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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9/17 17:19:27
Name 네로울프
Subject 어떤 마법에 관한.....
기억이 닿지 않는 아주 어린 언젠가 부터
나는 하나의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마법에 결려있었다는게 정확하겠다.
누구로부터 또는 무엇으로부터 얻어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태어날 때 부터 비롯되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걸려져 있는 이 마법을 처음 깨닫은 것은
열살 안팎 무렵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 때
그것을 인지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한계점일 수 도 있다.

몇시쯤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무언가의 꿈을 꾸고 있었을
테다. 소변이 마려웠던 것은 아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소변을 미리 봐두는 버릇에 이미 길들여져 있던 때라
왠만해서는 자다 일어나 소변을 보는 경우는 없었다.
잠을 뒤척일 만큼 더운 날이었거나 추운 날도 아니었다.
무슨 계절이었는지 알지는 못하겠다. 다만 겨울은
아니었으리라. 그냥 조그만 시골 마을이라 밤거리가
야단스럽지도 않았고 그저 그윽할만치 칠흙같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아주 고요하고 공기의 흐름도 별로 없으며 쨍그렁거릴 것
같은 별들만이 무성한 그런 밤을 상상한다면 별달리
그르지 않을 것이다. 포근히 깊은 잠에 몸을 맡기기에
너무도 적당한 그런 밤 말이다.
두손의 손가락으로 나이를 꼽는데 그렇게 무리가 없는
아이는 또한 잠의 완벽한 동반자가 아닌가.
밤 동안을 온전히 번민하게할 복잡한 세상이 그에게
있을리 없으니 어둠을 적의에 찬 눈으로 볼리도 없고
목마르게 잠을 청할 필요도 없이 쉬이 잠들어 버리는
그런 나이인 때였다.
그 모든 적절하고 명료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난다. 정말 문득 깨어난다.
누군가가 그의 눈꺼풀을 보드랍게 잡아 당긴것처럼,
어떤 이가 그의 작은 귀에 시원한 입김을 불어넣어
쉬고 있는 뇌를 기분좋게 흔든 것처럼, 그렇게 아이는
잠을 잃어버린다.
놀라지도 않았고 피로감도 없다. 다만 의문을 느낄
뿐이다.
그는 아랫배에 조금 힘을 주어본다. 하지만 그의
요도는 조금의 압박감도 느끼지 않는다. 주위를
두리번 거려 보지만 낮고 안정된 어머니의 숨소리
만이 들릴 뿐이다. 그는 낯선 시간에 잠을 깨어 버린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오줌을 누기 위해 마당가의
커다란 석류나무 아래로 갈려고 잠시 몸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이다. 막내(?) 발가락을('ㅅ ㅐ 끼' 란 말은 안된다네요..--;;)
움직일 수도 있고 목을 넘어가는 침의 질감도 느낄수
있었으며 칠레의 수도가 산티아고 라는 것까지도
생각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면서 장지문을
열었다.
발바닥에 닿는 마루는 기분좋을 만큼 시원했다.
다시 살짝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아이는 왜 자신이 잠에서 깨어났는 지 돌연 알게 되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비가 나리고 있었다.
제법 널찍한 흙바닥의 마당위로 가려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침한 석류나무의 잎 위에도 저녁 무렵에 튕기던 비닐
축구공 위에도 비가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부딪히기 직전에 속도를 늦추어 마치 스다듬듯이 부드럽게
아이에게 비가 도착하고 있었다.
비가 그를 부른 것이다. 소근대는 듯한 툭탁거림으로
또는 물대롱을 타는 또르릉 거리는 소리로 그를 불러
잠으로 부터 일어나게 한 것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나즈막한 슬리퍼를 끌고 처마 맨 끝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저윽히 손을 내밀어 비를 만져본다.
예상했던 차가움이 아니라 간지르는 듯한 느낌이 손바닥에
톡톡 내려 앉는다. 아이는 몸을 쭉 뻗어 팔뚝까지 처마밖으로
드러나게 하곤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랬다.
밤의 비는 언제나 그를 깨웠다. 그가 중학생이 되어 통학길
버스의 계집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도 그랬고 도회지로
전학을 가서 집에서 제법 멀어져있을 때도 그랬으며
가방속에 몰래 담배를 감추어 다니던 고등학교 삼학년 때도
역시 그랬다.
차츰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는 서울로 대학을
갔으며 2년을 방위병으로 출퇴근을 했고 대학으로 복학해서는
연애질에 목을 매달았다. 갑자기 졸업을 했고 문득 취직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그는 항상 알고 있었다.
비가 오는 밤이면 언제나처럼 그가 깨어난다는 것을.
그는 그 사실을 조금은 신기해했다. 그리고 약간은 자랑섞인
마음으로 친한 이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특히, 사랑하던 여자
에겐 자주 그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알려주려고 노력햇다.
반복되는 그 순간에 때때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그녀에게 보낼 시들을 적기도 했다.
한번도 놓치지 않고 비가 올 때 마다 잠을 깨어버리는 현상을
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을 쉬듯 그것은 그에게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터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떠나버리고 난 부터였던가!
어쨌든 그 무렵을 지나오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난 내가 더이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힘든 잠을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어느 순간에 비가 오더라도
잠을 털고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잘만큼 자고
일어나 밤새 적시워진 마을을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라보게만
되었다. 이슬비가 왔던지 장대비가 왔던지 또는 계속
내리고 있던지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이미 내려 버린
비만을 보게 되었다.
마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더이상 잠에서 일어나 갓 내리는 비를 맞이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이 마법임을 알게 되었다.
일상처럼 그것이 내게 반복되어졌을 때는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되니 내가 마법에 걸려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것일 수 없었다.
언젠가 읽었던 기러기를 타고 날아가는 소년의 동화처럼
그것은 너무도 신기한 마법이었던 것이다.
내 몸속에 깃들어 있던 놀라운 마법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테이블을 쓸고 가는 바람에 날리워 가는 먼지처럼 나의
마법은 돌연 날아가 버렸다.

