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4/29 01:28:35
Name Timeless
Subject 정말 멋진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나
#25년 가치의 2주

저는 25년간 최고의 2주를 보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의 최고였나 하면,

사회에서의 제 자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회에서의 저는 진정한 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받아 온 교육(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으로는 제 주장을 자유롭게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내 주장이 틀릴까봐 두려웠고, 주장이 틀렸을 때 받을 비난이 두려웠고, 내 논지를 잘 펼칠 수 있을까도 두려웠고, 윗 사람에게 말하기 껄끄러웠고..

이유를 대자면 너무도 많습니다(핑계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아래 다시 이야기 할게요).


지난 2주간 내내 교수님-전공의-학생의 open-minded discussion(제 마음대로 지어낸 용어)을 하면서,

저는 자신의 가능성, 한계(물론 지금 현시점의), 그리고 자아를 찾아내었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한 명 더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수 십년간 공부하신 연세 지긋하신 그 교수님.

생머리라 조금은 붕 뜬 느낌의 백발에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낀 그 분은 훌륭한 학자이고, 의사이고, 스승이고, 어른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주장을 펼치면,

'그렇지', '재미있는 아이디어네', '신선한 아이디어야', '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지', '충분히 가능성 있지' 이런 식의 긍정적 말씀을 해주시는데 저는 거기서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칭찬, 격려.. 여기에 적으면서도 왠지 가슴 뿌듯한 단어들이네요.


또한 자신이 모르는 것은,

'그것은 내가 잘 모르겠는데, 우리 전공의 선생은 혹시 아는가? 모르면 안선생이 한 번 공부해서 우리한테 알려주지 않겠나'

하며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저의 발언이 틀렸을 경우 바로 피드백을 주실 정도로 박학다식한 진정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 나오는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까지 알고 직접 사용하실 정도로 재치도 넘치시는 노교수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잘못이 없어요

딱 보기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전공의 선생님.

이 선생님은 그 교수님을 존경해서 다른 병원에서 여기까지 따라오신 분인데 역시나 그 분의 제자인 만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 질문에 선생님이 모를 경우 직접 저널을 찾아서 직접 공부하고, 그것을 또 저에게 알려주실 정도로 성의 있으셨고, 자신이 아는 것은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하시고, 역시나 자기 주장 하는데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발표가 끝나고는 '발표 잘 들었고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며 빈말 아닌 빈말을 해주시더군요.

이 분도 나중에 그 교수님같은 멋진 스승이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스승과 제자

전공의 선생님이 저에게 해준 교수님 이야기에는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그 교수님도 전공의 선생님 안계실 때 전공의 선생님에 대한 칭찬과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멋진 스승과 제자 아닌가요.





#전공의 선생님의 말씀

저에게 2주간의 실습 어땠냐고 물으시길래 몇 초의 여유를 두고(자기 주장을 할 때 머리에서 일단 잠깐이라도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위에 썼던 open-minded discussion을 이유로 감히 최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더군요.

"선생님이 느꼈던 것이 제가 몇 년 전에 교수님을 만나고 느꼈던 것과 같습니다.

가끔 생각해요.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스승을 만났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선생님도 2주 전에 처음 왔을 때는 우리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 보였었는데,

지금은 정말 잘 하시더군요. 근데 그것은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저도 학창 시절에 여러 교수님들, 선생님들께 주눅 들었었거든요.

결코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제 이야기를 하고 너무 즐겁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로운 자리에서나 가능했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회(소속 집단이랄까요)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그러지 못했고, 실습을 돌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건 머나먼 옛날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더군요.

이번에 그 두 분과 이야기 하면서, 자유로운 자리에서 잡담을 하며 즐거워 하던 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지식들을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만큼 또 저는 남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남들의 머릿 속에 제가 모르는 지식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저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하고 싶어요.





정말 멋진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멋진 두 분의 이야기였고, 제 이야기는 부록이었습니다.

저런 스승과 제자 사이 부럽지 않으신가요?^^


* 천마도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4-30 00:2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Den_Zang
06/04/29 01:31
수정 아이콘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는것은 엄청난 행운이죠..
06/04/29 01:38
수정 아이콘
마이너 과 교수님이신가보죠?
의대에서는 정말로 레어한 스타일의 교수님이시군요..^^
저도 그런 교수님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앞에 # 을 다는것은... 어쩔 수 없는 습관???^^;
Timeless
06/04/29 01:42
수정 아이콘
마이너과 교수님 맞고요^^

음악을 못해서 #에 애착이 강한 편이랍니다.

