌리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사상이란건 사실 도구와 같아서 인간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이용가능하다는 애기이기도 하고 또 변용되어 쓰일만큼 노자의 사상이 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당나라가 좀 많이 변질 시키긴 했지만 법가에서 원래의 군주는 난세의 혼란을 종식시키기위해 냉정한 판단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시스템의 중추라고 생각한답니다 한비자에서 군주는 그러한 역활을 해야한다고 요구할 뿐이지 그런 존재라는 귀절은 없으니까요 이건 사상이 이데올로기화 되었다고 볼수도 있겠군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의 사상과,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의 사조는 확실히 흥미가 땅기는 주제들입니다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상의 틀은 엄청나게 복잡다면한 사회를 바탕으로 이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입니다
06/01/24 16:32
왕이 부활해도 재밌을테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대도 좋을것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성적이고자 하는 감성적존재이기 때문에 낭만의 시대가 온다면 즐겁고 기계의 시대가 온다면 편해지겠죠. 흐음,왕이라...가끔씩 제 망상속에서 현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왕정 등을 생각해보곤 합니다.재밌죠. 예전엔 절대적 자유가 좋았으나 이제 졸업을 앞둔 현재 자유에 대해 점점 두려워지는군요.자유가 싫은게 아니라 자유의 이름에 매겨진 책임이라는 굴레가 두려운것이지만... 이렇듯 사람의 생각이란 언제나 바뀔테고 민주주의가 몰락하고 왕정이 부활한데도 전혀 이상하진 않을겁니다. 뭐가 어떻게 되든 이상하지 않은게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니까요.
06/01/24 17:14
사실 아키라님의 고민의 현재 유럽 철학자들이 하는 최고의 고민거리입니다. 금번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황폐화되면서 많은 철학자들이 사상의 부재와 나치의 등장에 대해 심각하게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고,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은 1960년대 프랑스 학생운동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1780년 소위 계몽시대 이후 전유럽을 지배하였던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을 일으켰다면, 1960년대 프랑스 대학생 운동은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반성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허무주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창궐하게 됩니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를 외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꿈도 희망도 없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신봉을 얻게 되지만, 절대 진리가 없다는 명제가 성립하게 되면 포스트 모더니즘 또한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자가당착에 빠지면서 급속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것이 동양의 禪과 도교, 하이데거의 철학입니다. 아키라님이 절대진리를 찾는 중이라면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06/01/24 17:29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어서 그 사람을 만나 보러 가야겠네요.
상대를 넘어선 절대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은 믿음이지만 확신을 넘어선 진리가 될때가지 계속 고민하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닙니다. 신의 존재를 일단 한 켠에 제쳐놓고 무에서 신에게 접근해보고 싶습니다. 결국 신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직관이-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군요.-있습니다.
06/01/24 17:53
절대적 정의란 불가능한데, 정의란 절대적 정의이어야 하므로, 정의는 불가능하다.. '절대적 정의'란, 여러 종류의 정의 중의 한 종류일 것입니다. 예컨대, '절대적 믿음'은 없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고까지 할 수는 없겠죠. '아니, 어떻게 너는 절대적 믿음이 없는데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어?'라고 물을 수 있을지.. 정의라는 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한 정의란 그저 그 말이 갖고 있는 의미와 맥락을 분명히 해 주면 어떨까, 이 정도인데 말입니다.(정의에 대해 꼭, '길이는 2cm이고, 78개의 세포로 구성된 카키루류과의 동물' 이런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요정'이나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요.(나름대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현존하는지의 여부와 말의 의미는 분리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바, "언어로 이루어진 것의 정의는 언어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물론, 그 근저에 언어를 넘어선 합의가 존재하겠지만)
덧붙이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말할 수 없는 어떤 것(형이상학적인 것)을 자꾸 말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겠습니다만(말해질 수 없는 것과 실존은 무관하죠.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가능성이니), 그 침묵은 '닥치고 있는'게 아니라 '보여줌'의 뜻이죠. 그리고 이후에 그 보여줌을 '실천' 개념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일게고. 이곳 저곳에서 많이 쓰이는 '절대적'이라는 말이 불필요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쓰이는 게 아닐까 하는 부분이 의문이었는데, "불필요하게" 말이 길어졌군요.
