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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13 19:08
최근에 있었던 진격의거인 우익만화 논란도 그렇고, 일본에서 반전영화로 분류되고 있는 [반딧불의 묘]가 한국에서는 우익영화로 분류되는 걸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역시 우익영화로 취급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나 싶네요.
13/07/13 19:38
[반딧불의 묘]가 역사교육의 문제와 무슨 관련성이 있다는 것인 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그리고, [남자들의 배 야마토]같은 전쟁미화 영화들이 넘치는 현재의 일본에서,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전영화입니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판할 여지도 있겠지만, 해당 영화는 일본인에 의해서 일본국내 개봉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죠.
13/07/13 19:51
반딧불의 묘를 반전 영화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일본인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자국의 애니메이션을 자랑스런 문화로 여기는 일본인들이 얕은 독법으로 감상할 것 같지 않은데, 저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반전영화로만 바라본다는 게 더 이상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시댄데 컨텐츠 하나를 자국에서 소비하고 그만이라는 것인지, 왜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저 애니메이션은 서구권에서 리메이크했고, 외국에도 충분히 소개 되었습니다. 저 애니메이션을 본 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새로 하게 되었느냐 생각해보면 저건 반전영화라는 장르에 묶는 게 훨씬 부자연스럽습니다. 더군다나 그 외국인이 선별적인 정보만을 접해서 제한적으로 일본을 알고 있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겠죠.
13/07/13 20:00
말씀하신대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어떤 외국 사람이 [반딧불의 묘]를 보았을때
전쟁이 멋있구나라고 느낄까요? 아니면, 참혹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라고 느낄까요? 후자라고 한다면 그건 충분한 반전영화라는 겁니다.
13/07/13 20:16
다신 리플을 보니 아연실색케 되네요.
마치 제가 주장한 바가 "반딧불의 묘를 본 외국인 중 누군가는 전쟁을 멋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씀하시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전쟁통에 비극을 맞이한 오누이라는 표면적인 이야기에 가려진 게 전쟁의 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감독이 그걸 의도하지도 않았고요. 어떤 관객이 바보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에서 느낀 감상을 작품 자체에서만 머물다 끝냅니까? 아주 뻔한 사실을 다시 언급핮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인들이 만든 2차세계대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이것이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거기서 역사 교육 부재가 기반이 된 그 생각 "일본인은 피해자"라는 메시지에 더 집착하는 경우도 숱하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뭐 어차피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시는 것 같지는 않으니, 괜히 흥분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어차피 88년에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이 불러일으킨 수많은 논쟁-특히 반전 영화냐 아니냐는 이미 수없이 되풀이 되었으니까, 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13/07/13 20:20
감독의 의도부터 틀렸습니다. 아래 리플에서 논박되는 상황인데요.
반딧불의 묘인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는 좌익 반사회 인사를 스스로 자처하는 인물로 일본의 군대 소유권과 관련된 헌법 9조의 개악을 반대하는 '영화인 9조회'의 발기인입니다. 군부와 제국주의, 전쟁, 역사왜곡에 대해서 일본내에서도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에요. 애초에 의도를 잘못 생각하고 글을 쓰니깐 오류를 범하시는거 같은데요. 단정지어서 말씀드리자면 님의 글이 틀렸습니다.
13/07/13 20:22
2차 세계대전에서 피해와 비극을 맞이한 독일인 자매의 이야기는 반전 영화로 충분히 다뤄질 소재라고 봄니다
그런데 이 소재를 독일에서 영화로 만들어 아시아권에 소개되고 판매된다면 과연 어떨지라는 생각을 해봄니다 이미 나온지 오래된 반딧물의 묘 라는 영화가 언급될때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를 볼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13/07/13 19:40
반딧불의 묘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반전 요소가 있다는 말이 많죠.
http://m.enha.kr/wiki/%EB%B0%98%EB%94%A7%EB%B6%88%EC%9D%98%20%EB%AC%98#s-3.1 참고 하시면 좋은 내용일 것 같습니다. ps. 반전이 아니라 아마도 반딧불의 묘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영화다... 라는 의미로 쓴거 같아서 넣었는데 저도 쓰다보니 반전으로 썼네요. 혼란을 일으킬까봐 첨언합니다.