가 아니라 그냥 왠지 마음에 들어서 소제목에는 자주 붙이곤 하지요.
highheat
06/04/29 02:15
수정 아이콘
소그룹토의를 하면서 저런 분들을 꽤 만났었지요ㅇ_ㅇ 보수-권위로 대표되는 의대 임상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open-minded된 분들이 계시다는^^; 그리고 최근 스텝이 되신 분들은 (5년 이내)확실히 젠틀하시더군요. 실습은 과 특성상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과가 몇 개 있긴 합니다...
Nada-inPQ
06/04/29 02:50
수정 아이콘
자랑을 좀 해야 겠습니다..(대뜸)

제 인생은 참 운이 좋은데, 인생의 어떤 토막을 들추어도 멘토가 제 주위에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서 최고의 벗이자, 스승이자, 형이었던 최고의 멘토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존경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존경이 절로 되는 그런 분이죠. 저는 말 잘 하고,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제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멘토였던 저의 아버지는 저를 그렇게 기르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셨구요.
이후 6학년때 아직도 연락하는 제 은사님을 만났고, 중2때, 고2때, 고3때 각각 매년의 멘토 역할을 해주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구요. 저란 사람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 갑자기 우리 아부지가 보고 싶네요..하하.
레지엔
06/04/29 13:13
수정 아이콘
아 부럽습니다... 저도 실습돌때는... 저런 교수님들이 더 많겠죠?(들려오는 소문은 언제나 어린 1학년을 주눅들게 합니다...ㅠ_ㅠ)
06/04/30 12:33
수정 아이콘
메이저 과는......... 힘들듯.......... 실습 돌면 배회하는 거죠........
구석으로..... 구석으로...........
가끔 일부 썜들은 가까이 오라고 하심.....
06/04/30 12:44
수정 아이콘
정말 부러운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사회생활 하면서 그저 나를 굽히는 법만 배웠는데..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건, 그러면서 저도 저절로 배우게 되더군요.
나보다 잘 모르는 부분을 가진 사람을 굽히게 만드는 방법을...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참 많이 슬펐었는데...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잘 아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잘 아는 부분이 있다는걸 기억하자고 되뇌이면서 살았는데..
쉽지 않네요.^^;;
...체득이라는건 무서운 건가 봅니다.


Nada-inPQ님//
역시 부럽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모님이 잘못 기르신건 아니지만;;
댓글 속에서 자랑스런 마음과 사랑이 그저 배어나오는 느낌.. 그게 참 부럽네요..^^

부럽기만 하고 물러갑니다..
쳇..~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730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64편 [22] unipolar6281 06/05/05 6281
729 박정석 플래쉬무비...(수정) [15] estrolls7006 06/05/06 7006
728 스갤에서 가져온 어떤 꾸준글. [51] 폭풍검12580 06/04/30 12580
727 YANG..의 맵 시리즈 (7) - Keeper [14] Yang5793 06/05/05 5793
726 예전에 올렸지만 새로운 맵발상 [31] 1a2a3a4a5a6676 06/05/02 6676
725 테란 계보 VS 한국 바둑의 계보 [126] 주먹들어가는 13396 06/04/30 13396
724 벨런스 붕괴 2대 요인 [61] 김연우9803 06/04/30 9803
723 8153 테란도 가스가 필요하다 [50] 체념토스7004 06/04/30 7004
722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염보성 선수 응원글) [35] Den_Zang5179 06/04/30 5179
721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63편 [22] unipolar5626 06/04/29 5626
720 정말 멋진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나 [8] Timeless7091 06/04/29 7091
719 나의 프로리그 예상도. (3)변수와 기세는 영웅의 종족 프로토스로부터. [12] 시퐁5919 06/04/28 5919
718 나의 프로리그 예상도. (2)저그의 시대, 높은 승률을 위해선 그들이 필요하다. [19] 시퐁7427 06/04/26 7427
717 e스포츠에도 경영철학이 필요하다! [7] 외로운할요걸4986 06/04/26 4986
716 칭찬합시다 [14] Timeless5857 06/04/26 5857
715 나의 프로리그 예상도. (1) 우승, 강력한 테란을 보유하라. [31] 시퐁7976 06/04/26 7976
714 YANG..의 맵 시리즈 (6) - Holy Wars [20] Yang6254 06/04/25 6254
713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62편 [22] unipolar5949 06/04/23 5949
712 [숙명의 사슬] 프로토스의 대저그전 [31] Zera_6724 06/04/23 6724
711 815 3 7시 지역 입구의 문제점입니다. [35] 정지연8149 06/04/22 8149
710 내맘속의 해태 - 최연성 [25] 글레디에이터6672 06/04/22 6672
709 舊4대토스, 新4대토스 비교하기 [17] ROSSA8561 06/04/21 8561
708 프로토스의 한(恨), 그리고 Nal_ra [35] Zera_8685 06/04/21 868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