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3. 승부의 윤리
사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좋은 이야기, 웃을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모두들 그저 긍정만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에겐 꽤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이 상처받아왔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과, 그 눈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꽂혀지는 순간으로부터.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라도 거칠게나마 운을 떼고, 한번쯤은 돌을 맞아 봄 직도 한 일이다.
불쑥. 임요환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 화두에 가장 적합한 접근이다. 몇몇 게이머들 마저도 그의 플레이를 "기상천외한 기습"의 수준이라고 평가 했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뒤이은 표현들은 "운, 그리고 기분상함"이었다.
그리고 초창기의 많은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다. "새로움, 그리고 창조적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는 황제가 되었고, 결코 배넷에서 이루어지는 주류의 전략을 통해 권좌에 오르지 않았다. 그의 칼은 검이라기 보다 예리한 도였고, 검법 역시 변초가 난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무림은 그를 천하제일검으로 인정했고, 천하 백성들 역시 그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정당한 권력을 가진 것일까?
그는 SCV댄스를 보여준 선수이다. 그리고 GG를 받아내기 직전, 드랍쉽을 움직일 줄 아는, SCV러쉬를 보여줄 줄 아는, 또한 뉴클리어를 공식전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선수이다. 승리를 즐기려는 콜로세움의 투사처럼 오만할지도 모른다.
실수로 개발한 EMP를 저그의 유닛 앞에 쏘아볼 생각을 하는 선수, 프로토스를 상대로 공식전에서 숨겨 배럭을 하고, 저그에게 3배럭 날리기 러쉬를 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를 색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과 "그르다"는 것은 어디까지 접근할수 있을까.
우리는 그가 "다르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순 없다. 그는 분명 "다른"유저 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뒤에 수많은 백성이 따르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에 이어 많은 다른 게이머들 역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제에 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기까지 하다. 어찌되었든, 그는 다르다.
하지만 그는 옳은가? 혹은 그른가?
물론 그럴수는 없지만, 잘라 말하고 싶다. 왜 그의 플레이가 옳고 그름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의 룰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것은 "서로를 쓰러뜨리기 위한 비정함을 필요로하는" 경기이다. 우리는 귀여운 병아리 두 마리를 레이스에 참가시켜 둔 동네 사람들이 아니다. 아직 비틀거리며 서 있는 선수에게 엄지를 땅으로 찍어내리며 열광하는 충혈된 눈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승리를 원한다. 그가 검을 쓰건, 도를 쓰건, 혹은 암술을 쓰건 승리와 패배의 이름이 과정을 통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친한 선수와의 경기에서 필요 이상의 퍼포먼스를 취하다 상대에게 모욕을 안겨 주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의 그의 삶을 옭아 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은 "오만한 승리자" 이상의 표현으로 나타날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를 싫어할수 있는가? 물론이다. 그를 싫어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우상을 쓰러뜨리고 그 쓰러진 앞에서 춤을 춘 상대에게 분노를 삭이고 웃어줄 필요는 없는 것이므로. 하지만 그가 부당하다고, 혹은 승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분노를, 혹은 세상의 윤리로 부터 가져온 생각에 의한 어색함을, 비난과 정당하지 못함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당당히 분노하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조용히 나무 뒤에 나의 우상이 쓰러진 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당당히 소리치자. "너는 이겼으되. 나는 분노한다"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긴 이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쓰러진 자 역시 새로운 길을 걸어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분명, 승리다.