13/07/13 19:55
반딧불의 묘를 본 현대 일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가볍게 다만 전쟁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질 수록, 그리고 반전영화라는 장르에 가깝다고 주장할 수록 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하다 못해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않은 일본인이 저럴 터인데, 일본 문화에 경도된 서구권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겠죠.
13/07/13 20:08
반전 메시지 그리고 반전 요소가 작품 내에서 잘 구현될 수록 숨겨진 저의가 가려지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13/07/13 20:24
사람마다 같은 작품을 봐도 느끼는 메시지는 다르겠죠.
관객 중에는 누군가(대부분은 일본인이겠죠)의 주장처럼 일본 우익과 제국주의에 경도된 대중, 그리고 군부를 비판하는데서만 끝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저처럼 다르게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가 100%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요.
13/07/13 20:28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감독의 의도가 100%그러면 끝난겁니다. 감독의 의도는 100%그런데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그 의도에 맞춰서 비판한다구요?
미국의 민중가요 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Born in Usa라는 노래로 미국의 베트남전, 미국의 체제를 신나게 비난했습니다만, 정작 Born in Usa 란 구절이 반복되는 후렴구 때문에 미국찬가 등으로 오인되어 선거곡으로 쓰이기도 했지요. 그럼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베트남전을 옹호하고 미국의 체제를 옹호한걸로 비판받아야 합니까?
13/07/13 19:42
그게 반전영화가 아니면 대체 뭐가 반전영화인지-_-;; 일본의 그냥 일반 국민이 군국주의에 의해서 얼마만큼 비참해지는지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13/07/13 19:43
반딧불의 묘는 충분히 반전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저도 보기전에는 단순히 텍스트로 보고 일본인 자신들의 2차대전의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내용의 만화영화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전쟁이라는 인간의 가장큰 벙크 중 하나로 인해 고통받는 남매의 이야기인데 마냥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내세우는 영환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3/07/13 19:54
반딧불의 묘는 우익으로 볼만한 요소가 있죠. 물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무엇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하여튼 예전에 단편 작품을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만화에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네요. 그리고 저도 Siul_s님이랑 비슷하게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합작해서 KARA라는 대작을 준비하나 싶었습니다. (...)
13/07/13 20:03
예전의 그.... 단편들에 비하면 좀 나은 듯 하지만, 아직은 1편밖에 못봐서 속단은 못 내리겠군요.
제목의 KARA는... 다시 보니 헷갈리긴 하겠군요. 크크
13/07/13 20:20
여하튼 왈가왈부 되풀이할 필요 없이
본문에서 적으신 한국에서는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일본 우익영화라고 분류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해 봅니다. 그리고 첫리플에 적으신 일본에서 반전영화로 분류되고 있는 [반딧불의 묘]가 한국에서는 우익영화로 분류되는 걸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역시 우익영화로 취급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나 싶네요. 의 행간에서 제가 느끼는 바는, 그러니까 글쓴 님께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는 역사적 감정에 집착해서 일본인과 다르게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 예감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13/07/13 20:30
개깡두님
틀리긴 뭐가 틀립니까? 그러니까 관객은 감독의 의도만으로 감상해야 합니까? 아니 그럼 저 감독의 의도는 믿을 수 있는 겁니까? 1988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의 제작 의도를 2004년에 일어난 일에서 왜 찾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 감독이 어떻게 의도를 했던, 관객들에게 저렇게 불쾌한 메시지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여지가 있는 겁니다.
13/07/13 20:37
아래 있는 감독의 강연 메세지 보고 오세요. 감독의 의도가 명확한 작품을 '오독'으로 비판한다는건 웃긴겁니다.
