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2/01/13 16:45:33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낭만에 대하여... |
그냥,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
그냥 단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를 해 주는 것이 좋아서
테란이라는 종족을 골랐고
그넘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종족인지 알고
초보한테 좀더 쉽다는 저그나 프터로 바꿀까 하다가도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테란 유저이기 때문에
또 그간 들은 고운 정 미운 정 때문에
괜시리 버리기 힘든 그 테란이란 넘을 쥐고
연전연패 백전백패를 해도
그냥,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
투배럭 입구 근근히 막고 마린이 서너기쯤 나오면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히드라 럴커가 러쉬를 오고
후진 컨트롤 덕분에 마린 메딕이 럴커에 몰살 당해도
혹은...
테크는 포기하고 마린만 죽어라 뽑아 근근히 머리 수 좀 맞춰놓으면
귀신같이 빈데 찔러 들어오는 드랍에
서플이 터지고 에씨비가 죽어나가도
그냥,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
누구는 배틀 두대만 있으면 멀티 하나도 거뜬히 밀던데
누구는 벌처 서너기만 있으면 질럿 드래군 한부대랑도 맞짱 뜨던데
누구는 마린 메딕 한부대만 있으면 럴커 한부대가 무섭지 않던데
배틀 한부대 뽑고도 컨트롤 못해 터렛에 다 터지고
벌처는 컨트롤 할 자신 없어 아예 만들지도 않고
마린메딕 아무리 만들어도 만든 족족 다 죽어나가도
그냥,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어이가 있든 없든 기분이야 좋든 나쁘든
GG 옆에 ^^ 하나 찍어주면 마주 웃어주는 상대가 있고
잘하시네요 라고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면
제가 운이 좋았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아까는 배럭 짓고 GG였는데
그래도 이판엔 팩토리까지는 갔다는 위안거리가 있고
입구에 홀드한 마린메딕으로 초반러쉬 들어온 질럿 드래군은 막았다는
발전이라 말하기도 낯간지러운 발전에 흐뭇하고...
리플을 보면, 다들 어쩜 저리도 잘하는지.
공격하며 멀티하고, 멀티하며 유닛뽑고, 유닛뽑으며 컨트롤하고
아무리 저짓하고 사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라지만
뭘 먹고 저렇게 잘하는가 싶은 생각에
가끔 슬그머니 짜증도 나지만
뭐, 저 사람들이라고 태어날때부터 스타크래프트 메뉴얼 읽으며 태어났겠냐고
저 사람들도 단축키 몰라 버벅대고,
컨트롤 허접해 애써 모은 유닛 다 날리던
지금의 나같은 시절이 있었으려니 생각하면서
그냥 한 번 웃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패수,
그러나 백패 천패는 해야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는,
그래도 중수는 되는 친구녀석의 말에
좀 더 깨져볼 각오로 다시 공방을 헤매고.
그냥,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
이왕 하는 것 잘하면야 좋겠지만
고수 소리 들으면야 좋겠지만...
그게 안되더라도, 아무리 애를 써도 그건 힘들더라도
정찰 온 상대에게 인사를 잊지 않고
진 후 괜시리 맘 상하지 않는
게임을 즐기고 순간을 즐기는 마음만은 잃지 말았으면.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까.
게임은 재미있자고 하는 거니까.
그리고, 게임에 임해 여유로울 수 있는 건
게임에 인생을 건 프로가 아닌
우리 하수들, 중수들, 아마추어들만의 특권이니까.
Good Luck To You All.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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