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3/12/09 15:10:01 |
Name |
안개사용자 |
Subject |
[픽션] 폭투혈전! 틈을 노려라!!! 1부 |
<폭투혈전! 틈을 노려라!!!>
Chapter 1. The Memory Remains
*********************************************************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잔뜩 달구어진 대지로 내리꽂히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그 무더위 아래, 한 농사꾼이 광활하고 황량한 벌판에서 부지런히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사를 모두 잊고 일에 매진하려는 듯 농사꾼은 열심히 땅을 갈고 또 갈았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동쓰형! 동쓰형!"
한참동안 밭을 갈던 김동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던 동작을 멈추고 소리가 나던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한 신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과거 김동쓰가 애지중지 키웠던 후계자 박정설이었다. 박정설은 김동쓰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서는 거침 숨을 내쉬며 웃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박정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쓰의 얼굴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형님.... 3년간 어디 가셨나 했더니.... 은둔하신때부터 여기서 밭을 갈고 있었습니까?"
"그래........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아니, 우선 앉아서 이야기 하자......."
김동쓰는 박정설을 데리고 밭 옆에 있는 작은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잠시 어색한 분위기에 머뭇거리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쪽은 김동쓰였다.
"정설아.... 요새 살림살이 많이 나아졌냐?"
"아... 네... 최근에 제가 책을 한 권 냈습니다. 물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추천도서로 뽑힌 '플토1의 정설'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그거 덕분에 요새 먹고 살만은 합니다."
"다행이구나..."
"근데 형님은 언제까지 밭을 가실 예정이십니까? 정말 농사꾼이 다되셨습니다. "
"허허허.... 이 땅의 정기가 나를 붙잡아두니 내가 이 곳을 떠날 수 없구나......"
김동쓰는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박정설은 그것이 그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요황때문입니까?"
갑자기 김동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박정설의 말 한마디로 김동쓰는 잊고 싶었던 기억 하나가 밀물처럼 급속도로 머릿속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임요황과의 경기... 그토록 잊고 싶었던 그날의 악몽이 다시금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때는 3년전, 스타쿠 챔피언 타이틀 매치 마지막 라운드 경기였었다.
"네... 김동쓰의 대규모병력이 임요황의 본진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동쓰! 마지막 자원까지 쥐어짜낸 마지막 러쉬인거 같습니다. 과연 임요황선수가 이 러쉬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3시간에 걸친 혈전이 이제 막바지로 돌입하고 있었고 이미 전용줄 캐스터의 목소리는 쉬어 있을 때로 쉬어 있었다.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김동쓰의 질럿 앞에 임요황의 기갑사단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순식간에 김동쓰의 대병력이 임요황의 본진입구까지 밀고 들어가게 되었다.
"어떠냐? 임요황!!! 이래도 GG를 안날릴 셈이냐아아아!!!!!!!!!"
"빠지직~!!!!"
김동쓰의 강력한 사자후에 맞은편 임요황의 헤드폰에 음파 충격이 가해져 연기가 났다. 그래도 임요황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티었다. 너무 이빨을 꽉 깨물어서일까? 그의 꽉 다문 입술사이로 한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임요황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본진은 거의 괘멸직전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건물인 커맨트센터만이 기적적으로 공중으로 부양, 필사적으로 적들로 부터 도망가기 바빴다.
김동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남은 병력으로 그 커맨트센터를 추격해갔다. 경기의 승리는 누가봐도 김동쓰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김동쓰의 대병력이 지나가던 땅바닥이 꿈틀거렸다. 본능적으로 김동쓰는 위험을 감지했다.
"설마? 커맨드센터는 미끼였단 말인가!!!!!!!!"
김동쓰가 위험을 감지하는 동시에 임요황의 입에서 자그마한 신음과 같은 외침이 터져나왔다.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아뿔싸! 마인팔괘진?"
임요황의 말에 주춤거리던 질럿하나가 발을 헛딛는 순간, 김동쓰의 대병력의 주위로 촘촘히 박혀있던 마인들이 일제히 반응하여 쏜살같이 병력들을 향해 달려들어왔다. 사정없이 달려드는 마인에 의해 삽시간에 김동쓰의 병력은 강렬하게 폭파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라!!! 임요황선수! 순식간에 김동쓰의 대병력을 전멸시켰습니다!!!!! 어떻게 정확하게 저렇게 마인을 박을 수가 있는거죠? 정말 대단합니다!!!!!!!"