관객이야 당연히 다르게 읽을수도, 잘못 읽을수도 있죠. 다만 그것을 진실인양 믿고 정반대의 입장에서 비판하는건 웃긴거죠. 1988년에 개봉한 것과 2004년이 갑자기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제 답글에 2004년 관련된 내용이 있나요? 감독이 어떻게 의도를 했든 관객들에게 불쾌한 메세지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 여지를 근거로 반전 주의자 감독이 만든 반전영화를 오해의 가능성을 근거로 정반대로 몰아세운다는건 비약이고, 웃긴겁니다.
13/07/14 14:55
저는 반딧불의 묘라는 영화를 잘 모릅니다만
만약 감독이 어떤 의도에 의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영화가 다른 의도로 비추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게 진리는 아니지만 영화라는것에 있어서 컨텐츠를 구매하는 관객의 입장은 꾀 중요한거 아닌가요?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감독의 역량부족일까요? 아니면 대다수의 관객의 수준이 낮다(?) 라고 봐야하나요?
13/07/14 15:50
전 이 영화에 국한되어 글을 썼으므로 최소한 영화를 보고나서 그렇게 느끼신 다음에 써주는게 어떨련지요.
말씀해주신 용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뿐더러 디른 리플들로도 충분히 논박되는 상황이라 보여집니다.
13/07/14 17:48
지브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감독의 의도가 이러하니 이외의 잘못된 해석은 오독이라는건 너무 나가신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이걸 말씀드리고 싶었떤 겁니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었던 것들이 여론적으로 정론화 되어있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대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일부들의 자신들이 생각하는것이 진리라고 떠드는 말은 조심해야겠죠.
13/07/14 18:10
감독의 의도가 A이다.
대중의 판단은 A가 아닌 B이다. 이러한 명제가 성립하려면 방법은 두가지죠. 감독의 의도가 A인데 표현을 못해서 B로 보인다. 의도가 A인데 이해를 못해서 B로 보인다. 인데 오독이라는 단어가 본래의 뜻과 다르게 읽다. 란 뜻이라면 두 경우다 오독이 맞습니다. 대중의 여론이 정형화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그 오독이 표현의 미비함으로 인해 당연히 촉발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오해한 것인가에 따라서 책임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 가는 논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는 당연 후자지요. 따라서 이 영화와 관련짓지 않더라도 말씀해주신 오독의 정의에는 동의하기 어려울듯 합니다만 이 글에서 리플로 다루기엔 주제가 좀 벗어나는 경향이 있으니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으시다면 논지를 다듬어서 자유게시판에 의견을 내보심이 어떠한지요. 그럼 의견교류에 적극 참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3/07/13 20:25
닥터슬럼프, 드래곤볼의 인세+부가수입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심지어 이 두작품은 아직도 일본 서점들의 만화코너에 떡하니 자리잡고 팔려 나가고 있으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죠.
13/07/13 20:25
반딧불의 묘가 반전영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피해국이기 때문이죠. 피해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만 합니다. 반성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걸로 느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일본에 사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군국주의가 결국에는 자기들의 삶을 파괴했기 때문에 충분히 반전영화입니다. 그만큼 군국주의가 그 시대와 세대에게 준 상처가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것의 방증이죠. 피해국은 말할 것도 없고 자국민들과 세대에 걸쳐서 엄청난 상처를 남긴 겁니다. 만약 반딧불의 묘가 이렇게 우리도 괴로우니까 우리 잘못은 아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면 백퍼 우익 영화겠지만 적어도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아쉬운 건 전범들이 아직 반성을 안했고 현재 일본은 그 잘못을 되풀이 하려고 하고 있다는 메시지까지는 안 나갔다는 거죠. 제로센 애니가 이런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13/07/13 20:32
감독의 메세지를 첨언합니다.
