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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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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30 13:06
와, 전편의 조훈현9단의 이야기와 더불어 한편의 서사를 읽는 듯 장엄함이 이 글 속에 품어있음을 느낍니다..^^
한사람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대의 시대적 배경과 아울러 철저한 분석까지,, 정말 진정한 바둑의 팬이 아니고서야 나올수 없는 그런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욱더 바둑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글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03/08/30 13:18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데이트~~ (어이어이;;;)
어쨌든 기다리고 기다리던 brecht1005님의 속편이 올라왔군요. ^^* 저도 in-extremis님 처럼 단숨에 읽어내려갔답니다. ^ ^!! 만약 힘들다고 여기서 그만 두시려한다면... ... ... (성우 장정진 씨의 "달려라 하니" 홍두깨 선생 버전) 데이트 신청할 꺼에욧~! +_+;; ㄴ(ㅇ_ㅇ)ㄱ=3=3=3=3 재미없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텨텨텨텨;;; p.s. 몽패님, 죄송합니다. (_ _);;
03/08/30 13:41
오.. 변성철 선수와 비견이 되는군요...^^
성질상 김동준 선수와 임정호 선수의 그것과는 다른 공격 스타일이죠... 재미있습니다. 잘 읽었어요~ ^^;;
03/08/30 14:29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_ _) 아.. 그리고 어제 삼성화재배오픈 16강이 있었죠. 조국수님,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박영훈 4단이 8강에 올랐습니다.(조국수님은 송태곤 5단의 대마를 때려잡고 불계승을..+_+) 유창혁 사범님은 중국의 후야오위에게 져서 떨어지셨죠. 삼성화재배에 이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까지.. 덕분에 어제는 종일토록 하루가 심심치 않은 날이었습니다.^^
03/08/30 15:42
pgr에 처음으로 흔적을 남기는군요..'바둑'이 소재라서-세번째만에-용기를 내어봅니다..^^
한국의 바둑기사들이 요즘 세계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만.. 조금 오래된 이들에게는 예전-1980년대 후반 이전-일본의 정상급 기사들의 바둑에서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집이 남아도 모양이 꼴사나우면 던졌던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의 '美學'이나.. 이기건 지건 무조건 허공에서 뜬구름 잡는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秀)의 '宇宙流' 같은 거죠..^^; 기회가 되신다면 일본기사와 관련된 것도 한 번 조명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현재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치고 있는(어제 잠시 주춤했지만..^^;) 강민 선수의 경우..그 스타일을 보자면..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의 '자유분방함'이 연상됩니다.. 정석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으로 판을 운영하며..그러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죠.. 이윤열 선수나 서지훈 선수에게서 이창호 九단의 모습을 보는 저로서는..그런 강민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이윤열 선수나 강민 선수 모두 너무 좋아하기에..응원은 생략하고 화면만 조용히 주시하던 어제 경기도.. 조금은 덜 치열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그들만의 스타일은 선명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후지사와 선생에 대해 얘기를 조금 더 보태자면.. 일단 조훈현 九단의 일본 유학시절..몸이 불편한 스승 세고에 겐자꾸(瀨越憲作)를 대신하여 실전지도를 많이 해주었던 사람이죠..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집에서 '츄리닝' 차림으로 나왔다가..문득 '훈현이가 보고 싶어서'..주머니에 '양주 한 병' 꽂고..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오곤 했었답니다.. 현재까지도 일본랭킹 1위의 자리인 초대 棋聖에 올라..5연패를 달성하여 명예기성이 되고..6연패의 길에서 그 유명한 '3연승 후 4연패'신화의 조연이 되며..조치훈에게 기성을 넘겨줍니다.. 기성 시절..'난 1년에 네 판만 이기면 돼'라는 말과 함께..항상 술을 가까이 하고 경륜장에서 상금을 탕진하다가..기성전이 다가오면 술을 딱 끊고 집중했다고 하지요..--; 그에 앞서 한중일 3국의 바둑천재를 제자로 키워 모두 대성의 길로 이끈 세고에 선생도 현대바둑에 큰 공헌을 남긴 이로 기록되겠죠.. 일생 가르친 제자가 딱 3명..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朗), 오청원, 그리고 조훈현입니다.. 오청원이 師兄이고 이창호가 제자인 조훈현 九단..진정한 '거인'이라는 생각이.. 에구..부족한 글재주가 글의 마무리를 재촉하는군요..^^; 좋은 글 감사 드리고..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03/08/30 16:41