06/01/24 19:59
논의가 이미 다른 방향으로 많이 흘러갔고 이건 곁다리에 해당하겠습니다만...불교의 깨달음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죠.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의식(자성유)이 착각임을 깨닫고, 또한 일체의 법이 없음(제법무아)을 깨닫는 겁니다. 감정은 육감(정신활동)보다도 근본적인 것으로 대략 칠감(말나식)의 움직임에 해당하는 것으로 압니다. 모든 것은 마음(심; 심왕 = 아말라식에 근본을 둔 것)이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오륙칠팔 앗싸 좋구나!...가 아니고; 그런 오륙칠팔(...)모든 식(識)의 불꽃을 꺼트려가면 진정한 수냐(空)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감정은 상당히 뒷단계죠. 제가 아는 바로는 오히려 '이성'이 먼저 무로 돌아가야 되거든요. 감정은 더욱 근본적인 부분에 해당하므로 그 다음이죠. 불교인은 아니고 이것저것 읽다가 기억한 내용인데, 혹시 착오가 있으면 누가 지적해주시길~ -ㅅ-
06/01/24 20:24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근위병들 교대식 하거나, 일본 천황이 고대부터 내려오던 신성한 의식을 거행할 때는 확실히 보기에 뽀대가 나죠~!! 권력도 돈도 없는 그저 광대들에 불과하지만, 영국이나 일본 수상이 죽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받들어 모시는 척 하죠. 아울러 낭만을 찾는 소녀들에게는 꿈과 동심의 세계를 선사하죠. 다이애나비 죽을 때 대한민국에도 같이 울던 무개념(?)들 많았죠. 제가 왕이라면 그런 어릿광대 노릇이나 할 바에야 차라리 때려치우고 맙니다만~
지금 이 세상에도 공화국의 탈을 쓴 왕정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북쪽의 어느 대왕님께서는, 봉건시대 전제군주보다 더 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권력을 세습하고, 의자왕이 삼천궁녀 데리고 놀듯이 기쁨조 수 백명과 열락의 세월을 보내고 계시죠. 주민들 300만명 굶겨죽이고 본인은 곰발바닥 요리 쳐먹는 공화국의 탈을 쓴 왕정이 있는가 하면~ 일본이나 영국처럼 입헌군주국의 탈을 뒤집어 쓴, 사실상의 공화국들도 존재하죠. 아니면 아프리카 옴스와티 같은 진짜 왕이라거나, 바티칸의 교황 성하께서도 사실상의 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왕정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단어에 관련된 문제일 뿐이고, 실제로는 권력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게 봤을 때 박정희나 이광요같은 독재자들이 계속 나와준다면 민주주의 따위는 필요없을 것이고,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 같은 독재자들이 나올 바에야 민주주의가 훨씬 낳겠죠. 권력을 세습하다 보면 반드시 김정일, 정동영같은 작자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라는 점에서, 역시 민주주의가 더 낫다고 할까요.