가만히 밤을 기다린다.
언제고 올지도 모르는 밤의 비를 기다린다.
쫑긋 귀를 새우고 조심스럽게 밤의 소리를 염탐한다.
행여나 놓칠새라 온 몸의 신경을 돋구면서 갓 발을 딛는
사각사각한 비의 소리를 기다린다. 이제 나는 그렇게라도
밤을 감싸않는 비를 보고 싶다. 아니 보아야 한다.
나의 마법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몇번이라도
밤의 비를 기다려야만 한다.


.............. z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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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inmania
02/09/17 18:09
수정 아이콘
우와...
네로님 글 잘 읽었습니다..(첨엔 강제적(?)으로 읽게되었으나 이젠 네로님의 팬이 되어버렸군요..)
네로님 글에는 뭐랄까? 연륜이 묻어나는 듯한 삶의 냄새가 나네요..
역쉬 30대의 힘인거 같에요..^^
앞으로도 삶의 향기가 나는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ps : 네로님 마법을 빼앗아 간 범인!! 암만 생각해도 "스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하지만 마법이 돌아올 그날까지 밤의 비를 기다릴려면 스타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젤 낳을 듯 싶네요..^^(썰렁한 농담을~~~죄송..)
02/09/17 18:1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읍니다..저는 밤에 소리없이 내리는 비를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제 더러운 마음도 저 빗물에 씻겨내려가는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매주 주말마다 강원도를 내려 갑니다..
그쪽분들은 아직도 비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으십니다.
첨에 도와드리러 갔을때는 이게 전쟁터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아직도 도움이 필요하신 어려운분들이 이웃에 있다는 생각정도는 가져보시는 시간이 가져보셨으면 합니다...(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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