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만큼 빠른 게 또 있을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각종 플래카드와 바닥에 붙은 안내문이 어느덧 축제가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커다란 캠퍼스에 평소와는 다른 생기가 느껴져서인지, 한 두 번 겪는 축제가 아님에도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
크게는 단과대부터 작게는 학과별로 각각의 축제를 위해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학 축제의 꽃인 주점은 기본이요, 말타기 놀이기구에 심지어 서바이벌 게임장까지 만들고 있었다.
"형!"
축제 준비가 한창인 학교를 둘러보는 와중에 선중이 녀석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현중이 녀석 이번 축제 때 주점 운영한다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아주 신나지 않습니까? 기대되지 않습니까? 두근두근."
내게 다가온 현중이는 한껏 들뜬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상한 춤을 춰댔다.
이 놈하고 엮이면 이상하게 부끄러움은 내 몫이란 말이지.
"이제 다들 천막치고 있는데 신나기는 무슨."
"어허. 너무 섭섭한 말씀 아닙니까? 손수 치는 천막부터 주점 재료 운반까지. 이 준비 또한 축제인데요?"
"알았으니까. 그 이상한 춤 좀 그만추면 안될까?"
춤인지 괴동작인지 구분이 안가지만.
"이게 허허.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 자꾸 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네요."
"미친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하하."
피식.
넉살하고는.
"땀내나는 축제 준비 속에 꽃피는 우정! 그리고... 사랑! 하하하."
"어쩐지. 그게 목적이었냐? 복학생 놈이 갑자기 뭔 주점 운영을 하겠다고 하는지 의아했는데."
"...!"
저렇게까지 표정에서 티를 내니 모르는 척 넘어가주고 싶어도 넘어갈 수가 없다.
"티..."
"응?"
"티나요?"
"엄청... 엄청 나... 임마."
딱.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현중이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오. 아파. 꼭 하얀이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
"..."
알아서 이렇게 속내를 말씀해주시니 감격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정말 이렇게 가차없이 멍청하기도 어려울텐데.
이런 놈과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니,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비, 비밀이에요?"
"그래."
굳이 내가 아니라도 네가 잘 말하고 돌아다닐 것 같다.
"어쨌든 하얀이가 아니더라도 대학교 축제란 게 항상 제 인생에 머무는 게 아니잖아요.
이것도 다 이 맘때 소중한 추억이고 경험인데, 하얀이 아니었어도 했을거라고요."
멍청하다가도 이럴 때 하는 말은 또 그럴싸하다.
"뭐 일부분 동감한다."
"그렇죠? 하하. 어쨌든 형도 주점오실거죠? 언제까지고 형 인생에 있는 학교 주점이 아닌데!"
이따금씩 생각하지만, 현중이 녀석은 영업을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
"그래, 간다. 가. 몇 시 부터인데?"
"하하하. 첫 날은 6시 부터에요. 그 이후로는 4시고요."
수영이와 만나기로 한 건 어차피 내일이었다. 축제 하루쯤은 주찬이나 현중이와 생각없이 노닥거리는 게 좋겠지.
"너 일해야하는데 괜찮아?"
"에이. 제가 복학생 아닙니까. 또 형이랑 주찬이형 오면 저 아니면 누가 상대해주겠어요?"
"내 생각엔 너 아니어도 많을 것 같은데?"
"흠흠. 거 참 말을 섭섭하게 하시네..."
적어도 주찬이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이따 뵈요. 형. 저는 바빠서 이만!"
현중이는 대화를 마치기가 무섭게 헐레벌떡 상경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 지으며, 주찬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왜?
"오늘 축제인 건 알고있지?"
- 알지. 현중이한테 이미 잔뜩 영업당했다.
역시 현중이다.
"여섯시에 봐. 그래도 후배들이 열심히 준비하는데 매출 좀 올려줘야지."
- 크. 언제부터 그렇게 후배사랑하셨다고? 근데 그... 수영씨랑은 약속 없냐?
"내일 보기로 했다."
- 그래? 잘 됐네. 아마 나도 이게 너랑 현중이랑 보내는 마지막 축제이지 않을까 싶은데 제대로 놀아보자고.
그러고 보니... 주찬이는 이번 학기 마치고 아프리카로 장기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고 했었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오른다. 문뜩 가장 막역한 대학교 친구와 마지막으로 보내게 될 축제란 생각에
기분이 싱숭해진다.
"알았어, 속 제대로 비우고 와라. 오늘 달려보자."
- 그래 있다 봐.
"선배!"
"어?"
전화를 끊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가 내 어깨를 붙들었다.
"왜?"
"그냥 보이길래요.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오늘 주찬선배랑 술 마시려나봐요?"
"응."
"흐음..."
내 대답에 연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째릿한 눈빛을 날렸다.
"뭔데?"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생각?"
"선배가 이렇게 태평하게 축제 때 술이나 즐길 때인가 싶은...?"
컥. 뜬금 없이 날카롭다.
안 그래도 소희문제로 퍽퍽한 기분을 제대로 찌르고 들어온다. 수영이가 눈치 챌 정도였으니,
연주도 역시 당연히 그날 밤 소희와 나 사이에 일을 예측하고 있겠지.
"거기에 수영씨도 만나기로 했다구요...?"
따뜻하지만, 그렇게 더운 날씨도 아닌데 땀이 삐질삐질 난다.
"의외로 실망이네요. 선배는 적어도 안 그럴줄 알았는데."
"나도 의외다. 그래도 이게 어떻게 생각한다고 단시간 내에 어떻게 될 게 아니더라고. 일단은..."
"흐음."
내 대답에 연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뭐 어쩌겠어요. 그리고 제가 뭐라고 주제넘게 참견할 일도 아니고요."
계란유골이랄까... 뭔가 말 속에 뼈가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그런가... 모르겠네요. 헤헤."
어쩐지 실없는 연주의 웃음이 목에 걸린 가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잘 됐네요. 오늘 저도 여섯시에 같이 봐요. 아! 은성이도. 이따 봐요!"
"응? 야! 지연주...!"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사라졌다. 일방적인 통보군.
후. 갑자기 지난 주의 술자리가 오마쥬된다. 스멀스멀 피부를 타고 오르는 불안감에 몸을 떤다.
설마... 오늘도 그때처럼 그러랴 싶지만.
"에휴. 나도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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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연참하고 싶었는데 하루 걸러버렸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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