....저는 국민학교 4학년 때 공습을 겪었고, 옥음방송(※)을 들었습니다. 개전 당시엔 어렸으니까, 잘 알고 있다고는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전쟁을 지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의 일중전쟁도 그렇습니다. 그 당시의 전승기행렬, 제등행렬은 결코 강제되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모두가 기뻐하며 참가한 것입니다. 요컨대 대대적으로 응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취한 것처럼 감동한 것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국민이 공유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반대한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감옥에 쳐넣어져 있었습니다...... ...... 그만 두지도 못하고, 질질.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방향전환을 시도했을 지도 모를 소수파는 감옥 안이었습니다. 야마토의 혼, 쏘아버리라, 일억의 불꽃이다, 본토결전, 신풍(카미가제)이 분다(※). 지금 돌아보면 우스꽝스럽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그저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모두의 맘 속에 있던 단순한 바람이 위정자의 그러한 비이성적인 헛소리를 지탱하고 있던 것입니다. '비국민'(※)이라는 것도, 특고(※)만이 사용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니가 그러고도 일본인이냐. 일본이 져도 좋다는 거냐.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 거냐. 비겁자!'라는 의미로, 약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이라고 단정짓곤 했던 것입니다. '져도 좋다는 거냐'라고 추궁받고서 '져도 좋다, 아니, 빨리 항복하는 편이 좋아' 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특히 이런 이야기를 할 경우, 청중이 일본인 뿐일 경우라도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 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타카하타 이사오 , 기념강연 중 발언 ------ 반딧불의 묘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는 어느 누구보다 일본 우익과 군부, 당시 전쟁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물로 감독의 의도가 오독해서 읽혀지고 있을뿐 누구보다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반딧불의 묘에서 강조되는건 일본의 비참함과 처참함이 아니라, 개념없고 생각없는 남매의 행동과 그로 인한 종말입니다. 일본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지요,
13/07/13 20:35
감독 스스로가 말했네요.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 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반전영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고 해석되는데 제가 틀린 겁니까?
13/07/13 20:38
딱 보고 싶은 것만 보셨네요. 저런 의도를 가진 사람이 만든 반전 애니메이션을 외국인이 봤을 떄 오독할 수 있다, 여지가 있다 등으로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하는게 더 웃깁니다.
13/07/13 20:37
사실 이게 맹점이라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전쟁 피해 국가에게 사과는 커녕 전범들의 반성의 기미도 콧빼기도 안보이고 있지요.......일본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이 그러한데 그 나라에서 나오는 반전 영화를 감독의 메세지가 확고하다 하여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 들이기 마냥 쉬운게 아닙니다...더군다나 우리나라같이 전쟁 피해 국가에서는 말이죠....반딧불의 묘를 오래전에 봤었고 2번정도 감상한 제 입장에서도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압니다만.....우익 영화다 피해자 코스프레다 하는 반응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것이 그렇게 꽉막힌 사고방식이냐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는 안다고 봄니다
13/07/13 20:41
전쟁의 참혹함만 얘기하냐, 거기에 더해 왜 전쟁이 일어났냐를 얘기하냐의 차이는 분명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포지션은 절대 후자라고 얘기할 수 없죠. 피해자코스프레라는게 결국 전자만 학습된 결과중 하나거고요. 이번 미야자키 애니도 걱정인게 이 부분입니다. 원인이 제외된 결과와 현상만 보여주는건 결국 어느정도는 눈을 가리겠다는거든요.
13/07/13 20:51
미야자키의 성향상 그렇게 직접적인 비판을 보여줄리가 없다고 본다면
아마도 제로센 영화 개봉후 한국에서 미야자키의 위상추락은 불을 보듯 뻔한 듯 합니다.
13/07/13 23:18
토리야마 아키라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드래곤볼같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만화는 더 이상 그릴 일이 없다고 했더라는.. 결국, 그가 들고나올 만화의 표현 수위에 한계가 있을 것은 뻔할 뻔자죠. 사실, 상업 만화는 다시 안 그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라도 감사할 따름이네요.