"아... 전설 속에 전해지는 궁극의 마인매설진법 팔괘진이군요. 일단 저 진안 에 들어가면 어떠한 유닛도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고 하죠. 저 정도로 정교하게 마인매설을 하는 유저는 국내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습니다. 카아.... 실제 경기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니...."
전용줄의 흥분된 멘트에 이어 해설가 엄박사가 감탄을 내뱉었다. 또다른 해설가 김조교도 한마디 거들었다.
"임요황선수의 플레이... 그려려니 해야죠."
겨우 김동쓰의 공세를 저지시켰지만 무리를 해서일까? 임요황은 오른손가락에 마비증상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에겐 숨돌릴 시간마저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불타는 커맨드 옆에 아비터 한기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멋지다....임요황 하지만 여기까지다! 내가 빨리 게임을 끝내 피곤한 너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선사해주마! 이걸 받아라! 임요황!!!!!"
김동쓰는 갑자기 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부양하여 힘껏 키보드의 R을 내리쳤다. 키보드가 박살남과 동시에 임요황의 커맨드센터옆에 캐리어 한대 소환되었다.(캐리어가 그냥 가면 되지 왜 소환해야만 했는가는 묻지 말길... 나도 써놓고도 이상해 미치겠음...-_-;) 캐리어가 소환되자마자 그 갑판에서 8기의 인터셉터가 출격하여 먹이를 노리듯이 무섭게 커맨드센터를 공격했다. 캐리어를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없는 임요황....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 때, 목이 쉬어 말을 못하는 전용줄캐스터가 최선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아 뭡니까? 임요황선수! 아직 병력이 있나요? 어디선가 드랍쉽 한기가 위기에 빠진 커맨드센터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 남은 유닛인 거 같은데요!!!!! 안에 무엇이 타고 있을까요? 팩토리는 오래전에 파괴되었으니 메카닉유닛일리는 없습니다. 아아 옵니다!! 내립니다!!! 뭡니까?"
드랍쉽에서 내린 유닛은 메딕하나 그리고 고스트 7기였다.
"이건 또 뭐냐?"
김동쓰가 미처 드랍된 유닛에 대해 공격을 하기전에 고스트 7기에서 거의 동시에 락다운이 발사되었다.
빠드득...
인간의 한계를 넘는 무리한 컨트롤 때문일까? 락다운 발사음과 함께 임요황의 손가락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경기장에 퍼졌다. 임요황은 가뿐 숨을 내쉬며 자신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는 7기의 인터셉터가 락다운에 걸려 정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기의 인터셉터가 날아다니며 7기의 고스트를 공격하고 있었으니...
"안돼에..........!"
임요황은 자신의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오른손을 치우고 자신의 오른발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이빨로 오른쪽 양말을 벗기기 시작했다.
"임요황선수! 지금 뭐하는 거죠? 이 자리에서 양말 벗고 그냥 잠자려고 하는 건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흰 양말이라도 던져서 항복표시 하려는 거 같은데요."
"아니....... 저 건!!!!!!!!!!! 아아! 임요환! 오른쪽 발로 마우스를 움직입니다. 오른쪽 발가락으로 클릭을 하고 있군요.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
임요황은 자신의 오른쪽 발가락을 이용하여 기어이 메딕에서 옵티컬을 발사시켰다. 그 옵티컬은 정확히 마지막 하나 남은 인터셉터에 명중되었고 완전히 장님이 된 그 인터셉터는 캐리어에도 귀환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옵티컬을 발사시킨 순간, 임요황은 무리한 자세로 인해 그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오른쪽 다리에 쥐가 오고야 말았다. 임요황은 다리가 저려오는 고통에 몸을 뒤로 젖히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너무나도 처절한 그의 비명소리가 경기장 메가웁스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는 김동쓰의 압도적인 우세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김동쓰는 처절하게 버티는 임요황에게 동정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냐? 임요황... 왜 이렇게까지 승부에 집착하는 거냐? 다음 기회도 있지 않은가? 이번엔 그냥 GG를 치는 거다. 더 이상... 더 이상은 네가 고통을 받는 게 싫다.'
임요황은 이제 거의 의식을 잃어 온몸이 마비되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의식을 잃는 편이 나았을 것인데 그는 모니터로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화면 속에서 그가 힘들게 제압한 캐리어가 스르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이템플러의 일루젼....... 허상인 캐리어는 김동쓰의 미끼였다. 이윽고 진짜 캐리어가 서서히 커맨드센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임요황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할 할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만큼은 내가 졌다. 김동쓰......"
