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3/11/03 11:09:09 |
Name |
안개사용자 |
Subject |
[픽션] 폭투혈전! 틈을 노려라!!! 8부 |
<폭투혈전! 틈을 노려라!!!>
Chapter 8. Do you like a Game?
*********************************************************
"허억..."
"하아... 하아..."
주 전원이 차단되어 산소공급기의 작동이 멈추자 박스 안의 게이머들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임요황과 홍진풍의 상태를 일반 관객들과 해설자들이 알 수는 없었다. 점점 공기가 탁해지고 있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홍진풍은 끊임없이 멀티를 활성화시키고 있었고 임요황은...
"아! 임요황선수! 임요황선수의 커맨드센터옆에 뉴클리어 사일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를 뽑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임선수! 벌써 경기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뉴클리어 쇼라도 보여주려는 건가요?"
불이 번쩍이던 임요황의 배럭에서 잘생긴 고스트 하나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Somebody calls for an Exterminater?"
"그래! 내가 널 불렀어."
임요황은 모니터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화면 속의 고스트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너... 너의 이름은 부르스로 지어줄게."
"임요황선수 모니터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거죠? 아까 있었던 전기 충격으로 정신이라도 나간 건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유닛에 이름 지어주고 있는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임요황선수는 유닛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남달랐었죠. 유닛과의 교감이 극도로 발달된 경지에 오르게되자 그는 유닛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전투에 있어서 최대의 컨트롤을 내기 위해서는 유닛과의 교감이 필요하고, 교감을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애정 어린 대화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한 때 임요황선수가 전성기 시절에 쓴 '10일 안에 테란유닛과 대화하는 법'이 서점을 강타한 사건이 있었죠. 그 인기에 편승한 '스타쿠 테란 유닛회화' 관련서적이 불티나게 팔리자 '스타쿠 저그 유닛 회화'도 나왔지만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저그 쪽 회화를 마스터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드론의 할아버지'로 불리던 임군태 선수가 저그언어로 드론들에게 훈계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린보이 김정만 선수가 한때 스타쿠에 나오는 메딕이 자꾸 자기는 안보고 마린들만 쫓아가자, 질투심에 불타올라 일부로 마린들을 성큰밭으로 몰아넣었다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죠. 초절정 경지에 오르는 모든 게이머는 유닛과의 교감에 오는 폐해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식의 주화입마에 걸리기 십상이거든요."
"아... 임요황선수의 뉴클리어 사일로에서는 핵미사일이 제조되고 있는지 불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뮤탈, 스컬지로 사방이 포위되어 있는 섬멀티 지역에서 그 핵을 도대체 어디다 쏘려는 걸 까요? 쇼맨십을 위한 자살용인가요? 아니면 적 유닛이 가만히 정지되어 핵 맞기를 바라는 건가요?"
"....모든 답은 핵이 완성되는 순간에 밝혀지겠죠."
박경낙이 꼬여져 있던 자신의 팔다리를 푸는 동안 김동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박경낙... 우리를 막을 셈이냐?"
"후후... 김동쓰씨, 박정설씨... 당신들은 분명 용감하기는 하지만 상황판단에서는 약간 모자라는 면이 없지 않군요."
"뭣이!"
"이제 곧 이블컴퍼니 직원 수십 명이 이 곳을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각자 손도끼, 쇠파이프, 망치, 사시미를 들고서 말입니다. 그렇게되면 당신들은 발전기실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들과 싸워야 될 겁니다."
"그래도 우린 갈 것이다!"
박정설이 한 걸음 걸어나오며 주먹을 불끈 쥐자 박경낙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어떻게든 직원들의 접근을 막아볼 테니 두 분께서는 어서 발전기실로 달려가십시오."
"!!!!"
김동쓰는 박경낙의 말에 놀라 간만에 눈이 동그래졌다. 박경낙은 오른 손으로 곱게 단정되어 있던 그의 머리카락을 헝크뜨리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전 알다시피 예전에 '두빛'이라는 유소년 프로게이머 육성단체 수석 코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로운 저희 도장에 이블K가 한밤중에 몰래 들어와 저희 집 도장 간판을 부수고 도망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언론 상에서도 대대적으로 크게 다루어지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경찰병력 5000명이 투입되어 대규모의 수사가 벌어졌지만 끝내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하고 종결되고 말았죠. 하지만 전 이블K가 그랬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블K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이곳에 잠입해서 이블K에게 경락맛사지를 해주며 이제껏 회사의 정보를 수집, 비밀단체에 보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이 바로 이블컴퍼니를 무너뜨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도 알게되었고 그래서 전 방금... 홍진풍 씨에게 기억을 각성시키는 약을 주사했습니다. 물론 기억을 회복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진풍씨 그 자신에게 달려있기는 하지만요."
