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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7/21 17:51:03
Name OrBef
Subject [일반] [잡담] 그랜드 캐년, x알 친구, 한국

1. 그랜드 캐년

1번은 자랑질입니다!



x알 친구... 중에서도 좀 많이 친한, 제가 형제처럼 생각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가 1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직접 창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 이런저런 마음 정리도 할 겸 미국에 놀러 오게 되었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법 큰지라, 여행 테마를 어떻게 잡을까 하다가

Orbef: 너 뉴욕 뭐 이런 데 가서 유명한 커피샾에서 이상한 로칼 커피 마시면서 된장질할래 그랜드 캐년 가서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서 동네 계곡 따위나 볼래?
x알친구 (이후 X): 동네 계곡 고고

해서 같이 그랜드 캐년에 갔습니다. 이 계곡이 길이로는 서울-부산 정도로 길고, 폭도 지평선까지 계곡만 보이는, 그야말로 스케일로 얘기 다 끝나는 곳인지라 사람이 죽기 전에 한 번쯤 볼만한 곳이에요. 다만 이런 여행은 은근히 돈이 많이 드는지라 인생 살면서 여러 번 가기는 좀 힘드니까 기왕 가는 거 제대로 즐기기로 결심하고 여러 명이서 헬리콥터를 잠깐 대절해서 계곡을 돌아봤습니다. 원래는 래프팅이나 하이킹으로 일주일 코스라던데, 도저히 그럴 시간과 돈은 없어서 꿩대신 닭으로 선택한 거지요 (헬리콥터 대절이라니 뭔가 비쌀 것 같지만, 워낙에 관련 상품이 많은지라 실제로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와..... 여기 두 번째 와보지만, 첫 번째에 느꼈던 감동 이상이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그랜드 캐년 가실 분 계시면 강추입니다.

2. x알 친구

이 친구 X 와 저는 중/고/대/대학원을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온 30년 친구입니다. 동네 친구인지라 오락실/운동/독서실까지 같이 다녔으니, 같이 보낸 시간이 좀 길지요. 제 아내도 동문회에서 사귄 사이다 보니 X와 아내도 서로 잘 아는 사이고, 신혼 때 집에 와보면 아내는 청소 중이고 X는 소파에서 온게임넷 보고 있는 엽기적인 상황도 몇 번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낸 친구가 종종 그렇듯이, 저와 X 는 많은 점에서 취향이 상극에 가깝습니다. 저는 좀 냉소적인 말을 픽픽 뱉는, 중2병 허세가 패시브로 장착된 쪽인데 반해서 X 는 개똥철학을 혐오하는 아주 견실한 스타일인데, 그러다 보니 저는 친구가 많지 않은데 X는 언제나 친구를 몰고 다니곤 했었습니다. 다만 이런 스타일의 약점인 '좋은 사윗감' 특성을 가진지라 X 는 아직 결혼을 못 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퇴사하고 친구나 보러 다니는 거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의견이 반대로 갈리는 결과가 자주 나오는데, 미국 살면서 사귄 친구들하고는 그런 수다를 떨 기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새로 만난 사람들도 좋은 분들이지만, 원래 나이 먹고 만난 친구들은 아주 가까워지기는 힘들어서 그렇지 싶습니다. 하여튼, 주제 불문하고 서로 입에 침 튀기면서 싸우던 옛날 수다가 너무 그리워서 캐년 관광 후에 집으로 가는 코스를 일부러 비행기를 쓰지 않고 1박 2일 자동차 여행으로 잡았습니다.


 


Orbef: 야, 유물 철학의 대세는 자아의 부정이라더라.


X: 너 요즘도 그런 거 하냐? 하지 마!


 


X: 난 독립심 강한 여자가 좋다


Orbef: 너처럼 회사 차리는 사람이 독립심 강한 여자랑 결혼하면 집안이 폭발할걸? 하지 마!


 


Orbef: 원래 진화는 random mutation 이 필수잖아. 연쇄 살인범도 그런 면에서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거야


X: 그놈들은 그냥 나쁜 놈들이지 뭔 말이 많냐.


 


X: 난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개 농장 차릴 거다.


Orbef: 개 돌볼 시간 있으면 고아를 돌봐라


X: 개 돌보는 게 무슨 나쁜 짓도 아니고! 니 말은 예나 지금이나 뻘소리구나! 아놔 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쿡님은 날씨가 뭐 이러냐


 


미국 중부는 원래 만성 가뭄 지역인데 이상하게 X와 1박 2일 달리는 내내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린지라, 100 미터 앞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거북이 운전을 하면서 줄곧 저런 수다를 떨었네요. 10년 동안 뭔가 마음이 허전했었는데, 허전함이 많이 채워진 여행이었습니다.