13/07/13 23:21
작품 내적인 인물 묘사로 봐도 반딧불의 묘가 일본인들을 피해자로 묘사한다고 보기 어렵죠. 거기 나오는 일본인들 다 쪼다 천치 같이 한심하게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헬게이트 일본, 개막장 일본이지 불쌍해보이는 사회상은 아니죠. 불쌍하게 그려지는 건 주인공 남매 정도인데(그나마 오빠놈은 도둑놈에, 모두가 체념하고 있을 때 홀로만 "대일본제국이 패했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할 정도로 현실 인식이 어둡고 우매하게 그려지죠. 동생은 돌멩이와 음식도 구분 못하며 돌 먹고 어이없이 사망...딱 2차대전의 일제의 말로죠. 무지몽매함의 귀결.), 얘네는 전쟁으로 막장화 된 일본 사회의 왕따이지 일본인 일반에 속하지 않죠. 일본인 일반은 인면수심으로 그려지고... 정답이 확실히 있는, 정독과 오독의 경계가 명료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여 오해할 여지가 있다기엔 메시지가 너무 분명해서.
13/07/13 23:35
흠...반딧불의묘..보신 건가요?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보시죠. 주인공 입장에서는 분명히 전쟁의 피해자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묘사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피해자들은 생각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전쟁도 과거에 있었다라는 팩트 전달 이외의 의미는 없고 오히려 그게 일본에 피해가 됐다는 뜻으로 전달되는 거 아닌가요,
13/07/14 00:03
전쟁의 참화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모두 피해자지요. 다만 감독은 위의 발언에서도 분명하게 그러한 피해를 불러일으킨건 당시 일본국민들 사회 전체에 퍼져있던 광기와 비이성이었으며 그에 대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꽤나 직접적으로 표현된 사안이라 봅니다.
13/07/14 00:05
바로 위에서 영화 놓고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봤냐고 묻기 전에, 댓글이나 좀 보시길 바랍니다.
댓글만 죽 읽어봐도 그런 소리는 안나오겠네요.
13/07/14 00:31
댓글 분위기가 굉장히 폭력적이네요. 심지어 '이건 논쟁거리가 아니고 정독과 오독이 정해져있다'라고까지 하는 대담함에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벽'이 어쩌고 하는 정도에 이르면 벌점 받아도 할 말 없는것 아닌가요? 분위기가 대충 대세가 정해졌다 싶으면 편승해서 악에 받친 폭언을 거리낌없이 쓰는 경향은 여전히 반복되네요.
충분히 논쟁적입니다. 전 이런식으로 우익시비에 대해 격렬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류가 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오랫동안 비판적 해석이 주류를 이뤘던 풍조에 대한 반동인지, 아니면 정서적 울림을 준 영화가 이데올로기적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곧 자신이 감동받았던 경험에 대한 공격으로 등치시키는 심리에서 비롯된건지... 전쟁의 참화와 가엾은 아이들, 이라는 흔해빠진 소재가 유독 이 영화에서 문제되는 이유는, 그곳이 다름아닌 전범국이기 때문이죠. 그렇기때문에 필연적으로 민감하게 이데올로기적 시비를 가릴 수 밖에 없고, 또 논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그 매체가 아동에게 정서적으로 더 어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면 말이죠. 전범국이라는 멍에는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이고, 그 부담속에 있는 예술가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전쟁참화와 비극을 다룬 예술작품으로서 '왜?'에 대해 침묵한다면 그 어떤 작품도 의혹을 피할 수는 없어요. 심지어 그 전쟁범죄의 직접피해자인 우리에게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하는 식으로 관대한 해석을 해줘야 할 하등의 의무따윈 없습니다. 해명해야 할 쪽은 예술가 쪽입니다. 극한의 고난과 비참한 죽음은 쓰나미나 지진같은 불가항력의 재난때문에 비롯된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분명한 인과가 있고, 그건 전범국 국민 자신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기억해야 마땅한 성질의 것이죠. 감독의 머리속을 열어 볼 수 없으니 '진정한 의도'라는건 영원히 오리무중입니다. 다만 작품으로서 드러난 것을 보고 해석될 따름입니다. 감독의 이력이나 과거발언은 확실히 작품을 해석하는데 유의미한 자료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단서인 것은 아닙니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좌익성향이나 반전발언이 곧 이 작품을 혐의에서 벗겨준다고 주장하는건 완전히 인과를 착란하는 것이고 설득력이 충분치 않습니다. 설령 반전영화로서의 의도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모호하게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단지 연출자의 직무유기나 만듦새의 허술함을 의미할 뿐입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다구요? 전혀요.