박경낙이 소매를 걷어올리며 한발자국 앞에 섰다.
"여기는 저에게 맡기시고 두분은 어서 가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발전기실은 지하3층 오른쪽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습니다. 어서!"
"박경낙......"
김동쓰와 박정설은 잠시 박경낙을 쳐다보다가 망설이지 않고 그를 지나 지하로 달려갔다. 1분쯤 지났을까? 중무장한 이블컴퍼니 직원들이 복도에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박경낙은 그들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쏘아보내며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직원 중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박경낙! 네가 지금 이블컴퍼니를 배신하려는 것이냐?"
"파팟~~~~"
아무런 대꾸 없이 박경낙은 손가락 끝에 기를 집중시켰고 그러자 손가락 끝이 붉게 변하더니 조금 부풀어올랐다. 그것을 본 이블컴퍼니 소속 직원들이 긴장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 조심해! 남두경락권이다!"
"저것이 남두경락권?"
남두경락권! 1000년 전 경락마사지를 하던 어느 안마사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이 전설의 권법은 실제 계승자는 없어 실전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권법은 사라지지 않고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었으니 박경낙이 바로 남두경락권의 18대 계승자였던 것이다. 남두경락권이란 인체의 180개의 요혈을 거의 동시에 지압함으로서 상대방의 뼈마디를 시원하게 하고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공포의 상승무공이었다. 일단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남두경락권에 당하게 되면 신체가 노곤해지고 세상만사가 귀찮아져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남두경락권의 절대적인 힘을 알기에 이블컴퍼니의 직원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박경낙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께서 오시지 않으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경낙은 번개같이 달려들어가 가장 앞에 있는 직원 3명에게 달려가 6.8초만에 그들의 요혈을 모두 제압해 나갔다. 온몸이 편안해진 3명의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행복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이렇게 되자 이판사판! 직원들은 파이프와 사시미를 들고 그대로 박경낙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좁은 복도를 놓고 이 곳을 통과하고자 하는 수십 명과 그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한 명의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한편, 김동쓰와 박정설은 발전기 실 문 앞까지 도착했다. 김동쓰는 3회전 회전발차기로 발전기실의 문을 부수자 곧 작동을 멈춘 거대한 발전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동쓰와 박정설은 서둘러 여러 가지 스위치를 눌러보았지만 도무지 이 발전기를 가동시킬 수가 없었다. 김동쓰는 발전기에 두 손을 올린 채 박정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 힘을 발휘해야 할 것 같구나..."
"몸 안에 있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이 곳에 주입하려는 것입니까?"
"그래... 아마 고통스러울 것이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나를 따라 올 필요는 없다. 이게 내 진심이다..."
박정설은 미소지으며 김동쓰처럼 발전기에 두 손을 올렸다.
"후후후... 형님이 하시면 저도 합니다. 이것이 제 진심입니다."
김동쓰는 말없이 웃으며 서서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기를 발전기에 주입시켜갔다. 박경낙이 과연 이블컴퍼니 직원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발전기를 돌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전력공급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후의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박정설과 김동쓰의 손에서 사이오닉 에너지가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크오오오옷!"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예에에에에에에~~~~~~~"
흐릿해지던 모니터 화면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산소가 공급되자 임요황은 다시 반쯤 감긴 눈을 떠서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승부를 걸 마지막 시간이 왔다.
"부르스.... 이제 네가 나서줄 차례야...."
"Finally."
"미안하지만 나를 위해서 핵 미사일 하나 쏴줄 수 있겠니?"
"I hear that."
한가로이 바위에 앉아서 임요황과 대화를 나누며 핵미사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던 브루스가 드디어 일어났다. 그는 저벅저벅 섬멀티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가더니 공중에 떠있는 뮤탈과 스컬지들을 향해 천천히 총구를 가리켰다.
"지잉..."
"Nuclear Launch Detected..."
"임요황선수! 홍진풍의 공중유닛이 밀집된 장소에 핵을 조준합니다. 아아! 무의미한 시도입니다. 홍진풍선수가 피하면 그만 일텐데요..."