역시 좋은 글로 저를 즐겁게 해주시는군요, 먼저 아부성 인사(__)
저에겐 전설속의 강자 변성철 선수보다는 이재훈 선수를 언급하셔셔 딱 들어맞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프로토스로 이보다 더 잘할 순 없다!!에서 이보다 더 억울할 순 없다 ㅠ.ㅠ로 급전직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운만 조금 따라준다면 이재훈 선수도 우승후보란 말이닷!! 버럭버럭!!). 하지만 그래도 이재훈 선수의 경기는 늘 탄성을 불러내는 탄력적인 힘과 두터움을 가지고 있기에 오늘도 저는 이재훈 선수에게 올인!!!(본선에만 올라가봐 다 죽었쓰-_-) 이 글이 마무리되면 추천게시판으로 갈 것이다에도 올인!!!
03/08/30 17:50
저는 바둑을 둘줄도 모르는 사람인데도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제가 원래
이런 종류의 글을 좋아하는 편인데..아무튼 정말 흥미진진 하게 일고 있습니다..저도 이런 글은 추천게시판으로 가는데는 필요충분 조건이지 않나 싶습니다..^^
03/08/30 17:52
후지사와 슈코.... '초반 50수는 내가 최고'로 유명한 분이시죠
세계 최고의 화려한 감각으로도 유명한 분이셨고 조훈현 9단의 실전스승으로 조국수님의 화려한 기풍이 후지사와 슈코와 굉장히 닮아있죠 게다가 조국수님이 대국 중에 다리를 떨어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도 일본에서 바둑 배울 때 라이벌 조치훈 9단은 도장에서 엄숙하게 배운 반면에 조훈현 9단은 후지사와를 따라 부동산에서 바둑을 둬서 조치훈의 정자세와는 대조적인 대국 습관을 가지게 되었죠 이런 대국 습관들로 인해 81년돈가요.. 조치훈이 일본에서 명인위를 차지하고 금의환향을 해서 조훈현과의 라이벌전이 한국에서 티비 대국으로 벌어졌는데 엄숙한 조치훈과는 대조적으로 다리를 떨며 바둑을 두던 조훈현은 팬들의 질타를 마니 받고 그 대국에서 2:0으로 지게 되죠 술이 약해 바카스도 못 먹는 조훈현은 처음으로 소주를 먹고 한 겨울 길바닥을 기고 있는 것을 주위 동료들이 발견해 여관으로 끌고갔던 적이 있었죠 조치훈은 일본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조훈현의 정신적 라이벌로 조훈현이 기성전, 명인전, 본인방전에서 활약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결국 군대 문제로 귀국하게 되고 나라에서 바로 다음 해 조치훈에게는 군 면제를 시켜주는 묘한 인연으로 각각 다른 곳에서 활약을 하게 되죠 그런 조치훈에게 당시 한국 바둑의 1인자 조훈현은 대국료를 10:1로 받는 굴욕 속에서 2:0으로 지게 됨으로써 괴로운 슬럼프에 빠집니다 이 후 조훈현은 절치부심 89년도 응씨배를 우승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현재까지 조치훈과 세계대회에서 7번 마주치게 되죠 모두 조훈현 9단의 승리.... 81년도 2:0 패배 이 후 7연승....... 바둑팬들에겐 아련하기만한 운명의 두 승부사.... 조훈현과 조치훈..... 어제 제 8회 삼성화재배 16강이 끝나고 8강 대진이 결정되었습니다 조훈현 대 조치훈....... 그 둘이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됩니다
03/08/30 21:57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기전 이라는 표현이 아직도 맞지는 않는것
같습니다만 '국수'라고 하는 타이틀은 현재의 기성(棋聖)전이 생기기 이전의 일본의 본인방 내지는 명인 타이틀에 비유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유명한 기전으로는 이외에도 명인전, 왕위전 등이 있었지만 최강자라면 누구나 노리는 그런 기전으로는 당연히 국수전을 생각했습니다. 조남철 사범님의 9기 연패, 이은 김인 사범님의 7기 연패, 윤기현 사범님. 하찬석 사범님의 각각 2기 연패에 이어 조훈현 사범님의 10기 연패 기록이 있지요 ^^ 당시 어느 기전이건 프로 바둑 기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전이 없었겠지만 공공연히 당시 한국 랭킹 1위 기전은 국수전으로 생각되고 있었고 국수 타이틀을 따는 것이 랭킹 1위로 오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죠. 따라서 국수 타이틀을 차지했던 기사분에 대해서는 *국수 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서봉수 사범님의 경우에는 명인위를 5기 연패한 까닭에 서명인 이라는 칭호가 뒤따랐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면 '국수'라는 것은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기전이름이고 당대 최고의 기사에게 붙여주던 칭호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을거 같습니다.
