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게임 '데스 스트랜딩'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읽기를 원치 않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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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가 함께하지 못해도,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을 꺼야. 안녕, 샘.
그녀는 그렇게 샘을 바다로 밀쳤고, 물 속에 잠긴 샘은 아멜리이자 브리짓인 그녀와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멜리가 아닌 다른 "해변"에서 정신을 차린 샘. 자리에서 일어난 샘은 그의 앞에 아멜리의 인형. 그리고 그의 가족사진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형을 바닷가로 떠내려보내고. 사진. 그리고 그의 옆에 있었던 '그 총'을 챙겼습니다. 이곳에서 총은 소용없어. 하지만 다른 용도로는 쓰이겠지. 샘은 문득 떠오른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해변"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이곳은. 다름아닌 바로 샘. 자신의 "해변"이였습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다르게 될 때 오는 바로 그 곳 말이죠. 샘은 그렇게 자신의 "해변"을 하염없이 거닐게 되었습니다. 걸어보기도. 뛰어보기도. 헤엄쳐보기도 하며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만, 더욱 더 그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몇번이며 뛰어다닌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을 때마다.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글씨 숨김 시작"(장문 주의)] 조용히, 다 얘기해줄게. 질문받을 시간 없어.
#1. 어릴 때 너는 악몽을 꾸곤 했어. 언제나 울면서 깨어났잖아. 사실, 그건 네 꿈이 아니였어. 내 악몽이었지. 아주 오래전부터, 난 "해변'의 꿈을 꿨어. 잠을 잘 때도 그랬고, 깨어있는 동안에도. 꿈속에서 나는 멸망을 봤어. 계속 반복해서. 이 행성의 생명을 앗아간 과거 수많은 멸종들이 반복해서 꿈에 나타났어.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왜 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게 다가 아니었어. 더 끔찍한, 다른 꿈들도 있었으니까. 죽음과 파괴에 대한 꿈... 다가오는 대규모 멸종에 관한 꿈. 바로 지금처럼. 꿈에서 나는 언제나 세계에 종말을 가져오는 존재였지. 라스트 스트랜딩을 부르는 존재... 오늘의 나처럼.
#2. 첫 번째 수술. 나는 고작 스무 살이었어. 눈을 뜨니 나는 "해변"에 있었지.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병원 침대에 있었어. 두 세계 사이에서 분리된 거야. 내 육체인 브리짓은 그 세계에. 내 영혼인 아멜리는 바로 여기에. 어던 연유인지 우리 둘은 공존할 수 있었어. 곧 우리의 나이는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어. 브리짓의 몸은 나이를 먹었지만, "해변" 덕분에 아멜리는 변하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꾸며낸 거야. 사람들에게는 아멜리가 내 딸이라고 했어. 아버지는 사라졌고, 병까지 얻은 딸이라고. 봐. "아멜리(Amelie)". "Ame"는 프랑스어로 영혼을 뜻해. 거짓된 영혼. 아멜리는 존재하지 않았어. 오직 나와 "해변"만이 있지. 처음에는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해변"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려고 노력했어. "해변"을 이해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내 꿈들을 해석하는 열쇠였으니까.
#3. 나는 "해변"이 망자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어. 저 깊은 곳 어딘가에는 시간 자체의 기억들이 숨겨저 있다는 걸 의미하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생명체들의 기억을 포함해서. 46억 년이라는 생물학적 역사... 어쩌면 우주의 탄생까지 거슬러갈지 모르는 긴 역사야. 카이랄 네트워크와 이후의 모든 일은 내가 그런 지식을 추구했던 결과였어. "해변"으로 데이터를 통과시키면 더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 수년이 걸리는 시뮬레이션도 간단히 끝낼 수 있지. 지구가 잃은 모든 지식을 재건하고 회복할 수 있었어. 하지만 연구를 시작한지 얼마 후, 미국에 첫 보이드아웃이 발생했어. 나는 시간이 다 됐다고 느꼈지. 내 악몽은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최대한 빨리 카이랄 네트워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 거야. 과거에 답이 있으니, 조각을 모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우리의 세상과 "해변"에 다리를 놓는 네트워크... 그게 있으면 성공할 거라고 믿었어. 그래서 브리지 베이비를 연구하기 시작했지. 망자의 세상에 속박된 아기들 말이야. 멸종체는 왜 생겨나는 걸까? 지난 5대 멸종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이런 질문의 답이 여섯 번재 멸종을 막을 방법을 알려줄 거라 생각했어. 나는 미국 전체를 연결하는 카이랄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브리지스를 설립했어. 그러나 불변의 미래에 맞서 싸우는 동안, 나는 점차 쇠약해졌지. 내 육체는 암에 걸린 거야. 말을 잘 안듣는 멸종체여서, "해변"이 내게 벌을 내린 거였을까. 내 육체는 그렇게 사라져버렸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수 없었지. 그래서 네게 대신 맡긴 거야...