홍진풍은 갑자기 기이한 행동을 취한 임요황의 의도를 생각하기에 앞서 본능적으로 핵미사일 조준지역으로부터 공중유닛을 빼냈다. 바로 그 때 고스트 뒤에 숨겨져 있던 드랍쉽들과 건물들이 일제히 핵미사일 조준지역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임! 임! 임! 선수!!! 지금 무슨 짓을!!!!! 드랍쉽과 건물들을 핵미사일을 조준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설마!!!"
드랍쉽들과 이동중인 건물들이 핵미사일에 맞기 직전, 그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고스트의 핵조준이 취소되었다. 이렇게 되자 홍진풍의 공중유닛은 결국은 임요황의 부대와 건물들의 이동경로를 열어준 셈이 되었다. 간발의 차를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이었던 것이다.
"아! 핵조준은 애초부터 속임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순간적인 틈을 이용하여 임요황선수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공중을 뛰어넘습니다! 뮤탈과 스컬지가 일제히 다시 달려들지만 드랍쉽 일단 강을 지나자마자 병력을 내려놓고 건물들을 엄호합니다. 그리고 건물들은 천천히... 아! 자원의 보고 8시 스타팅포인트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임요황선수 다시 한번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려는 것인가요? 임요황선수의 전 병력 8시 스타팅포인트 장악에 나섭니다. 터렛과 벙커가 동시다발적으로 건설됩니다. 홍진풍선수의 지상병력이 임요황선수의 8시 지역 장악을 저지하고자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대규모 혈전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엄박사와 김조교도 전용줄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숨죽여 경기를 지켜보았다. 임요황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방어진을 구축해나갔다. 홍진풍이 지상병력을 이끌고 8시 앞마당에 다다를 때 놀라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8시 스타팅포인트로의 입구는 열려져 있고 임요황의 병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 입구 아래에 SCV 하나가 자기는 전쟁에 상관없다 듯이 한가로이 혼자서 댄스를 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또 뭔가?'
이미 한번 핵미사일 조준 심리전에 속았던 관계로 홍진풍은 정상에 벗어난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그래서 홍진풍의 병력은 그 지역에서 잠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금쪽같은 몇 초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홍진풍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설마.. 공성지계(空城之計)?"
그렇다. 임요황은 SCV댄스로 여유를 표현함으로서 시간을 벌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게임경력의 홍진풍!! 그였기에 몇 초안에 임요황의 속임수를 간파해 낼 수 있었다. 과감히 공격을 결정한 홍진풍은 그대로 주 병력을 이끌고 8시 스타팅포인트로 쳐들어갔다. 이제 임요황도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을 알게되었다.
'8시 지역 전투에서 밀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좋다! 여기에 나의 모든 것을 걸어보겠어.'
"이야압!!!!!!"
기합과 함께 임요황의 폭발적인 컨트롤이 시현되었다. 파이어벳이 앞장서고 그 뒤를 메딕이 달려갔다. 마린은 스팀팩을 먹은 후 오른 쪽으로 내달려 측면으로 다가갔다. 마치 한기 한기 유닛이 살아있는 듯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갔다. 그리고 일제 사격이 작열했다. 청난 컨트롤의 결정체가 폭발하는 그 순간,임요황의 쫄티가 걸레처럼 인정 사정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아아아! SCV 몇 기가 임요황선수의 유일하게 하나 있는 시즈탱크를 둘러싸서 수리하며 후방에서 화력지원을 합니다. 이때,홍진풍선수의 한 부대 가량 되는 디파일러들이 번개같이 5개의 다크스웜을 칩니다. 모든 스크린이 다크스웜으로 뒤덮힙니다. 임요황의 전진부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퇴! 후속부대와 합류합니다. 디파일러! 컨슘으로 마나보충!! 다시 접근합니다. 8시 본진 한가운데 다크스웜이 퍼지면 더 이상 임요황선수 이 경기를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베슬 EMP 발사!!!! 순식간에 마나고갈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디파일러 한 부대!! 물쭈물하다가 마린들에게 일점사 당합니다!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몰아치는 홍진풍선수!!! 마치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아! 임요황선수! 그 폭풍 같은 공격을 이 세상엔 없는 사랑으로 유닛을 다루면서 끝까지 막아냅니다! 정말 대단합니... 윽..."
"전용줄씨!!!"