06/01/24 22:17
후후...이상한 사람들만 다 모였군요...안스콤베님도 보이고...^^
나쁜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마시고... 주제를 떠난 논의가 더 크군요...제 보기엔 주제보다도 리플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불교 얘기도 대학면접 문제인 법가사상도...흥미로운 은영전 얘기도 많군요.. 다만 아쉬운 점은 표현이 간결하고 명확함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문장들이 어렵고 중복되는 단어가 많으며, 불필요한 단어와 의미의 첨가가 곳곳에서 보이는 듯 합니다만, 혹시나 무지한 저의 착각일지도.. 역시 매번 논쟁의 한 켠을 장식하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문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정의란 기본적인 정도나 범주의 측면에서만 의사소통자 간에 공유되면 된다고 보입니다. 사실 이 곳에서의 논의도 필자로서는 다들 한문으로 바꾸어 쓰라고 하고 싶은데(한글로 동음이의가 많아서) 대충 문맥상 해석하고 추론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로 언어가 등장함에 언어가 존재를 완전히 내포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더불어 소통자 간에도 존재를 완전히 인식할 필요는 없죠. 다만, 서로간의 언어 구사를 하는 '의도'나 '의미'를 공유하면 족하다고 봅니다. 몇 분들은 절대적 이성을 언급하시는데, '절대적 이성'의 개념, 도출 방법, 존재 여부 등등이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겁니다. 만약 절대적 이성이 말씀처럼 감성을 제외하면 도달하는 것이라 하면, 어찌해 절대적 이성의 존재 여부를 직관으로 판단하십니까?(글쓴분은 분명히 인간은 모든 걸 다 안다고 말씀하셔서. 그리고 그걸 막는 게 감성이라고 하셨죠)그럼 '절대적 이성'의 존재 여부에 관한 고민에 있어서도 감성이 개입되어 있다는 겁니까? 어떤 감성을 개입시키셨는지...만약에 감성을 개입시키지 않았는데도(분명 개입이 안 되었을 겁니다.) 절대적 이성의 존재 여부를 모르시겠다면, 자신의 전제를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감성을 개입하지 않아도 모르는 것은 반드시 존재하며, 절대적 이성의 존재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처음의 명제 “인간은 모든 것을 안다” 라는 게 이미 틀린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논리의 아귀가 잘 안 맞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구요. [인간이라는 전체 집합과 감성과 이성이라는 부분집합이 있다고 보고, 감성과 이성의 합집합이 전체집합이라고 해석하시는가 봅니다만.(감성을 제외하면 절대적 이성으로 귀결한다는...식의 논리에서;;'절대적'보다는 '순수한'이 아닐까요)] 참고로 만약에 감성이라는 것을 정말 피상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논의를 전개한다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06/01/24 23:09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 최선의 정치 체제입니다..왕정이라..
아키라 님은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기 싫으신가 보군요.. 왕정은 대략 비추합니다.
06/01/24 23:18
논의가 철학문제로 흘러가니까 갑자기 말이 상당히 어려워 지는군요. 열심히 읽어서 간신히 이해는 했지만 저런 글을 쓰라고 한다면 자신이 없어지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를 지나치게 배격한 나머지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좀 신격화된 측면도 있죠. 자본주의&민주주의 역시 장단점이 있는 정치체제&경제체제인것을 감안한다면 단점에 대한 논의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이겠죠.
06/01/24 23:55
지금 술 먹고 와서 정신이 없군요. 여러 지적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어렵군요. 그저 군생활의 악영향이라고 그렇게 변명하면 비겁한 것이겠지요?^^
나다님의 지적을 수용해서 제 의견을 조금 더 수정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절대적 이성은 '순수한 직관'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외부에 모든 진실이 이미 존재하고(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자아-자아라고 임시적으로 말하겠습니다.-을 연결해 주는 것이 직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직관은 선험적인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신다면 아직 고민의 깊이가 짧아서 쉽게 얘기하기 힘들지만 이 생각이 제 모든 사고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쉽게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제 고민이 깊이를 더하면 그때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듯..) 이 직관에 있어서는 아마도 나다님이 생각하는 '직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선 절대적 이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고, 감성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지만 이해력이 좋으신 분이라고 그저 믿고 투박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지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디서부터 온지는 쉽게 결론내릴 수 없지만- 그 직관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저는 절대적 이성이라고 봅니다. 절대적 직관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하겠지요. 그 절대적 이성이든 직관이든 거기에 방해를 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는 직관의 시야를 흐리고 그 자신의 방향성을 외부의 진리에 강요하려하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진리의 성질을 바꿀 수도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존재-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절대적 이성은 바로 절대적 직관이라고 정정해서 설명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성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의지로 결론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자유의지라고 그렇게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성은 직관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6/01/25 00:51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나는 왕정이 좋다' 라고 말할수 있지만,(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왕정 하에서는 '나는 민주주의가 좋다.'라는 말을 못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06/01/25 08:26
아키라님/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키라님의 절대적 이성과 직관에 대한 생각은 논리적 검증은 애초에 어렵군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ㅅ-; 철학보다는 교리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소리가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라면 함부로 입댔다간 곤란해지니까요. 사람이 꼭 특정 종교나 신을 믿어야 종교는 아니죠. 아키라님의 사상은 어느 정도 종교의 영역에 이른 것 같습니다.