...그리고 넌 해냈어. 네트워크를 완성하도록 도와줬어... 우주가 생성부터 이 순간까지 경험한 모든 걸 되찾게 도와줬어. 이제 모든 비밀을 풀기만 하면 돼. 바로 이런 비밀처럼. 과거에 폭발이 하나 발생했어... 시간과 공간을 탄생시킨 빅뱅이었지. 사실 그 폭발은 우연에 지나지 않았어. 물질과 반물질의 충돌로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했거든. 그런데도 물질이 극히 일부지만 폭발에서 살아남았어. 가까스로. 이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들기에 충분했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세상. 균형을 잃은 세상. 질서는 결국 무질서로 이어지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우주에 의해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야. 어쩌면 5대 멸종은 우리를 무의 상태로 보내려는 우주의 시도였을지도 몰라.
그러나 생명은 어떻게든 살아남았지. 가까스로. 우주의 노력을 비꼬기라도 하듯 말이야. 있잖아, 나는 생명의 완전한 소멸을 막으려면 멸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도록 만드니까. 인내하고 존재하게 하잖아. 그래서 5대 멸종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몰아낸 게 아니라 더욱 활발하게 만든 거지. 망자의 재에서 일어난 거지... 강하고 지혜롭게 변해서. 존재라는 유산의 상속자가 되어서. 그들은 우주를 거스르고 항복을 거부하지. "이제 시작일 뿐이야"라고 외치는 거야. 멸종은 진화를 위한 기회야.
Ludvig Forssell - An Endless Beach
#4. 나는 그날 방아쇠를 두 번 당겼어. 바로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 네 "해변"을 발견하고는 너를 찾아 해맸어. "샘. 여기 있었구나."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자." 나는.. 날 널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 "괜찮아. 길은 내가 알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균형에 혼란을 주고 말았어. 그저 널 구하고 싶을 뿐이었어. 나는 멸종체야. 우리 종을 멸종으로 안내하는 것이 내 운명이야. 하지만 그 순간, 너는 그 운명의 일부가 되어버렸어. "귀환자"가 되어버린 거야. DOOMS는 세계 곳곳으로 내 악몽을 퍼뜨리기 시작햇어. DOOMS에 걸린 너와 모든 사람을 끌어들인 건 바로 나야.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 스트랜딩이 일어났어. 죽은 자들은 이 세상을 붙들고, BT는 내 "해변"을 통해 넘어가 그들을 삼키고, 보이드아웃을 일으켰어.
...세상을 멸종의 길에 올려놓는 촉매였지. 내가 맡은 일은 희생양이 되는 것... 바로 이 "해변"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거였어. 아니면, 라스트 스트랜딩을 앞당겨서 더딘 고통을 끝내거나. 내게 주어진 선택 중에서, 나는 빨리 끝내기를 선택한 거야. 하지만 라스트 스트랜딩을 촉발시키기 위해서, 내 일부인 네가 필요했어. 나는 여기서 멸종의 마지막 순간을 너와 함께 지켜볼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온 후, 새로운 선택이 생겼어. 너라면 날 잘라낼 수 있어. 멸종체는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어. 하지만 악몽 속에서 난 다른 미래를 보았어. 네가 선택한 미래. 멸종은 완전한 파멸에 맞서는 희망이 되는 미래. ["글씨 숨김 종료"]
이곳에서 총은 소용없어. 하지만 다른 용도로는 쓰이겠지.
샘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선택했으며, 샘을 자신의 해변에서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해변"에서 샘의 "해변"으로 밀어낸 것이였고요. 영원히 이곳에 있는 것은 분명 그가 원하는 선택지는 아니였습니다. 그녀의 말을 되새기던 샘은. 그렇게 자신의 한 손에 쥐고 있던 '그 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총성'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던 것 처럼 이곳에서의 총은 소용없었기 때문이였죠. 하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고. 그 때. 저 멀리서인지, 아니면 기억속에서인지 모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잘 들어, 샘...
클리프와 너를 다시 만나게 한 건 나야.
네가 알기를 바랐던 게 있거든.
너는 버려진 적 없어.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야.
아직 모르겠니?
넌 살아야만 해..."
샘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쪽을 향해서 말이죠. 그런 그가 다가간 곳은 마치 BT가 서성이는 듯한 모습이였죠. 하지만. 그 BT의 걸음은 그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샘이 아닌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목소리 또한 가까워져 있었고요. 그렇게 노래에. 목소리에. 걸음에. 이끌려온 샘은 어느 해변가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바로 '그녀'가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빨간색이나 검정색 옷이 아닌 다른 색의 옷을 입은.
그녀는 샘에게 '포기하지 마'라는 말과 함께,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일전에 그가 보았던 의문의 다섯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의문의 다섯 그림자에게 점점 다가가던 샘. 그러던 갑자기.
"잡았다!" 물에서 갑자기 나온 손에 의해 물 속에 잠겨버린 샘. 그리고 그 물 속에는. 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데드맨'. 그리고 "루"가 말이죠.
그렇게. 샘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내일을 믿어준. 샘을 믿어준. 불을 켜두고 희망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는 그곳.
바로 이 현실로.
에피소드 13 : 샘 스트랜드(Sam Strand)의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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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부득이하게 이번 스토리 부분에서는 '일부 내용을 감췄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글씨 숨김 시작"]과 ["글씨 숨김 종료"] 사이에 다소 빡빡한 텍스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해당 텍스트의 장면은 스토리텔링에 있어 지옥의 재수강(...)이라는 영 좋지 않은 평을 받은 부분이기에 우선은 감췄습니다.
다만, 해당 부분을 곱씹어서 읽어 주신다면 남은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같이 들었기에 해당 방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러 사정상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