"시청자들에게 저의 실신을 알리지 마십... 으"
목소리를 높이던 전용줄 캐스터가 계속된 흥분으로 인해 뒷골이 댕기는 지 머리를 젖히며 쓰러졌고, 깜짝 놀란 엄박사가 황급히 그에게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김조교가 마이크를 잡아 중계를 이어나갔다.
"네... 홍진풍선수의 가디언들이 8시로 오고 있네요. 임요황선수 정말 잘 싸웠지만 이 경기는 아무래도 홍진풍선수가 가져갈 것 같습니다. 가디언들 공격을 개시!!! 벙커들 불을 뿜기 시작합니다!"
홍진풍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무모하게 건물을 사수하려 달려드는 마린들을 가디언들로 침착하게 일점사했다. 하나 둘씩 쓰러져 가는 테란병력들... 이제 승부는 거의 홍진풍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진풍아! 안 돼!'
홍진풍은 그의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었다. 그 소리는 어린 시절의 자기 목소리였다. 홍진풍은 놀란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의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옆자리에는 소년시절의 홍진풍이 옆에 서서 마우스를 쥔 자신의 오른 쪽 팔을 잡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꼬마의 모습인 홍진풍은 게임을 하고 있던 또 다른 자신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말라는 듯...
"홍진풍선수의 가디언들! 갑자기 일점사 공격을 멈춥니다. 그 틈을 이용해 임요황선수 디펜시브 걸린 마린들 가디언의 턱밑까지 뛰어들어 일점사!!! 한 마리씩 잡아냅니다. 홍진풍선수!! 대체 왜 컨트롤을 멈춘 것인가요? 이로서 거의 잡았던 승리가 다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피로 물든 전장... 홍진풍은 그의 남은 병력을 뒤로 빼냈다. 일단 8시 전투는 병력적인 면에서는 임요황선수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며 끝났다. 하지만 임요황선수가 그 병력으로 중앙으로 진출하기에는 모자랐기에 그는 더 이상의 공세를 펴지 못하고 8시 지역 자원수급에 당분간 힘쓸 수밖에 없었다. 반면, 홍진풍은 다시 한번 병력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경기는 잠시 휴전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아무튼 임요황의 8시 장악으로 인해 다시 승부는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홍진풍은 고개를 들어 상대편선수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컨트롤과 움직임, 전술...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다.
'난... 이자를 알고 있어!!!!"
림선생이 지상으로 올라갔을 때 여전히 비는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공터 위에는 장진낭, 장진술 형제이 피땀흘려가며 만들어놓은 '갈아만든 테란' 캔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격투가 벌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숫자의 우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진낭, 장진술, 강도갱은 그들이 쓰러뜨린 50여명의 복제인간들과 함께 진흙 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블K의 복제인간 20여명이 남아있었다. 림선생은 그 모습을 보고 장탄식을 하였다.
"내 생애의 전투는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오늘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군... 아직 내 인생에 무지개가 뜨려면 멀었단 말인가?"
림선생의 등장에 강도갱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복제인간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림선생은 여전히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주머니에서 징박힌 검은 장갑을 꺼내 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으응? 뭐... 뭐야? 그 장갑은..."
움찔거리며 복제인간들은 뒤로 물러섰다. 놀라게 되어 있었다. 림선생이 다가서면 누구라도 그렇게 놀라게 되어 있었다. 림선생은 조용히 그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하나를 치켜올렸다.
"한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다. 오직 한방에 끝내주마....!"
림선생은 징박힌 검은 장갑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전광석화와 같이 정확히 장진 59호와 92호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림선생은 그 중앙에 있던 봉을 잡고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
회전력을 이용한 림선생의 발차기 공격에 한 무더기의 복제인간들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가공할 림선생의 회전 발차기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복제인간들은 그에게 다려들기가 무섭게 튕겨져 나갔다. 이제 그의 공격을 멈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제어하지 못할 림선생의 회전발차기!!! 그 가공할 속도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급기야 림선생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나왔다.
"누가 나 좀 살려다오!!!!!"
역시 림선생의 한방은 무서웠다.
성부장은 서버 속을 달리다가 쓰러졌다. 이미 사이버공간을 헤매기 시작한지도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비슷한 문을 벌써 수십 번은 더 열었고 그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문서들이 아닌 각종 오락파일들 뿐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성부장은 아무래도 자기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인가?'
성부장의 머리 속에 갑자기 이 넓은 공간을 헤매다 끝내 길을 잃고 사라진 수많은 조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성부장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자신의 엎어진 바닥의 글자가 이상하다는 것은 깨달았다. 손으로 먼지를 털어 내니 자신의 몸체 만한 글자가 바닥에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닥의 글자는 KIN.... 성부장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걸어가 글자를 읽어보았다.
