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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04 00:35:48
Name 빼사스
Link #1 구글
Subject [일반] (스포) <미키17> 원작과의 차이, 그리고 봉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것?
<미키17>을 n차 하면서 몇 가지 원작과 다른 점들이 보이기도 하고
또한 처음 볼 땐 못 보던 디테일들도 보이는데요,
그래서 몇 가지 머릿속에 정리된 걸 나열해 볼까 합니다.
아직 책이나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스포일러를 주의]해 주세요.

**
기본적으로 영화는 중반까지 소설의 기본적인 내용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하지만 디테일하게 보면 세부 설정조차 소설과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1. 미키17과 미키18의 성격 차이, 그러나 소설에서는 미키7과 미키8은 성격이 같다.

영화에서 보면 초반에 미키17이 자신은 죽을 거고 대신 미키18이 나올 거라고 하는 부분에서 미키18이 프린트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과학자 중 한 명이 미키의 뇌에 기억을 심는 장치 케이블 중 하나를 부주의하여 빠지게 만들고
이로 인해 미키18은 미키17이 가지고 있던 기억 혹은 무언가 하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전 이게 아마 봉준호 감독의 이번 영화 핵심 각색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속 미키18은 미키17과 달리 소심하지도 않고 과격하고 행동파이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요.
심지어 자기를 늘 이용만 해먹는 티모나 마샬에 대해 살해라는 극단적 감정까지 표출하고요.

영화에서 보면 미키17은 어린 시절 '빨간 버튼'이 달린 자동차의 버튼을 자신이 누르는 바람에 부모님이 죽고 자기가
이 모양이 됐다고 자책하는 회상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미키18은 '그건 그냥 제조사 잘못이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해줍니다. 즉 미키18이 미키17과 달리 받지 않은 건 바로 '부모님을 죽였다는 빨간 버튼 트라우마'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성격도 소심해지지 않고 좀더 당당하고 남들에게 이용도 당하는 실패한 인생이 되진 않았겠죠.

그래서 영화 끝부분에 미키가 부모님 자동차와 똑같이 생긴 빨간 버튼을 거침없이 눌러 익스펜더블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17세에서 18세, 즉 성인으로 성장하는 미키의 성장기를 다루기 위해 17로 했다는 말처럼
미키의 소년 때부터 가진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성인으로 거듭나는 걸 드러내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환상 속에서 죽은 마셜의 부인인 일파와의 대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처음에 바닥에 떨어진
'동그란 원 형태의 빨간 소스'를 일파는 미키에게 한번 찍어 먹어 보라고 합니다. 미키가 주저하다가 일파에게
'당신은 이미 예전에 죽었다'고 하자, 일파는 내가 환상이라고 믿느냐며 자기를 만져보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런데 이때 일파의 손목에서부터 흘러나온 피가 손바닥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이 장면은 직후 익스펜더블 파괴 버튼인 '빨간 버튼'과 연결되어 보이는 구조로 보입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장면마다 드러나는 연결고리는 이런 식으로 완성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2. 나샤의 직업이 다르고 티모의 설정도 다르다.

소설에 수록된 봉준호 감독과 원작자의 대담을 보면, 둘 다 영화에서 꽤 딥하게 묘사된 나샤의 미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장면을
영상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하는데요. 바로 이 장면을 위해 나샤의 직업을 바꾼 걸로 보입니다.
나샤의 소설 속 직업은 사실 티모와 같은 조종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와 달리 소설 속 나샤는 미키를 챙겨주고 사랑해 주긴
하지만 그게 무척 깊게 드러나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직업을 육상 근무자로 바꾸고 미키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만든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미키가 자신을 위해 이성마저도 잃을 정도로 사랑에 진심인 나샤를 깨닫는 건,
조종사인 나샤라면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티모 경우 역시 설정부터 많이 다른데요, 소설 속 이름은 '베르토'이고 소위 엄친아입니다.
뭐든 잘하는 인간이라 미키는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갖고 있고, 그래서 베르토가 은퇴 후 다시 복귀한 게임에
자기 전재산을 '베르토가 지는 쪽'에 올인했다가 베르토가 우승하는 바람에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되는 상태였지요.
영화처럼 친구 때문에 억울하게 도망자가 된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잘못으로 도망자가 된 거죠.
물론 티모든 베르토든 미키에게는 얄밉고 재수 없는 존재인 건 영화나 소설이나 변함 없습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티모'를 좀더 비열한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미키와 나샤의 사랑을 증명하는 장면을 극대화시킵니다.

