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생각보다 일찍 들어왔습니다.

지사에 일종의 신고를 하러 갔습니다. 환대해 주시고 다 좋았는데, 간식 거리들이 놓여 있는 다용도실을 보여주시더군요. 그러면서 "여자가 없어서" 정리가 안 되어 있고 미안하다 하십니다. 왜 정리를 여자가 해야 한다고 아직도 생각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한, 저희 회사 본사에서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면 바로 인사과로 들어가 그 발화자가 중징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시내에서 운전을 하는데 차선을 좌측으로 하나 변경해야 하겠기에 먼저 백미러를 봤습니다. 차 한 대가 저 멀리서 오더군요. 속도도 그닥 빠르지 않길래 미국서 하던대로 깜빡이 켜고 대각선으로--혹시 두 차선 왼쪽에서 급히 오며 오른쪽으로 차선 바꾸는 차량을 못 볼 수가 있기도 하고 해서--옮겼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개 가스 페달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조금 늦춰줍니다. 그런데 이 차가 그때부터 속력을 올리더군요. 그러더니 바로 뒤에서 경적을 넣고 부딪힐 거 같으니까 한 차선, 다시 한 차선 더 왼쪽으로 변경해서는 저보다 2m 앞 정도에 있던 다른 차 뒤에 섭니다. 이 차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운전이 험합니다. 차선을 바꿀 때 신호를 안 주고 휙 바꾸는 건 예사입니다. 우회전 할 때 우회전 해서 진행할 도로 쪽 보행 신호는 적색이었지만 어떤 할아버지 하나가 길 중간에서 아직도 건너고 있더군요. 기다렸더니 뒤에서 경적을 울립니다. 횡단보도가 있는 일방통행 직진이고 사람이 건너길래 먼저 보내며 기다렸더니 경적을 울립니다. 아내가 보더니 여기 한국 운전자들은 yield라는 걸 모르는 거 같다고 합니다.

아내와 여동생이 같이 기차를 타고 제가 먼저 들어간 새 아파트로 왔습니다. 아내가 한국말이 매우 서툴러서 여동생이 데려다 주는데, 여행용 가방과 애기 하나가 딸려 왔습니다. 가방을 위에 올려 놓으려고 하는데 여동생 힘만 갖고는 안 되었고, 아내는 돕자니 아기를 매고 있어서 어려웠나 봅니다. 그리고 아내는 여동생에 비해서 좀 짧습니다. 군복을 입은 20대 청년 두 명이 바로 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도 안 도와줬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한다고 하더군요. 보통은 한국 분들은 누가 나서서 도와주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그냥 그 두 군인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영어를 쓰지만 코카시안은 아닙니다. 어느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대뜸 반말을 하더군요. 그 아주머니가 저에게는 또 반말을 안/못 하더군요. 10년 전 한겨레에서 중동 쪽에서 온 유학생의 인종 차별 경험담을 인상 깊게 읽었지만, 10년 후인 요즘 한국, 그것도 서울에서 저런 종류의 인종차별이 아직 있다는 게 참 그렇습니다. 미국도 있다고 하는데, 네, 있습니다. 저만 해도 산타 크루즈라는 휴양 도시에서 백인 한 놈이 마구 벨 울리면서 자전거 타고 돌진해 온 일, 어느 아시안 여성더러 신븐증 달라고 하고 외국 여권을 주자 팽개친 점원 같은 거 10년 사이에 서너 차례 정도는 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점원은 그냥 매니저 나오라고 해서 매니저한테 말해주면 그 선에서 해결 됩니다. 그 정도 하면 잘려도 할말 없어요. 적어도 캘리포니아는 그런 분위깁니다. 오렌지 카운티의 헌딩턴 비치에서 어느 백인 점원이 라틴계 미국인 손님들에게 인종 차별 시전했다가 페이스북에 뜨고 회사 잘렸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는 그 손님에게 백배 사과했습니다. 오렌지 카운티 같이 그런 일 안 생길 거 같은 곳에서도 생기는 게 인종차별이지만, 그처럼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이 받아들여질 수 없을 만큼은 되어 있습니다. 뭐, 미시시피나 캔사스 같은 데는 또 완전히 다르겠지요. 거기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캘리포니아만 놓고 얘기할 때 캘리포니아나 한국이나 인종차별이 있다더라는 얘기에는 별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리버럴의 천국입니다. 특히나 오렌지 카운티니 실리콘 밸리 같은 도시 지역에서는 그런 일 대놓고 당하는 게 아주 흔하진 않죠. 10년 살면서 유일하게 불안했던 때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되고 얼마 동안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제 연봉은 지금 미국서 받던 그대로입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도 낮지는 않은 수준인데, 그대로 한국 오면 환율도 있고 상당히 높은 편이죠. 