'즐? 애초에 비밀문서가 있는 공간이 없다면 이 공간전체가 문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바닥에 있는 글자들이 혹시 비밀문서?"
성부장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지어졌다. 성부장은 마지막 힘을 다해 공중으로 부양했다. 그러자 이 서버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일련의 문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했어...."
땀으로 흠뻑 적셔진 성부장을 둘러싸고 있던 연구진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 연구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했습니다. 성부장님으로부터 문서가 전송되고 있습니다! 아! 하지만 해독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문자가 존재하다니..."
"젠장! 외계어인가? 누구 외계어 해독할 줄 아는 사람 없나?"
"......."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기에 빠져 흥분한 나머지 잠시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계속해서 경기 중계 해드리겠습니다. 엄박사님... 조금 전에는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간단하게나마 지금까지의 경기와 현재 진행상황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시죠."
"예... 보시다시피 이미 경기는 혼전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양 선수 거의 모든 맵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네요. 임요황선수. 지속적으로 상대방 멀티 지역마다 디펜시브 걸린 드랍쉽들을 보내고 있고 홍진풍선수. 그것을 막아내면서 동시에 계속 상대방 본진에 대한 게릴라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 정도 혼전 상황까지 치닫게 되면 멀미가 나서 모니터를 더 보기가 힘들죠. 게다가 이 경기 데스메치 아닙니까? 그래서 모르긴 해도 양선수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로템 6시 지역과 12시 삼룡이 멀티 지역!! 동시에 디펜시브가 걸린 드랍쉽이 나타났습니다. 12시 삼룡이 멀티는 버러우 히드라로 드랍쉽 일점사!! 테란 병력을 잡아내지만 6시 지역은... 아아아!! 해처리! 해처리! 파괴됩니다!"
거의 동시에 임요황과 홍진풍의 입에서 한 모금의 피가 토해졌다. 서로 한방씩 주고받는 난타전...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양선수모두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지만 그 들 모두 강인한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 숨 가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홍진풍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외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과연 나와 싸우고 있는 저 자는 누구란 말인가?"
참다 못한 홍진풍은 채팅창을 열었다.
Hair Yellow > Who are you?
건너편 박스에 있는 자신을 응시하는 임요황의 눈은 슬퍼 보였지만 왠지 익숙해 보이는 그것이었다. 임요황의 채팅글이 하나씩 올라왔다. 임요황의 왼손으로만 치는 것이기에 속도는 느렸다.
Slayers_'Box'> ......I
Slayers_'Box'> am...
Slayers_'Box'> your...
홍진풍은 천천히 침을 삼켰다.
Slayers_'Box'> friend...
"!!!!!!!!!!!!!!!!!"
홍진풍은 현기증을 일으키며 모니터 뒤로 물러섰다. 그와 함께 임요황도 더 이상의 컨트롤을 하지 않았다. 교전은 일시에 정지되었다.
'친구? ... 그런 것이 나에게 존재했단 말인가?'
갑자기 그의 시야가 어두어지더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하나의 영상이 펼쳐졌다.
파도소리....
하얀 백사장...
한 꼬마가 백사장을 달리고 있었다. 그 꼬마는 어린 시절의 진풍이었다. 백사장을 달리고 있는 진풍의 손에는 그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스타쿠 게임시디가 들려져 있었다. 빨리 집에 가서 게임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서둘러 달리던 진풍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의 손에 떨어져 바다로 굴러가던(?) 게임시디를 마침 바닷가에 있던 낯선 소년 하나가 잡아주었다. 천천히 다가와 넘어진 진풍에게 손을 내미는 낯선 소년... 그의 다른 손에는 마우스 크기의 조약돌이 쥐어져 있었다. 다른 소년들에 비해 약간 머리가 큰 하얀 피부의 미소년이 진풍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너... 게임 좋아하니?"
그 말과 함께 홍진풍의 모든 기억들이 폭풍처럼 그의 머리 속에 밀려들어 왔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머리 속을 파고드는 기억들이 동시에 되살아나는 엄청난 충격에 홍진풍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고는 괴로워했다. 그의 홍진풍의 비명소리가 메가웁스에 울려 퍼졌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삼중 방탄유리가 일시에 금이 갔다.