13/07/14 00:41
관대한 해석이 아니라 거의 확정적이지요. 댓글 분위기가 폭력적인 것과 별도로 이것이 이 작품이 그런 의혹을 받아 마땅한 작품이라고 말하는건 무리입니다.
감독의 직접적인 발언이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단서가 아니고 그걸로 혐의를 벗겨주는게 인과를 착란하는 것이라고요? 창조과학이 생각나네요. 미싱링크라도 찾아서 보여드려야 합니까?
13/07/14 00:49
뭐 근데 경험적으로 봤을 때에는 반딧불의 묘가 우익 영화라는 것에 드는 근거가 부실하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개 일본인들이 불쌍하게 그려졌다 ->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영화다 -> 우익영화라는 건데, 각각의 명제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도 꽤나 <논쟁적>일 뿐더러, 각각의 명제가 맞지도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불쌍하게 그려졌다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죠.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위에 코멘트 남긴 그대로고요.
https://pgrer.net/?b=8&n=45177&c=1604409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오답의 가능성이 없는 사안은 없다...는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왜 이게 우익영화로 볼만한 구석이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좀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네요. 뭐 저마다 주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고양이를 호랑이로 인지하는 것도 해석의 자유라고 한다면야 작품을 볼 이유 자체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므로, 모든 논의는 작품의 인과성과 개연성, 미장센의 배치, 서사적 흐름 등에 따라 일관성 있는 해석이 무엇이 되느냐에 맞추어져야지, 해석하는 이의 자의성과 개별성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13/07/14 02:47
사람마다 외설과 예술 사이를 가르는 기준이 다르죠. 물론 다각도로 접근하여 작품이 전달해주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보는 게 정석이겠으나, 그냥 그 자체로 별 의미 없이 보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그러한 것을 결정하는 건 작가의 권한 밖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예술 영화를 포르노로 보는 것처럼 반딧불의 묘도 우익영화로 볼 수 있으며, 오독보다 정독에 권위를 두는 건 일종의 자부심이 아닌가 합니다. 요컨대 기능적인 측면에서 원의미가 무의미해지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죠.
13/07/14 03:24
작가의 권한이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해석이 옳은 해석이 되려면 작품에 비추어보았을 때 아귀가 맞아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죠.
가령 시티 오브 갓 같은 영화를 갖고 감독인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이건 비폭력 반전주의를 이야기하려고 한 작품이다."라고 하면 모두 헛소리 취급할 겁니다. 작품의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고, 불일치하는 측면이 너무 많기 때문, 아니 일치하는 측면이 하나도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죠. 그 누구라도 그것이 작품의 실제 전개와 동떨어진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며, 설혹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구현된 게 하나도 없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할 겁니다. 무한한 수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기 나름,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식이라고 하면 한도 끝도 없지요. 이제 우리네는 더 이상 태백산맥 같은 작품을 공산주의 혁명을 조장하는 소설이라고 몰아붙이는 견해를 관용하지 않으며, 헛소리임을 숨기지 않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상상하는 건 자유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무리수이며, 그것이 올바른 해석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우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대개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해석의 자유는 해석의 자유고, 정독과 오독을 상식선에서 분별할만한 단서들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다들 긍정하기 때문이죠. 혹은 슬램덩크를 BL물이라고 하는 것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런 코드를 읽는 거야 본인 맘이겠지만 그게 작품에 얼마나 부합할지는 명약관화하죠. 이쯤 되면 굳이 작품을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읽고 아무렇게나 상상했을 때 그것 역시 보편적인 관점에서 정통한 견해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치면, 굳이 무언가를 읽으려 할 필요도 없죠. 그냥 상상만 하면 되는 겁니다. 아니면 창작을 하면 되겠죠. 