06/01/25 08:45
아키라님의 기본사상에 대한 대해 Nada-inPQ님과 세츠나님의 댓글부터 논의가 심화되려 하는데 벌써 페이지가 넘어가니 아쉽네요. 틈틈히 사색에 잠길수 있는 주제를 접하게 되어 좋았는데 말이죠. 계속 고민하실듯 한데 다음엔 토론게시판에서 논의되는걸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06/01/25 08:57
저도 저 자신의 생각이 그런 면이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제게는 직관이라는 개념이 모든 논의의 시초이니까요. 저는 언어 자체의 불완전성에 동의 하기 때문에 어떠한 진리든 언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은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가능 하다는 입장입니다.(고로 매우 종교적이지요.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생각은 언어로만 이루어지고 언어 생활 전에 인간의 사고를 우리가 추측할 수 없다는 생각 또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진리 혹은 공리들은 결국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그저 인간이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동의하고 자기 완결성을 가진 진리 혹은 진리 체계는 없습니다.(이건 방금 말한 언어 자체의 불완전성과도 연결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이것들을 표현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자신의 직관이 먼저 있고 그것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이 리플을 읽어 보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 논의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아주 고맙고 기쁜 토론이었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배움의 필요성을 알게 해준 행복한 나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06/01/25 11:23
위에 아키라 님이 글을 마무리 지으셔서 이후로 글을 쓰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 좋은 결론에 도달하셨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한가지만 덧붙이면.. 감정을 너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시지만 마시고 감정 역시 인간을 이루는 소중한 요소라고 보면 어떨까요? 때로 강한 이성과 의지역시 종종 감정에서 이끌림을 받기도 하고...라이벌이, 때로는 적이 필요하듯 이땅에 필요없는 쓸데없는 것이란 없지 않을까요?
06/01/25 11:26
반드시 제거시켜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암덩어리라도요. 모든 것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또 그에 따라 무언가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무능을 너무 안타까워 하기 보단 가진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너무 원론적인가요? -_-;
06/01/25 11:31
정치적 사상적 다양성이 체제발전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자본주의에서는, 그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혼돈 속에서 '중심 되는 무엇'을 갈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중심되는 무엇이 '왕'일수도, '도덕'일수도 있지만, '종교'를 찾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인듯 합니다. 특히 '사후세계'와 '신'이 없는 유교 문화권의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다소 쓰기 난감한 내용이지만, 니체를 좋아하는 한 극단적인 자본주의 지지가는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자유를 누릴 줄도 모르는 패배자들이, 자신들을 패배시켜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것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배한 후에, '세상이 잘못된거다. XXX가 나쁜 놈이지, 나는 틀리지 않다'는 식으로 자학하면서 만족해할 것이다.' 시시비비 판단은 자기몫입니다.
06/01/25 12:13
김연우님// 언제나 그렇듯 의견 백프로 동감합니다.
'왕'이라는 절대자는 종교의 힘으로 대신할수 있구요, 사회 시스템은 균형있게 가야하는게 절대 진리이구요, 문제는 국민들이 이제 국제민주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갈수 있을만한 부단한 능력과 자질개발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유럽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태생적 배경이 너무 상이한지라, 참 아쉬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건, 배고픈 현실이 아니라 나의 허기짐이 문제가 아닐까요.
06/01/25 12:50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 같지만, 뭔가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동감이 가는 글은 조금 아니군요.
리플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네요.
06/01/27 13:56
왕당파라.. 전 충분히 좋아하긴 하지만.. '현실성'과는 그래도 거리가 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왕정이 무너진 후의 급격한 경제발전등을 생각한다면, 그게 왕정과 민주정의 차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느 정도 그런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도 해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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