"무슨 일이죠? 홍진풍선수 갑자기 경기가 중단하고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데스메치때문일까요? 아... 다행히 홍진풍선수 의식을 찾은 듯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표정은 오히려 더 좋아 보입니다. 홍진풍선수의 편안한 표정... 오랜만에 보는 군요."
홍진풍은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임요황과 같이 동고동락하며 고생하던 일들, 자신이 이블K의 게이머로 들어가 그의 하수인으로 생활했던 일들... 그 모든 것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이제서야 홍진풍은 임요황을 보고 미소지었어 보였다. 비록 홍진풍의 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임요황도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서로 통하고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두 친구가 만나게 된 것이다.
'홍진풍.... 기어이 기억을 찾은 거냐?'
화면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블K의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진풍... 정말이지 넌 대단한 녀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합을 망칠 수는 없는 일... 네가 나를 떠나겠다면 내가 먼저 널 포기 하겠다.'
이블K가 경기장 스피커를 켜고 입을 열었다.
"홍진풍! 임요황!서로 경기를 하지 않을 셈이냐? 그러면 지금부터 경기 규칙을 바꾸겠다. 이제부터 유닛피해에 상관없이 서서히 전기충격을 올리겠다. 결국은 그 충격을 견디다 못해 둘 다 죽게되겠지. 하지만 경기에 이기는 자만이 살게 될... 아니지 경기에 이기는 자만 죽게 해야 서로 이기려고 하겠지. 그래... 경기에 지는 자만 살 수 있다. 너희 둘 중 하나가 이기는 순간 그자만 죽도록 경기규칙을 바꾸겠다. 어떠냐? 하하하하하하!!"
이블K가 노란 스위치를 누르자 갑자기 게임박스내의 전기의자에 충격이 가해졌다. 전기충격으로 몸을 경련을 일으키는 두 게이머는 안타까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상대를 위해 자기가 이 경기를 반드시 가져가야만 했다. 임요황은 홍진풍의 슬픈 눈동자를 보았다. 홍진풍은 임요황의 마우스와 함께 감겨있는 자신의 목걸이를 보았다. 그들은 결코 상대방의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홍진풍의 라바가 일제히 병력생산에 돌입하는 순간, 임요황의 주력부대가 중앙으로 진출, 진을 치기 시작했다. 다시 경기는 시작되었다. 바햐으로 훗날 사람들에게 '피로 물든 로템 전투'로 불리던 경기가 이제 그 처절한 막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황아! 진풍아!"
주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때!! 경기장의 주감독 옆에 있던 소형프린터에서도 문서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주감독은 천천히 그 인쇄물을 뽑아서 읽었다. 이미 모든 지구언어를 마스터하고 안드로메다를 비롯한 몇몇 외계어까지 배웠던 그로서는 그 문서가 생각보다 쉽게 읽혀졌다.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주감독의 손에 힘이 가해져 천천히 종이가 구겨져 갔다.
"이블K!!!!! 내 이 자식을 가만 두지 않겠어!!!!!!"
주감독은 그 문서를 손에 쥔 채 이블K가 있는 2층 특별관람석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것을 보던 2층에 있는 이블K가 웃통을 벗어졎혔다. 그러자 그의 근육을 감싸고 있는 쇠사슬과 함께 가슴에 난 K자 형태의 털들이 드러났다.
"그래... 주감독! 나에게 오라!!!"
"쨍그랑"
메가웁스 경기장 천장에 있던 유리가 깨지면서 십여 명의 특공대원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강몽과 그의 특수부대였다.
"꺄악!! 갈색 오징어다!!!!!"
"우와아아아! 강몽이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며 환호성이 들렸다. 강몽은 일일이 팬들을 향해 인사한 후 임요황과 홍진풍을 바라보았다. 전기강도를 무리하게 상승시킨 탓인지 가열된 게임박스 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두 사람의 컨트롤은 이상하게도 인간의 그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강몽의 옆에 있던 안전제일모를 쓴 요원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요. 저 두 사람은 데스메치인데도 어째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최상의 컨트롤을 펼칠 수 있는 거죠?"
강몽은 감탄어린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지금 두 사람 모두 X영역에 들어서 있는 거야! 고통 자체를 느낄 겨를이 없는 오직 스피드와 컨트롤만이 있는 영역에..."
홍진풍의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임요황의 코피가 의자로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말없이 서로의 그들의 입가에 머문 미소를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순간 강몽의 뇌리에 불안한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설마... 두 사람 모두 상대를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