03/08/30 22:06
후후.. 매트님 김인 사범님께서는 국수 6연패하셨답니다..ㅇㅇ/ '국수'라는 칭호는 타이틀이 생기기 이전부터 당대 최고수로 널리 인정받았던 분에게 주어졌던(제가 알기로는 조선시대부터였다던가.. 기억 안납니다 ㅡㅡㅋ) 것입니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구요. 그러다가 최초로 신문기전을 만들었던 동아일보에서 첫 타이틀 이름을 '국수'로 정하면서 그 전통의 측면이나 명칭이 갖는 역사적 의의 등을 기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연히 '국수'라는 타이틀이 많은 기사들의 동경을 받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사들이 한번쯤 꼭 차지해보고 싶은 타이틀로 '국수'위를 꼽습니다.^^
p.s. 매트님. 유사범님에 대해서 썼는데 보답으로 리겜이라도 한번..+_+
03/08/30 23:06
아 제가 틀렸군요 -_-;;;; 왜 7연패로 생각했을까나 ???
아 왕위 7연패로군요 -_-;;;; 그리고 유창혁 사범님에 대해 써 주신거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_ _);;; 이정도 감사 표시면 리게임 안해도 될런지 모르겠군요^^ 제가 브레치님같은 고수한테 1승 무패 같은 훌륭한(-_-) 기록을 구지 리게임같은 형식을 빌어 무너뜨리고 싶어하진 않겠지요??? 푸하하하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03/08/31 12:48
좋은글 잘 봤습니다.
유창혁 왕위 요즘 살이 많이 올랐더군요^^ 몇년전부터 국내기전에서는 슬럼프였는데(물론 세계대회에서는 여전히 세계톱이지만) 올해 패왕전에선가 이창호 9단을 3:0으로 완파하는걸 보니 통쾌하더군요. 유창혁 왕위가 아니면 누가 이창호9단을 그렇게 스트레이트로 몰아부칠 수 있을지.....(공교롭게도 같은날 파나소닉 온게임넷스타리그 4강에서 임요환선수가 서지훈선수에게 0:3으로 졌었죠. 절대강자인 이창호,임요환이 같은날 0:3으로 깨진 날이라 생각이 나네요.)
03/09/03 04:19
brecht1005님께 ..