임요황은 GG를 치기 위해 키보드의 G에 코를 가져갔다. 그것이 그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동작이었다. 임요황은 그대로 키보드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않았고 모니터 화면에는 그의 코에 눌려진 글자 GGGGGGGGGGGGGGGGGGGGGGGGGG가 연속적으로 쳐졌다.
"임요황!"
김동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임요황의 맥박을 짚었다. 그의 맥박은 비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임요황선수가 실신했어요! 누가, 누가 구급차 좀 불러 줘요!!!!!!!"
웅성대는 사람들, 뛰어나오는 스텝들. 멀리서 들려오는 엠블런스 소리, 그리고 임요황의 고통스런 비명...... 여기까지가 김동쓰가 기억하는 그 날의 기억이었다. 그 혈전이 벌어진 그 날 이후 임요황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소문에 의하면 정신병원에 있다고도 하고, 어떤 자는 원양어선에서 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 소문일 뿐, 임요황이 살아있는 지 죽어있는 지조차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임요황은 게임계에서 사라졌다.
김동쓰는 밭에서 뽑아낸 싱싱한 무하나를 어깨에 닦자마자 아그작 씹어댔다. 마치 지난날의 기억을 씹어 없애려는 듯이....
"정설아.... 너도 하나 먹을래?"
"괜찮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왜 게임계를 떠나신 겁니까? 임요황 선수의 일이 형님 탓은 아니잖습니까?"
"정설아.... 넌 내 마음 모른다."
박정설이 나름대로 위로하려고 한마디 하지만 김동쓰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 경기이후 김동쓰는 계임계를 떠나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앞날이 창창하던 최정상의 게이머를 자기 손으로 파멸시켰다는 사실을 그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일을 잊고자 밭농사에 매진하기 시작한 그였지만 그토록 잊고 싶었던 임요황의 비명소리는 3년간 그의 귓가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요새 게임리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이윤혈은 여전히 챔피언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형님.. 소식 못들으셨군요. 사실 이윤혈도 지금 게임하고 있지 않습니다."
"뭣이? 윤혈이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그게.........."
"어서 말하지 못할까?"
김동쓰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박정설의 어깨를 꽉 쥐며 흔들었다.
"이윤혈은......"
"그래! 이윤혈은?"
"이윤혈은................ 군대갔습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김동쓰와 박정설을 휘감고 지나갔다. 김동쓰는 자신의 뜨거운 몸이 한결 상쾌해지는 걸 느꼈다. 잠시 뻘쭘하게 서있던 김동쓰는 자기의 쟁기를 다시 들고 일어섰다.
"그럼 됐다. 너도 어서 가봐라.... 나중에 상추와 풋고추 한상자 보내주마..."
"저기....... 형님.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상추나 풋고추 얻으러 온게 아닙니다."
"그러면?"
"형님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윤혈은 자기가 가고 싶어서 군대를 간 게 아닙니다. 느닷없이 누군가가 해병대에 지원서를 내는 바람에 해병대로 가게 된 겁니다."
"모르지. 윤혈이가 갑자기 해병대가 좋아져서 갔을지..... 그래서 너의 생각은 뭐냐?"
"뭔가 음모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천하의 임요황이 경기 중 쇼크로 실신한 것도 이상하고, 그 때문에 형님이 떠난 것도, 누군가가 계획한 것만 같습니다."
"음모라. 현재 챔피언이 누구더냐?"
"홍진풍입니다."
"아서라. 설마 홍진풍이 그런 음모를 꾸몄겠는가? 게다가 더 이상 난 게임리그에 관여하기 싫다."
홍진풍은 김동쓰도 잘알고 있는 게이머였다. 실력, 매너, 외모, 성격, 모두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홍진풍이기에 김동쓰는박정설의 말을 흘려듣고는 다시 쟁기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망설이던 박정설이 입을 열었다.
".............. 사실은 임요황이 돌아왔습니다."
김동쓰의 쟁기가 하늘에 들려진 채 멈추어졌다. 때마침 김동쓰의 밭에 시원한 빗줄기가 한두줄기 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 주말, 홍진풍과 단판승부를 펼친다고 합니다."
".........."
김동쓰는 쟁기를 떨어뜨리고 말없이 박정설을 바라보았다. 김동쓰의 입은 열려져 있었지만 벅찬 감정에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그의 슬픈 눈에선 3년간 참아왔던 눈물이 기어이 터져나와 주르륵 흘러내렸다. 때마침 하늘도 그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Ending Title -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1부 끝>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12-09 19:21)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