나샤와 미키의 사랑을 증명하게 이용되는 건 카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키를 두고 나샤와 갈등을 일으키고, 미키의 멀티플을 가장 먼저 아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나 같지만,
좀더 나샤에 대한 미키의 온전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비록 2명으로 나뉜 미키라도 자신이 온전히 사랑
해야 하는 대상이라 생각하는 나샤의 진심을 드러내는 데 활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3. 크리퍼의 설정이 많이 다르다

영화 속 크리퍼는 <옥자>가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를 자기가 좋아하는 크루아상에서 연상하였다고 하지요.
원래 원작 소설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 히드라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고,
소설가의 딸이 직접 봉준호 감독에게 그려준 그림도 그런 모양이었다네요.
하지만 봉준호 감독 자신은 징그러운 건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댕댕이스러운 공벌레 종족이 나왔지요.

사실 소설 속 크리퍼의 설정 역시 영화와 전혀 다릅니다. 영화 속 크리퍼는 약간 행성의 원주민 느낌?
누군가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인디언을 비유했다는데,
어쨌든 다소 정착민인 인류의 과학적 기술보다는 떨어져 보이는 자연 친화적 종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소설에선 이들은 인류의 과학 기술을 다 분석하고 파헤치는 뛰어난 지적 종족으로 나옵니다.
입수한 통신기로 먼저 인간의 언어를 해독해서 문자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기지에 침입해서 다른 대원들도 죽입니다. 영화에선 카이 캣츠의 여자친구가 얼음에 깔려 죽는다고 되어 있지만,
소설에선 실제로 캣츠의 여자친구는 크리퍼에 의해 오체분시당합니다.
어쨌든 여러모로 인류에겐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오고, 입장에 따라선 인류보다 상위 종족처럼 보여집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설정을 바꿔 크리퍼를 보호해야 할 개체로 전환했지요.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이 다소 무리수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원작대로 했다면 봉준호 감독 스타일 영화로 만들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느 한편으론 지브리에 대한 감독의 오마주 고집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소설 속 크리퍼의 또 다른 특색은, 모체 외에 다른 모든 작은 크리퍼들은 모체의 몸에서 나온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건데요.
영화에선 마치 베이비와 마더의 관계, 즉 일종의 종족 관계로 보이지만 소설에선 하나의 거대 군체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미키 7과 미키8을 보고 인간도 자신들과 동일하게 모체의 몸에서 나온 동일한 일부 개체로 착각합니다.
때문에 죽여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여러모로 인간에겐 꽤 위협적인데요,
소설의 2편격인 <반물질의 블루스>에선 이들 크리퍼도 사실은 제3의 종족으로부터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나오죠.
미키와 함께 크리퍼가 제3의 종족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니,
영화처럼 결국 인류와는 동맹 관계가 되지요.


4. 멀티플의 금지 이유, 영리한 각색

영화에선 매니코바라는 멀티플 개발 과학자가 사이코패스라서 자신들을 복제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른 걸로 묘사되지만
소설 속 멀티플의 금지 이유는 영화보다는 규모가 큽니다. 소설에선 매니코바는 아예 이 기술을 만들고 이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번 거부로 나옵니다. 그는 큰 성공을 거두자 바로 행성을 떠나 다른 정착 행성으로 이주합니다.
몹시 척박한 이 정착 행성에서 매니코바는 자신이 개발한 멀티플 기술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릅니다.
멀티를 기술로 사람을 복제하려면 인간과 동일한 유기체가 필요한데, 이 유기체를 이 행성의 노숙자 등을 초대하여
죽이고 그 유기체로 자신을 복제하는 겁니다. 처음엔 어느 괴팍한 부자가 척박한 개척 행성에 와서 인심좋게 사람들도
초대하고 선심을 이끄는 듯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납치해 죽인 자들의 유기체로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낸
매니코바는 걷잡을 수 없게 어마어마한 수의 군단을 만들어내고 급기야 거주민들까지 습격하여 복제의 재료로 만듭니다.
결국 행성이 다 점령될 위기에 처하자 급히 주변 다른 개척 행성에 SOS를 보냅니다.
이 사태는 전 우주 인류를 위기에 빠지게 만드는 상황이 되었는데, 소설에선 아주 힘들게 해결을 합니다.
한데 봉준호 감독은 그냥 영화 한 편 뚝딱 나올 정도의 이 방대한 에피소드를 아주 영리하게 각색합니다.
짧지만 멀티플의 금지 이유를 너무도 명확히 드러내는 에피소드로 말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이 아닌 다른 누가 이 에피소드를 별도 이야기로 만들어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며...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다소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n차 관람 때마다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과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즐거운 영화 감상이 되었습니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으로 자기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건 봉준호 감독 아니면
쉽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애니메이션과 차기 한국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길지 않게 돌아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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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25/03/04 01:46
수정 아이콘
오 맞는것 같아요. 전 거기까지는 생각못한듯
짭뇨띠
25/03/04 02:2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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