게다가 제가 사는 곳은 서울이 아닙니다. 5천원이든 7천원이든 2천원 차이는 별로 식당 가서 이낄 마음이 없습니다. 아내가 음식 사진을 보고 저게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뭔지 몰랐습니다. 계산대엔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 하나와 약간 더 연배가 낮아 뵈는 여성분 하나가 있더군요. 그 남성이 제가 아내가 가리킨 메뉴를 주문하려고 했더니 저기 가서 다른 메뉴를 보라고 하더군요. 도저히 당할 거라고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서 아내가 고른 메뉴와 그 근처 사진에 있던 메뉴가 더 이상 안 파는 음식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 60대 남자가 가리킨 메뉴를 보니 너무 전형적인 한국 음식들이고 아내는 안 좋아할 것 같더군요. 다시 와서 여성분에게 그 사진 속 음식이 뭔지, 되는지 여쭤 봈습니다. 되더군요. 우렁된장이라고 합디다. 알고 봤더니 그 60대 남자가 가리킨 메뉴는 2천원 할인 되는 메뉴들이었고, 제 주문은 받지도 않고 자기 딴엔 저를 생각해 준다고 할인 메뉴를 보라는 얘기더군요. 미국의 경우에도 당연히 그 레스토랑에서 추천하는 메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 언제나 서버가 정중하게 물어보죠. 우리 이러저러한 프로모션이 오늘 있다, 혹은 오늘 들어온 신선한 참치가 있다... 그런데 이건 정보 제공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손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시켜봐야 먹지도 않을, 기껏 2천원 싼 메뉴를 추천하면서 그 오지랖을 떤다는 게 솔직히 제 기준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한국이구나 싶더군요. 이건 아마도 대부분의 외국 여행객들이 같은 일을 당했다면 같은 방식으로 느꼈을 겁니다. 친절은 좋지만 오지랖은 아니죠. 외국인은 한국인이 아니고 남이 내가 봐주길 원하는 모습만 보는 건 아닙니다.

아파트... 미국서 내던 렌트의 반값 밖에 내지 않습니다. 2년이라는 계약 기간은 부담스럽지만 다행히 최소 2년은 한국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관리사무소가 일 하는 방식은 미국 아파트 리징 오피스 하고 많이 다르더군요. 제 아파트에 TV를 보려면 당연히 있어야 할 어떤 부품을 이전 세입자가 잘 모르고 떼어 갔습니다. 그래서 집 주인에게 물어보자니--이분은 장사/사업 하시는 분이고 그다지 전기/전자를 알 거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이전 세입자와 이미 두 달쯤 되어 연락도 안 될 거 같고, 관리사무소에 이 부품이 뭐고 어떻게 사는지 묻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관리사무소에서 대뜸 하는 말이 "그건 우리 모르겠고 이전 세입자에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저야말로 이전 세입자가 누구고 어디 사는지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그처럼 세입자가 실수/고의로 어떤 물건을 파손하고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는 충분히 있습니다. 곤리사무소 또는 집 주인은 당연히 그 부분을 리셋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집 주인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죠. 결국 관리사무소가 자기네 시설 관리 부서에 전화하더군요. 제가 한참 따지고 나서였고, 솔직히 시설 관리 부서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거기 연락 안 했다는 게 저를 매우 화나게 했습니다. 그네가 결국 그 부품을 공급한 업체랑 연락해 보더니 이 번호로 전화해서 이걸 사면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거 주문하고 집 주인에게 돈을 받거나 얼마 안 되면 그냥 지나가면 됩니다. 미국에선 행여 냉장고가 고장나면 그게 한밤중이라도 누군가가 연락이 됩니다. 고쳐주거나 찾아와서 확인한 다음 못 고칠 거 같으면 미안하고 이러저러한 문젠데 며칠 내로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이전 세입자가 열쇠를 잃어버리거나 공용 풀장 출입 키를 잃어버리는 일도 가끔 있는데, 리징 오피스는 여기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말던 직원이 모든 일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니가 해라"는 말을 하진 않죠. 