이런 것이 다양한/다원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흐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사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자신의 인지가 되면서,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의식을 보게 되죠. 작품과 상관 없이 자기 스스로 울고, 웃고, 분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불쾌해하고, 납득하죠. 내가 느꼈으므로, 그것은 옳다-는 식입니다. 그럴 거면 굳이 작품을 안 봐도 얼마든지 울고 웃고 분노할 수 있는데.. 저는 반딧불의 묘 역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반딧불의 묘가 우익적으로 그려졌다면 - 가령 진주만 공습에 호의적인 시각이 그려져 있다거나 - 감독이 뭐라 말하든 우익 애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마다 수용방식이 다르니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 제 맘대로 반딧불의 묘를 주인공 남매의 근친을 다룬 작품이라고 읽어도 될 테니까요. 당연히 타당하지 않은 인식입니다. 물론 반딧불의 묘가 우익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고민할만한, 사려 깊고 근거가 충분한 주장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이를 수긍하고 제 주장을 철회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그런 건 드물더군요. 위에서 썼듯이 일본인들이 불쌍하게 그려지더라 -> 피해자 코스프레다 -> 우익애니다- 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굳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장 전개의 허술함을 쉽게 느낄 수 있죠. 반딧불의 묘는 충분히 단단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일본사회와 인간상, 헬게이트스러운 분위기, 무지몽매함에 대한 조소어린 연출 등등. 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리 모호하고 상징적이고 비의적으로 서사를 전개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에는 대부분이 동의할 겁니다. 감추어진 무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란 거죠. 그야 사람 생각은 다르기에 작품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기 마련입니다만, 그건 모든 발화에는 오해의 가능성이 있으며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모든 시험 문제에서 정답률이 100%는 될 수 없다는, 누구도 모든 이를 이해시킬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13/07/14 04:34
일단 기본적으로 반딧불의 묘가 우익 영화다를 주장하거나 말씀하신 내용처럼 그 안에서 충분히 단단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점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람마다 작품에 초점을 두는 방식이 다르며, 그것이 작품과 부합하는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작품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끼게 하였는가를 보는 것이죠. 즉, '내가 느꼈으므로 그것은 옳다'와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아래는 몽키.D.루피님이 적으신 댓글 중 일부입니다. " 반딧불의 묘가 반전영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피해국이기 때문이죠. 피해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만 합니다. 반성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걸로 느껴질 수 있거든요. (중략) 아쉬운 건 전범들이 아직 반성을 안했고 현재 일본은 그 잘못을 되풀이 하려고 하고 있다는 메시지까지는 안 나갔다는 거죠. " 이를 살펴보면, 작품 속에서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점이 피해 국가에 속한 독자에게는 '아직도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어떤 독자는 이러한 요소를 피해자 코스프레로 확장해서 그렇게 여기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그러한 것을 의도했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정리하면, 작품 해석과는 별도로 작품을 통해 해석하는 이의 자의성과 개별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 또한 작품 해석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07/14 05:31
해석하는 이의 자의성과 개별성이 감독이 단단한 방식으로 충분히 표현해낸 의도와 정반대로 향하는 '오독'의 형태를 지닐 때 그것에 대해서 '정독'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가 안 되는군요. 방법론의 일환으로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맞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드래곤 라자를 '후치가 아무르타트의 드래곤라자가 되어 세상을 구하고 평화를 얻는다. 라는 흔해빠진 무협지의 도식을 따라가는 소설' 이라고 비평한 하응백씨의 비평에도 저자의 의도나 표현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인 정독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겁니까?