 


3. 한국


 


한 달 동안 한국에 왔습니다. 여름에 한국에 꼭 오고 싶었는데 장기 출장의 기회가 생겨서 옳타꾸나하고 덥석 물었습니다. 사는 곳이 강북의 홍대 입구인지라 연애족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저번에 한국 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한국 젊은 사람들의 연애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또 받았습니다. 옛날에는 걷는 폼만 봐도 남자들이 여자들을 리드하면서 다니는 쪽이었다면 요즘은 여자들이 남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참 날씬하더군요. 한국 여자들이 날씬한 거야 뭐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날씬하게 몸매 관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고향인 피씨방에 와보니 여긴 여전하네요. 게임 종목만 바뀌었을 뿐, 수많은 형제들이 오늘도 전장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에 제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지금도 제 왼쪽 형제는 롤을, 오른쪽 형제는 축구 게임을 하고 있는데, 두 분 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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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1 17:54
수정 아이콘
다른건 모르겠고 불씨랑 사이가 돈독해보이셔서 참 부럽네요...
Love&Hate
13/07/21 17:54
수정 아이콘
그랜드 캐년은 제가 자주하는 욕인데.
x알친구와 합쳐져서 저같은 분인줄알았네요
Funtastic
13/07/21 17:57
수정 아이콘
아.. 학회때 교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으셨더라면 가려고 했던 그랜드 캐년이네요..

내년엔 기필코...흑흑
13/07/21 18:01
수정 아이콘
강추입니다! 시간이 모자라면 저처럼 라스 베가스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버스 - 비행기(혹은 헬리콥터) 를 이용한 코스를 추천합니다. 하루 더 시간이 있으면 south rim (경치가 제일 좋은 곳) 까지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리니까 왕복 8시간 + 캐년 보기 3시간 정도로 그럭저럭 캐년의 반 정도는 볼 수 있습니다.
Funtastic
13/07/21 19:19
수정 아이콘
내년에 혹 교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다녀와야겠어요. 크크

학부때 OrBef님 글보고 무럭무럭(?) 꿈을 키워왔는데 벌써 박사과정 2년차네요. 시간 정말 빨라요. 흑흑

오랫만에 오셨을텐데 편히 푹 쉬다 가시구요.
절름발이이리
13/07/21 18:26
수정 아이콘
저는 얼른 킬리만자로에 가서 썩은 짐승 고기를..
Je ne sais quoi
13/07/21 21:16
수정 아이콘
아 저도 두 번 가봤지만 비행기나 헬리콥터는 못 타봤는데! 아오 부러워요~
흰코뿔소
13/07/21 21:43
수정 아이콘
죽기전에 봐야할 곳 No.1이네요. 저도 꼭 가고 싶습니다.
tannenbaum
13/07/21 21:46
수정 아이콘
헬기 대절이라니 역시 스케일이 다르군요 천조국 킹왕짱!!!
13/07/22 06:58
수정 아이콘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너무 나가는 것 같아서 본문에 적지 않았었는데, 내일 (화요일) 저녁에 신촌의 TILT 라는 재즈바 (헥스밤님이 운영하시는) 에 가서 술 한잔 할 생각입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인데 이번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닿을 지 몰라서요. 혹시 저와 술 한잔 하실 생각 있으신 피지알러분이 계시면 댓글이나 쪽지로 알려주세요. 아직 전화기가 없는데, 오늘 중으로 개통할 예정입니다.
Nangmantoss
13/07/22 07:19
수정 아이콘
와, 헬기로 그래드 캐년 관광을 하셨다니 좋으셨겠네요! 전 작년에 아내랑 그랜드 캐년 + 세도나 + 투산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랜드 캐년에서는 그 크기에 놀라고, 세도나는 너무 아름답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그 분위기에 놀랐었죠.. 혹시 애리조나 여행 가실 분들 있으시면 세도나 두 번 가세요(...)

저는 6월달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다 왔는데, 조금만 시간이 늦었어도 OrBef 님 뵈러 재즈바나 가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ㅠ
13/07/22 08:33
수정 아이콘
함께 여행할 수 있는 X알친구도, 그 여행지가 그랜드 캐년이라는 것도, 무엇보다 한국으로 출장을 올 수 있는 해외거주 중이시라는, 그 세 가지 모두가 부럽네요. ^^
다다다닥
13/07/22 09:27
수정 아이콘
"그놈들은 그냥 나쁜 놈들이지 뭔 말이 많냐."

명언입니다! 크크크크크크크
Cazellnu
13/07/22 11:08
수정 아이콘
저는 라스베가스에서 혼자 차를 렌트해서 그랜드캐년 보고 왔는데요
보통 관광 코스에 라스베가스에 그랜드캐년을 넣길래 가까운줄 알았더니
오라지게 멀더군요.

중간에 후버댐이었나 거기도 들리고 (아마 아리조나 경계인거 같았어요 시간조정점이기도 했는듯 대형시계를 봤습니다.)
주유하러 촌동네 들어가서 햄버거질도 하고 촌사람들도 보고 했네요 (이과정이 더 재미잇었는듯)

그랜드캐년가니 장관이긴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큰 감동은 없었네요
Nangmantoss
13/07/22 11:33
수정 아이콘
서부에서 '가깝다'라고 하면 4-5 시간은 기본이죠.. 허헛 여행책에 LA 에서 샌 디에고 하루 -이틀 코스 정도로 보통 나오는데 가는데만 두시간...
켈로그김
13/07/22 11:45
수정 아이콘
마음의 고향 피씨방에서 뜬금없이 감동합니다.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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