미국 아파트는 부동산 업체가 실제 살 사람들을 상대로 임대 장사를 하는 거고, 한국 아파트는 그보다 팔고 사고 시세 차익을 올리는 측면에 좀더 초점이 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생활비, 미국이 더 비싸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많은 물건들이 한국이 더 비쌉니다. 미국은 중산층/부촌에서 가끔 거라지 세일도 하고 세이버스 같은 데 좋은 물건을 기부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IKEA까지 안 가도 어지간한 가구, 식기 등등은 말도 안 되게 싸게 당장 쓸 거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IKEA 가구 썼는데, 내구성 얘기 있지만 몇 년 정도는 괜찮고 그 가격에 몇 년 쓸 수 있다면 감사한 거죠. 그런데 한국서는 가구 어디서 사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IKEA에 제가 쓰다 버리거나 기부하고 온 가구들 있는데, 당시에 제가 샀던 가격보다 더 비쌉니다. 식료품은 한국이 훨씬 더 비쌉니다. 레스토랑은 조금 더 쌉니다. 그런데 그것도 "싼 게 있다"는 느낌이고요. 좀 먹을 만한 건 또 미국 대비 싸지 않습니다. 예컨대 보쌈 작은 것도 2만원대 중후반인데, 그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미국 식당 음식들을 생각해 보면 전혀 싸다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 렌트도 성수기라도 작은 차도 보험까지 6, 7만원을 요구하더군요. 미국에서 성수기에 그 정도 가격을 내면--프라이스 라인을 통해서 예약하고 CDW를 프라이스 라인 통해 살 경우--최신 중형차를 빌립니다. 제가 결국 빌린 차는 8만 킬로를 주행한, 크루즈 모드도 없고 블루투스 연결도 안 되는 현대 중형차였습니다. 한 달을 빌리니 훨씬 싸게 해주던데, 그건 좋더군요. 하루나 일주일 정도를 빌렸으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을 것입니다.

아파트에 여성 전용 주차 공간이 많이 있더군요. 한국에 여성 전용 주차장이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주차장에서 남성 뵘죄자에 의한 여성 상대 범죄가 유의미하게 더 자주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별도의 공간으로 완전히 구별해 놓아야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아파트의 여성 주차장은 그냥 완전히 열린 한 공간 내에 뒤섞여 있습니다. 이거는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와서, 객관화해서 볼 때 확연히 좋은 점은 의료 시스템입니다. 소위 질문도 제대로 안 받는 3분 진료이기는 합니다만.. 가격 대비 말도 안 되게 훌륭합니다. 미국서 제가 보험 얼마 내는지 모르다가 우연히 알게 됐는데, 회사가 많이 내줘서 그렇지--이런 경우엔 또 회사와 보험사 사이에 딜이 있어서 회사는 더 싸게 낸다고 추측합니다--제가 그걸 다 내자니 거의 3인 가족 3천 달러에 육박하고 있더군요. 일년이 아니라 한 달입니다. 이렇게 내니까 보험없을 때 자연분만 하고 병원 2, 3일 입원한 병원비가 4천만원이 나왔음에도 겨우 한 5, 60만원 정도 낸 거였더군요. 그나마 치과 쪽은 일 년에 가족 구성원당 2백만원 정도만 되는데, 이건 신경 치료 하나 하면 다 날아갑니다. 한국은 신경 치료가 10년 전에 5만원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문제는 이 의료 서비스가 지속 가능한가 하는 건데,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번 정부는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 없이 비급여 부분을 줄이겠다고 했던데, 보험 과목의 의료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은 현실을 생각해 보면 별로 잘 될 거 같지가 않습니다. 기본이 좋으니 심평원에 의사 더 많이 참여시키고 보험료를 몇 프로 되지도 않는 최상위층 얘기할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대폭 올린다면 우리나라 보험 제도가 괜찮을 것 같은데, 의료보험료를 현실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얘기를 정치인들은 잘 안 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25년 이상 살았던 곳이고 당연히 영어보다는 아직 한국어가 훨씬 편하기도 해서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은 없습니다. 다만 며칠 살지도 않았는데 이따금씩 버튼이 눌리는 일이 자꾸 생기네요. 다행인 건 대부분 재택 근무고, 이웃이 이사 들어 왔다고 문 두드리지 않고, 집 주인이 길 건너 가게/사업 하지만 저희 집을 신경쓰지는 않아준다는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