13/07/14 10:41
위에서도 적었지만 우선 '오독이 옳다'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일단 권위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하는 바와 조금 어감이 다른 듯한데, 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통적인 의견' 정도로 썼다기보다는 '그것이 다른 대상을 (반강제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 정도로 사용했습니다. 즉, 정독하여 얻은 내용이 정론으로서 기반이 되있는 상태에서 다른 층위로 오독을 보는 것이지, 말씀하신 내용처럼 '오독이 정독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오독을 하는 주체를 따져보면) 저는 그 분야의 문외한에 가까운 범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데, 예로 드신 평론가쯤 되면 아무래도 조금 곤란하지 않나 합니다.
13/07/14 06:05
전범들이 아직 반성을 안했고 현재 일본은 그 잘못을 되풀이 하려고 하고 있다는 메시지까지는 안 나갔다는 것을 가지고 <아직도 반성을 안하는 모양이다 -> 고로 피해자 코스프레 애니다-> 고로 우익 애니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다소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 좌빨 -> 종북 정도의 흐름이랄까....물론 그렇게 읽고 그렇게 느낄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비약을 할 수 있으니까요. 혹은 자신의 선이해나 경험적인 판단에 비추어서 이해를 할 수도 있는 거기도 하고요. 그게 <본인의 입장에서는> 틀린 인식이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나 그게 주관의 영역이 아니라 정론의 영역으로 나올 수는 없는 거라고 봅니다. 정론의 지위를 획득하려면 좀 더 면밀하고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보네요. 위에서 든 예를 재활용하자면, 근친애 코드애 민감한 사람이라면, 혹은 근친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소한 장면도 놓치지 않을 테고, 얼마든지 반딧불의 묘를 근친애 코드로 읽어낼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작품의 성격에 대한 갑론을박과 논쟁의 대상이 될만큼 보편적인 설득력이 있는 사안은 아닐 겁니다.
13/07/14 11:02
옙,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읽고 그렇게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정론의 영역으로 나가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작품의 성격에 대한 논쟁을 한다기보다 아마도 각자의 감상을 분석하는 방향이 되겠지요. 따라서 과정이나 인식 자체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어야 할 이유는 따로 없을 듯합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모여서 여론을 형성했을 때에는 정론과는 다른 큰 힘을 지닐 수 있지 않나 하네요.
13/07/14 08:55
제가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쉰들러리스트 같은 영화도 악의 축 유태인들의 피해자 코스프레영화라며 비웃었던 안타까운 기억이 나는군요.
그리고 전지적 독심술을 발휘해서 뻔한 의도마저 숨은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게 훨씬 더 대담하지 않나요?
13/07/14 00:33
드래곤볼Z의 배틀물보다 손오공 성장 이전이야기와 닥터슬럼프 같은 명랑 활극이 더 재밌었는데 그런 거 또 장기 연재해주면 좋겠네요..
13/07/16 00:22
이미 뒷페이지로 밀려 버리기는 했지만 아는 선생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기에 소개합니다.
http://www.ghibli.jp/shuppan/np/009348/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하는 소책자 <열풍>인데(지브리가 바로 '열풍'이라는 뜻입니다), 7월호의 특집은 '헌법 개정'입니다. 특집과 관련해 모두 4개의 글이 있는데, 놀랍게도 두 개를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썼습니다. 憲法を変えるなどもってのほか (宮崎駿) 헌법을 바꾼다니 당치도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 9条 世界に伝えよう (鈴木敏夫) 헌법 9조(전쟁 포기를 명시한 소위 평화 헌법의 근간입니다)를 세계에 알리자 (스즈키 도시오) 戦争は怖い (中川李枝子) 전쟁은 무섭다 (나카가와 리에코) 60年の平和の大きさ (高畑勲) 60년에 걸친 평화의 거대함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는 다들 아시겠지만, 스즈키 도시오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사이며 수많은 지브리 애니의 프로듀서입니다. 또 나카가와 리에코는 토토로의 오프닝 가사를 작사했으며 벼랑 위의 포뇨의 모티브를 제공한 아동 문학가입니다. 요컨대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3인이 직접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죠. 이것으로 이들의 성향을 미루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럼에도 소재상 한국에서는 KARA님의 말씀처럼 우익 애니로 분류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애니를 봐야 뭐라고 말을 할 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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