님의 좋은글 잘 읽고있습니다. 님 글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 님 글 중에 대부분이 이광구의 '바둑이야기' 라는 책에서 많이 발췌하신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유창혁9단에 관한 글들은 대부분 책들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하신것 같습니다. --;; 다른 글들은 모르겟지만 제가 유9단의열렬한 팬이라서 이광구의 '바둑이야기' 중에서도 유창혁편에 관한 글을여러번 읽어서 바로 알수있었습니다. 첫편에 분명히 여러책에서 발췌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번글은 대부분이 그 책의 내용그대로이면서 스타에관한 이야기부분만 첨가한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담부터는 어느책에서 발췌 해왔는걸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책을 쓰신 이광구님이 직접올리신 글인가 싶어서 회원정보를 보았지만 나이로 보아서 아닌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03/09/03 09:56
hisy님//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것도 없는 글을 읽어주신데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광구의 바둑이야기'는 출간된지 약 10년이 넘은 책입니다.(90년도 무렵에 제가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애석한 일이지만 저는 그 책을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책에서 발췌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결코' 없습니다. 다른 이의 노작의 내용에서 영감을 얻거나 어디서 봤다는 것이 확실히 기억이 나는 내용이라면 어느 분의 의견 혹은 창작이라고 명기를 할 수 있지만 나머지의 내용에서 '~했다고 한다'라는 말을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경우는 대략 세 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로 널리 알려져서 딱히 누구의 의견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경우, 그 의견을 처음 피력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 그리고 제가 어디에선가 봤지만 어디서 본 내용인지에 대해서 확실히 밝힐 수 없는 경우입니다. 제가 월간 바둑 등 바둑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한 지는 대략 15년전부터이며, 읽은 권수로는 대략 100권은 넘지 않을까 합니다만, 읽은 책들은 대부분 기원이나 서점에서 사지 않고 읽은 것들이며, 그나마 사서 읽었던 책들도 현재 는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인용이나 발췌 자체를 할수가 없는 여건이죠. 첫편 둘째편까지 글을 썼을 떄도 한분이 저에게 '인용을 했다면 출처를 밝히는게 도리다'라는 쪽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책을 카피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일단 말씀드렸구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바둑관련 사이트는 한국기원 기사정보 혹은 기전정보에 통계를 찾으러 갈때 아니면 접속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hisy님께서 '이광구의 바둑이야기'라는 책 이외에 다른 바둑 관련 서적을 많이 읽으셨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저는 주로 제가 읽은 책이나 글들 중에서 그 기사에 대해 평론가들이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기억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이 읽은 부분이 기억도 많이 날 수밖에 없으며, 바둑전문가가 아닌 저의 입장에서는 공신력 있다고 판단되는 의견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요. 제가 서술한 내용이 비단 그책에만 존재하는 내용이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유창혁 9단의 공격이 '탄력적이다'라고 서술한 부분은 님이 말씀하시는 '이광구의 바둑이야기'에도 나와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내용은 제가 알기로 이광구 선생의 의견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홍렬 선생의 의견으로 인용을 했지요. 제가 잘못 알고 있을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hisy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발췌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느 부분이 그리도 똑같기에 '복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발췌'라는 말을 확신을 가지고 쓰시는지에 대해서('복사'라는 말도 쓰셨군요.) 님이 원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글을 제시, 비교하여 밝혀주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글쓴이(님은 글을 복사, 발췌한 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가 글에 들인 정도의 시간은 들여야 도용이나 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다 대조해보시고 난후에 댓글을 쓰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원문'을 확인할 길이 지금은 없는 저도 얼마나 비슷한지가 궁금하네요.
03/09/03 12:00
혹시 답을 안 주실까 노파심이 생겨서 한 말씀만 더 드리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절이나 도용의 의혹을 제기하신 후에 그에 대해서 책임있는 답을 내놓지 않는건 인터넷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형태의 잘못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님의 댓글을 읽고 저의 답글을 읽지 않은 분들은 님이 말씀하신바를 곧이곧대로 믿으실 수 도 있겠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신 만큼, 공개적인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03/09/04 08:16
먼저 저도 이광구님의 바둑이야기라는 책을 현재 가지고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곧 고향집에 내려가면 그책이 있으니 다시한번보고 또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췌가 아니고 복사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님이 쓰신 탄력적이다 라는 부분만 보고 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앞에도 얘기했듯이 유창혁편에 관한 부분은 여러번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은 거의 기억하고있습니다 물론 글자 하나하나까지 기억은 못하겠지만요. 먼저 영원한 소년 유창혁 부분도 이 책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바둑프로기사분들이 창혁이 창혁이 하는 부문도 그 책에서 봤습니다. 기계에서는 이창호9단은 부를때 창호 , 창호하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유창혁9단은 부를때 창혁이 창혁이 하고 불렀다고 그책에 나와있었던것 같군요. 먼저 답은 안주실까바 노파심생긴단는 말을 듣고 바로 글을 올립니다. 그책에 관해서는 고향집에 며칠있다 내려가면 바로 또 비교해보고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대왕전우승부문, 그리고 이창호와의 라이벌관계, 세계최고의 공격수, 기복이 심한 낙관파 이모든부분이 그책에 나와있습니다. 아 그리고 질이 높은 바둑도 분명 그 책에 나와있었습니다. 그래서 님글을 보고 바로 그 책이 생각났습니다. 님의 어느부분이 그책과 비슷하냐고 물어보신다면 방금 얘기한 부분들이 비슷하다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가 그렇게 똑같길래 복사라는 말을 썻냐고 하신다면 제기억에도 한계가 있기때문에 모라고 할말이 없군요. 다만 그 책을 다시 한번 보고 님글과 비교해보고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분명히 제가 보기에는 님글이 그 책에서 상당부분 발췌했다고 생각이 들었기때문에 글을 올렸던겁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님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 기억만으로 복사라는 글을 성급히 올린점은 사과합니다.
03/09/04 10:17
결국 대조해보지는 않으셨다는 말씀이군요. 우선, 대왕전 우승, 이창호와의 라이벌관계, 기풍면에서 공격적이며, 낙관파로서 성적의 기복이 심하다. 이런 유창혁 9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내용들을 빼고 그럼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라는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유창혁 3단의 대왕전 우승과 유창혁이창호의 라이벌관계는 유창혁 9단에 대한 글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바둑사를 쓰더라도 빠지기 힘든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서술된 글이 비단 그 책하나라고 생각하십니까? 기풍에 대해서는 필히 서술이 들어가야 하는 글인데, 그럼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썼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유창혁 9단이 청년기까지도 계속 소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광구 선생이 책을 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지금은 옛 기전이 된 87년 12기 기왕전에서 유창혁 3단이 본선에 진출해서 양재호 당시 5단(양5단이 아니면 황원준 5단이었던 것 같지만,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과 본선 첫 대국을 벌일 때 윤기현 당시 8단이 '창혁이.... 창혁이라..'라는 독백을 하면서 어린이 시절에 어머니 손을 잡고 대회장에 나타났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을 당시 조선일보 관전기자였던 박치문 선생이 기왕전 관전기 가운데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최소한 발췌나 복사라는 말씀까지 쓰시고자 했다면 글을 대조해보고 문장 한개라도 같은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문제를 제기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내용으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저는 제 스스로 독창적인 의견을 낼만큼 전문가가 아닙니다. 간혹 제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글에 넣을 때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바둑에 관심이 그동안 있었던 사람이라면 대략은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제 글이 다음의 '프로바둑기사사랑회'라는 카페에 옮겨져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곳으로 가서 확인해봤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도 글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바둑평론가들이 평하는 유창혁 9단에 대한 내용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발췌, 복사의 의미는 남의 글을 그대로 베꼈다는 말입니다. 제가 저의 독창적인 의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의견인 것인양 포장해서 글을 쓴 부분이 있는지, 혹은 남의 문장을 제가 쓴 문장인것처럼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난할 의도가 있는 것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 역시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03/09/05 16:41
과거 소년바둑대회(?) 99년도 즈음 초4학년에 나이로 대회에 나갔지요,,,
아마 시예선일꺼라는 생각이드네요(기억이 ,,,,).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별 실력도 없었지만 경험이라는 생각에 나가 보았지요, 그때 첫 3명과 조를 지어 대전을 했는데 3패를 했지요. 아마 긴장했던 나머지 공집인가? (다 잊어버림).. 백 5집반이었지요. 근데 계산을 안해서 진것 같은데, 돌아와서 후회 많이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상(?)으로 유창혁9단의 비디오를 받았지요, 다음 바로 바둑을 접었습니다.(?) 말을 잘못해서 ,,,, 용어도 생각이 안나고.... 요즘 바둑도 잘 안보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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